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탈춤’, 당대의 공연예술 당대의 춤으로 거듭나길 소망하며...
제15회 '진주탈춤한마당-동아시아탈춤축전2012'
남기성

 이제는 과거 한때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7,80년대는 탈춤의 시대라 할 수 있을 만큼 전국의 대학마다 탈춤패가 조직되어 봄가을로 대학의 캠퍼스에서 쉽게 탈춤공연을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디스코텍이나 나이트클럽의 춤 못지않게 적어도 대학가에서만큼은 탈춤은 가장 대중적인 춤이었다. 더욱이 탈춤은 대학의 담을 넘어 교회와 공단지역, 농촌에 이르기 까지 널리 보급되기도 하였다. 힙합이나 브레이크댄스, 혹은 요사이 유행하는 스윙댄스 등등 지금의 대중적 춤이 유행하기 이전, 한국의 근현대 춤 역사에서 탈춤만큼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고 추어진 춤이 있었을까?
 지난 5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진주 남강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진주탈춤한마당은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대학가의 탈춤운동이 시들해질 무렵인 1996년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힘을 모아 한국 최초의 탈춤축전으로 시작하여 올해 15회 째를 맞이하였다. 특히 몇 년 전 부터는 “진주탈춤 한마당-동아시아 탈춤 축전”이라는 이름으로 한중일 3국의 전통탈춤을 중심으로 하여 창작탈춤과 마당극, 그리고 풍물과 춤 등 인접 공연예술이 함께하는 종합연행축전으로 변화발전하고 있다. 또한 단순한 축전의 개최에 머물지 않고 진주시민의 적극적 참여와 후원으로 1930년대에 사라진 진주오광대놀이를 복원하였으며(1998년. 2003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됨),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진주오광대 보존회가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이렇듯 관 주도가 아닌 - 물론 관의 재정적 지원은 있지만 - 오롯이 민간의 힘으로 이루어낸 성과들은 전국 각지에 넘쳐나는 축제의 홍수 속에 모범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올해의 행사는 “동아시아의 기예(技藝)”를 주제로 봉산탈춤, 은율탈춤과, 진주오광대놀이, 제주입춘굿 탈놀음 등의 한국의 전통탈춤과 밀양백중놀이 등 전통연희, 그리고 중국의 전통탈춤인 나희(儺戱)의 하나인 광동성의 불산 사자춤, 일본의 전통탈춤인 혼슈지역의 하치노헤시(市)의 카구라(神樂)인 오가미신사(神社) 법령카구라 등 한중일의 다양한 탈춤과 인접장르의 여러 공연물로 구성되었다.
 한편으로 “한·중·일 탈춤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함께 개최하여 동아시아 3국의 탈춤 교류뿐 아니라 학문적 성과의 소개와 소통을 통하여 한중일 삼국의 탈춤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한국의 전경욱(고려대 국어교육과) 등 3국 학자들의 주제발표를 통해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한중일 탈춤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삼국의 탈춤이 가진 보편성과 독자성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특히 젊은 탈춤 연구자와 연희자들이 한국탈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펼친 종합토론은 현재의 한국 탈춤문화가 처한 위기에 대한 공유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갔으며 모든 참가자들이 짧은 토론시간을 아쉬워하여 당일의 공연행사를 마친 후 따로 뒤풀이 자리를 마련하여 늦은 시간까지 그날의 토론회를 이어갔다.


 

 


 

 

 

