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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브레이션 셀러브레이션 = 진동 축하
온갖 판단이 사라진 세계에 들다
전인정_안무가

2022년 10월2일 시댄스페스티벌 마지막 날. 일요일 낮 3시, 문화비축기지의 원형 파빌리온 극장 한구석에 놓여있는 검은색 업라이트피아노. 2미터 정도 크기의 둥근 검은색 댄스플로어 그리고 둥글게 원으로 배치된 객석. 공연이 임박해서 객석이 채워지고, 3시 5분 피아노의 자리와 댄스플로어의 자리가 채워지면서 피아니스트가 춤꾼이 되기도, 춤꾼이 피아니스트가 되기도 하는, 경계 없는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전인정 〈진동 축하〉 ⓒ김채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한국에서 〈진동 축하〉(Vibration Celebration)를 공연한 파란코끼리의 춤꾼 전인정입니다.

이번 〈진동 축하〉 작품은 2020년 독일 쾰른 음악축제에서 첫 공연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021년 독일 노르트베스트팔렌(NRW) 댄스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 피나 바우쉬의 카페라 불리기도 하는 부퍼탈의 ‘카페 아다’에서 Covid-19으로 인해 스트리밍 공연을 하였습니다.

이 작품의 첫 공연은 2020년이었지만, 사실 저에게 이 작품의 시작은 2010년부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1990년대 초반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바라’라는 악기에 춤을 더해 안무한 것은 2010년 한국에서 동해안 별신굿 인간문화재이기도 하셨던 김용택 선생님, 김정희 선생님(두 분 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습니다)과 ‘장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원〉(One) 작업을 하면서부터입니다. 1시간 정도의 이 공연에서 저는 처음으로 바라를 들었는데, 10분 정도 바라를 들고 춤을 추었습니다. 이후 2011년 독일의 최고의 댄서 콩쿨에서 〈바라〉라는 작품으로 바라를 들고 추어 심사위원상과 함께 관객상도 받았습니다. 관객들이 주는 상은 저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전인정 〈진동 축하〉 ⓒ김채현




그리고 2016년 구례 화엄사에서 있은 화엄음악제의 총감독 원일 감독과 오프닝 공연을 하였고, 이때 저는 새로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 공연은 여느 공연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공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저에게 이 공간은 너무나도 멋진 시공간이 담겨있는, 무한한 창조의 공간이라 느껴졌습니다. 한국 사람인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숙하게, 모두가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은 상태에서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주지스님을 비롯한 모든 스님들과 각지에서 오신 많은 분들이 사찰의 넓은 공간 한바닥에 그저 앉아 있었습니다.

공연이 진행되던 어느 순간, 저는 주지스님에 안긴 것을 시작으로 옆에 앉은 스님들 그리고 뒤에 앉은 분들의 몸을 스치거나 잡는 등으로 수십 명과 접촉하기를 시도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음악은 멈추고 있었어요. 20분 정도 진행된 이 접촉 체험을 통해 그 공간과 그 공간에 있는 모두의 에너지가 온전히 열려 있는 상태임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을 마친 후, 저는 그 공간에 함께 있었던 분들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제 안의 에너지가 새롭게 샘솟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보통 공연을 마치고 나서 드는, 에너지가 다 소진된 듯한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가 충만히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화엄음악제에서의 이 공연은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혹은 해야 할 공연임을 느끼고 알아차릴 수 있었던,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전인정 〈진동 축하〉 ⓒ김채현




그러나 뒤이어 찾아온 Covid-19로 온 세계가 뒤숭숭하고 불안한 와중에 공연계에도 관객과 거리를 두면서 공연을 해야 하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생기기 시작했던 시기, 2020년 쾰른음악축제에서 공연 겸 콘서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공연 혹은 해야 할 공연의 방향성을 찾았다고 느꼈던 화엄음악제에서 가진 강력했던 순간-공연장에 있는 사람들과 몸과 몸이 직접 부딪치는 ‘터치의 순간’-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저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공부해온 파장, 파동, 에너지를 접촉 없이 전달할 방법으로 바라라는 악기를 매개체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또한 한국의 ‘바라춤’이 가진 의미도 좋았습니다. 바라는 지옥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는 종(鐘)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불교 악기로, 이를 활용한 ‘바라춤’은 잡귀가 도량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고, 미망에 빠져 헤매고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며, 모든 영혼에 지혜를 깨우쳐 주는 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바라춤’이 악귀를 물리치고 도량을 청정히 하고 아울러 마음을 정화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합니다.




  

전인정 〈진동 축하〉 ⓒ김채현




물론 저는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의미에서 ‘바라춤’을 추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의미를 가진 바라를 활용하여 저의 예술적 비전을 공연의 형태로 만들어보았습니다. 피아노 연주자 시몬 룸멜과 함께 한 ‘〈진동 축하〉의 첫 공연은 독일 쾰른의 야외 도시공원인 슈타트가든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공연은 제가 하고 싶었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공연의 형태를 처음으로 구사한, 관객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도 서로의 에너지를 함께 나눈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화엄음악제에서 경험했던, 어떤 에너지가 형성되고 일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다른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시몬 또한 자기 인생에 수많은 콘서트를 했지만 이런 알 수 없는 신비한 느낌의 공연은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공연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야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도 상상이 되시겠지만 극장과 달리 온 사방이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공연이 진행되던 그때에도 매 시간마다 지나가는 기차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무대 멀리서 아이가 깔깔대는 소리…… 그 순간, 그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저희와 함께 어우러져 함께 공연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전인정 〈진동 축하〉 ⓒ김채현




이와 더불어 제가 바라를 들고 춤을 출 때, 바라의 파동이 제 몸으로 들어오고 그 파동을 따라 제 몸을 움직이면서 이 파동을 눈과 귀의 감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파동이 마음과 의식의 파동으로 확장되는 경험...

이 경험은 제가 춤을 출 때 경험하는 ‘모든 판단이 사라진 세계’로 함께 진입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온전하며, 서로 비교되지 않는 세계! 판단하지 않는 세계! 열려 있으며 자유로운 세계!

제가 경험했던, 그리고 저의 공연에서 함께 했던 모든 분들과 나누었던 이 세계에 초대합니다.

전인정

무용단 파란코끼리 대표. 독일에서 활동 중이다. 대학 졸업후, 미국 더럼의 아메리칸 댄스 페스티벌에서 장학금을 받고 첫 작품을 만들었다. 2002년 독일에서 무용단을 결성하고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에서 공연하였다. 한국 전통문화를 경외하며 서구 등지의 춤, 음악과 교감하는 데 관심이 크다. 뒤셀도르프시의 상, 대한민국 국무총리상 수상.​

2022. 11.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