From Abroad

베를린 & 함부르크 현지취재_ Tanz im August & 국제여름무용축제
개념 무용의 시대는 이제 끝났는가?
정다슬_<춤웹진> 유럽 통신원

 

 

 그야말로 예술이 꽃 피는 여름이었다. 매년 6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유럽의 많은 도시들에서는 무용, 음악, 미술을 비롯한 각종 예술 페스티벌이 판을 벌인다. 관객으로서는 어느 도시에서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제26회 International Festival Berlin – 60개 컨템포러리 댄스 선보여

 가장 ‘핫’하다는 예술가들이 모여 있고, 여전히 모여들고 있는 도시인 베를린에서 Tanz im August (Dance in August, International Festival Berlin/ 이하 T.I.A)가 그 26번째 문을 열었다. 페스티벌은 8월 15일부터 30일까지 2주 간, 10개의 극장에서 21개 무용단, 14개국 출신 안무가들이 참여해 60개 이상의 작품이 선보여졌다.
 작지 않은 규모의 T.I.A는 100% 컨템포러리 댄스만을 수용하고 있으나, 다양한 세대와 배경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예술관이 반영된 차별화된 작품을 선보이도록 함으로서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유도하였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로사스, 마이클 클락 컴퍼니, 쿨베아그 발레를 비롯하여 각각 몬트리올과 상 파울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젊은 안무가 Dana Michel, Eduardo Fukushima, 베를린 데뷔 무대를 가진 Big Dance Theater, Daniel Léveillé, Trajal Harrell 등 뉴욕에서 날아온 떠오르는 스타들도 소개되었다.

 



 페스티벌은 스웨덴 안무가 크리스티나 카프리올리가 기획하고 진행한 프로젝트 〈CHOREO_DRIFT 2014〉로 포문을 열었다. 그녀는 안무, 인간의 권리, 폭력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교육적, 예술적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안무가로 잘 알려져 있다. 〈CHOREO_DRIFT 2014〉 역시 3명의 안무가와 철학가가 안무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연으로 그녀는 서로 바라만 보고 있는 기존의 딱딱한 강연 형식을 벗어나 관객이 보고 듣고 토론하며, 순간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강연을 만들어냈다.

 



 무대 위에는 간이침대, 요가 매트 등이 마련되어 누구나 자유롭게 눕거나 앉은 채로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했고, 무대 뒤편에 설치된 칠판과 프로젝터에는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질문들을 써내려 감으로서 모든 관객이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때로는 크리스티나 카프리올리가 안무한 짤막한 작품들이 선보여졌지만 강연자들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개의치 않고 강연을 이어나갔다. 〈CHOREO_DRIFT 2014〉는 일반적으로 수동적 입장에 놓여있는 관객이 화자가 되게 하고, 즉흥적인 사고를 공유하게 하는 데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강연 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정치, 역사와 춤의 관계’라는 강연 주제가 강연 형식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웠고, 활발히 참여한 관객에 반해 강연자들 스스로가 줄곧 수동적인 태도로 준비된 글만을 읽어 내려간 점이 아쉬웠다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편, 베를린 중심에 자리한 쉴켈 파빌리온의 정원에서는 상파울로에서 날아온 30세의 젊은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Eduardo Fukushima가 독일에서의 데뷔 무대를 가졌다. 쉴켈 파빌리온은 주로 현대 미술 전시가 열리는 곳이지만 이번에는 뒤편의 커다란 정원에 야외무대를 설치하여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도심 속 정원이라는 신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공간 특성을 십분 활용한 영리한 연출이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하였다.
 Eduardo Fukushima는 직접 안무하고 출연하는 솔로 작품인 〈The Crooked Man〉, 〈Between Contentions〉, 〈How to Overcome the Great Tiredness?〉를 선보였다. 세 작품 모두 그의 자전적 요소와 주관적인 감정을 토대로 움직임 연구에 집중한 작품이다.

