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내 발레와 명암이 엇갈린 한국산 토슈즈
국산 토슈즈 개척자 이완영씨


인터뷰 내내 아쉬움이 감도는 인터뷰는 드물다. 한국에서 토슈즈 생산을 개척해온 미투리의 이완영 전무와의 인터뷰가 그러하였다. 토슈즈는 튀튀와 함께 발레 미학의 출발점이자 결정체다. 1970년대 초에 한국에서 토슈즈가 생산되었다는 사실 속에는 국내 발레 역사의 흐름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짚어볼 만한 또 다른 단서가 들어 있다. 미투리는 지금 서울 장안동에서 소량의 토슈즈를 생산하고 서울 종로 2가에서는 발레 슈즈와 춤 연습복 그리고 춤 의상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이제 60대 후반의 세대로 한국 토슈즈 생산의 역사 자체인 그에게서 토슈즈 생산에 얽힌 속사정과 소회(所懷)를 들어 보았다. - 편집자

 




□ 우연히 뛰어든 토슈즈 제작
 

- 토슈즈 생산에 뛰어들게 된 연유부터 듣고 싶다.
“1970년 무렵 서울 장안동 소재 단독 주택에서 토슈즈를 제작하였다. 김용이 사장과 함께 시작하였는데, 그전에 3년 정도 스케이트화를 제작하였고, 또 발레 슈즈를 2, 3년간 제작하다가 토슈즈에 손대게 되었다. 발레 슈즈를 만들다보니 이런 것도 필요하구나 해서 만들었다. 우리가 제작하기 이전에 서울 인사동 소재 ‘백조’라는 춤 용품 전문점이 한국 최초의 발레 슈즈와 토슈즈 제작 전문점이었다. 옛날 발레 하시던 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백조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은 없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셈이다.”

- 발레의 황무지나 다름없던 그 당시에 대단한 시도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당시는 해외에서 무슨 물품이든지 수입이 자유롭지 않고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던 때였다.
“그렇다. 지금처럼 정식 수입이 되지 않던 그 당시 일본을 통해서 그리고 가족이나 지인들을 통해 해외에서 토슈즈를 가져와서 많이 신었다고 한다. 부모가 외국에 출장가면 토슈즈를 한 아름 사오는 게 흔했던 모양이다. 당시까지는 주로 일본 토슈즈를 많이 사용한 줄로 안다.”

- 토슈즈를 처음 제작할 때 상황을 소개해 달라.
“자료도 경험도 없는 판국에, 재료도 잘 모르고 형태만 본따서 만들었다. 발레단원들이 버린 헌 토슈즈를 뜯어보았다. 신발 속에 석고를 넣어 틀을 만들었다. 1년 정도 후에 내가 만든 것을 미투리 사장이 서울예고 임성남 무용과장을 만나 김명순 조교에게 신어보라 하니까 조교가 그 자리에서 앗 하며 주저앉았다고 한다.”

- 실패작으로 보이는데, 초창기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겉창은 가죽을 쓰고, 안창은 탄력을 위해 비닐과 헝겊을 4밀리미터 정도 켜켜이 깔아 압착해서 사용했다. 겉은 공단을 썼는데, 옷감 공단을 쓰니까 접착이 잘 되지 않았다. 초기에는 공단과 광목을 토슈즈 한 켤레마다 재단하고 나서 붙였으나, 지금은 공단과 광목을 필 단위로 접착하여 절단해서 사용한다. 지금은 공단과 광목을 접착해주는 업체도 있다. 앞코 부분의 심은 6-7겹의 광목과 마대, 종이를 사용하고 화학약품으로 녹여 흐물흐물해진 플라스틱 같은 것을 대었다. 접착 후 건조기에서 12시간 정도 건조시키고, 속 작업으로 마무리한다. 접착제는 휘발유로 녹인 생고무를 사용하였는데, 장마철이나 습도가 높으면 접착력이 떨어진다. 외국 것은 어떤 성분의 풀을 사용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 초창기에는 아교를 썼으니 얼마나 딴딴하였겠는가. 첫 시제품에 아교를 썼고, 이후 구두 제작에 쓰는 풀을 밀가루에 개어 사용했다. 성분 분석을 해보면 접착제 성분을 알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작업을 못 했다. 처음 만든 토슈즈는 지금 없어 생각하면 아쉽다.”



