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대담_ 국립현대무용단 〈빨래〉
빨래터의 일과 놀이가 품은 여성 정체성
  • 일    시
    2021년 3월 31일 낮 12시
  • 장    소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남정호 – 채희완



남정호 - 채희완 ⓒ춤웹진




채희완: 부산에서 자주 8,90년대 뵈었고, 그 후 한예종에 재직하실 때 서울 와서 자주 작품을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었군요. 오늘은 그 추억과 함께합니다. 이번 3월 19~20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서 〈빨래〉를 작업하셨는데요. 〈빨래〉는 28년 전에 처음 공연되었고 그간 국내외에서 많이 공연되었습니다. 아마 남정호 선생의 대표작처럼 여겨지는 듯해서 마침 이번 공연을 계기로 〈빨래〉 작품을 주제로 여러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작품론에 해당된다 할까요? 열흘쯤 지난 지금 공연을 마친 기분은 어떠신가요?

남정호: 작품을 발표하고 나면 좀 부끄럽습니다. 평소에 보여주지 않는 저의 민낯을 은연중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내어 들켰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젊을 때는 너무 심해서 도망가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어도 비슷한 거 같아요.

채희완: 겸손한 표현으로 들립니다. 이번에 하면서 스스로의 심경이나 만족감이랄지, 관중들의 반응에는 어떤 감이 들었나요?

남정호: 완벽한 만족은 없는 듯해요. 연습 때는 최선을 다하더라도 공연을 마치고 나면 약간은 놓친 부분이 드러납니다. 연습실에서 하던 것을 무대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저의 욕심과 무대 현실의 타협이 이어지는데,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거 같아요. 이 작품을 ‘MODAFE’ 오프닝 공연에 초청받아 5월 2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다시 공연합니다. 재정비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하고 있습니다.

채희완: 이번에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하게 되면서 그전의 작업과는 색다른 점이 적잖이 있었지 않나 싶어요.

남정호: 아무래도 다른 환경입니다. 그전에는 말하자면 구멍가게에서 혼자서 다 했다면, 이번에는 무용단 자체 기획팀과 홍보팀이 있고 예산도 어느 정도 책정돼 있다 보니 괜찮은 환경이죠. 구멍가게를 벗어나서 백화점에 왔다 그럴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래〉라는 작품은 구멍가게 초기에 만든 작품이어서 구멍가게 정신을 살리고 싶었어요. ‘결핍의 긴장감’, 그러니까 너무 풍요로우면 느슨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함께하는 스태프로는 〈빨래〉 초기에 음악을 맡은 박성선님, 의상도 이전에 오래 작업했던 김경인님과 같이했고요. 아무튼 어려운 시절에 같이 작업했기에 그분들은 제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알고 이해하는 편이죠. 저의 변덕도 잘 받아주고요. 그런 면에서 스태프들께 감사하고요. 무용수 5명 중 2명은 그전에 〈빨래〉를 같이 한 경험이 있던 무용수였고, 나머지 3명도 제 생각을 기준으로 캐스팅했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 〈빨래〉 ⓒ고흥균/국립현대무용단




채희완: 의상, 음악 하는 분들과는 어느 때부터 함께 했습니까?

남정호: 박성선 선생은 2000년 초, 20년 정도 됐고 김경인님도 그 정도 될 거 같아요. 그러나 1993년 초연에서 함께 한 분들은 아닙니다.

채희완: 〈빨래〉 초연이 1993년도이지요? 그때 정황이 궁금합니다.

남정호: 93년도에 일본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어요. 고독과 그 대안에 관한 솔로를 만들고 있었는데 당시 자유소극장만 먼저 개관을 앞둔
‘예술의전당’​ 개관 오픈 프로그램에 초청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그 연락을 받고 제가 준비했던 솔로를 군무로 해 볼 결정을 했어요. 그러니까 〈빨래〉는 저의 솔로에서 시작됐습니다. 초연시 음악은 사이토 테츠, 의상은 배용 그리고 소품은 폐기처분된 북을 가지고 제가 무용수들과 함께 제작했지요. 1993년 자유소극장에서 70분 정도 길이로 선보인 후에 1994년 토월극장 오프닝 기념으로 ‘우리 시대의 춤’ 기획 프로그램에서 이정희, 김현옥님과 함께 초청받았지요.