 중국과 일본의 탈춤이 관객의 커다란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낸 반면 한국의 전통탈춤 공연은, 진주오광대 놀이를 제외하고는 각 종목마다 작은 차이들은 있었지만 작금의 한국 탈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난 판으로 여겨진다. 뒤늦게 복원된 진주오광대놀이는 연희자들의 열의와 정성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되어 진주 시민들의 열띤 환호를 받아냈다. 아마도 ‘자기’ 동네의 공연이기에 더 가능했던 장면일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젊은 연희자들을 중심으로 많은 훈련을 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반면에 다채롭지 못한 춤사위는 앞으로 더욱 꾸준한 훈련과 연구를 통해 획득해야 될 진주오광대의 과제로 여겨졌다.
 반면에 진주오광대 공연에도 역시 조금씩 보이는 모습이지만 다른 한국 탈춤 공연은 연희자의 부족과 기량, 공연에 대한 연희자의 몰입도, 공연 현장과 관객구성, 판에 대한 현장 연출력의 부족 등 토론회에서도 주로 언급된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들은 토론회에서 이야기 된 것과 같이 탈춤이 ‘민속극’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일 뿐 당대의 공연예술로 온전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한 것에 그 첫 번째 원인이 있는듯하다. ‘현재의’ 탈춤에 대한 이제까지의 연구가 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의 탈춤을 ‘원본’으로 설정해 놓고 이에 대한 분석에 중심을 두어왔다고 여겨진다. 즉 탈춤을 연구하는 연구자나 이를 보존, 전승하는 연희집단(보존회) 모두 탈춤을 과거의 탈춤이 그러했듯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 하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적응해가는, 당대의 살아있는 공연예술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바라보고 있는데서 우선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무형문화재와 관련된 정책이 그것의 ‘보존’에만 방점이 찍혀져 있으며 따라서 빠르게 변화해가는 수용자인 관객집단의 성향과 공연 현장의 변화에 대한 아무런 대응책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딱히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새로운 창작의 수준이 아니라하더라도 연희자의 유형에 따라, 관객집단의 성향과 숫자에 따라, 공연장의 조건에 따라 유동하고 살아있는 새로운 판을 짤 수는 없는 것일까? 집중도가 다소 떨어지는, 삼면무대의 정면에 위치한 높은 스탠드에 앉은 관객들과 탈판은 정서적으로 밀착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었으며 따라서 관객과 연희자들이 오감을 통해 소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객들이 자신과 동떨어져 있는 대상에 대한 ‘바라봄’이라는 시각적 행위에 그치고 만다. 따라서 탈판의 자연스러운 추임새나 이에 따르는 연희자와 관객의 정서적 교감과 집단적 신명, 무대와 객석의 역동적인 출렁임은 애시 당초 기대하기가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가면서 늘어나는 관객의 수와 반응에서 행사의 안정감이 느껴졌으며 탈춤의 매니아들이 생겨나는 듯 한 모습이 그간에 쌓인 진주탈춤한마당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3일간의 행사 마지막으로 펼쳐진 뒷풀이 난장인 대동굿 ‘병신굿놀이’는 탈춤이 가지고 있는 뒷놀이를 제대로 성취해내는, 억지 신명이 아니라 제대로 놀아보고자 하는 관객과 연희자가 몸과 몸을 부딪치며 소통하는 가운데 함께 만들어낸 신명풀이 대동굿의 살아있는 현장으로 다가왔다.


 

 

 

 탈춤은 말 그대로 ‘탈’과 ‘춤’으로 이루어진 전통연희이다. 특히 많은 탈춤은 ‘춤’으로서의 독특한 자신만의 춤사위와 춤 어법을 지니고 있는, 풍물과 함께 근대 이후 대부분 사라져버린 마당춤, 남성춤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장르이다. 이번 진주탈춤한마당 첫날에 펼쳐진 “영남의 문디들아(문둥이) 한판 붙자!”라는 이름의 놀이판 역시 옛 부터 춤의 고장으로 불리어진 영남의 다양한 덧배기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그것을 통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각 지역의 장단과 춤을 비교하며 즐길 수 있는 탈판이자 놀이판이자 하나의 신명나는 춤판이었다. 백중놀이의 양반춤과 범부춤, 오북춤도 그렇거니와 특히 고성오광대와 통영오광대, 동래야류의 문둥북춤, 수영야류의 말뚝이 춤 등은 하나의 독립된 춤으로서의 자기 완결성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성은 근현대적 의미의 장르로 분화되기 이전의, 미분화된 총체연행예술로서의 ‘탈춤’이라는 탈춤만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탈춤종목 전체를 연행했을 때 자칫 깔 묻혀 버리기 쉬운, 춤적인 자기 완결성을 가진 각 종목의 탈춤안의 여러 춤들을 도드라지게 함으로써 각각의 춤이 가진 맛들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춤들은 이제 고인이 된 하보경 선생의 경우에서처럼 각기 독립된 춤종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풍부한 춤들이다. 이는 단지 영남의 덧배기춤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잘 알려진 봉산탈춤의 첫목춤이나 기타의 목중춤, 노장춤, 양주별산대놀이의 상좌춤이나 옴중, 노장춤 등등은 독립된 춤으로서의 가치와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탈춤이 이렇듯 풍부한 춤 유산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춤 현실에서 탈춤은 비평의 대상도, 평론의 대상도 그 무엇도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직업적 춤꾼을 길러내는 대학의 무용과에서도 몇몇 뜻있는 선생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탈춤은 여전히 ‘추워서는 아니 되는’ 춤도 아닌 것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춤동네 뿐 아니라 연극이나 그 어느 장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탈춤 보존회는 대부분 민속극이란, 혹은 전통연희라는 보호막 아래, 혹은 담장 안에 자기만의 틀 속에 갇혀 있으며 공연예술계 역시 이를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올 생각을 못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이제 탈춤을 온전히 춤동네의 품안으로 끌어안아야 된다고 여겨진다. 그리 했을 때 주로 교방춤을 토대로 한 여성적 춤사위 위주의 우리의 근현대 전통춤에 남성적이고 활발한 보다 다양한 우리의 춤 유산을 접목시켜 우리의 춤 지평을 보다 넓고 크게 확장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12. 07.
사진제공_진주오광대보존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