 
국산 토슈즈의 전성기

- 기반 산업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언제부터 국내 발레계에 토슈즈 생산 업체로 알려지게 되었는가?
“노우하우가 생겼는지 발에 맞다고 해서 3년 후부터 많이 팔았다. 처음에 국립발레단이 장충동으로 이전한 이후 단원들이 많이 사용하였다. 당시 단원이 25명이었는데 국립발레단에 70년대 중반부터 근 10년간 월 50켤레 정도 납품하였다. 물론 단원들은 개인적으로 외국 제품도 구입해 신었을 것이다. 당시 발레리나들 가운데 진수인, 강숙현, 허경자, 김명순, 김순정, 김복선, 장선희, 황선학, 김영순 씨 등이 착용했던 기억이 난다. 김학자 씨로부터는 조언도 많이 들었다. 발레 입문생들도 물론 착용하였다. 하루 제작 분량이 15-20켤레였으니 당시엔 모자라서 난리였다. 80년대 중반 월 500켤레 정도 판매, 물량이 달려 못 팔 정도였고 지방 발레인들이 우리 공장에 와서 대기하곤 하였다. 80년대 중반에 창설된 유니버설발레단에선 초기부터 프리드 제품을 사용하였는데, 이미 발이 외국 것에 익숙해 있었다.”

- 국내산과는 다른 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영국 프리드사의 제품은 지금도 제일 유연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토슈즈가 딱딱할수록 다리에 알통이 더 나오는 부작용이 따른다. 프리드도 처음 신을 땐 딱딱한데, 한 두 번 신으면 부드러워진다. 미투리 제품도 그렇긴 한데, 프리드의 것을 신으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더라. 국립발레단은 80년대 후반부터 외제 토슈즈를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미투리에서 생산한 것을 점차 단원들이 신기를 꺼려해서 재고가 남은 적도 있다. 수입 자유화 시대가 되니까 러시아 그리시코 것도 싸니까 들어오고 많이 신은 듯한데 딱딱해서인지 지금은 그다지 신지 않는 것 같다. 이제 프리드나 카페지오 제품을 일반적으로 많이 신는다.”

 



- 지금 외국산에 비해 가격 경쟁력은 있는가?

“미투리 것은 3만5천원, 프리드 것은 8만-10만원, 그리시코 것은 4만-5만원 수준이고, 프리드 것은 12만원짜리도 있다. 가격보다 중요한 건 착용감이다. 지금 미투리는 하루 한 켤레 정도, 연간 300켤레 수준 판매한다. 이것으로 시장이랄 수 있겠는가. 이 추세라면 국내 토슈즈 제작 40년 역사는 끊어질 것 같다. 국내 발레단들의 수요만 충족해도 제작은 아쉬운 대로 활발해질 듯한데...”

- 10년전쯤 미투리에서 토슈즈를 세 사람이 제작했다고 들었다. 지금 국내에서 토슈즈는 몇 사람이 제작하는가?
“80년대에는 내가 보조와 함께 둘이서 그 물량을 모두 만들었다. 그 조수는 이제 토슈즈 제작을 하지 않고 미투리를 총괄 운영하는 일을 한다. 미투리에서 토슈즈 제작 보조를 맡은 사람만이 이제 토슈즈 제작을 전담하는데, 지금 국내에서 토슈즈를 만드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사양 산업의 기로
 

- 아파트와 김치냉장고, 주문형 김치에 밀려 장독 산업이 사양화되는 감이 짙은데, 국내 토슈즈 제작 업체는 왜 사라질 것 같은가?
“토슈즈 원재료를 구하기도 힘들어진다. 적은 물량의 원재료는 업체에서 납품해주지도 않는 추세이다. 지금 발레 입문자 정도가 미투리 제품을 신는다. 국내 토슈즈에 대한 수요는 없다고 봐야 한다. 토슈즈뿐 아니라 무용 용품 전문 업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 토슈즈 제작의 노우하우를 알기 위해 해외에도 갔던 줄로 안다.
“20년전 지인의 소개로 미국 뉴저지에 있는 카페지오의 공장을 견학하러 갔는데, 내부 견학이 안 된다는 말만 들었다. 일본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일본 아비뇽 회사 사장에게서 접착제에 대해 친절하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일본제 풀을 가져와 성분 분석하여 국내에서 개발하여 쓰왔다. 그래도 프리드 제품에 비해 품질이 떨어졌다.”