채희완: 세 분의 다른 작품들이 같이 올려진 무대였었군요?

남정호: 네. 세 안무가가 한 공연에 각자 자기 작품을 올리는 기획이다 보니 작품 길이를 줄여야 했어요. 93년도 초기에는 목욕 장면에서 여자 무용수들이 상체를 노출했습니다. 그런데 매스컴에서 그 점을 굉장히 주목하더군요. 70분 중에서 상체노출 시간이 3분 채 안 되었는데, ‘노출하는 작품’으로 센세이션하게 이야기되는 것이 조금 불만이었어요. 그래서 94년도에 마침 작품길이를 줄일 때 상체 노출을 하지 않고 빨래라는 노동에 집중하고 유희성에 더 주안점을 두었지요. 그 후 20분 압축 버전으로 고정되면서 그 버전을 갖고 뉴욕 라마마, 멕시코, 루마니아, 일본, 프랑스 등 해외를 많이 돌았어요. ‘빨래’라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여자들의 일이었기에 어느 나라건 공감을 갖는 한편 대화를 하고 싶은 구실을 줬다고 할까요. 아마 모두 50여 회 정도 공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쳐 간 무용수가 꽤 많습니다.

채희완: 50회 정도 한 공연을 토대로 이번에 새롭게 공연을 한 거죠? 전과 달리 특히 강조하고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은 어떤 점일까요?

남정호: 20분으로 축소하여 여러 번 공연하면서 그간 잊어버리고 있던 초기의 기억을 이번에 다시 살리고 싶었습니다. 한여름 하룻밤 동안 일어난 일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긴 호흡, 느린 연결을 감당하는 충분한 소요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초연하였던 극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하기 때문에 그때 가졌던 극장성을 다시 찾고 싶었습니다. 당시에 자유소극장 1층 전부를 무대로 사용하고 2층, 3층에서만 관객이 관람했습니다. 조선 후기 시대 신윤복의 〈단오풍정〉에서 기녀들이 목욕하는 것을 숨어서 엿보는 것이 에로틱하기도 하고 유머가 있지요. 저는 목욕뿐만 아니라 한여름 밤에 일어난 여자들의 일상, 빨래하거나 수다떨거나 자기들끼리 노는, 갈등하는 모든 일상을 관객이 마치 그림 속의 까까머리 중이 되어 몰래 지켜보게 만들고 싶었고 이번에 다시 그때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려 했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 〈빨래〉 ⓒ고흥균/국립현대무용단




채희완: 팸플릿에 서술되었듯이 5명의 개성적이고 독특한 실연자들이 자기 얘기를 하듯이 자기화한 상황을 풀어나간 것이 독특했어요. 단순히 안무 받아서 무용수가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기 삶의 얘기를 스스로 담아서 자기 얘기를 던져주듯 하는 게 표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봅니다. 저마다 개성적이고 자기 세계 속에서 빨래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군무 장면에서도 여태까지 보기 어려웠던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어우러지는 맛이 느껴졌습니다.

남정호: 네, 무용수 각자가 가진 고유한 호흡, 움직임을 존중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표준말로 통일하지 않고 각자 사투리를 쓰면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으로 각자의 움직임을 대하였고 유도하려고 했어요.

채희완: 5명 춤꾼에 대한 세부 얘기는 잠시 미루고, 이번 작품에서 음악, 의상에 따라, 특히 춤꾼의 독특한 캐릭터라든가 개성적 표현이 잘 드러나던데, 협업 과정은 어떠했나요?

