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명예술가 최초로 영희연극상 수상한 최형오
극장은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거점이 되어야

한국공연예술센터 최형오 공연지원부장이 제33회 영희연극상을 수상했다. 한 해 동안 두각을 나타낸 연극인에게 주어지는 상이지만, 그동안 수상자는 줄곧 극작가, 연출가, 배우들에게 돌아갔었다. 조명 디자이너로는 최초 수상자인 최형오 공연지원부장과의 대담을 통해 최근 불거진 한국공연예술센터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통합 문제를 비롯해 전문 공연기관과 순수예술의 방향에 대해 들어본다.(편집자주)





장광열(이하 장)
: 영희연극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조명 쪽에서 작업하는 최형오 감독께서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정말 의외의 일입니다. 그동안 희곡 작가, 배우들이 줄곧 수상했었지요. 그만큼 무대에서, 공연 현장에서 최감독님의 기여가 컸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소감을 듣고 싶네요.
최형오(이하 최) : 81년 3월 15일 “문예회관”에 조명담당직원으로 입사해서 지금의 공연무대에 묻혀 연극, 무용 공연에 청춘을 보냈지요. 지금은 극장 명칭이 “아르코예술극장”으로 바뀌었지요. 그 무대에 함께 할 수 있게 해준데 대해 감사하고, 상을 받으면서 굉장한 숙제를 안게되었다고 생각해요.

: 영희연극상은 번역가였던 고 박영희 선생을 기리기위한 상이죠. 이번 33회 수상자는 공연예술에 있어 디자인 분야가 단순히 기술을 넘어 예술의 중요한 부분임을 고려하여, 조명, 무대, 음향, 의상, 분장 등의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논의하였다고 심사위원회가 밝힌 바 있습니다만.
: 고인은 32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국 연극이 지속할 수 있도록 수많은 영미희곡을 번역하여 척박한 공연무대에 토양을 가꿔주신 분이세요. 번역료를 거의 받은 적이 없는 그분의 유지를 받들어서 만들어진 상인데 그동안 극작가, 배우, 연출가 분들이 받았고 오래 전, 무대미술 부문에서 신선희 선생님께서 수상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조명 쪽에서 받게 된 것이 참 놀랍고 굉장히 감사한데요. 공연예술의 언저리였던 부문이 한 식구라는 개념으로, 공연계에서 공공성, 공익성을 가지고 품어줬다는 것이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죠. 제 개인의 재능으로 성장했다기 보다는 함께 어우러져서 성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예술의 한 범주로 껴안아준 것이 굉장히 기뻐요.

: 제가 보기에도 최 감독님의 수상으로 인해 후배들, 아직 시작은 안했지만 조명이나 무대 쪽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동기 부여가 된 것 같아요. 무대 뒤에서 수고하는 전문예술가들인데 그분들을 밖으로 끄집어 낸 것이기 때문에 나름 의미가 큽니다. 1981년이면 문예회관이 개관하던 때 아닌가요?
: 개관 전에 입사했지요. 제3세계연극제를 하고 4월 1일이 정식 개관일이었고, 이후 1992년 10월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으로 옮겼어요. 이곳에서의 오페라와 뮤지컬 작업은 시스템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죠. 5년 8개월 일하다 나이 들어 공부해야겠다 싶어 그만뒀죠. 그때 스텝의 위치가 무엇이냐? 고민하다 그만뒀는데 IMF 때였어요. 차범석 선생님이 당시 문예진흥원 원장이셨는데 “문예회관”에 다시 들어오라고 해서 재 입사한 경우가 됐죠. 한시적으로 있는 조건으로 들어왔는데 지금까지 있게 된 거죠. 예술의전당을 그만두고 “문예회관” 재입사하기 전까지 일주일 쉰 것이 다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매일 공연장에 작품을 하든 안하든 살았지요.

: 아마 무용과 연극 종사자들에게 가장 작업하기 편한 극장이 어디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아르코예술극장이라고 말할 겁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극장 스태프들과 작업하기가 가장 편한 곳이기 때문이란 답이 가장 많습니다.
: 공연예술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장비를 어떻게 갖추어야 하느냐,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때문에 현장에 계신 분과 많이 부딪혔는데, 공연의 표현요소들이 다른 극장보다 풍요롭게 구성되어서 편의성이나 효율성이 좋지 않았나 싶어요.

