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민속춤 연구의 기원과 그 전개 ①
세실 샤프와 영국 민속춤 연구의 시원
서정록_본 협회 회원 / 춤문화사

현재 한국에서 민속춤에 대한 연구는 매우 활발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 작고한 고 정병호의 연구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지면을 통해서 나마 그분의 연구 업적을 기리고자 앞으로 5회에 걸쳐 민속춤 연구의 시발이 되었던 세실 샤프(Cecil Sharp, 1859 ~ 1924)와 영국 민속춤 민요 협회 (English Folk Dance and Song Society, EFDSS) 그리고 연구의 중심이 되고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연구 대학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본 조사를 통해 민속춤 연구가 어떻게 영국에서 탄생하였고,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살펴볼 것이다. 민속춤 연구의 시발을 확인해 봄으로써 앞으로 한국 민속춤 연구가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민요(folk song’)이라는 용어는 사실 19세기까지 그리 일반적인 용어가 아니었다. 민요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계기는 영국의 민속음악과 민속춤 연구가인 세실 샤프(Cecil Sharp, 1859 – 1924)의 연구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본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옥스퍼드 근처에서 영국의 민속춤 중 하나인 모리스 댄스(Morris Dance)를 보고 나서 영국 민속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민속춤 연구의 계기가 되었다. 그의 본격적인 민속춤 연구는 민요 연구에까지 이르게 된다. 즉 현재 음악학에서 중요한 연구 분야 중 하나인 민요연구 나아가 민족음악학(ethnomusicology)는 민속춤의 연구에서부터 탄생을 보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당시 모리스 댄스와 같은 영국의 민속춤들은 영국사회가 근대화, 산업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거의 소멸되기 직전이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 모리스 댄스에 강렬하게 인상 받은 샤프는 ‘정통의 영국 전통(Authentic English Tradition)’은 영국의 민속춤과 민요에 있다고 확신하고, 그것을 수집하고 보전 연구하는데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열의 속에 민속춤 관련 첫 출판물인 ‘The Morris Book: 1907~1913’이 발간을 보았고, 1914년 영국에 유명한 연극 연출가인 그랜빌 바커가 연출한 셰익스피어의 작품 <한 여름밤의 꿈>을 셰익스피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는데 그가 연구한 영국의 민속춤과 민요가 사용되어 크게 호평을 받기에 이른다.

이러한 샤프의 연구와 작업들은 당시 유럽에서 크게 일고 있었던 ‘국민파 음악’의 시대조류와 맞아 떨어지면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국민파 음악의 유행은 기존의 유럽 고전 음악 전통(European classical tradition) 즉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중심의 음악에 대항하여 자국의 전통을 찾아보고자 했던 러시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나라들, 스페인 미국 그리고 영국에서 매우 활발하였다. 샤프는 수집하고 복원한 춤과 음악을 초등학교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민요 가운데 저속한 표현의 가사나 불건전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들은 삭제하거나 편집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데에는 당시 영국 부르주아 사회 풍조였던 ‘빅토리아 시대 점잔빼기(The prudery of the Victorian, 특히 성적(性的)인 것에 대한)’도 한몫을 하였다. 이러한 샤프의 ‘검열’ 활동은 그러므로 전통의 ‘재발견’과 함께 ‘만들어진 전통(invented tradition)’이라는 측면이 많아 후세에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국의 민속춤과 민요들의 경우에도 이러한 ‘만들어진 전통’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애국가 다음가는 민족의 오랜 노래로 간주되고 있는 <아리랑>과 함경도 민요 전통 민속춤인 <돈돌날이>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지금의 <아리랑>은 사실 1926년에 제작 상영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으로 서양 음악 방식으로 작곡된 것이다. 한편 20세기 초에 일본식 창가(唱歌)의 영향으로 창작된 <돈돌날이>라는 창가풍의 노래는 그 춤과 함께 함경도 지역 축제에 수용되어 널리 연행되었다가 이제는 함경도를 대표하는 민요와 민속춤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게다가 <돈돌날이>는 다시 북의 경우 소위 '혁명가요'로 개사가 이루어져 인민에게 노래와 춤으로 보급되는 재창조의 과정까지 이루었다.

샤프의 이러한 연구 활동은 여러 가지 제한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의 연구가 후에 영국 학계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어, 학계 쪽으로는 민족음악학(ethnomusicology)과 사회인류학(social anthropology)의 시원을 이루었고, 또 한편으로 사회적으로는 영국 민속춤 민요 협회를 1911년 창립하는 밑거름이 된다.

영국 민속춤 민요 협회는 런던 리젠트 공원(Regent's Park) 옆에 위치한 세실 샤프 하우스(Cecil Sharp House)에 소재하며 영국의 많은 민속춤 보존과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이를 위해 일년에 4차례의 저널을 발행하며, 또 한편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들을 운영하여 민속춤 교육과 보급에도 힘쓰고 있다.

한편 학계에서는 그의 직계제자인 존 블래킹(John Blacking, 1928~1990)이 그의 연구를 이어받아 유명한 연구들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샤프와 블래킹의 연구는 현재 런던대학교의 SOAS에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SOAS의 주축을 이루는 학파는 크게 블래킹의 인류학적 방법론을 기초로 하는 학파와, 서구에서 이루어진 동아시아 공연 역사 연구에 있어 최고봉라 할 수 있는 로랜스 픽켄(Laurence Picken, 1909~2007)의 역사학적, 문헌학적 방법론을 기반한 학파 둘로 나뉘어지고 있다. 이들의 연구는 현재 블래킹의 제자인 키이스 하워드 교수(Professor Keith Howard)와 픽켄의 제자인 리처드 위드스 교수(Professor Richard Widdess)로 각각 이어져 오고 있다. 재미난 사실은 학계에서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블래킹과 픽켄은 그들의 연구 방법론에 있어서의 견해차이로 인해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심하게 다툰 이후, 학회에서는 물론 사석에서도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들의 서로 상반된 연구의 입장이 그러나 그들의 후대에 SOAS에서 상보적이며 융합적인 모습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는 사실은 그들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매우 흥미로운 점이라 할 수 있다. 민속춤 연구에 중심이 되는 SOAS와 영국 민속춤 민요 협회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계속)

2011.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