남정호: 안무에 들어가기 전에 2주간 워크숍을 했습니다. 무용수 5명만 할 수 있는 장단 연습 워크숍을 전반에 했고, 후반에는 무용수에게 파쿠르 트레이닝을 경험하게 했어요. 그 트레이닝을 통해 우선 무용수의 두려움을 없애는 효과를 기대했었습니다. 작품에서 보셨겠지만, 북 위에서 발끝으로 다니면서 북과 북을 좀 아슬아슬하게 이동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실제 빨래터에서 큰 돌과 돌 사이를 건너가야 한다면, 어떻게 서로 지지하고 도와주면서 겁내지 않고 갈 것인지. 떨어지면 죽는 극한 또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용감한 몸, 정신적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동시에 잘 훈련된 신체 컨디션으로 준비된다는 것은 어떤 상황인가. 다행스럽게도 본격적으로 안무를 하기 전에 장단과 파쿠르를 공유하면서 팀워크가 형성됐어요. 다섯 무용수가 호흡을 잘 맞춘다면, 제가 하는 일은 순서를 만들어 구성하는 즉 편집하는 것이었습니다.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였어요.

채희완: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서도 오늘날 빨래하는 모습을 보기조차도 어렵습니다. 이런 것을 소재로 잡았을 때는 과거 지나간 시절에 있었던 것이 재음미되면서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의 빨래 작업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삶의 의미를 던져주는지 묻게 됩니다. 빨래에서 인류 보편적인 공동감을 확인하셨다는데요. 작년, 올해처럼 팬데믹으로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지 않으면 살기 어렵게 된 시절에 빨래라는 여성의 고유하면서도 아주 질긴 심성이 담길 수밖에 없는 것을 애써 포착하여 춤의 중요한 포인트로 잡았을 때에는 혹시 독특한 숨은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를테면 문명 비판적이랄까. 세탁기 생활을 해야 하는 시절에 새롭게 그런 세계를 끄집어내는, 그럴 때 남정호 선생의 독특한 세계관이나 예술관이 반영된 선택이 아니었겠는가 싶습니다.

남정호: 편리한 물질문명에 의하여 쇠약해지는 인간성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마음! 말씀대로 문명비판적인 점이 있었던 듯합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 시절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고 할까 그립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이 작품의 발단은 애당초 안식년 때 해외에서 혼자 지낼 때 세탁기가 고장 나 손빨래를 한 일입니다. 처음에는 짜증났는데, 하다 보니까 아주 괜찮은 노동인 거예요. 깨끗해지는 빨래와 동시에 나도 깨끗해지는 느낌, 심심할 때 무료할 때 외로울 때 하는 노동? 그 기억을 갖고 솔로를 만들었고 또 군무 작품 〈빨래〉로 진전되었지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왜 계속 이 작품을 하는지 물으면, 우선 이 작업이 저한테 지루하지 않다고 할까요. 싫증나지 않고,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고 할까. 일단 빨래에는 물이 필요하잖아요. 물에 의하여 정화되고 또 물은 생명과 연결됩니다. 많은 것을 상상하고 많은 것을 동원할 여지를 주더군요. 빨래하는 데 도구로 사용되는 천, 저에게 옷은 자기 변신의 도구입니다. 꺼집어 내면 낼수록 계속 연결점이 나오기 때문에 이 작업을 계속하는 거 같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성숙해지는 저 자신을 이 작품에 반영할 수 있으니까요.




국립현대무용단 〈빨래〉 ⓒ고흥균/국립현대무용단




채희완: 옷, 물이라든지가 정화의식처럼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숨어 있다고 보입니다. 특히 남정호 선생 작품의 특징 중 하나가 소도구가 몸붙이처럼 살아 자기 변신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재미난 호기심뿐 아니라 지적 상상력까지 촉발합니다. 세상을 다시 보게끔 만들어가는 과정은 보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일이지요. 또 어떻게 변할지 나름대로 추측해보도록 하고 해서 작품을 수행하는 사람뿐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도 강렬한 흡입력을 갖습니다. 팸플릿을 보니까 드라마투르그가 멋있는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이번 작업에서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은 어떠했습니까?