 



: 극장 반입구가 넓어진 것도 최감독님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 장마철에 공사를 했지요. 예전에는 반입구가 현재 분장실 옆의 작은 문이었지요. 때문에 무대장치를 문의 크기에 맞게 작게 만들어 반입하여 무대에 펼쳐놓고 다시 조립 구성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장치가 왜소해지고 설치시간도 촉박해 리허설 시간에 쫓길 수 밖에 없었지요. 이의 개선이 급선무였고--- 잘한 일 중 하나였다고 봅니다. 공연예술가들에게 무대 활용의 가치를 높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작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결국 제작경비를 절감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 문예회관은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작품이어서 부수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극장 예산도 부족했을 텐데 어떻게 하셨나요?
: 김수근 선생님께서도 이 문을 만드는 데에 동의하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아마 생존해 계셨다면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해주셨을 꺼에요. 무대 또는 극장은 공연공간으로서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기능을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예술적 표현 방법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공간을 활용하는 부분도 개선되어줘야 하는 것이죠. 예산요? 먼저 제 사비 150만원 정도를 들여서 미니어처를 만들었어요. 그것을 들고 설날, 추석, 연휴 때 김정옥원장님을 찾아갔지요. “이렇게 반입구를 만들어 후무대가 넓혀진다면 공연무대로 지금보다 훨씬 가치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원장님께서 한번 도와 주셨으면 합니다.” 원장님의 결심이 계셨기에 지금과 같은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 반입구 공사 후 첫 공연이 로버트 윌슨의 작품이었지요?
: 네. <해변의 여인>을 공연할뗀데 장마철에 뒷벽을 무너뜨려서 공연공간을 개선한 거죠. 공연하면서 후무대 확장공사와 반입구를 지금과 같이 만든 것입니다. 당시 공사감독을 하셨던 분이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태학님인데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 사실 장치 반입구의 확장으로 인해 지금의 아르코예술극장은 비로소 전문 공연장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지요.
: 일본의 건축양식에 하나미치라는 것이 있어요. 메인 커튼이 있고 프로시니움 극장이 와이드하게 된 거죠. 프로시니움 극장은 높고 지금은 아르코극장이 옆이 줄어서 12미터가 되었는데 예전에는 14~16미터였고 깊이는 그만큼 배수를 못 가지고 있었어요. 일본 극장 스타일이 반영되어서 그런 것인데, 옆에 와이드보다 줄여서 전형적인 프로시니움 아치무대를 이루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어요. 무대 안에서 환상이 그려져야 아름다움에 대해서 보는 이와 행위자의 이상이 그 안에 존재하게 되지요. 요즘에는 객석에서도 공연한다고 하지만, 전형적인 프로시니움 아치 무대는 무대 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 질 수 있을 때 극의 신비감이 감동으로 공유될 수 있다고 봅니다.

: 제가 연출가 이병훈 선생과 함께 문예회관의 기획위원을 잠시 맡은 적이 있었어요. 당시 극장 로비 개선을 제안해 지금의 까페 등이 만들어졌지요. 화장실 문제도 개선을 제기했었는데 흐지부지 되었어요. 한참 후에 최감독님의 제안으로 이 부문도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 여대생이 없으면 공연관객 확보가 안 되어요. 그래서 1층 로비의 남녀화장실을 부수고 여자화장실로 만든 거예요. 인터미션 때 여자 관객들이 화장실 앞에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이 안스러울 정도 였습니다. 극장 건축 법규상으로는 문제가 될 소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법규는 모르겠는데.... 남녀화장실 비율이 똑같아요, 그것이 잘못되었죠.

: 대극장 뿐 아니 소극장도 개선을 했더군요. 아르코예술극장에는 다른 극장과는 다르게 모자방도 만들어져 있더군요. 이것 역시 최감독님이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 젖먹이 아이를 데려와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7세 이하 입장 불가, 이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공연을 어려서부터 볼수 있어야 하고 엄마하고 관람을 하는 성숙한 모습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통제관리 일변도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연장에서 일하는 스텝도 마찬가지에요. 공연하는 사람이 무대를 잘 만들 수 있게 관객이 잘 볼 수 있게 그 브리지 역할을 해줘야 하는 거죠. 물론 공연예술가들께서도 극장운영과 관리에 대한 원칙에 최소한 동의해 주시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해주셔야 한다고 봅니다.
 공익성, 공공성의 원칙이 무너진다면 주인없는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예술적 표현의 영역과 운영관리에 대한 적절한 접점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때로 갈등관계가 생기고 실랑이도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한가지 목표 공연이란 공동의 목표에서 살아있는, 살아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봅니다. 이러한 곳에 함께하며 작품을 한다는 것, 그래서 극장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에요. 이렇게 상도 받잖아요.(웃음)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차별화된 근무환경

