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몬트리올 현지취재_ CINARS 2014
30주년 맞은 빅 공연예술 마켓, 1,400명이 넘는 참관자로 북적
곽아람_서울세계무용축제 국제교류팀장

 2년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되는 시나르(CINARS)는 무용, 연극, 복합장르, 음악, 서커스를 망라하는 큰 규모의 공연예술 마켓으로 지난 11월 17일부터 22일까지 40여개국 341명의 프리젠터, 344명의 부스전시자, 608명의 예술가 그리고 148명의 개인참관자를 포함 총 1,441명(공식집계)이 참가한 가운데 30주년을 맞이했다.

 



 1984년에 창설되었으니 올해가 16번째. 특별히 올해에는 한국에서 안성수 픽업그룹과 음악그룹 공명이 공식 쇼케이스 참가작으로 선정되어 각각 19일과 22일에 〈ROSE〉(The Rite of Spring)와 〈With Sea〉 공연을 가졌다. 참고로 시나르에는 2012년 최상철현대무용단이 공식쇼케이스에, 그리고 장은정무용단, 미연&박재천, 배유리, 김선희발레단이 오프시나르 무대에 소개된 바 있다.
 올해는 예술경영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시댄스, 프로듀서그룹 도트, 안성수픽업그룹, 공명, 그리고 국립현대무용단이 부스 전시에 참가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한국인 델리게이트는 시나르측의 공식 초청을 받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정재왈 대표와 시댄스 이종호 예술감독을 포함, 총 26명으로 상당히 큰 규모였다.

 