남정호: 저는 이 작품을 전보다 조금 더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대하고 싶었어요. 일테면 스케일이 큰 넓은 여성주의, 관대한 여성주의죠. 휴머니스트적인 입장에서 모성적인 상황에서 그러면서도 권리를 주장하는 당당한 여성상을 구현하려 했어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요. 그런 쪽의 시각을 지원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평소 알고 있던 저보다는 좀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라 할 김희옥씨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그분은 작품 구성에는 간여하지 않고 흐름을 관찰하는 입장이었지요.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연습과정을 지켜보며 제가 만들고 있는 것을 관객의 입장에서 보고 어딘가 불편한 면이 있는지, 가부장적인 습성이 배어 있지나 않은지, 연습 후에 대화를 가졌어요. 미처 모르는 저의 습관 같은 것을 그런 식으로 점검해나갔다 해야 할까요. 이번에 저한테 영향을 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나오는 여전사들의 이야기, 전사들이 가졌을 법한 강렬한 역동성을 끄집어내려 했어요. 수동적 여성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능동적이면서 용감한, 그런 여성상을 구현하는 데 드라마투르그에게서 도움을 받았지요.




남정호 ⓒ춤웹진




채희완: 전에도 제가 언급한 적 있는데요. 빨래는 노동인데, 일의 능률만이 아니라 일에서 놀이로 넘어가면서 삶의 의미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게끔 결정적인 계기가 조성됩니다. 빨래가 일하는 건지 노는 건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일과 놀이가 잘 전환되고 서로 얽혀 있어요. 일과 놀이의 일치 또는 전환이란 점에서는 어느 미술, 문학, 다른 예술 매체보다 춤이 적합한데요. 그것을 잘 짚어냈다는 생각입니다. 춤은 노동을 놀이로 만들고, 그 일의 의미를 배가시키면서 일하며 사는 사람의 삶의 그윽한 심정이 드러날 수 있게끔 해줍니다. 춤이 그런 면에서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것을 남정호 선생이 춤의 메시지로 담았지 않나 싶어요. 〈빨래〉뿐 아니라 그전 작업들을 보면 남정호 선생의 놀이 정신, 유희 정신, 곧 그런 예술가 정신, 예술 세계를 발견합니다. 그러한 생각으로까지 진전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과정, 동기부여나 사연이 있을까요?

남정호: 어릴 때 독서를 통하여 습득된 상상 속에서는 많은 다른 것이 가능했지요. 또 시험 준비한다고 친구 집에 가서 사실은 공부는 안 하고 친구랑 밤새도록 놀은 기억. 허락된 외박이 주는 모험 그리고 그렇게 하룻밤을 함께 보내면서 나눈 은밀한 이야기들의 흔적 등 그런 조그만 경험들도 도움이 됐고요. 기질적으로 태생적 낙천성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항상 콧노래를 부르면서 집안일을 하셨어요. 집안일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했어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자란 성장 과정의 집 분위기에서 기본적으로 체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채희완: 방금 여전사의 심경 같은 것을 얘기하셨는데요. 그와 함께 팸플릿에 소개된 매력적인 문구라 생각되는 것이, ‘기다리는 팔자를 가진 이가 나 혼자만이 아니더이다’를 하나의 주제 무드로 밑에 깔아놓습니다. 그러나 일하는 여성의 어느 국면을 전사같이 넘겨주는 데에서 이번 작품의 결정적인 방향 전향의 포인트는 미얄할미의 출현입니다. 이번에 미얄할미의 등장은 이전 〈빨래〉 작품과 구분되고 의미가 좀 더 깊어지고 확대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어떻게 해서 탈춤의 미얄할미를 극 중의 중요한 사건, 극적 계기로 삼게 되었는지 궁금하군요.