: 문예회관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로 개편되면서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대소극장 합쳐 4개의 극장을 운영하게 되었지요. 지금 무용가들은 아르코예술극장을 제일 편하게 생각하고, 대관 경쟁도 심한데, 예술가들은 스텝들이 너무 편하게 해주고 비용 역시 적게 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공연 축제 때문에 실제로 대관을 해본 저의 경우도 이런 것들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극장과 비교 해봐도 월등해요. 한팩의 스텝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스텝들의 근무환경에 변화를 준 것이 원인인 것 같은데 어떻게 개편하셨나요?
: 대한민국무용제를 81년도 이전에는 국립극장에서 개최했습니다. “문예회관” 개관과 더불어 이곳에서 시작했지요. 그당시 “문예회관”에서 작품하시는 것을 안무가 선생님들이 굉장히 힘들어 하셨어요. 몇몇 분이 이 극장에 오니까 낯설고 힘들다고 하셨지요. 당시에는 프리랜서 조명디자이너와 크루 담당자가 없었어요. 극장별로 극장에 속에 있는 직원의 신분으로 조명담당자가 있었고, 또 다른 극장에 가서는 일할 수가 없었죠. 이 극장에서 낯선 스텝을 만나니까 당연히 어려웠지요. 결국 공연예술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요.

: 제 경우는 1984년부터 문예회관을 본격적으로 드나들었는데 조명 분야에서 활동하셨던 분들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 김의중씨, 며칠 전 유명을 달리한 정진덕씨, 이상봉 선생님, 제가 막내로 그 당시 조명담당 직원이 12명이었죠. 한국현대춤작가12인전 할 때도 그렇고 작품에 있어 작가의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시도들이 이 극장에서 만들어졌죠.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내가 배운 것은 권위나 강제성 보다 낮은 데로, 수많은 물줄기가 흘러가니까 바다가 이루어진 것을 본 것이죠. 이것이 이극장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매김 한 것이라 봅니다. 극장의 직원의 신분에 국한 하지 않고 공연단체의 일원으로 되어지는 근무형태로 패러다임을 바꿔간 것이죠.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정책과 관련해 저는 “예술가들에게 현금으로 돈을 쥐어주는 것만이 지원정책의 전부가 아니다. 극장의 대관료를 낮추어주고 뛰어난 무대쪽 스텝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충분한 리허설 시간을 배정해주는 것도 예술을 진흥시키는 중요한 지원정책이다”라고 늘 주장했지요. 20여년 전부터 주장했었는데 금년도에 처음 대관료 지원제도가 생겼더군요.
: 극장운영에서 디자인료가 싸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아르코예술극장은 태어난 동기부터가 한국공연예술진흥을 위한 지원정책이 기본정신입니다. 그렇다고 안 받을 수는 없어요. 또한 극장에 소속한 직원외에도 외부의 프리랜서들에게도 작업할 기회를 제공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순혈주의가 아니라 상호경쟁해서 서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죠.

: 지금 스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왜 한팩에 근무하느냐? 작품을 왜 해야 하느냐? 어떤 삶에 가치를 둘 것이냐? 등등 대학로 노점상이 돈을 더 잘 벌지요.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돈이 아니라 예술작품 창작에 가치를 둔다면, 자기 스스로 좋아하는 일만큼 하나를 내려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경제적인 혜택까지 넉넉하게 이룰 수 있다면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우리가 공연작품이 있기 때문에 극장에서 함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이 증축을 하든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든 공연장은 공익성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 공연장 여러 곳에 대자보가 붙어 있는 것을 봤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의 통합을 반대한다”는.
: 한국공연예술센터는 4개의 극장을 중심으로 공연전문기관으로서 대학로의 메카가 되라고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신인 문예회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한 부서로 운영되어 왔었는데 예산 집행, 환경 요인에 전문성이 결여된다는 의견이 나와서 분리되어 재단이 만들어졌고 이후 한팩이 생겨난 것이지요. 그러나 경영, 가장 크게는 세금 문제가 불거져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다시 합병을 한다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합치든 분리하든 그것이 물리적으로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공연예술가들에게 순수 예술가들에게 어떤 혜택과 비전을 함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공연예술가들과 관객 그리고 이곳을 운영하는 소속인 모두가 상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한 연장선상 속에서 부속적으로 직원의 복지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아직 방향성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 그렇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인가요? 극장 운영과 지원 행정기관의 영역은 엄연히 다르지요. 현장에서 우려하는 것은 전문성의 문제입니다. 공공극장 운영은 국민들의 삶의 질과 연계된 만큼 극장 경영의 여러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세금 문제라는 것이죠. 떨어져 있을 때 재산권은 위원회가 가지고 위탁 운영하고 지방세를 내는데, 기재부에서 세금 주라고 예산을 편성하지는 않으니까 합쳐서 운영하고 시너지를 낼 방법이 없는지, 한편으로는 긍정적,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문예회관” 설립을 위한 목적이 경제논리는 아닐 것이라 여깁니다. 순수공연예술분야는 정책적으로 보호 육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경영성과 지표에서 시장논리로 판단한다면 매우 부정적인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 자명하겠죠.

