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몸의 세계화ㆍ놀이적 상상력으로 대학 춤교육 새롭게 구현해야
정년퇴임한 채희완 본회 공동대표



한국춤비평가협회 공동대표 채희완 교수(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가 지난 8월 정년퇴임하였다. 1985년부터 부산에 줄곧 정착한 이래 춤을 비롯 마당극과 민족극 등 전국의 다양한 연행 분야에서 ‘교주’(敎主)라 별칭을 얻어온 그에게서 그간의 소회(所懷)와 앞날의 구상에 관해 담화를 나누었다. 채희완 교수의 연행에 대한 미학적 사유와 본인의 회고는 지난 7월호 춤웹진 기획취재 란에 그 일단이 소개된 바 있어, 이번 인터뷰는 대학에서의 정년퇴임을 염두에 두고 주로 대학 교육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 편집자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정년퇴임 직후의 변화를 묻자 채희완 교수는 정년퇴임을 의식하고 생활한 것은 아니어서 당장 변화가 있을 것은 아니라 하였다. 근자에 광대나 딴따라로 복귀한 것을 환영한다는 외부의 말들도 외면할 수 없는 한편으로 당분간 밀린 술을 해결하는 휴지기를 가지면서 밀린 글쓰기를 다시 구상하고 있다면서, 정년퇴임 후 일정 기간만 명예교수로서 대학원 학생을 지도할 수 있어 이 또한 서둘 과제라 덧붙였다.

 



□ 임박한 동학혁명 120주년 작업 구상
 

김채현: 정년퇴임을 축하드리며 그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잠시 휴식한 이후 염두에 두었을 계획부터 먼저 듣고 싶습니다.
채희완: 공부거리가 너무 많아 좀 축소해서 집중되어야 하지 않나 싶고, 또 한 가지는 마침 내년이 동학혁명 120주년입니다. 환갑이 두 번이나 지난 셈이어서, 내년은 100주년보다 더 의미가 있죠. 동학혁명 120주년을 마당-놀이-굿-춤 양식으로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지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민예총이나 민족극운동협회(사), 한두레, 자갈치 등 문예단체들과 추진할 예정입니다.
: 그럼 내년 동학 행사를 언제부터 합니까?
: 고부 봉기가 음력 1월 중순에 있었으므로 시작은 2월 말 내지 3월 초에 한 이틀 간 진행하고, 우금치에서 10월에 마무리하려 합니다. 100주년 때 올린 <칼노래 칼춤>은 11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가운데 몇 편을 택해서 확장하여 새로운 양태의 새로운 의미체로 개작할 예정이지만 이전처럼 총체 연행물 양식을 가질 것입니다. 다만 윤곽은 가을에 들어가야 드러나겠지요.
: 이번에는 어떤 분들이 제작에 참여합니까?
: 아직 구상 단계지만, 고부 봉기 역사맞이굿에 참여한 연출진과 연구가들 가운데 가능한 분들 그리고 민족극운동협회 소속 27개 단체마다 한 두 사람씩 스태프진으로 참여하는 쪽으로 고려하고 있지요.
: 1994년 <칼노래 칼춤>은 마침 그때 민예총 민족춤위원회가 열은 제1회 민족춤제전 야외 춤판에서도 올려져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또 그다음에도 세계마당극축제 등 여러 행사에서도 올려졌지요. 민주화가 시작되던 시기에 통일 문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압력과 지정학적 관계 등 역사적 진단과 동학혁명의 의미를 환기한 작품이었습니다. 20년만에 새로 올리는 작품이 새로운 완성작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듣고 보니, 정년퇴임하셔도 밀린 술을 해결할 틈은 오히려 없을 듯합니다. 정년퇴임을 기점으로 이제까지 지내오신 길을 거슬러 가보도록 하지요. 대개 짐작되겠지만, 부산대학과 인연을 맺게 된 과정부터 좀 듣고 싶습니다.
: 1985년부터 부산대학에 재직했는데, 그전에 78년도에 청주사범대학에 시간강사로 갔다가 80년에 전임이 되었습니다. 청주사대 무용교육과는 아마 지방에 최초로 개설된 춤 관련 학과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84년에 지방의 무용교육과들을 체육교육과로 통합 전환시키는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청주사대 체육교육학과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 제 전공분야가 달라져 고민을 하던 터에 부산대에서 무용 이론 분야 교수 공개 초빙을 공고한 것을 보고 지원했지요.
: 그런 다음에 부산대에 예술문화영상학과를 개설하여 학과를 운영해오신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 2005년 학과가 생겼고, 그 4, 5년 전에 학과간 과정으로서 예술·문화와영상매체 석박사 협동과정이 생겼습니다. 거기에 미학, 연극학 및 예술경영, 그리고 영상학 이 세 분야를 협동과정으로 두었습니다. 마침 지원자들이 계속 느는 여세를 몰아 학과가 생겼습니다.