남정호: 대학시절에 탈춤공연에서 미얄할미를 보고 놀랐어요. 탈춤들에서는 다른 여성 캐릭터는 수동적인 데 비해 미얄할미는 아주 용감하더군요. 그 후에 키가 크고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이 역할을 할 때 보니까 의도적으로 박색인 사람이 정말 허리춤을 다 내려놓는데, 어떤 면에선 에로틱할 것인데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할 말을 다 하더라고요. 춤사위도 다른 탈춤 인물들보다 다이내믹했어요. 궁금해서 문헌을 찾아봤더니 업이 무당이고 두 아이는 죽고 남편이 바람나서 집을 나갔는데, 팔도강산을 돌아다니며 남편을 찾아다니는 그 캐릭터가 제 머리에 강하게 각인됐어요. 비극적인 미얄할미만큼은 아니더라도 누구든 살면서 어려움이 있잖아요. 능동적인 미얄할미의 DNA를 내가 갖고 있다는 생각, 조상이니까요. 그 점에서 위안을 받았지요. 그러한 에너지를 갖고 세상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전에 〈빨래〉 할 때도 무용수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제가 왜 하필 미얄할미에 관심을 갖는지 제 스스로에게 질문도 했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보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이잖아요. 특히 젊은 사람 입장에서는 생계도 그렇고 팬데믹도 그렇고, 매우 혼란스럽고 각박한 세상에서 용기를 갖고 삶을 헤쳐나가는 모델이 필요합니다. 무용수들은 나의 분신인데, 분신들한테 미얄할미라는 조상을 소개해주고 싶은 생각에 출연시켰다고 할까요. 사실은 너무 설명적인 게 아닌가 하는 부담감이 없지 않았어요.

채희완: 그 역할을 맡은 탈춤꾼 박인선씨는 어떻게 만나 캐스팅했어요?

남정호: 아마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와서 우리가 가진 전통, 조상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은 욕심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 것은 가치가 없는 거고, 새로운 서양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던 젊은 시절 저에 대한 성찰이 있었어요. 따라서 굿도 보러 다니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우리 음악도 듣고 탈춤도 보고, 그러면서 더러 실망도 하고 또 어느 정도 위안도 받으면서 쭉 살아오다가 작년 가을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공연된 염상섭의 〈삼대〉를 각색한 탈춤 연극 〈삼대의 판〉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지요. 탈춤 꾼 중에 어린 남자역으로 등장한 사람이 아주 좋았어요. 분장실까지 가서 박수를 쳤고, 가치를 발견하고 싶은 제 마음을 채워줬어요. 만나 보니까 젊은 아가씨더라고요. 정말 본능적으로 그 사람과 작업하고 싶어 캐스팅하였습니다.

채희완: 박인선씨를 전에 만난 적은 없고 소문은 들었어요.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일원인데, 그 팀이 본격적으로 창작탈춤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오셀로와 이아고〉도 탈춤으로 만들었다고 하고, 박인선 씨는 〈탈춤의 목적〉을 공연했다고 들어서 〈빨래〉를 더욱 기대했어요.

남정호: 나이는 어린데 상당히 성숙했어요. 춤도 잘 추고 노래, 재담도 능한 재주꾼입니다.

