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실전무용〉 안무 기록
나와 대중의 경계에 있는 어떤 것을 찾아서
정재우_안무가

무용가를 직업으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에게 박수받고 인정받는 것이 좋아서이다. 중학교 3학년 CA시간 때(지금도 CA시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동아리 활동 같은 시간이었다) 힙합반에 들어갔고 팝핀이라는 장르로 처음 춤을 접했다. 재밌었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인터넷 영상을 뒤져보며 혼자 연습도 했었다. 그러다 힙합반이 학교 축제에서 공연하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관객에게 박수를 받아봤다. 어쩌면 아기였을 때를 제외하고 처음 받아본 박수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특출나게 운동을 잘하지도 않은 때문에 그때까지 상을 받거나 누군가에게 박수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 학교 축제 무대 위에서 들었던 관객의 박수 소리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성취감과 희열을 느끼게 했다. 남들에게 내 무언가를 인정받게 해준 춤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때의 기억이 나를 무용가로 성장하게 한 것 같다.     

2022년 2월 서울문화재단 BENXT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전시 퍼포먼스 〈실전무용EXHIBITION〉은 무용의 대중화, 자본주의 시스템 속 무용, 펜데믹 이후의 무용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무용가로서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나의 염원이 담긴 작품이다.    

대부분의 전문 무용가들이 그렇듯 대학 졸업 후 무용수로 그리고 안무가로 성장하기까지 늘 경제적 압박과 불안에 시달려왔고 이러한 ‘돈 없음’에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다. 더불어 작품 제작비 대부분을 공기관의 지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선지 자연스럽게 ‘무용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무용으로 돈을 벌어보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TV에서 무용 콘텐츠 방송을 진행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 필름과 즉흥 퍼포먼스로 풀어내는 형식으로 〈아프리카 생존기〉라는 중간과정 공유회를 가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방송 기간 한 달 중 3주는 단 한 명의 시청자도 만나지 못했고 결국 무용이 아닌 당시 유행하던 ‘제로투’라는 댄스 콘텐츠로 전향하고 나서야 몇 명의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결국 무용 콘텐츠로 돈을 벌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무용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 리서치 과정에서 무용가로서 가졌던 자격지심과 불안감은 ‘돈 없음’이 아닌 ‘대중의 외면’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란걸 깨달았다. 또한 지나치게 자극적인 콘텐츠에 편향된 아프리카TV라는 플랫폼 자체의 문제도 알게 되었다.

중간과정 공유회에서의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보다 보편적 플랫폼인 유튜브로 관심을 돌렸다. 그곳에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에 있는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를 보며 작업의 영감을 얻었고 무용을 소재로 활동하고 있는 유튜버 3명(썬캡보이, 시대착오적, 최호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과 대화하며 공통으로 느꼈던 것은 그들이 무대 위주의 작품을 제작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무용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과 그들의 작업에 대한 가치관과 방향성이 명확하다는 점 그리고 무용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는 가볍게 지나쳤던 그들의 콘텐츠가 인터뷰 후 다른 관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예술이라고 인식했던 것의 범위를 재설정하게 되었으며 나 자신을 관객보다 격상시켜 인식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았다. 이때의 전환으로 인해 이번 프로젝트의 큰 틀을 구상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생존기〉



  

〈벗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공지수, 이학




유튜브라는 디지털 플랫폼을 무대와 똑같은 공간으로 인식하고 유튜브에서 성행하는 콘텐츠 유형들에 무용을 대입해 봄으로써 조금 더 친숙한 작업물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 자체의 전시 및 퍼포먼스를 통해 대중과 무용이 가까워지기 위한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 관객과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다.

모두 7개의 콘텐츠를 제작했고 풍자하거나 감성적 코드를 사용하기도 하며 자극적 요소를 그대로 적용한 것들도 있다. 콘텐츠들을 만들며 가장 신경 썼던 점은 최대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경계의 어딘가에 위치하게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대중예술 코드인 것 같으면서도 약간의 순수예술의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고 자극적이면서도 진정성이 있어 보이는 것을 찾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개미무용〉




자본주의 속 무용의 현실을 담은 〈아프리카 생존기〉, 노출이라는 것을 통해 관심을 유도하는 속물적 발상에 대한 〈벗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자본주의의 광기 〈개미무용〉, 어딘가 씁쓸한 〈지하철 빌런 지망생〉, 감성적 코드의 〈국제교류, 2022〉, 3명의 무용 유튜버들의 생각을 담은 〈인터뷰〉, 어그로성 콘텐츠 〈실전무용 챌린지〉를 제작했고 유튜브에서 사용되는 영상의 썸네일을 전시물로서 전시해 관객의 관심과 자발적인 영상 시청을 유도했다. 




  

〈지하철 빌런 지망생〉




현장에서 아프리카TV를 통한 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도 진행했고 전시장에 찾아온 관객들이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지정해 후원하면 그와 관련된 리액션을 전시장에 직접 나타나 보여주는 형식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초반에는 미리 준비한 리액션들을 주로 요구했지만 회차가 지나갈수록 준비했던 리액션과는 전혀 다른, 다소 민망하거나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울 수 있는 리액션에 대한 주문이 주를 이루었다. 후원에 대한 감사한 마음에 가리지 않고 시키는 거의 모든 것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에서 혹시 무용의 본질적인 어떤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관객과 나 사이 어느 곳에 비중을 두느냐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어쨌든 3일간 총 1,938,544원을 후원받았고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공연의 티켓 수익보다도 값진 금액이었다.  






〈국제교류, 2022〉




궁극적으로 무용이 대중화되길 바란다. 불가능하거나 모순된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관객이 예술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 대신 접속으로 그것이 가능해진 시대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유튜브에는 개인의 순수한 창작물로 대중에게 인정받는 크리에이터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중에는 딱히 예술이라 부르기 애매한 어떤 것들까지도 섞여 있는데 이제 내 관점에서는 그 모든 것이 순수한 창작 활동으로 느껴진다. 디지털 플랫폼에서건 실제 무대에서건 나와 대중의 경계에 있는 어떠한 것을 찾는 일이 곧 실전이 아닐까. 

정재우
안무가. 댄스컴퍼니 브레이브맨 대표. 현대무용에 기반한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사회와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실험적인 콘텐츠로 제작하는 것을 지향한다. 일상으로부터 채택한 소재들을 사회적 이슈와 연계하는 안무적 특징을 통해 관객들과 공감대 형성을 시도하며 현대무용이 마주하고 있는 '어렵다'라는 인식에 대한 대안점을 제안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22. 3.
사진제공_정재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