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함부르크 현지취재_ 차이나타임 2014 페스티벌 Living Dance Studio
과거를 통해 바라보는 현재
정다슬_<춤웹진> 유럽 통신원

 

 지난 11월 4일부터 23일까지 독일 함부르크에서는 차이나타임2014 (China Time 2014, 부제: 가까운 나라 중국) 페스티벌이 열렸다.
 올해로 5회를 맞는 이 행사는 약 3주 간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삶과 현대적인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전시, 콘서트, 영화, 공연, 강의, 토론, 낭독회 등까지 200여개의 이벤트를 진행했다. 중국의 전반적인 문화와 전통, 현대 예술을 소개함으로서 유럽인들에게 아시아의 대국 중국의 저력을 보여주고 확인시키는 큰 행사였다.
 또한 단순히 중국의 문화 소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부르크가 가지고 있는 무역항구라는 특성을 백분 활용하여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허브도시인 함부르크의 성격을 강조하고 중국과 독일 기업들 간의 만남도 도모하였다.
 특히 문화행사 가운데 <시크릿 사인>이라는 전시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서양인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의 문자를 서예, 사진,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등 현대 미술의 형식으로 소개함으로서 그 이해를 돕는 전시였다.
 차이나타임2014의 일환으로 중국 무용단 리빙댄스 스튜디오(Living Dance Studio/LDS)도 함부르크 캄프나겔(Kampnagel)에서 4일 동안 2개의 작품을 연이어 선보였다.
 LDS는 1994년 안무가 웬 후이(Wen Hui)와 비디오 아티스트 우 웬광(Wu Wnguang)이 베이징에 창단한 무용단이다. LDS는 중국 현대 예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무용단으로, 중국의 전통 문화와 대륙만이 가지고 있는 기질과 중국의 정치적 상황까지 작품 창작의 모티브로 사용하는 무용단이다.
 베이징에 무용 스튜디오와 메디아 랩을 가지고 있고, 세계 유수의 페스티벌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무용단이 다루는 토픽들-폭력, 섹스, 임신- 때문에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LDS의 안무가 웬 후이가 차이나 타임 2014에서 선보인 작품은 〈LISTENING TO THIRD GRANDMATHER’S STORIES〉로, 이는 이미 2010년에 창작된 작품이다.
 작품 제목에서 나타나듯 작품은 안무가의 셋째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안무가는 4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셋째 할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단 한번도 그 존재를 들은 적이 없던 안무가는 셋째 할머니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그녀가 사는 산중마을로 떠났고 그 결과가 무대 위에 작품으로 올려진 것이다.
 무대 위는 이불 빨래를 널어놓기라도 한 듯 얇은 천이 가로질러 널려있다. 안무가이자 무용수로 출연한 웬 후이는 무대 위에 앉아 관객들과의 대화로 작품을 시작한다. 서투른 영어이지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공연장 캄프나겔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작품의 창작 배경을 들려준다. 하지만 그것은 공연 시작 전 으레 이루어지는 단순한 작품 설명이 아닌 작품이 담고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의 공유로 다가왔다. 편안한 자세와 풍부한 제스처는 관객을 친구로 대하려는 그녀의 태도를 보여주었고, 관객 역시 작품 관람이 아닌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하게 해주었다.

 



 〈LISTENING TO THIRD GRANDMATHER’S STORIES〉는 83세의 쑤 메이린 (Su Mei Lin)의 삶을 다큐멘터리와 공연의 형식으로 담아낸다. 2차 세계대전부터 중국의 대기근과 문화혁명까지 20세기 중국의 중요한 모든 사건들을 경험한 그녀의 삶은 중국 공산주의 체제와 문화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그 변천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성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그녀의 순탄치만은 않은 개인의 삶은 시적인 방법으로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11세에 시집을 간 소녀, 그녀의 첫날 밤, 집에서 아이를 낳던 날,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여자 등 작품의 실제적 주인공 쑤 메이린의 삶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다. 인터뷰 영상에서 중국어로 자신의 삶을 소소히 이야기해 나가는 그녀의 표정과 제스쳐 등을 통해 관객은 언어를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인생의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인간의 초연함을 마주한다.
 바람핀 남편이 밉지 않냐는 손녀의 질문에 “아니. 그래봤자 그 사람은 죽었고 나는 이렇게 살아있잖아.”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증명하고, 인터뷰 도중 갑작스레 손녀에게 “그런데 너 배 고프지 않니? 계란 삶아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정작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시간임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할머니의 기억을 들추는 질문들을 던짐으로서 그녀의 기억을 더듬고 과거를 추적하려는 안무가의 의도가 빗나가는 모습들은 관객에게 묘한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잊혀진 존재와 기억을 되찾는 것은 83세의 노인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여러가지 장르의 예술을 조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장르 사이에서 그 중심과 비중을 찾는 것일 것이다. 웬 후이는 비디오 다큐멘터리를 공연 형식으로 변환 시키는 과정에서 인터뷰 영상에 많은 힘을 실어주었다. 작품의 절반 이상의 시간이 인터뷰 영상을 관람하는 것이었으나 또렷하고 흥미있는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서 작품의 무게가 어디에 실어져있는지를 명확히 전달해주었다.
 동시에 웬 후이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천들을 활용하여 관객이 영화관이 아닌 공연장을 찾았음을 때때로 일깨워 주었다. 무대 위에 걸린 천들을 활용하여 단순히 프로젝션의 기능이 아닌 공간의 변화를 꾀하였다.
 여러 줄의 커다란 천들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의해 열리기도 닫히기도 하였고, 천들을 서로 엮고 묶음으로서 밋밋한 무대 공간을 입체적으로 변화시켰다. 천 위에 투영되는 영상도 함께 일그러지고 흔들리며 영상이 가지고 있는 평면성을 변화시켰고, 무대 위에서 활용되는 영상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하지만 셋째 할머니라는 캐릭터가 선명하고 풍부하게 그려진 반면 무대 위에 함께 올라온 한 무용수와 안무가의 어머니는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안무가의 어머니는 커튼 뒤에서 빨래를 하고, 짚을 꼬아 신발을 만들고, 바느질을 하는 등 일상적인 모습을 무대 위에서 연출함으로서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지만 양적인 비중에도 불구하고 작품과의 연결성에 있어서는 미진하였다.
 또한 안무가와 어머니, 할머니와 어머니의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고, 안무가와 할머니 사이의 연결고리는 과거와 현대의 연결이라는 당위성을 지녔음에도 안무가가 질문을 던지는 수동적 역할에만 머물렀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ISTENING TO THIRD GRANDMATHER’S STORIES〉는 무용과 텍스트, 비디오를 이용하여 과거와 현재를 살아 온 캐릭터는 물론 그가 살아 온 역사와 사회 현상을 기록하고 공연하는 데 충실하였다. 단편적이면서도 종합적인 무용 공연의 형태를 극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냄으로서 무용 공연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또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안무가의 연출과 의도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한 인간의 역사와 연륜에서 배어나는 초연함은 과거가 지닌 힘과 무게를 보여주며 도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에 맞게 캐릭터의 색깔을 또렷하게 표현해 내었다.
 안무가 웬 후이는 우리에게 과거와의 대립과 관찰은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과 현 사회의 세태를 반영하고 그것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이런 주제는 차이나타임 2014 페스티벌의 성격에 적절하게 부합되며 중국의 현대무용을 접한 서양 관객들로부터도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
 조만간 독일에서 한국의 문화, 예술, 역사를 아우르는 행사도 개최되어 더 많은 관객들에게 한국과 한국의 현대 무용을 소개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2014.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