: 그럼 모집정원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학과 구성에 대해 소개해 주시지요.
: 그 당시 다른 여러 학과의 정원을 얻어 25명 확보했습니다. 농어촌 출신, 외국인까지 합하면 30명이 넘어요. 외국인으로는 중국 학생들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중국인 입학생이 한 번에 6~7명 될 때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중국학생들이 지방대학에는 많이 지원하고 또 우대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처음 소속 단과대학을 정할 때 구체적 예술 현실과 가까운 학과로서 인접 예술장르와 함께 한다는 뜻에서 예술대학으로 소속을 정하였습니다. 학부는 예술문화학과 영상학으로 전공과 교과내용을 1:1 비율로 나누되, 전공분야를 가리지 않고 실기시험 없이 인문대학 입학 사정 방식으로 신입생을 선발했습니다.



□ 대학 춤 교육, 사고력 위해 이론교과 대폭 보완돼야

: 무용 교육 측면에서 선생님은 미학이나 이론 분야 담당 교수로서 오래 재직하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대학에서의 무용교육이 전반적으로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하시는지,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들려주시지요.
: 이론 분야 교수로서 교수와 학생들에게 요망한 적이 더러 있었습니다만,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더라도 지금도 다시 강조하고 싶은 점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발전하려면 이 점을 각별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용학과가 춤 관련 최고학부로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실기 중심으로 짜여 있는 것은 언제라도 시정되어야 옳습니다. 춤추는 사람은 춤에 대해 생각하고, 춤에 대한 생각을 다듬어야 합니다. 춤의 세계를 몸으로도 다가가지만 우리의 전 정신이 같이 하면서, 특히 오늘날 몸의식이 몸과 함께 한다는 것이 증빙되고 있는 것처럼 육체적 사유방식으로서의 춤임을 확인하고, 또 그것을 넓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을 섭렵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가야 하는데, 그러한 생각의 기회가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삭탈되어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춤꾼에게는 물론 이론가나 춤 관련 작업에 임하는 행정가나 기획자나 대본 작가나 예술경영자들에게도 무엇을 교육 내용으로 전달해야 하는지 다시 짚어보면, 춤꾼 못지 않게 춤의 세계를 실천해 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는 실기의 몸훈련과 테크닉 못지않게 중요하거든요. 춤의 역사성과 철학과 춤에 대한 여러 사유방식과 춤의 동작체계에 대한 과학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끔 과목들을 기초적인 것이라도 열어주고 사고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구체적인 과목의 이름을 대보더라도 동작분석이라든지 춤미학, 춤사상, 춤과 사유, 동작의 여러 종류 각종 양식적인 틀이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등등의 구체적인 교과목이 참 많습니다. 이들 교과를 하나씩 정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대학 4년간의 전체 교과목 수가 40가지 정도 있다면 적어도 40% 정도는 이론 분야 교과목이어야 하지 않은가 합니다. 그리고 이론을 담당하므로 이론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실기 담당 교수들도 몸만 훈련시키고 테크닉을 익히게 하는 것, 이것만으로는 몸훈련도 테크닉 훈련도 안 될 것이라고 봅니다. 실기 교수에게도 자기 나름의 사유와 사상과 세계가 함께 들어간 몸훈련을 해야 진짜 몸훈련이고 테크닉일 것입니다. 그런 것을 위해서는 공동연구를 통해서라도 진리에의 깊이와 과학적인 실천 방법을 아우를 교육이 필요하고 우리 사유를 넓히고 또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론 분야 교과가 확충되어야 했었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대학원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더 소홀히 하기 쉬운 체제여서 참 안타깝기 그지없군요.
: 그러니까 지금 말씀하신 것은 처음 부산대 무용학과에 부임해서부터 그 학과를 그만두실 때까지 상황을 염두에 두신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그 사이에 부산대에서는 변동이 전혀 없었습니까?