채희완: 어느 탈춤이든 꼭 등장하는 세 가지 종목이 있습니다. 하나는 ‘양반 대 말뚝이와의 싸움’, 그다음 ‘파계승 노장과 취발이의 싸움’ 그리고 ‘영감과 할미의 다툼’이 그러합니다. 할미마당에선 노부부가 난리통에 헤어졌다가 만났으나 첩이 있고 젊은 색시 대신 본처인 미얄할미가 죽는 것으로 전개됩니다. 황해도 지역에선 미얄할미가 굉장히 억세고 개성적입니다. 자기 생활에서 당찬 인물로 묘사돼요. 지금 얘기하신 것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에요. 극중 미얄할미는 아주 기량이 넉넉하고 출중하더군요. 재담도 소리도 안정감 있었고 거의 50~60세 된 분에게서 나오는 기세를 지니고 있더라고요. 미얄할미의 출연과 더불어 이전 〈빨래〉 작품이 가졌던 구성, 짜임새에서 결정적으로 변화가 생겼다고 봅니다. 작품의 구성, 구조 속에서 미얄의 역할과 5인의 개성적인 역할들이 마주치면서 극적인 흐름이 싹 바뀌었을 텐데, 듣고 싶군요.




채희완 ⓒ춤웹진




남정호: 공연 속의 작은 공연입니다. 구조적으로는 작품 중간에 분위기 전환으로 미얄의 존재를 활용하려고 했어요. 요리로 말하면 어느 정도 먹다가 목이 말라 반주 한잔을 한다고 할까요. 미얄할미의 비중이 크지 않고 시간도 길지 않지만 유효적절히 들어와서 입맛을 돋우고 그 다음 걸 계속 볼 수 있게끔 하는 장치로 의도하였습니다. 의미적으로는 미얄할미가 등장하여 자신의 비극과 낙천성을 드러내고 난 다음 장면부터 더 내밀하고 정직해졌다고 할까요. 개인적인 자기 이야기를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 평소에 남한테 드러내지 않는 속사정을 이야기할 계기를 줬다고 할까요.

채희완: 미얄할미의 등장이 스토리 전개에서도 전환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5명 춤꾼의 각자의 삶의 표현에도 여러 영향을 미쳐서 관계 설정이 조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만들었더군요. 5명의 개성적인 역할의 창조, 즉 인물 캐릭터의 창조라는 점과 미얄할미 사이의 관계 설정 면에서 단숨에 잘 맞아떨어지거나 어울릴 순 없을 텐데요. 일련의 경과 씬들이 구체적인 춤 동작이나 표현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요?

남정호: 미얄할미의 탈춤과 재담과 노래가 있은 다음에 무용수들이 미얄할미가 남긴 탈을 갖고서 그 탈에서 영감을 받은 동작을 합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탈춤의 동작이 무용수들한테 간접적으로 입혀진다고 할까. 경험이 많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무용수들은 현재 자신이 춤추는 방법으로 탈춤의 장단이나 제스쳐, 그런 동작들을 자연스럽게 각색하고 구현하게 됩니다.

채희완: 평소 작품 짤 때 안무자가 구성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동작도 설정한다면, 실연자는 그것을 재해석해서 자기화하는 해석자입니다. 이번 경우에는 개성적인 5인의 춤꾼이 캐릭터를 창조하고 동작을 구성해낸다고 할까요. 그것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방식은 어떤 거였지요?

남정호: 저로서는 안무자가 동작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떠났어요. 크레딧에 ‘출연‧움직임 연구’라고 명시되듯이 무용수와 함께 움직임을 연구합니다. 춤은 결국 무용수가 춘다는 게 중요합니다. 무용수에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무용수는 움직임을 연구하여 끄집어내고 그것을 해체해서 재조합하는 형식으로 항상 움직임을 만들었어요. 저의 움직임보다는 가능하면 무용수로부터 나와서 저의 감각으로 재조립하는 식의 작업,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무용수, 그런 걸 받아들이고 즐거워하는 무용수를 섭외합니다. 그럴 경우 즉흥을 좋아하고 즉흥의 경험이 있는 무용수와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채희완: 미얄 등장 이전에도 빨래통 활용이 대단했어요. 소도구 활용의 변환과 극적 흐름을 잘 연결했는데, 그것을 받치는 전체 진행의 리듬, 특히 빨래통을 두드리고 장단을 산출해내는 것, 가령 박성선 선생이 음악 작업을 하는 데에는 어떤 점에 강조점을 뒀나요?