- 프리드의 아성은 대단하다. 지금 전망으론, 국내에서 토슈즈 제작이 활성화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들 사양산업이라고 할지 모른다. 40년 역사가 기로에 선 것은 분명하다. 그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여길 쪽은 토슈즈 제작에 40년간 종사해온 당사자일 것이다. 그러면 혹시 일본 업체와 합작해서 공동으로 개발할 수 없겠는가?
“프리드를 일본 샤코트 회사가 인수해서 일본 샤코트 매장에서는 프리드 것만 판매한다고 한다. 국내 제품을 제대로 신겨봤으면 참 좋겠는데...”

- 지금 토슈즈 생산 규격은 몇 가지인가?
“남성 용으로 290밀리까지 생산하였다. 대개 190-255밀리 사이를 5밀리 간격으로 생산한다.”



- 그래도 미투리라는 이름으로 토슈즈는 생산되고 있다. 미투리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토슈즈를 만들 때부터 발레 연습복도 함께 제작하였다. 이제 토슈즈가 미투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발레 슈즈와 연습복으로 회사가 유지된다. 미투리에는 무용 의상 제작 인원이 5명 있고, 지금 미투리 전체 직원은 15명 선이다. 연습복 제작은 외주를 주고 있다. 연습복은 외제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지만, 국산 원단은 착용감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 발레 슈즈를 토슈즈보다 먼저 생산했고 지금도 미투리의 매출 규모에서 일정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슈즈는 국내에서 몇 군데 업체가 생산한다. 과거에 백조, 샛별, 파랑새, 짚신 등의 업체들이 생산하였으나 다 사라졌고 몇 군데 업체가 생산한다. 지금 슈즈는 국산 가죽으로 된 것이 1만8천원 정도이다. 발레 슈즈는 가격 면에서 중국 제품에 밀릴 가능성이 있다. 중국 제품 품질은 국산과 엇비슷하지 않나 싶다. 다른 업체는 중국 OEM 방식으로도 생산한다. 슈즈는 지금도 내가 신어보고 국공립 발레단에 수시로 가서 신겨보고 개량할 점을 찾는다. 지금 미투리에서도 일하는 사람들이 손을 떼면 발레 슈즈를 만들 사람도 없어질 실정이다. 만드는 사람 생활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판이고, 가격을 올릴 수도 없고... 무용실 바닥이 좋아져서 신발도 잘 닳지 않고 또 무용인들이 절약하는 풍토도 작용한다. 품질이 월등히 좋아서 꾸준히 찾도록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사람마다 발은 제각각이다. 특히 발레에서 발이 어쩌면 가장 민감한 부위일지도 모른다. 발레리나들의 소감에 따르면, 프웽트로 섰다가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드미 프웽트의 순간을 토슈즈가 안정감 있게 뒷받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들었다. 이 점에서 국내 토슈즈는 부족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수입 자유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토슈즈 제작은 힘만 들고 생계비도 찾기 어려운 3D 업종이라 일컬어진다 한다. 그래도 만약에 독지가가 나서서 국내 토슈즈 제작을 활성화시키려 한다면,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국내 월간 소요 물량은 대형 발레단 단원에게 1주에 2-3켤레 지급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연간 2만 켤레 소요되지 않을까 추산한다. 그래도 10억대 정도의 시장 규모에 그치므로 당연히 세계 시장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중기업 규모의 발레 애호가 기업인이 해결할 만한 과제로 보인다. 외제와 비교해서 가장 현저하게 차이나는 것은 착용감이고, 구비해야 하는 것은 훌륭한 원단 재료와 접착제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국내 재료를 모두 쓰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를 위해 과학적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 같은 개인이 풀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 그동안 국립발레단을 비롯 국내 발레계는 기복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크게 성장하였다. 국내 발레가 80년대에 터전을 잡을 적에 간접적으로 기여해온 토슈즈 제작 산업도 그동안 함께 성장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크다. 토슈즈 업체의 현재 실상은 춤의 여타 분야라도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미리 읽고 대처할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앞으로 혹시 어떤 돌파구가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그럴 때를 대비해, 그리고 과거 역사 속에서 발레인들이 기억하는 현실로 진행되었던 만큼 그간의 경과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아무튼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공감하며, 오늘 소중한 말씀에 감사드린다.

 

2013.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