: 비록 내가 담당하지 않더라도 이를테면 춤사회학, 춤인류학, 춤에 대한 사유방식들, 이런 과목들은 반드시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싶었습니다. 개론적인 이해라든지 역사라든지 춤 동작 분석이라든지 춤비평, 이런 과목들이요. 춤미학은 애초에 배치되어있었지만 그 과목도 2년에 한 번쯤 개설될까 말까 할 정도였고, 다른 과목은 개설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연구자가 없다는 말씀들이었는데, 왜 없겠어요? 특히나 신생 개척 분야 같은 경우는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며 개척해 나가야 하는 거지요. 그리고 실기과목에서도 지나치게 삼분법, 즉 한국춤, 발레춤, 현대춤으로 고착시키고, 또 하나의 전공과 겨우 부전공으로 해서는 실기내용조차도 굉장히 협소해서 춤꾼으로서 전천후로 좋은 작품에 출연할 기량을 발휘하는 데 큰 지장을 주지 않는가 하는 겁니다. 실기 각 분야의 교수진은 물론 구획되지만, 실제로 작품을 짤 때는 장르 구분을 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완강하게 성벽을 쌓아 학생들도 그 테두리 안에서 맴돌지요. 그것은 참 안타까울 뿐만 아니라 자기모순입니다. 재학생의 희망은 그렇지 않을 텐데, 교육 프로그램은 거기에 얽매여서 제대로 된 댄서마저 양성하기도 어려운 체제가 되고 또 더 넓은 표현 영역을 확보해야 자신의 메시지를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박력있게 생성해낼 텐데 그 협소한 언어틀에서 문장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그런 단어 구성법에 얽매인 상태라면 작품세계 역시 과연 제대로 되겠습니까? 말이 좀 많이 복잡하지만, 사실 대학 무용과에는 춤꾼 배양보다는 예술작업을 구체적으로 하는 안무가 배양을 우선해야 합니다. 안무가를 배양하는 실기와 이론에 구체적 효능이 있는 과목도 잘 배치되어 있지 않고, 또 전폭적으로 댄서를 양성하더라도 지나치게 영역이 협소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완성된 몸의 표현력과 언어를 확보하도록 하기에는 교과목부터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 우리의 감각, 지각, 몸 행동에 언제나 사유와 개념이 결부되고 개입하는 것을 보면, 이론 즉 개념을 함양하는 교과가 특히 예술교육에서 필수라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춤을 하거나 춤을 보거나 간에 사유와 개념을 배제하기란 전혀 불가능하지요. 인간은 자연물도 동물도 아니라, 몸을 갖고 생각하는 인간입니다.
: 그런데 다행히 많은 대학 무용과에 민속학 강좌가 개설된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국문학과 교수들이 가르치고 싶어 하는 학과도 무용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문학에도 도움이 되고, 춤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문화유산이 춤이나 문학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깊이와 넓이를 가진 예술이라고 하면 문학일 텐데, 그것과 춤이 교류하는 것, 특히 시서화와 악가무가 동시에 교육 프로그램으로 한 통로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회학이나 인류학 쪽에서도 굉장히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춤인류학, 춤사회학은 어쩌면 무용과 출신보다는 사회학이나 인류학 전공자들이 그 분야를 개척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런 기대도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몸이라고 하는 것에서 정신과 육체 이분법을 많이 벗어난 사유방식을 채택하고 그동안 육체적 사유를 업신여기던 풍조가 퇴조하기 시작하면서 육체적 활동에 대해서, 육체의 의식적 활동과 세계화 활동에 관해 인식이 많이 번지고 빡빡한 무용학과에서도 그런 것을 감지하게 되니까 몸에 대한 의식이 전보다 많이 개방적이게 되었습니다. 몸의 인식이 가진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그런 것에 대해서 무용학과 전공자들이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 정말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 되었습니다. 이런 터에는 더욱 더 그에 관계되는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채택되었으면 합니다.



□ 예영(藝映)학과 창설, 감성적 인식의 창조성 교육 도입

: 그러면 2005년도에 예술문화영상학과를 신설한 이후, 물론 무용학과는 아니지만, 거기서는 지금 생각한 것을 조금 실현하셨습니까?
: 여기서는 일단 미학하고 영상학을 합쳐 놓았는데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영상학과로만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렇지 않다, 예영과로 불러다오, 예술문화의 ‘예’와 영상학과의 ‘영’ 해서 예영과로 불러달라고 해서 지금은 합쳐진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분리될 수 있고, 분리되더라도 학제적 협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대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영상학과는 말하자면 전국의 4년제 국립대학으로서는 처음이고 아직도 유일한 셈입니다. 물론 지방대학에도 특히 부산의 사립대학에서는 4개 대학에 영상 관계 학과가 있으므로 우리 대학이 후발주자일 겁니다. 다만 우리 대학은 영상학의 여러 분야 중에 구체적으로 기획, 제작, 촬영, 연출 부문 등 창작이나 실무 작업 인력을 배출하는 것보다는 이론과 비평하는 사람들을 배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유일할 겁니다. 넓은 인문학적 소양과 미학적 견해를 갖추면서 이론 연구자나 비평가를 배출한다는 것이 우리 예술문화영상학과 쪽의 목표점입니다.
: 저 역시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한 입장으로서 부산대의 예술문화영상학과 창설이 좀 각별하게 다가왔습니다.