 



 그 중 가장 최신작인 〈The Crooked Man〉은 그가 일 년 동안 타이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창작한 작품으로, 클라우드 게이트 컴퍼니의 안무가 린 환 민이 멘토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Eduardo Fukushima는 30분의 러닝타임 동안 몸의 안과 밖을 뒤집고 비튼다. 그야말로 몸을 종이처럼 구기는 움직임을 이어나가면서 이를 통해 기이하게 변형되는 몸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을 연상시키는 ‘불편한 몸’은 해학과 동시에 병들고 외로운 몸이 지닌 슬픔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미’적인 것은 아니지만 내면의 감정을 그대로 시각화, 형상화 함으로서 낯설지만 흥미로운 움직임의 언어를 창출해냈다.
 올해 T.I.A 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작품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안무가 Trajal Harrell이 선보인 〈Antigone Sr./Twenty Looks of Paris is Burning at the Judson Churh(L)〉였다. “1963년, 만약 할렘에서 보깅을 하던 사람이 저드슨 처치로 공연을 하러 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Antigone Sr./Twenty Looks of Paris is Burning at the Judson Churh〉는 XS, S, M, JR(Junior), L, ++(Plus), XL 등 다양한 규모의 작품으로 안무되었고, 현재는 일련의 시리즈가 되었다.
 예일대학에서 예술사와 문학을 공부한 후 안무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Trajal Harrell의 관심이 춤과 음악의 역사에 놓여있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는 60년대 초 뉴욕의 저드슨 처치에서 부흥한 포스트 모던 댄스와 같은 시기에 도시의 반대편인 할렘에서 시작된 보깅을 한 자리로 모았다. 서로 다른 두 장르의 춤 안에서 공통점을 모색하고 동시에 사회 계급, 인종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증 등 시사적인 주제들을 고대 로마 신화의 안티고나가 지녔던 여성성과 남성성의 공존과 연계시켜 작품을 전개시켰다.

 



 작품은 시종일관 과장되고, 왁자지껄하게 진행되었다. 안무가를 포함한 5명의 무용수들은 이야기, 노래, 의상, 캣워크 포즈 등을 매우 사치스러우면서도 장난기 어리게 표현해냈다. 여성복을 입은 남성 무용수들이 패션쇼를 하듯 무대를 활보하고, 남성이 지닐 수 있는 여성성을 보깅을 통해 극단적으로 부각시켰다. 작품 초반부터 무대 안팎의 경계는 흐려지기 시작하다가 작품이 후반으로 치달으며 결국 사라졌다. 무용수들은 관객석 사이를 넘거나 관객 옆에서 헤드뱅잉을 하기도 했다. 과격한 리듬과 극에 달한 듯 한 결렬한 움직임이 극장을 채웠고 안무가는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유도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관객은 냉소를 지었다. 사회적 주제와 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을 다루는 그의 방식이 도발적이기도 하고, 그 도발이 관객을 향해 겨누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일방적이고 자극적으로 관객을 ‘도발’했던 Trajal Harrell의 방식으로 인해 공연 초반부터 많은 관객이 극장을 떠났고, 안무가가 원했던 환호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공연을 관람한 네덜란드 출신의 테스 루카슨은 “자리를 떠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게 하는 작품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비록 관객들로부터 냉혹한 비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가 세계 각국의 메이저 페스티벌들과 극장들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는 떠오르는 스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은 필자로 하여금 피나 바우쉬의 어느 인터뷰를 떠오르게 하였다. 그녀의 많은 초기작들은 당시에는 날 것 그대로의 잔혹함을 담고 있다고 평해졌고, 이런 작품들은 관객으로부터 극단적인 반응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피나 바우쉬가 “나의 첫 작품인 〈Fritz〉(1973)는 기이한 작품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공연 중 무대 위로 오렌지를 던졌고, 경악스러운 상태에 빠져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나섰다”고 인터뷰를 한 바 있다.
 Trajal Harrell의 작품이 그가 기대한 만큼의 박수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은 여전히 예술을 특정한 틀에 집어넣은 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진화하지 못한-필자를 포함한- 관객 때문일 수 있다. 혹은 관객을 도발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으나 그것을 설득력 있게 진화시키지 않은 안무가 때문일 수도 있다. 갈피를 잡기 위해선 앞으로의 그의 행보에 주목해야 할 듯하다.

