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뉴욕 현지취재_ Pacific Northwest Ballet
객원 안무가들의 빛나는 초연 작품들
서정민_<춤웹진> 뉴욕 통신원

 

 

 시애틀을 베이스로 1972년에 창단된 Pacific Northwest Ballet(PNB)는 44명의 댄서들이 매년 100개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뉴욕시티발레단 수석무용수였던 피터 보올(Peter Boal)이 예술감독으로 2005년부터 무용단을 이끌고 있는 가운데 10월 8일에서 12일까지, 조이스 씨어터에서 3개의 작품을 공연했다
 이번 공연은 2010년 PNB의 뉴욕 공연이 솔드 아웃되었다는 것과 댄서들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즈음 화제가 되는 두 안무가, 저스틴 펙과 크리스토퍼 윌던의 안무작이 뉴욕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에 더욱 화제를 모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옆자리의 80대 쯤으로 보이는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레 공연을 보기 위해 조이스 씨어터로 내려오기는 참 오랜만인데 그녀가 좋아하는 뉴욕시티발레 출신의 수석무용수, 칼라 코르버스(Carla Körbes)가 출연을 하고 더욱이 칼라가 내년에 은퇴를 하기에 마지막이 되는 이번 뉴욕 공연을 보기위에 일부러 먼 길을 왔단다. 자신은 뉴욕 시티발레를 좋아해 정기적으로 소식을 받아보며 후원을 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에 브로드웨이에 다시 리메이크된 뮤지컬 〈On The Town〉(제롬 로빈스의 발레 〈Fancy Free〉에서 아이디어를 받아 만들어진 작품)에 뉴욕시티발레의 수석무용수가 여주인공으로 나오잖아요?”라고 응대를 하자 ‘Megan Fairchild’ 라고 바로 이름을 언급하며 곧 볼 것이라고 말했다.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33세로 2014-15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무용수 칼라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16년 동안 컴퍼니 생활을 해 왔다. 발레는 변하고 진화되고 새로운 방식(고난이도의 기술과 트릭)으로 우리들을 푸쉬하고 있는데, 더 이상 내가 해 낼 수 없는 듯 했다”라며 은퇴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세 작품 중 마지막 작품인 저스틴 펙(Justin Peck)의 신작 <데번에어>(Debonair)에 출연하여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안무가 저스틴은 현재 뉴욕시티 발레단의 솔로이스트이자 영국 로열 발레단의 협력 예술가인 크리스토퍼 윌던(2001-2008)에 이은 뉴욕시티발레의 두 번째 상주 안무가이기도 하다.

 



 <뉴욕 타임스>의 무용부문 편집주간인 알라 맥컬리(Alastair Macaulay)는 2013년 1월 <뉴욕 타임스>에 “저스틴은 현재, 클래식 발레에 세 번째로 중요한 안무가로 떠오르고 있다”고 썼다. 상주안무가인 저스틴은 뉴욕시티발레와 계속 작업하며, 향후 3년 동안 일 년에 두 작품을 만들게 된다. 그는 뉴욕시티발레 뿐만 아니라 다른 무용단에서도 안무를 의뢰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PNB의 〈Devonair〉였다.
 초연되지 않은 작품의 일부를 뉴욕에 선보이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라고 한다. 그만큼 컴퍼니의 예술감독이 자신 있어 하는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길고, 엷은 바이올렛 드레스를 입고 춤추는 댄서들의 우아함이 부각되는 작품이었다. 정식 초연은 시애틀에서 11월에 한다.

 



 이 날, 무대에 오른 첫 작품은 영국 로열 발레단으로부터 작품 위탁을 받아 안무한 <앨리스의 신나는 모험>을 안무했던 크리스토퍼 윌던의 〈Tide Harmonic〉이었다. <밀물과 썰물(tide)의 화음(harmonic)>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은 아름다운 하모니를 남녀 파트너링을 비롯해 다양한 장치를 통해 보여주었다.
 무대는 은은한 바다와 조수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배경 스크린이 엷은 블루로 펼쳐지다, 엷은 브라운, 다시 엷은 블루로 변화되는데, 상당히 안정감을 주었다. 의상 또한, 엷은 파랑색의 타이즈로 몸에 딱 붙으며 댄서들의 신체를 그대로 볼 수 있었는데, 무용수들의 건장한 몸이 필자에게는 상당히 의외였다. 마른 팔 다리가 아니라 정말 건강한 느낌을 주는 긴 팔다리와 큰 골격의 체격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파트너링 부분이 많아 댄서를 잡고 돌리는 장면에서는 조이스 극장의 무대가 상대적으로 좁게 보일 정도였다.
 작품에 사용된 음악, “Tide Harmonic”은 앙상블, 콘서트 음악, 영화, 텔레비전, 팝송 그리고 무용작품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조비 탈보트(Joby Talbot, 영국)가 캐롤린 칼송(Carolyn Carlson)의 작품 〈Eau〉(물)를 협업하면서 2010년 작곡했는데 윌던의 안무를 위해 새롭게 편곡을 했다. 그리고 윌던의 대작 <앨리스의 신나는 모험>도 함께 작업했다. 음악이 상당히 신비스럽게 반짝였다. 관현악과, 하프소리가 조화를 이루는데, 중심을 잡는 듯한 낮은 음과 신비스러운 듯한 높은 음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다의 오묘한 세계로 이끌고 간다.

 



 두번째 순서로 선보인 <기억의 빛>(Memory Glow)은 알레한드로 세루도(Alejandro Cerrudo)의 안무작품으로 조이스 극장의 ‘루돌프 누레이브 새로운 무용상’(Rudolf Nureyev Prize for New Dance)에 대한 지원으로 제작되었다. PNB의 상주안무가인 그가 무용단을 위해 만든 첫 작품이다.
 필자에게 이번 PNB 공연 관람은 컴퍼니를 위해 젊은 안무가에게 과감하게 안무를 의뢰하는 시스템과 일반인이 무용에 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얼마나 무용 생태계에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했다.
 외부의 실력 있는 안무가에게 컴퍼니를 위한 안무를 의뢰하며 레퍼토리를 늘려나가는 시스템은 결국 재원과 연결되는 것이라, 하고 싶어도 하지 못 할 수도 있는 형편이니 언감생심이다. 반면,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지 않나 싶다. 뉴욕은 세계의 무용 수도답게 무용에 대한 기사를 쉽게 접한다. <뉴욕 타임스>의 아트 섹션에는 항상 무용 리뷰가 실린다. <월 스티리저널> 또한 무용 섹션이 따로 있다.
 필자가 오래 전, 한국에서 무용단의 행정 스태프로 일 할 때 경험한 이야기 하나. 보도자료를 이메일로 돌리고 기자들과 통화를 하던 중, 필자를 발끈하게 한 일이 있었다. 메이저 신문사기자로, 문화판에서는 꽤나 사랑받는 기자였는데, 문화부를 담당하고 있지만, 연극만 커버하기도 벅차 무용은 보도자료 조차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문화부 기자면 공평하지는 않을지라도 무용에도 관심을 갖고 비율을 할애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무용은 기자의 취향이 아니라며, 필자와 논쟁 아닌 논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한국의 언론은 무용 공연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무용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도 신문에서는 기사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대중들도 무용 정보에 대해 관심이 생겨나지 않는다. 나이 든 어르신이 자신이 사랑하는 댄서의 마지막 공연을 보기 위해 멀리서 올 수 있었던 것은 신문기사를 통한 보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4.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