: 미학 분야 역시 서울대를 제외하면 드문데, 지방 국립대학에서 생겨났다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요. 지금 미학 교과의 중요성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 알고 있지만 아직도 그 구체적 내용을 더 알려야 하고 연구도 많다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 미학계도 근래에 이르러서야 성과를 보이는 단계입니다. 초창기라고 하기에는 한국 땅에 근대학문의 미학이 들어온 지가 90년 가까이 됐으니까 많이 지났지만 아직도 땅을 다져야 하는 시점에 놓여있지 않나 싶어서 부산대는 그처럼 중요한 지점이라 하겠습니다. 미학이 근대학문 이후로는 보편성을 갖지만, 지역과 시대, 종족, 자기 처지에 따라서 다루고자 하는, 또 다루어야 하는 중심 학문 분야나 영역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미학 이론을 토대로 하되, 이를테면 ‘한국에서의 미학’을 한다는 의미를 많이 강조하는 분야로 명확하게 영역을 설정해야 하겠지요. 우리 학과는 동양미학, 서양미학, 한국미학, 이렇게 세 분야로 나누어 구성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미학 일반론을 기초로 배치하고 동아시아 미학과 예술론에 해당되는 것을 배치하면서 한국 땅에서의 미학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내용을 구성해왔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미학과에 진학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오늘날 중고등 학생들이 실상은 자기가 관심을 가졌던 영역이 미학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시기는 대개 대학을 졸업할 때쯤입니다. 중고등 학생이나 학부모가 미학의 학문의 내용과 성격, 필요성 등 미학에 대한 기본 인식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지원자가 더욱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요. 대학원에는 타전공자들이 와서 공부하는데, 이들에겐 미학개론이라든가 기초부터 다져야 하는 어려움도 없지 않겠지요.
: 예술문화영상학과 학부 경쟁률이 얼마나 됩니까?
: 대략 3.5:1 입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더러 띕니다.
: 대학원은 몇 명입니까?
: 협동과정 정원이 많이 확보돼서 한 해에 박사과정은 9명 내지 12명 뽑습니다. 일반대학원 미학영상학전공은 개설 시기도 늦었으니까 협동과정에 비해서는 아직 자리가 덜 잡힌 셈입니다.
: 대학의 기본 목표인 인재양성 면에서 이론가, 비평가, 기획자를 얼마나 배출하셨는지요? 또는 배출한다고 해도 수용이 되어야 하는데 수용이 안 되면 배출이 저조하게 되지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또는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요?
: 학부로서는 졸업생이 2008년부터 5, 6년째 돼서 얼마 안 됩니다. 처음에 남학생, 여학생 반반이었는데 남학생은 군대 갔다 오고, 그러니까 첫 해 입학생들이 지금 겨우 졸업을 합니다. 그리고 요즘 대체적인 추세가 그렇지만 4년만에 졸업하는 사람이 남녀 불문하고 드뭅니다. 일반대학원은 아직까지 졸업생이 한 명도 없고요.
: 일반대학원이 언제 개설되었죠?
: 2011년이고, 3년째이지요. 다행히도 박사과정도 막 생겼습니다. 박사과정에 서너 명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수가 적습니다. 협동과정 석박사과정은 올해 12년차이지만 다수의 취업자가 학업을 병행하므로 연구에 매진하기가 어렵지요. 특히 요즘은 예술경영과 문화예술 행정 쪽 종사자들의 수요가 많아서 여러 이유로 학업을 지속합니다. 부산, 울산, 마산, 경남 지역 사람들이 다수이지요. 영상학 전공자 쪽은 꾸준하여 비교적 안정적 기반인 셈입니다
: 조금 애매한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그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지향합니까? 그런 공부에 뜻을 두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충고 겸해서 말씀해주시지요.
: 학과 재학생들이나 대학원 협동과정생들에게, 여기는 우선 공부하면서 노는 곳임을 강조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상상력을 키우고, 창조적인 생각을 계속 고취하는 그런 것을 지향하는 학과입니다. 어떤 예술 장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 그것이 꼭 미학이나 영상학이 아니더라도, 특정 분야에서 생각을 새롭게 해보는 것이며, 진로 문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지속적 상상력과 감성과 창조력을 계발하는 그런 훈련기관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미학에서는 그것을 감성적 인식이라 합니다. 물론 이성이 뒷받침해야겠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감성과 상상력과 영성적인 것을 잘 배합하는 공부도 하고, 또 실천적인 무엇이 있다면 공동작업도 해서 경험을 쌓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면 학교를 나가서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물며 식당을 차린다 하더라도 그렇고 회사에서 구체적인 실무를 맡아 거래를 뚫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발상이 문제를 돌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인문과학의 넓이를 가질 수 있는 반면, 좁은 실용적 시각에서 이 학과를 선택했다고 하면 다소 갈등이 생겨날 것입니다. 나로서는 연구자가 나온다면 더 말할 수 없이 좋고, 여건이 갖춰질 수 있다면 몇 사람은 연구에 매진하면 좋겠고, 아니면 구체적인 현실에 적응하면서 현실문제를 타개하는데 발상 자체를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어떤 꺼리가 있나 찾아내자는 것입니다. 아직 내 양껏 그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학기에 서너 번은 학과 전체가 놀러다니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 연구 · 학습
· 놀이의 공존 교육, 상상력 고양으로 나아갈 터

: 학과 구성원, 그러니까 교수나 학생이나 연구와 학습과 놀이를 병행한다는 뜻입니까?