남정호: 박성선 선생을 높이 평가하는 부분으로 〈빨래〉의 초기 시절에 할머니가 부르는 노동요를 채집해서 자신의 음악적 감각으로 녹음을 해오셨는데 마음에 들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지요. 그리고 무용수들이 빨래통을 두드리고 장단을 산출해내는 것은 얼마 전만 해도 술 한잔하고 흥이 나면 젓가락으로 장단을 만드는 기억에서 나왔지요. 젓가락을 두드리며 장단을 만들고 또 어깨춤을 추는 어른들은 잠시나마 일상의 고단함에서 탈출하여 지금 현재에 자기 몸을 맡기는 능력이 있었어요. 저는 어릴 때 그것이 굉장히 신기하고 멋있었어요. 그것을 빨래 과정에서 하는 다듬이질로 연결하였고 여러 장단을 익히고 배열하는 그런 음악적인 작업은 무용수와 함께 나누면서 작업하여 정착하게 되었어요.

채희완: 출연진 캐스팅을 언제 확정하셨던가요?

남정호: 작년 연말에 했어요. 출연진이 5명밖에 되지 않았고, 이미 해온 작품이라 적절한 무용수를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개별 연락을 해서 캐스팅했어요.




국립현대무용단 〈빨래〉 ⓒ고흥균/국립현대무용단




채희완: 빨래터에서의 장단이 관객들에게 숨은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바가 더러 있었지요. 미얄장단은 빠른 황해도 굿거리 장단에다 반쯤은 무당장단을 섞은 것이었습니다. 둘 다 통하는 장단이지요. 미얄의 성격과 맞아떨어지는 감을 주었어요. 그런데 2박과 3박이 혼합되어 있어 노동하는 리듬과는 다른 점을 보입니다. 미얄할미도 거세게 몰아쳐 무대를 장악하는 면도 있었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음악 리듬의 전체 주조와 중간중간 변주되는 것이 극적 흐름을 타고 있어 캐릭터들을 꿈틀거리게 하면서도 한편 좀 어리둥절케 하는 대목을 불러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음악적 배경과 흐름, 전체 구성을 어떻게 협의했는지 궁금합니다.

남정호: 제가 생각했던 건 라이브 연주이었습니다. 저는 〈빨래〉에서 과하지 않은 한국적 장단과 분위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물론 연습과정에 연주자들이 늘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이 모자랐고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때그때 상황에는 적절한데, 전체적 어울림 면에서 음악이 어떠한가는 공연영상을 보고 다시 생각하여 5월에 보완하려 합니다.

채희완: 소극장에서 출연자 수나 동작 선을 보면 아담한 방식일 수밖에 없었겠는데, 프로시니엄 아치 속 무대 활용 방식을 적용해서 새로운 무대공간을 창출했어요. 특히 무대 공학의 활용이나 동작선, 높낮이에 대한 고려는 어떠하였나요?

남정호: 세월이 흐르면서 꽉 찬 무대보다 비어있는 무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니 은연중 그런 쪽에 가치를 두고 작업하게 됩니다. 다음 무대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자유소극장 무대와 다르니까 또 다른 흥미를 유발합니다. 저는 종종 무대에서 여백이 참 아름답다고 느끼고 무용수들이 충분히 존재감을 가지고 기량을 발휘한다면 그들의 기, 에너지가 무대를 채울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했던 경사진 언덕은 그대로 갖고 가고 싶습니다. 텅 빈 말끔한 실내에 도자기 한 점이 있는 아름다움,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채희완: 남정호 선생은 여러 경향의 춤 작업을 펼쳤어요. 그것과 견주어서 이번 〈빨래〉가 이전부터의 50회를 포함하여 지금까지의 춤 작업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할까요? 자기 점검을 겸해 스스로 정리해보도록 하시지요.