 서커스 강국에 걸맞게 개막작은 Les 7 doigts de la main의 화려한 서커스로 시작했으며 사전 공모와 심사를 통해 선정된 무용(5개 작품), 연극(5개 작품), 서커스/복합장르(3개 작품), 음악(7개 작품)이 공식 쇼케이스로 공연되었다.
 공연 전부터 시나르 전 스태프들이 기대하고 심지어 이 작품이 어떤지 궁금해서 이번 시나르에 참가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그리스 Stathis Livathinos Theatre Group의 〈Homer’s Iliad〉 5시간이 넘는 길이를 90분으로 압축할 수 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제약 때문이었는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벨기에 시 디 라르비 쉐르카위(Sidi Larbi Cherkaoui)가 안무한 스웨덴 예테보리 오페라 무용단의 〈Noetic〉이 기립박수를 받으며 환호를 받았고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왜 기립박수를 받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나) 제 2의 아크람 칸이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최근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영국 아카쉬 오데드라(AAKASH ODEDRA)의 영상과 소리, 조명 테크놀로지를 동양적 움직임과 결합시킨 〈Murmur〉가 주목을 끌었다.
 안성수픽업그룹의 〈Rose〉(The Rite of Spring)는 뛰어난 무용수들의 기량과 독특한 음악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다음날 이어진 부스 전시에서 여러 해외 프리젠터들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캐나다와 호주는 그 명성에 걸맞게 다이내믹하고 유쾌한 서커스 공연을 선보여 큰 환호를 받았다. 옆 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했던 일본 프리젠터는 박진감 넘치는 플립 파브리께(Flip Fabrique)의 점프력에 반했는지 당장이라도 이 팀을 자신의 극장에 부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모잠비크의 치코 안토니오(Chico Antonio) 뮤직그룹이 입국심사 시 서류 미비로 캐나다 입국이 거절되어 공연이 취소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공항에서 내 여권에 찍혀있던 나이지리아 비자를 보고 예민하게 굴었던 입국심사관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도 이 때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프로그램을 펼치자마자 모든 무용, 연극 공연을 제치고 가장 궁금했던 Chico Antonio의 공연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시나르는 공식 쇼케이스만큼이나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이 시나르 기간 내내 몬트리올 곳곳의 극장과 스튜디오에서 소개되는 오프 시나르 작품들이다. 공식 일정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치열한 사전 홍보와 친절하고 전투적인 호객으로 전세계 프리젠터의 마음을 움직여보려는 그 열정과 노력은 참으로 높이 살 만하다.
 올해 시나르에는 무용, 연극, 복합장르 등 80편이 넘는 작품들이 대거 소개되었으니 행사 내내 가장 고민하고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 바로 매일매일 무슨 공연을 봐야 할 지를 정하는 일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주변에서 그 공연 봤다며, 자신들의 감상을 얘기하거나 놓치지 말고 꼭 보라며 추천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대체 왜 그런 작품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이 한 둘은 꼭 있다. 공식 쇼케이스와는 다르게 오프시나르는 참가단체들이 모두 극장과 기술사항 등을 준비하고 공연 특성과 현실적 조건에 맞게 공연장소를 정하기 때문에 늘 좌석이 한정되어 있어 사전 예약이 필수이며 특정한 경우에는 아예 프리젠터에게만 관람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올해 오프 시나르 중 홍보 문구만 보고 가장 구미가 당겼던 작품은 아버지의 정신분열을 오랫동안 지켜본 여성 안무가 안 플라몽동(Anne Plamondon)의 〈The Same Eyes〉이었고 아마도 이 작품은 내년 시댄스에서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듯 공연이 끝나고 바로 그 예술 작품이 직거래되는 경험은 예술가와 프리젠터 모두에게 기분좋은 긴장감과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연륜과 내공이 느껴지는 마리 쉬나르(Marie Chouniard)는 본인의 스튜디오에서 신작의 일부를 소개했는데 역시나 그 이름값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공연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이나 자리를 뜨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카 퓌블릭(Cas Public), 비르지니 브뤼넬 무용단(Compagnie Virginie Brunelle), 다니엘 레베이예 무용단 (Daniel Léveillé Danse), 그리고 그란회이 무용단(Granhøj Dans) 등 시댄스에 초청됐던 몇몇 무용단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으로 반가움을 더해줬다.
 이번 오프 공연 중 호세 나바스(José Navas)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호세 나바스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안무가로 이제는 몬트리올에서 자리를 잡은 탄탄한 경력을 보여주는 실력 있는 안무가이다. 몇 년 전 시댄스에서 초청하려다가 건강 상의 이유로 잠시 활동을 중단한다고 해서 늘 궁금했던 안무가였는데 그가 〈Rite〉를 공연한다니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살짝 야윈 건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 소박한 무대였지만 그의 스튜디오는 오랜만에 그의 모습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로 꽉 찼다. 그런데 작품이 중반을 지났을 무렵 춤을 추던 호세가 갑자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봄의 제전>은 멈췄고 맨 앞자리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누군가 바로 따라 나갔다가 곧 공연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규칙적이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기침소리만이 그가 더 이상 공연을 이어갈 수 없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날 저녁 다른 공연장에서 만난 호세의 매니저는 호세가 심한 독감에 걸렸으나 이제는 많이 회복 중이라고 했지만 결국 이후로 예정되었던 두번째 쇼케이스도 취소되고 말았다.

 