: 그렇지요. 가령 봄 학기 개강 직전에 창녕 영산에 가서 길면 1박 2일 하는데, 일정을 앞당긴 개강으로 여깁니다. 전학년이 다 가며, 봄 답사도 3박4일로 마찬가지로 진행됩니다. 가서 그야말로 놀이 학습을 합니다. 그 다음에 방학 때 미학행(美學行)을 2박 3일 내지 3박 4일 갑니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배운 것, 즉 영상 관련 작업을 할 사람, 미학 관련 작업을 할 사람, 그리고 다른 장르 관련 작업을 할 사람 등이 작업을 결합해서 일종의 축전판이랄까, 한 판 벌이는 데 필요한 경영 홍보 담당도 나름의 과정을 분담해서 학구적인 판을 벌여볼 수 있을 겁니다. 학부하고 대학원이 같이 하지요.
: 그럼 개강이나 봄답사 참여 인원수가 수월치 않겠는데요.
: 보통 대형 버스 3대나 2대 인원수이지요. 전임교수는 물론 강사분들도 시간이 되면 같이 갑니다.
: 그럼 가령 봄답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 학부-대학원이 함께 가는데, 졸업시까지 중복을 피하기 위해 코스를 네 방향으로 해서 부산서 올라가서 동쪽, 경상북도와 강원도로 하고, 밑으로 경상남도 전라남도, 그 다음에 가로로 두 군데, 주로 남원으로 해서 전주랑 서해안 쪽, 그리고 서울로 가는 코스 해서 충청도로 잡고 또 특별한 경우 제주도에도 갑니다. 비행기 삯이 조금 더 듭니다.
: 그럼 방학 때 미학행은 어디로 향합니까?
: 현장답사라는 이름으로 하는데, 가령 ‘수운 해월 선생 행적을 따라서’ ‘동학군의 전적지를 찾아서’ 이렇게 주제를 정해 행적을 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명분 아래 해당 지역의 현지인들과 사전 연락을 취해 함께 어울리는 계기를 준비해두지요.
: 그럼 이런 학습을 언제부터 하신 겁니까?
: 협동과정이 생길 때부터 했지요. 학과가 생길 때 일시적으로 학과 사무실을 배당받지 못했는데, 그 기회에 ‘예술문화영상학과 창립 열림굿’을 학내 건물 앞에서 열었습니다. 굿판을 하고 그랬습니다.
: 신설 학과 창설시 미흡했던 여건을 마당굿 형식으로 활용한 셈이군요. 가을답사도 있습니까?
: 예술문화영상학과가 되니까 봄에는 전주에서 하는 영화제에 가고 가을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한 열흘 간 내리 답사하는데, 말하자면 현장에 학습거리를 배우러 갑니다.
: 주제를 갖고 하는 학습을 위한 놀이, 참으로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놀이에 대해 인식을 다르게 가져야 할 겁니다. 놀이를 킬링 타임이나 오락 정도로 보는 얕은 사고 방식에서는 이러한 학습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더더욱 용납하기조차 힘들 겁니다. 우선 놀이 현상이 무척 방대하다는 점, 놀이 가운데는 킬링 타임 같은 것, 오락 같은 것도 있다는 점, 놀이가 변한다는 것은 놀이가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을 지시한다는 점, 그러므로 상당수의 놀이는 고도의 자율적이며 민주적인 문화적 행위라는 점, 그 가운데 웬만한 놀이는 생산적이며 일부의 놀이는 창조적이라는 점, 그리고 예술은 최고도의 문화적 행위라는 점에서 특히 예능 계열 학과에서 학습과 놀이를 공존시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해 보입니다.
: 다행히 교수진도 이렇게 노는 것에 대해 이해가 깊어 가능합니다.
: 학생들의 호응이 대단하겠죠?
: 몇 번 해보면 터득이 되죠. 그런데 여학생들이 더 잘 놉니다.
: 상상력 고양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그외 특별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 학과목에 감수성, 상상력이 제목으로 들어간 게 세 과목이 있습니다.
: 개강이다, 봄답사다 이런 것은 학점하고 상관이 없고요?
: 네.
: 답사비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 자부담과 실험실습비를 합하여 추진합니다.
: 그러면 해외에도 나갑니까?
: 연전에는 BBK 덕분에 공적 지원금으로 딱 1년간 학생들하고 유럽(런던, 파리)에 4박 5일, 중국(베이징)도 3박 4일, 미국(LA)도 20 ~ 30명이 갔었습니다.