 



 T.I.A 페스티벌은 그야말로 컨템포러리 댄스 전반을 두루 돌아보는 듯 했다. 그 취지에 적합하게 ‘개념 무용(Conceptual Dance)의 시대는 정말로 끝났는가?’, ‘댄스 시어터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 ‘관객 그리고 극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치는 어디에 놓여 있는가?’ 와 같은 다양한 화두를 던졌으며, 넓은 범위의 현대적 이슈들을 고찰하는 장소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작품과 그 성격에 우선순위를 매기지 않고 다양한 주제들을 조합하였다. 그러나 춤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반면, 각각의 흥미로운 작품들이 개연성 없이 나열된 듯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함부르크 국제여름축제 –‘정치적 상황과 미의 일반적 정의에 대한 저항’이 주제

 독일의 동쪽에 위치한 베를린에서 T.I.A 이 진행되는 동안 서쪽의 함부르크에서는 국제 여름 축제(International Summer Festival)가 열렸다. 8월 6일부터 24일까지 3주간 진행된 축제에서는 무용은 물론 연극, 음악, 퍼포먼스, 미술, 영화까지 아우르는 예술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장르만큼이나 다양한 지역의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다.
 함부르크의 국제 여름 축제 역시 ‘정치적 상황과 미의 일반적 정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었다. 에스터 살라몬, 엠마뉴엘 갓 같은 안무가 부터 키드 코알라, 그레이트 한스 등 음악, 영상 등을 조합한 퍼포먼스 그룹까지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개념 무용, 댄스 시어터를 비롯한 온갖 장르의 퍼포먼스가 넘쳐나는 지금, 이스라엘 출신의 안무가 엠마뉴엘 갓의 작품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의 신작 〈Plage Monatique〉는 그의 전작들과 같이 무용수, 움직임, 음악과 공간을 소품으로 활용하여 군더더기 없이 살아 숨 쉬는 움직임에 집중하였다.
 9명의 무용수들은 소리의 흐름에 맞추어 일순간에 하나의 큰 점으로 결합하였다가 이내 여러 개의 작은 점으로 분산되었다. 움직임이 진행되는 동안 무용수들은 직접 소리를 창출하기도 했다.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하거나 기타를 치고, 몸으로 소리를 만들었다. 현장에서 라이브로 녹음된 소리들은 다시 음악의 형태로 무용수들을 이끌었다. 일정하지 않은 형태의 리듬은 복잡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이끌어 냈다. 무용수들은 한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고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귀를 크게 열고 있었고 그런 긴장감은 관객석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Plage Romatique〉는 소리라는 근본적인 재료를 이용하여 까다로운 안무 구성을 연출하였는데, 그 구성이 매우 심플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보여 질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엠마뉴엘 갓에 소속된 한국인 무용수 김판선을 보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그는 특유의 정확하고 힘 있는 움직임으로 눈길을 끌었다.

 



 오늘 날의 축제가 이뤄내야 할 숙제는 다양한 입맛의 관객을 만족시키고 무용씬에 영감을 불어넣는 데에 있을 것이다. 현대 무용의 경향을 단정 지을 수 없는 요즘, 베를린 T.I.A 와 함부르크 국제 여름 축제는 넓은 범위의 미학과 안무적 고찰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였다. 자연스레 그것은 다양한 관객층의 확보로 이어져 모두를 위한 축제를 만들어냈다.

2014.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