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뉴욕 현지 취재_ 캐나다국립발레단 〈앨리스의 신나는 모험〉
제작비 20억원 투입한 신작 그랜드 발레
서정민_<춤웹진> 뉴욕 통신원

 거대하고 새빨간 하트 모양의 플라스틱 위로 머리색까지 빨갛게 치장한, 결코 인자해 보이지는 않는 한 여자가 팔을쫙 펼쳐 성난 듯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왼편으로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란 글이 눈에 들어왔다.
 조이스극장재단(Joyce Theater Foundation)과 캐나다국립발레단이 크리스토퍼 휠던(Christopher Wheeldon)의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을 데이비드 에이치 코치극장(David H. Koch Theater)에서 9월 9일부터 14일 동안 선보였다.
 이 작품은 영국로열발레단이 안무가 휠던에게 의뢰해 만든 것으로 약 20억($2million)의 작품 제작비는 영국 로열발레단과 캐나다국립발레단 협업의 산물이다.

 



 캐나다국립발레단이 매우 연극적인 발레 컴퍼니이기에 <앨리스의 신나는 모험>에 적합하다고 휠던은 설명했다. <앨리스의 신나는 모험>은 로열발레단에서 1995년 제작한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의 〈Mr. Worldly Wise〉가 성공하지 못한 이후로 처음으로 시도된 새로운 작품으로 당시 예술감독 모니카 메이슨(Monica Mason)의 마지막 임기 1년을 남겨 놓고 무대에 올려졌었다.
 2011년 2월에 로열발레단이 로얄 오페라 하우스에서 세계초연을 했고, 같은 해 남미와 토론토에서 캐나다 국립발레단이 선보였다. 그리고 일본, LA, 워싱턴 DC에서 공연이 올려졌다.
 영국 초연 당시 로슬린 술카스(Roslyn Sulcas)는 ‘뉴욕 타임스’에 “뛰어나게 연극적이고, 형형색색으로 휘황찬란한 의상, 무모한 움직임, 유려한 춤이 조합된 발레를 관람함으로써 휠던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발레의 안정된 구조를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약 3시간에 걸친 크리스토퍼 휠던의 연극적으로 신기한 세계, 3막 앨리스의 모험은 우리를 긴장시킨 채 그 곳으로 따라가게 했다” (더 월 스트리트 저널), “캐나다국립발레단의 앨리스가 원더랜드이다”(The OC Register), “빛나는 음악, 앨리스의 신나는 모험은 21세기의 첫 번째 진정한 이야기 발레로 점점 더 호기심 가득한 작품” (타임)이라는 호평을 받았었다.

 



 뉴욕 공연을 위해 소품과 세트를 운송하는데 ‘9대의 트렉터 테일러’가 사용되었고 고슴도치 역을 맡은 지역 어린이들을 제외하고 70여명의 무용수, 65여 명의 무대 인력, NYCB의 전속 오케스트라 등까지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인원이 이번 공연에 투입되었다. 무용의 수도, 뉴욕에서 세계 초연(2011) 이후 이제야 공연하게 된 데 대해 “뉴욕에 많은 공연장이 있는 듯 하면서도 정작 이 작품에 맞는 공연장은 데이빗드 에이치 코치 극장(David H. Coch Theater at Lincoln Center)이 유일했기 때문”이라고 휠던은 답했다.




 “말이 없는 브로드웨이 작품처럼 웅장한 발레를 만들고 싶었다”

 최대의 제작비 지원을 받으며 작품을 안무한, 크리스토퍼 휠든은 영국 출신으로 현재 영국 로얄발레단의 예술 협력자(artistic associate)이다. 1991년,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쿨’에서 자신의 창작품으로 금메달을 수상, 로열 발레단에 입단하게 된 그는 1993년 뉴욕시티발레(NYCB)로 이적하여 활동하다 2001년 NYCB의 최초 레지던트 안무가로 선정되면서 가장 전도유망한 젊은 안무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프레드릭 애쉬톤(Frederick Ashton)과 케네스 맥밀란(Kenneth MacMillan) 으로부터 이야기 발레에 대한 트레이닝과 지식을 배운 그의 안무작 중 〈Polyphonia〉는 '런던 평론가 서클상‘(London Critics’ Circle Award)을 수상했고, '올리비어 상‘(Oliiver Award)에서는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휠든은 보스톤발레단, 샌프란시스코발레단, 네덜란드국립발레단, 펜실베니아발레단 등에서 정기적으로 안무를 하는 한편, 모포시스/휠던 컴퍼니(Morphoses/The Wheeldon Company)를 2007년 설립했다. 영국 안무가로서 최초로 볼쇼이발레단을 위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기도 한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게임의 폐막식에서 알라스테어 메리엇트(Alastair Marriott)와 협업을 선보였다.
 한 평론가는 <앨리스의 신나는 모험>을 “발레보다는 더 연극적인 쇼”라고 했고 휠던은 그것이 작품의 포인트라며, “나는 말이 없는 거대한 브로드웨이 작품처럼 웅장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을 더욱 빛나게 했던 무대, 다양한 소품으로 더욱 볼거리가 풍성하고 우리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한 무대 디자이너는 밥 크로울리(Bob Crowley)로 한국에서 곧 무대에 올라갈 뮤지컬 <원스>를 비롯 <디즈니의 아이다>, <메리 팝핀스> 등 여러 뮤지컬을 통해 ‘토니상’(Tony Award)을 수상한 주인공이다.