 




□ 춤 상상력-창의력 키우기, 풍류와 종교에서 길을 묻다

 

: 대학에서 말하자면 상상력 키우기, 창의력 키우기의 일환으로 잘 놀기를 교과로 실천해왔습니다. 교과에도 그런 교과목이 있습니까?
: ‘미적 인간의 실습’이라는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그래서 그 실습 1이 악가무(樂歌舞)론, 실습 2가 시서화(詩書畵)론이지요. 그래서 1은 소리 한 마디 하며 장구와 춤 배우는 거고, 2는 먹(墨) 치고 그리는 과목이지요. 원래 계획은 이것을 필수과목으로 하려고 했는데 모두 필수과목으로 넣을 여지가 없어서 악가무론 한 과목만 필수로 했습니다. 이제는 필수로 지정 안해도 될 만큼 필수로들 여기지요. 악가무론은 연출 전문자가 진행합니다. 이 과목은 학부, 협동과정, 일반대학원 과정에도 개설되었습니다. 대학원은 필수로 넣기가 어려워서 선택으로 했습니다. 시서화론은 지금은 한문학 전공하신, 글씨와 예절을 함께 가르치시는 분이 담당합니다.
: 일단 독특합니다. 세부적으로 더 들어볼 점도 있겠습니다. 한쪽에서는 연구와 학습을 강조하고 한쪽에서는 놀이를 강조하는 것이 오늘의 대학 모습입니다. 둘 간의 균형이 무엇인지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로되,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학습과 연구가 궁극 도달점이라는 점에서 놀이의 역할이 대학 교육에서 부활해야 하겠지요. 이럴 경우 놀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시 묻게 되는데,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놀이와 긍정적인 놀이를 가려내는 혜안(慧眼)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놀이가 고도의 문화적 행위라는 인식부터 필요하고, 대학은 대학답게 놀이 정신과 지성의 정신을 함께 즐겨야 합니다. 놀이 정신과 지성의 만남, 놀이와 지성의 섞임이 일상화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아시지만, 지성 사회가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은 동서양의 역사에서 흔한 현상이기도 했고 우리 선비 사회 또는 근현대 지식사회에서도 그런 구체적 사례를 무수히 짚어낼 수 있습니다. 시간 제약도 있고 해서, 오늘은 놀이를 풍류(風流) 개념에 근접시켜 대학교육에 일테면 풍류를 도입하는 발상에 초점을 맞춰서 더 담화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학교육의 풍류,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21세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무엇이 더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가? 심지어는 21세기의 화랑도 교육이라는 표현도 가능하지 않나 합니다.
: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는데, 그 원천이 천부경에 나오는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그러니까 사람 가운데 하늘과 땅이 하나로 되어 있다는 구절처럼 천지인 3재사상에서 비롯됩니다. 또 하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무궁한 순환적 진화로서의 자기 생성 구조가 실현되는 현실세계, 그것을 땅이라고 한다면 그런 생명의 뜻과 하늘이 인간의 행위와 마음의 활동 속에서 드러나게끔 하는 것을 존경하도록 얘기해준다면 그게 바로 풍류사상인데요. 특히 풍류사상은 그런 사람의 행위가 여러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있다는 것을 더 명확하게 하지요.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고, 뭇 생명체와 인간의 활동이 더불어 함께 생성, 변화, 진화, 강화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하는 내용을 요약한 사람이 최치원(崔致遠)이라 하고, 풍류와 관련 난랑비서(鸞郞碑序)를 쓴 작가도 최치원이라고 한다면, 최치원이 서기 9세기 당나라 그 시대 중국에서, 한국에서 고조선에서부터 넓게 이야기하면 동아시아권에서 확보한 그의 생명사상의 결정적인 표현이 현묘지도(玄妙之道)로서 풍류사상의 접화군생일 것이고 또 유불선 3가지가 포함된 총체적인 동아시아의 생명종교사상의 결정체가 아닌가 싶고, 그렇게들 해석합니다. 그것이 천 년 전에만 실현될 것이 아니라 천 년 후에도, 앞으로도 지구 생명체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게 통일신라 때에는 화랑도의 교육과 정신과 실천력으로 구현된 것으로 보이고요. 특히 화랑도 교육 내용을 삼국사기가 4가지로 요약한 것을 보면, 도의로 닦는 것 이외에 나머지 3가지는 전부 노는 겁니다. 가무악으로 서로 즐거워하고, 호연지기를 기르고 자연과 우주와 교류하면서 먼데 있더라도 가지 않음이 없는, 좋은 곳이라면 먼 곳 가까운 곳 상관없이 산천경계를 찾아서 심기를 자연에너지와 교환하는, 그런 4가지 교육 지침이 화랑도의 교육을 요약한 것이라면, 이 교육의 절반 이상이 가악과 풍류여행이지요. 그런 점을 보면, 교육 프로그램에서 논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논다고 하는 생각과는 아주 다르게 고단위의 생명에너지의 교류를 땅이라는 현실과 하늘 그리고 인간의 실천력이 융합되는 속에서 계속 환기시켜 준다는 그런 취지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통일을 이루려고 하는 결의에 찬 육체적 행동으로도 나오고 또는 자기수양에 해당되는 정신적·도의적 수양에서도 나오고, 또 사람 사는 것과 원활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무악, 이런 데 풍류 개념들이 배여 있습니다. 그런 풍류 교육은 단순히 청소년 교육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전인류적 생태와 도덕교육 프로그램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잘 노는 것이 삶을 이해하고 삶을 이끌어 나가는 데 참으로 돕는다는 점을 재인식해야 겠지요. 