 시나르에는 공연 외에도 워크숍과 컨퍼런스, 스피드 데이팅 그리고 리셉션과 네트워킹 파티 등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되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는 ‘A Journey Through The Mind of a Programmer’라는 제목의, 극장과 축제의 프로그래밍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캐나다 밴쿠버댄스페스티벌, 멕시코 세르반띠노축제, 미국 화이트버드 축제, 덴마크 Dnasehallerne, 그리고 시댄스 이종호 예술감독이 발제자로 참여했고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8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극장과 축제에서 무엇을 프로그래밍하고 무엇을 프로그래밍하지 않는지, 프로그래밍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프로그래밍 방향이 변해왔는지, 그리고 소소하게는 프로그래머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등 열띤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어쩌면 이 마켓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이 주제가 아닐까. 가장 근본적이지만 또한 가장 실질적인 얘기들이 오갔던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올해 시나르는 30주년을 기념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시나르의 중심에 있었던 알랭 빠레(Alain Paré)는 시나르가 지금까지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온 장본인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은 누구나 한결같이 그는 참 대단한 실력가라고 얘기하는 걸 보면 그가 지금껏 어떻게 이 마켓을 이끌어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알랭 빠레에 대해 무척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지난 여름 탄츠 메세에 갔을 때였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 모두가 짐을 꾸려 호텔을 빠져나가는 그 마지막 날,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는 알랭 빠레를 보았다. 부스 전시를 위해 가져온 배너 거치대며 온갖 잡동사니들을 직접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겨서 호텔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올해 팸스에서는 부스를 일일이 돌며 시나르 전단을 손수 배포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게 뭐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실제로 한 축제나 마켓의 디렉터가 직접 배너 거치대를 챙기고 전단을 나눠주는, 소소하다면 소소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직접 챙기는 모습은 그리 흔치 않다. 그 두 번의 모습을 통해 알랭 빠레 스스로가 시나르에 대해 가지는 애정과 자부심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마켓의 중심에서 시나르를 이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은퇴 전까지 밴드 드러머로 활동한 뮤지션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스탄(Stan)은 시나르를 비롯한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 몬트리올 필름페스티벌 등 몬트리올을 대표하는 주요 축제의 국내 운송을 담당하는 운송통이었다.
 덥수룩한 하얀 수염이 흡사 캐나다 산타를 연상시키는 그의 수첩에는 쇼케이스에 참가하는 공연팀들의 입출국 일정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아티스트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중과 배웅을 담당하는 스탄. 누군가 그에게 말했다. “스탄 당신이 지금 제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공연을 골라보는 것만큼이나 즐겁고 또 동시에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고 또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매우 보람되지만 그 과정은 동시에 매우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에 친화력이 부족한 나는 이런 마켓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무엇을 소개하고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지 참 막막하고 난감했다. 아무도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번의 참가 경험이 아는 사람을 만들고 또 축제에 참가했던 단체들과 친숙해지고 이제는 1년에 가족들보다 더 자주 보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적절한 경험과 매너, 기술이 필요한 네트워킹의 현장은 나를 긴장시킨다.
 지난 8월 탄츠 메세에서 만났던 네덜란드 율린단스(Julidans) 축제의 디렉터가 시끌벅적한 파티장에서 빠져나와 머리를 식히고 있는 나에게 ‘누구나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게 자연스러워 질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시나르에서 최고의 인터내셔널 프리젠터 상을 수상했다.

 



 올해 시나르의 가장 큰 히트상품은 그 어떤 공연보다도 시나르 앱이라고 의심없이 얘기할 수 있다. 일정별, 장르별 프로그램, 참가자, 장소 등 앱의 구성과 인터페이스가 어쩌면 이렇게 편리하고 효율적인지, 놓치면 안되는 공연이나 일정 그리고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을 즐겨찾기할 수도 있다. 장소를 직접 찾아가야 하는 오프시나르 공연의 경우 지도 서비스가 매우 중요한데 사소한 디테일 하나 놓치지 않고 잘 구성된 앱이었다. 향후 다른 마켓이나 축제에서도 이 앱을 기준으로 고안을 하면 무척 효과적일 것이다.

 



 몬트리올에서의 일주일. 시린 날씨 속에서 여기저기 공연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알찬 일주일을 보냈다. 덕분에 내년에도 즐겁게 바쁜 일들이 생길 것 같다. 무엇보다 보람된 건 2년 전보다 지금, 그리고 꾸준히 한국 작품, 한국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과 성과들이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는 것. 한국의 예술작품이 해외에서 시나브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선전을 기대한다.

● 곽아람은 올해 시나르에서 시댄스와 안성수픽업그룹의 공식쇼케이스 해외 프로모션을 담당했다.

2014.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