 



 공연 둘째 날, 9월 17일 2,586석의 데이빗드 에이치 코치 극장은 가족단위, 연인 등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로 가득했다. 작품은 아주 조심스럽게 평화롭게 시작하면서, 앨리스가 좋아하는 남자와 앨리스 어머니가 반대하는, 살짝 아픈 로맨스를 보여준다. 그리고 토끼를 쫓아서가 아니라 어쩌다가 깊은 굴로 빠져들어 가는 앨리스, 깊은 굴로 떨어질 때 쏟아지는 영상 이미지는 혼돈스럽고 앨리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이상한 나라로 함께 데리고 간다.
 다양한 영상과 수시로 변환되는 무대(65명의 무대 크루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음이 눈에 선하다)는 그야말로 신기하고 호화로운 세계로 가득 차 있다. 평화로운 집 앞마당에서, 혼돈의 굴, 때로는 살기어린 정육점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형광색을 이용한 호랑이를 구현하고 카드를 무대 전체로 투사하여 카드 춤을 추기도 한다. 여러 다양한 캐릭터 등장인물로 때로는 오즈의 마법사를 보는 듯 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 포스터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 카드 여왕은 무대에서도 역시나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하지만, 평소에 물만 마시고 사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뼈만 앙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과 연기는 가장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작품에 대한 비평가들의 다양한 반응

 관객들의 눈을 시종 붙잡고 있는 공연이었지만, 브라이언 세버트(Brian Seibert)는 ‘뉴욕 타임스’에 “이상한 나라 앨리스를 발레로 각색하기에는 장애물이 많았다. 작품의 프롤로그에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라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리지널 원작이 책으로만 있어야 했었다고 웅변하듯 말이다.
 하지만 세트 디자인에 대해서는 “기가 막히게 좋았고, 휠던의 높은 기교와 실제적으로 영감있는 안무는 작품 곳곳에서 명백하게 드러나고, 작품 진행에 있어서 연극적인 위험에 처할 때마다 모바일 세트, 인형, 비디오 애니메이션의 사용으로 극을 매혹적으로 부드럽게 이끌어 갔다”고 지적했다.
 사랑에 관심을 갖고 있는 앨리스의 설정과 관련, 왜 로맨스인가? 라는 질문에, 휠던은 “관객들은 (사랑의) 파드되를 원한다”고 답했다.
 “원작 앨리스의 모험의 특징이 그 흔하디흔한 사랑 이야기가 없기 때문인데, 파드되는 사랑스러웠지만 오히려 작품을 실패하게 한 중요 요소였다”, “사랑이야기를 넣기보다는 앨리스를 독립적인 여전사로 남겼어야 했다”, “작품이 조심스럽게 관습에 얽매여 있고 상상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등 비평가들의 부정적인 지적도 적지 않았다.

 



 2011년 초연당시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첫 번째의 공으로 돌려진 음악에 대해서는, “조비 탈봇(Joby Talobt)의 작곡은 안무가를 돕기 보다는 오히려 작품에 상처를 주었다”고 하기도 했다. 비평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떤 작품에 대해서 모두 좋다고 하면 재미없을 것이다. 자로 잰 듯한 이성적인 시각도 때로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와우”, “성장한 앨리스 나쁘지 않다”였다.
 약 3시간 동안 무대에 펼쳐진 신기한 나라, 2011년 영국 초연 당시, “볼만하고 즐길만하다”는 호평과는 달리 2014년 9월의 앨리스는 왜 성장했냐?고 원작은 어디 갔냐?고 야단맞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21세기의 발레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호평도 있었다. 

2014.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