사실은 대학교육도 깊이 있는 사유방식의 한 과정으로서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공부를 때려치우고 노는 것, 또는 일하지 않고 노는 것, 그런 차원과는 전혀 달리 악가무와 시서화를 통한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풍류교육은 단순한 체육이나 예술교육을 넘어서서 삶의 어떤 생성적 에너지를 확인하면서 발휘할 수 있게끔 해주는 근원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대학교육의 밑바탕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포지엄의 토론정신이 바로 심포지엄의 향연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과 비견해보면, 향연으로서의 공부, 담론 연구의 비평적 의견 교환의 장으로서의 교육 프로그램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체적인 놀이의 어떤 내용이 과연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가는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풍류사상이 선비들의 유한한 여가활동 및 가무악 여흥생활로 비치는 것은 굴절된 것이라 봅니다. 본원적인 의미의 풍류가 좀 더 살아나기를 바라지만, 물론 이것이 한국적인 의미만은 아닐 겁니다. 어느 연구 내용을 보면, 풍류라는 용어 자체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쓰는 말입니다. 적어도 최치원 선생이 구축한 본래적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그 실천적 교육 프로그램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 풍류에 대한 선생님의 해석에 대해 그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온 줄로 압니다. 이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확대하는 것은, 그간 우리 교육 현장에서 놓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특히 춤과 예능 교육에서는 그런 부작용이 더 크다 하겠습니다. 풍류는 놀이의 일환일 것입니다. 인간의 놀이는 고도의 문화 행위이자 문화 활동이어서 동물의 놀이와는 구분됩니다. 인간의 놀이는 일례로 문화권과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동물의 것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동물의 놀이가 문화권과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짐작은 아마 어불성설일 겁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놀이는 문화적이고 그 가운데 최고도의 것이 예술일진대, 일반인들의 시각에 비추어 예술과 춤, 연행이 놀이 정신을 상실하면 그 이상으로 그 호소력이 저하되기 마련입니다.
: 이참에 고려할 또 한 가지는 무애(無碍)가 있는데요, 그것도 원효(元曉) 사상의 한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심(一心), 그 다음에 화쟁(和諍), 끝으로 원융(圓融)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로 요약되는 원효 사상의 궁극적인 실천력은 가무행위였다고 봅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원효 스님이 마지막으로 채택했다고 생각되는 것이 가무행위로서, 완전 떨거지춤을 갖고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거지떼들과 함께 집 안의 아녀자들과 아이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해서 부처님의 세계가 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속에, 생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하지요. 그때의 춤이 바로 무애가무인 것이지요. 그 춤과 노래로 민중 실천불교 포교 방식으로 했다고 기본 측면을 강조해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원효가 그것으로써 자기 생을 완성시켰다고 봅니다. 그래서 흔히 진속일여(眞俗一如)의 경지를 그는 떨거지들과 무리지어 형편없는 병신춤, 마구잡이 춤을 춤으로써 실현해냈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천해보였다 하겠습니다. 그가 왜 하필이면 춤과 노래로써 뒤의 삶을 일궈 나갔는지, 그의 방대하고 넓은 사상체계는 동양불교 사상에서는 아주 창의적이고 심오하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일개 보잘 것 없는 가무행위에 총괄됐는지, 그것이 참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같이 고구하여보자는 것인데요, 노래와 가무의 힘을 그의 생애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무 쪽 분야를 주목하다 보니까 19세기 민족종교 사상에서도 가무가 늘 결합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수운선생의 칼노래 칼춤(검결 劍訣), 그 다음에 증산 사상에서의 천지굿, 풍물굿이죠. 그 다음에 김일부 선생의 정역(正易) 사상에서의 영가무도(詠歌舞蹈)... 그러니까 검결, 천지굿, 영가무도는 예배 형식이자 종교사상가들이 안출해낸 가무이면서 종교 의례이고 수련, 득도의 과정이기도 하고, 종교적 실천의 행위, 실천 방식이기도 합니다. 종교적 실천을 가무악으로 드러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가무악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종교적인 의미들과 마음들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 그런 점이 저의 학문적 관심을 계속 불러일으켜왔습니다. 가무악 속에 담지된 종교 사상을 재확인하는 일이 지금 공부의 관심을 크게 자극하고 있습니다. 종교사상이 가무악에 반영된 것이고, 거꾸로 종교 사상이 반영된 가무악으로 미루어 종교사상의 실체를 파악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춤교육 면에서 종교와 춤, 종교적 실천으로서의 춤, 종교사상과 춤, 이 관계를 잘 살펴보려 합니다. 그러기에 원효스님의 무애 가무행에서부터 검결, 천지굿, 영가무도가 핵심적인 연구대상일 수 있고, 또 새로운 교육의 구체적인 실현방안일 수 있지 않겠는가 합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실기교육에 포함하면 작품 속에 우리가 무엇을 담을 것인가 하는 방안도 해결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한국사상이나 한국문화의 그 무엇을 몸으로 더 깊이 확인하는데 큰 도움과 자극이 될 수 있겠다고 봅니다. 그 프로그램이 꼭 종교행위가 아니어도 좋고, 신앙심이 전혀 없어도 어차피 가무행위라는 점에서 해보면 마음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 그럼 다시 오늘의 21세기로 돌아와서, 원하시는 교과편성을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가령 학교를 하나 설립한다는 전제에서 소개해 보시지요.