남정호: 가장 오랫동안 붙들고 있은 작품이지만 매번 저를 겸허하게 만들고, 더 깊이를 일깨워줍니다. 이 작품이 아직도 무대에서 공연된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끝나면 다른 얘기로 넘어가는데, 그래도 이 작품은 자꾸 하고 싶은 점이 나옵니다. 사람도 오랜 기간 만날수록 더 깊이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듯이,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채희완: 그리고 이제는 이 작품을 성취시킨 주역인 무용수 개개인에 대해서도 말해보도록 하지요.

남정호: 5명의 무용수는 20대에서 40대를 아우릅니다. 나이도 다르지만 기본 움직임 훈련도 다양하고 성격도 다르고 출생지역도 다 다릅니다. 물론 외모도 많이 다르죠. 저는 무용수를 캐스팅할 때 완전히 다른 5명의 여자가 자신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하모니를 이루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 5명이냐면 5라는 숫자는 오방색과 연관된다고 굳이 말하게 됩니다. 솔로 〈자화상〉을 할 때도 오방색을 생각하면서 했고 ‘5’라는 숫자를 제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무용수 5명을 오행의 관점에서 찾았습니다. 오행의 성질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어느 한쪽이 두드러지는 개성으로 존재하는, 물 같은, 불 같은, 나무 같은, 흙 같은, 쇠 같은 여자들을 상상했지요. 반쪽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여성! 서로가 보탬이 되고 의지가 되지만 독립적인 여성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용수한테는 자기 아이덴티티를 찾아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 같다고 할까요.

채희완: 팸플릿에서 춤꾼의 개인 이력과 함께, 개인 발언처럼 작성해 놓아서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보통 사진하고 이름만 적는데 개인들의 지향점이 들어가서 눈에 띄었고,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자기류로 추는지 좀 더 살피게 됐어요.

남정호: 춤꾼들이 저의 각본을 따르는 마리오네트가 아니고 크리에이터, 동반자, 파트너 같은 수평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걸 밝히고 싶었어요. 전쟁을 치르는데 수많은 장병보다는 몇 명의 뛰어난 장수들과 치르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무용수들이 때로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주었고 특히 조안무를 한 이소영씨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 〈빨래〉 ⓒ고흥균/국립현대무용단




채희완: 〈빨래〉는 일이라는 생활을 놀이와 예술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보는 것, 가장 근원적이고 깊은 기능을 춤으로 보여줍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유희 정신이고 예술 정신이라고 해석되거든요. 작년에 알았는데 당대 전통춤을 집대성하신 한성준 선생이 1930년대 어느 잡지 인터뷰에서 “사람이 태어나면서 춤이 있었다. 사람이 있는 곳에 춤이 있었다. 춤에서 장단이 나왔다. 어떤 일이든 장단을 타게 되면 다 춤이 된다. 일거수일투족이 춤이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모르긴 몰라도 그 생각을 주제 의식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싶어요. 일상적인 것이 율동화되고 예술적 표현으로 춤화되면서 동시에 거룩함을 느꼈다는 표현이 있었어요. 남선생은 춤의 일상성, 일상의 거룩함을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닌가 그렇게 나름대로 추정을 해봤어요.

남정호: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일상의 거룩함을 생각하게 돼요. 몸과 마음이 함께 있을 때 신성한 느낌의 순간이 그렇지 않을까요. 일일일생(一日一生), 나날이 일생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채희완: 빨래는 일상 살림살이의 하나인데, 가부장제를 벗어나서 일상을 빨래화하는 삶이 오늘날 삶의 위기를 돌파할 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밥 한 그릇이 하늘이고, 밥에 연관된 모든 것이 거룩하다는 관점이 있듯이 〈빨래〉를 다시 생각하며 오늘 좌담을 마치겠습니다. 오는 5월 27일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재공연 마친 후 또 자리가 있으면 어떨까 합니다. 소중한 말씀, 고맙습니다.


정리_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2021. 5.
사진제공_춤웹진, 고흥균/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