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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애호가의 공연 산책_ MODAFE 2014
김민관_아트신 편집인

 지난 5월 23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제33회 국제현대무용제(이하 모다페)를 찾았다. ‘본능을 깨우는 춤’을 주제로 한 이번 모다페에서, 4일 동안 총 12개 작품을 보게 됐다. 전체 작품 중 절반이 좀 안 된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다섯 작품에 대해 적어 보고자 한다.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작품들

 

 개막작인 레브 샤론 에얄(L-E-V Sharon Eyal)과 가이 베하르(Gai Behar)의 <HOUSE>는 소위 ‘몸성’이라 하는 부분을 드러내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올해 모다페의 주제의식에도 매우 적절해 보인다. 우선 알몸으로 감각되는 군무가 순식간에 무대를 덮친다. 사실 누드로 생각되던 몸들은 철저히 조명에 의한 착시에 불과했으며, 이는 계속해서 달라지는 조명에 따른 완전히 달라진 하나의 세계 풍광에 맞춰 또 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곧 스크린을 따로 쓰지 않은 이 무대는 그럼에도 조명에 따라 변화 가능한 투명한(?) 매체로서의, 꼭 꽉 끼어 신체 굴곡을 거의 고스란히 비추는 옷 자체가 스크린으로 작용해, 착시를 빚게 된다. 발레가 기초가 된 단단한 수직 중심의 몸들은 그 굴곡으로부터 움직임을 만들며 결과적으로 유기적인 분절로 인한 변용된 신체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몸에 밀착된 피부로서의 의상이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이 몸들은 말을 멈추고, 현실에 대한 지각 너머로, ‘색다른’ 몸들의 화려한 향연을 입체적으로 펼쳐낸다.
 코타 키하라(Kota Kihara)의 <foot, foot step sound and step>은 공간감적인 환경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무대의 평면성을 벗어나는 작품으로 이목을 끈다. 그리고 몸에 대한 기존 감각을 환기시킨다. 날벌레 울음과 으슥한 조명이 도시가 아닌 어느 시골, 숲과 가까운 자연 어느 곳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은 희미하고 그렇게 어둠으로서의 빛에서 어슴푸레하게 존재의 형상이 내비치며 시작되는데 움직임은 어떤 소리에 더 가깝다. 반복된 쿵쿵거림과 이동, 구르기 등은 이 자연 안에서 홀로 내는, 홀로 있음을 드러내는 희미한 인광(人光)이다. 일종의 빛, 어둠이라는 공간에 뒤섞인 빛-형체로 등장해 그 안에 머무는 하나의 광경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매체 활용이 돋보니는 작품들

 

<HOUSE>가 결과적으로 조명과 의상에 따른 다양한 변용의 신체를 구가했음에도 몸과 춤 자체에 대한 몰입을 가능케 했다면, 밀라 비르타넨(Milla Virtanen)이 안무·출연한 <It's All Over Now, Baby Blue>는 적극적으로 매체를 입고 나타난다. 스크린 영상과 맞물려 움직임은 극적 전개의 양상을 빚는다. 이 스크린은 자연과 역사에 대한 스펙터클 이미지가 되거나, 앞으로 이동하며 숲을 헤치고 나가는 카메라의 시선이 육화된 역동적인 움직임이 반영되어 나타난다. 또 초현실주의적 색채로 물든 새장 전체가 되기도 한다. 스크린은 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로 분리되지 않고 몸을 감싼 하나의 환경으로 펼쳐진다.
 결과적으로, 밀라 비르타넨은 단지 미디어 앞에서 춤을 춘다기보다 미디어가 다른 환경과 세계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그 미디어를 실제처럼 지각하며 그 세계를 실제처럼 만드는 매개체가 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김건중/하이디 비어탈러(하토 프로젝트)의 <Swift Shift>은 무대를 프레임화하고, 또 그것을 카메라로 다시 반영해 온전히 카메라의 전도된 시선으로 움직임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체를 적극 활용했다. 땅에 붙어 순간적으로 몸을 트는 인상적인 움직임들을 가지고 무대 곳곳을 오가며 자신의 내밀한 기억들을 보여준다.
 막은 관객의 타인을 보는 관음증적 위치로 재배치하는 한편 우리 자신의 눈이기도 하다. 이 막이 닫히며 영상에서 90도 회전한 이미지의 카메라로 벽 내지 바닥에 기댄 그의 움직임을 비추고 움직임은 무대에서와 다르게 감각된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어떤 외로운 한 존재의 실존 내지는 내면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신체와 공간, 영상-공간과의 재빠른 전환에서의 감각 자체가 환기시키는 인상들 자체로써 관객들과 만난다.




안무의 신선한 접근

 

 황수현이 안무한 <소설화하는 몸>은 카메라의 시선을 점유해, 그로부터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시선을 얻고자 한다. 세 사람은 처음 “인”, “아웃”을 지정하는 소리에 따라, 스톱모션처럼 장면들을 분절하고 그 장면을 이루는 몸짓들을 좀 더 세세하게 다시 분절한다. 기존의 춤이 보통 붙잡을 수 없는 묘연한 시간의 두께와 함께 흘러가는 가운데 펼쳐진다면, 이번 무대는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흐름을 멈추고 잘라 보여주는 격이다.
 “인”하면 멈추고 “아웃”하면 시작한다. “아웃”에서는 달라진 장면이자 그 멈춤을 예비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면, “인”에서는 그 장면이 멈춘 채 마치 1초 단위를 미세하게 쪼갠 전체 몸이 움직이지 않고 팔을 조금씩 꺾어 내려가는 등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는 ‘순간(시간)의 클로즈업’인 셈이다. 우리의 일상적 움직임을 이렇게 미세한 단위로 쪼개는 건 마치 인터넷상 용어인 ‘캡처’와도 같고, 무대는 어느새 기괴한 장면들이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흐름을 절단하는 춤은 일상 자체를 재현하기보다 일상을 새로운 춤의 문법으로 바꾸는 것으로 보인다.




에필로그

 

 춤은 움직임들이 주가 되고, 또 언어가 전면에서 물러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점이 연극과는 다른, 그러나 춤이 갖는 매력이자 어려움이라 생각한다. 모다페는 2009년부터 알고 또 봐왔다. SIDance(서울세계무용축제)와 함께 국내 2대 무용 축제라고도 흔히 불리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시댄스’가 세계 다른 문화권을 소개하거나, 전통을 알리기도 하고, 힙합과의 친연성을 찾아가는 프로젝트를 한다는 식으로 다양한 시각에서 춤에 접근해 나가는 것 같다면, 모다페는 춤 그 자체에 순일하게 집중해, 다양한 작품을 가져오는 것 같다. 올해는 ‘본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그것에 더 다가가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평소 ‘스파크 플레이스’의 경우, 신선한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는 반면, 올해는 하나도 보지 못해 아쉽다.
 모다페를 볼 때는 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층 더 고민하게 하고, 한편 우리 춤의 현주소를 어느 정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실 그만큼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기도 하고, 춤 그 자체에 더 주목하며, 또한 우리 무용의 많은 작품들을 아카이브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내년에도 모다페를 찾게 된다면, 춤의 다양한 색깔을 확인하며 춤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한층 더 깊게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2014.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