: 가무악 학교를 세워서 한국철학사상, 한국종교사상을 교과로 함께 배우도록 해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자로, 책으로 종교사상을 아는 것은 잠시 뒷전으로 미루면서 몸으로 체득해보는 과정이 어떤가 싶습니다. 그리고 시서화에도 달마 그림이라든지 해서 어떤 문구가 던져주고 있는 그 무엇, 노래가사라든지, 시서화와 가무악을 통해 한국문화의 정신과 사상을 찾아보도록 교육과정을 세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와 병행할 것으로 의식주와 건강 등 실제 살아가는 생활기술교육프로그램입니다. 예를들어 자연의학으로서의 활법, 우리 먹거리 찾기로서의 산야초학습, 우리옷 만들어 입기, 생태건축, 생태 에너지의 비축과 활용, 자연 생태철학 등의 강좌로서 교육프로그램을 일반 사회인과 함께 모색해보는 것입니다.
: 혹시 해외에서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발견됩니까?
: 아마 있을 듯합니다. 한국에선 이런 접근이 자칫하면 사이비다, 마치 신흥종교처럼교주 중심의 무엇이라고 곡해받을 여지도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외람된 방식이지만 예수의 행적이나 공자의 행적이나 종교 성인들의 행적 중에서 가무악적인 양태들을 의도적으로 잘 뽑아보면, 그분들에게 요즘 예술가 같은 가무악의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행적과 언행 속에서 시서화나 가무악이나 놀이나 축전행사에 해당되는 실행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분들의 생애, 종교적 실천 및 선교에 어떤 힘이 되었는지 그런 것을 연구해보고 싶은 거지요.
: 말씀에 따르자면, 사서삼경뿐만 아니라 신약 구약까지 다 해부해야 되겠습니다. 방대한 작업을 먼저 수행하시면 후학들이 따를 것으로 믿습니다. 아무튼 예술에 대한 고립주의적 관점이 오늘에 이르러 설득력을 거듭 상실하고 있는 현상을 배경으로 보면 선생님의 향후 연구 계획은 더욱 큰 시사점을 안고 있습니다. 예술 따로, 삶 따로 혹은 전문적 예술과 삶의 상호 분리 같은 고립주의적 시각은 일정 시대 문화권의 소산이었지, 그것이 예술의 본성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요. 예술에 관해 단적으로 총합적 시각이 대안으로 도처에서 대두하는 현시점에 가무악과 시서화는 통합 내지 융복합 시각에서도 재인식될 소지가 큽니다. 장르들 간의 소통, 예술과 삶 간의 소통이 갈수록 잦아지는 시대를 배경으로 놓고 볼 때 놀이나 풍류, 무애 등의 개념에서 춤과 예술의 활로를 모색하자는 발상은 다시금 역사성을 회복할 것으로 믿습니다. 놀이에 대한 굴절되거나 혹은 편협하거나 혹은 얕은 1차원적 인식을 벗어나야 이 같은 발상은 이해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학에서 전반적으로 변화가 시급하고 춤 교육에서도 놀이적 상상력이 강화되어야 하므로, 선생님의 향후 다짐과 연구는 미구에는 대학 춤 교육의 새로운 토양 형성에도 큰 자극이 될 줄로 압니다. 선생님의 향후 연구가 이러한 시대성과 타당성에 힘입어 큰 결실을 맺기를 기대하며, 오늘 담화를 마치겠습니다. 장시간의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2013.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