: 나름 예술가들에게 작업하기 편한 공간이었던 여기가 다시 문화예술위원회로 소속이 바뀐다는데 대해 공연예술계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높습니다.
: 순수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지원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인데, 가장 큰 것은 스텝에 대한 제작비죠. 예전에는 극장에 소속되었다는 신분이 해결해줬는데, IMF 이후 직원들이 대거 해고되면서 문제가 된 것이죠. 스텝은 드러나는 것이 아니니까, 전문성 있는 기술자들은 필요 없다고 나가게 하고, 위탁 운영을 하고 임금을 낮춰야 하니까 서비스의 질적인 측면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예술가들이 2천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1주일 공연한다고 하면 스텝 인건비가 5백만원 정도듭니다. 저는 공연을 할때 조명크루 또는 무대전환 크루가 10명이 필요하면 5명은 극장에서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위원회로 통합되었을 때 과연 이것이 가능하겠는지 의문스럽습니다.

: 대관하는 예술가들이 워낙 인건비 지출이 많다 보니 스텝들에게 들어갈 돈이 없다며 학생들 쓰면 안 되느냐는 질문을 받은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 (웃음) 그러면 전문 인력이 왜 필요하나요? 작품현장 설치작업 및 리허설 과정에는 인사사고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드러나지 않지만 추락사고 낙하에 의한 부상 등 공연의 질적 담보를 못하는 공연사고 등이 빈번하죠. 그래서 극장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실제 시스템 운영에 프리랜서로 일하는 인력이 들어와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스텝도 직업적인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시장논리로 바꿀 수 있어야는 구조로 경쟁력도 갖추게 된다고 봅니다. 사고방지에 대한 대비책도 되고요.




보다 나은 무대를 위한 제안

: 다시 무대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현재 한팩 4개 극장의 무대 인력은 충분한가요?
: 저까지 포함해서 23명이에요. 인원수로는 많은데 4개 극장에 분야별로 나누면 1개 극장에 1.8명 정도 되요. 무대는 기계 시스템, 공간 운영으로 나뉘는데, 조명의 위치가 다르고 음향, 기계가 다르고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닌데, 행정 쪽에서는 이해를 못 하죠. 디자인의 경쟁력과 공연단체에 오퍼레이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방침인데, 이렇게 하려면 스텝들이 연습과정부터 참여할 수 있어야 해요 디자이너와 오퍼레이터가 같이 한 작품의 구성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현재보다 디자이너, 오퍼레이터가 각각 4명 정도 더 있어야 하고, 음향은 2명 정도 더 있어야 공연별로 로테이션이 되죠. 충분한 것이 아니라 공연을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 그렇다는 거죠. 이것은 작품지원과 다른 얘기죠. 그래야 극장에서 사고가 안 나죠.

 



: 마지막으로 공연계를 위해 한 말씀 해주시죠.
: 왜 대학로에서는 중고생에게 공연을 안 보여주는 거죠? 공간을 시간별로 나눠서 낮밤으로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죠. 중고생을 위한 작품을 낮에 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학창 시절에 연극과 무용 공연을 보도록 해야죠. 인구 5천만인데 그 중에 1년에 연극 1편, 무용 1편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교육청에서 후원을 하고 공연단체가 돈을 벌 수 있게 해줘야지요. 저도 어렸을 때 연극 한편 보고 이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죠.

: 그럴려면 무대 스텝들의 인적 자원이 더 확보되고 능력 또한 뛰어나야 가능한 것 아닌가요?
: 시간대를 다르게 해 공연장을 더 많이 활용하도록 제안하는 이유는 무대기술의 운영능력이 충분하게 형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조명디자인, 무대디자인, 음향과 기계의 기술력을 담보하는 역량있는 전문가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러한 전문 인력이 묻혀있습니다. 시간을 배분하여 운영할 수 있는 것은 무대 기술 스태프의 능력에 있습니다. 레퍼토리 작품운영은 연출이나 기획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무대를 실현시키는 실제적인 능력을 집합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한 실현 방안이라 확신합니다. 제가 87년에 로열오페라 하우스에서 봤던 개념인데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오전8시에 셋업해서 오후2시에 오페라 1막을 보여주고 끝나면 저녁8시 메인 공연을 하는 거예요. 조명, 스텝을 잘 만들어놓으면 초기는 제작비용이 많이 들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되는 거거든요. 순회공연도 경제적으로 이뤄질 수 있고요, 단발성 공연, 행사성 공연에서 지방의 중고생들이 평생 한번이라도 양질의 공연을 접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 좋은 제안입니다.
: 또한 지금의 시점에서 복지를 이야기 하는 데 공연예술가들에게 복지는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제공이 정책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공연예술인들이 공연을 함으로써 살아 갈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산간벽지에 있는 중고생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4.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