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고 정병호 교수 추모 특집 : 이매방승무의 미학
故 정병호_중앙대 명예교수

(이 글은 고 정병호 교수가
1994년 6월 ‘북소리 4’ 공연 팸플릿에 기고한 글로서
올해 4월 출간 ‘국무 우봉 이매방’(이병옥․김영란 편)에 수록된 것을
전재한 것이다-편집자)






고 정병호 교수

이매방은 3살 적부터 여자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춤추기를 좋아했던 천재적 소년예술가였다. 내가 이매방에 반한 것은 그가 추는 승무 때문이다.

수많은 무용가들의 승무를 보아온 나지만 승무만은 이매방을 능가한 사람이 이 땅에는 없다. 그는 해외로 공연을 나가면 반드시 승무옷감을 고르기 위해 옷감집 에 들른다. 증무옷을 만드는 것도 절대 다른 사람에 맡기지 않고 자기스스로 만든다. 팔에 끼는 장삼의 길이나 넓이를 정확히 재단한다. 그렇지 않으면 춤을 추었을 때 가벼운 경우 너무 장삼의 움직임이 둔하고 반대로 무거운 경우는 장삼의 움직임에 찰랑거리는 것이 없이 빨리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옷감을 고를 때나 장삼을 재단할 때 신경을 쓰는 것은 장삼의 찰랑거림과 아름다운 곡선이 나타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공연 전에 반드시 승무복을 다리미질 한다. 그리고 악사들이 반주를 할 때 잘못 연주를 하면 가차없이 욕이 나온다. 그는 평생을 승무만을 추어왔기 때문에 반주음악을 웬만한 악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가 춤을 출 때 구경꾼들에게서 ‘얼씨구 잘한다’라는 추임새가 나오게 되면 그때는 초인간적인 신명난 춤을 추어 화끈한 기가 공연장에 감돌게 된다. 그래서 열기가 넘쳐 흐르는 공연이 되어간다. 승무가 끝나면 그는 장삼을 벗어서 양손으로 가슴에 안고 무대 뒤를 돌아오는데 이때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물을 흘린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그의 내부의 어쩔 수 없는 예술혼이 눈물로 맺혀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는 승무의 북놀이 형식을 활용하여 3북 5북 7북 9북 11북과 같은 북춤도 만들어했다. 오늘날에도 때로 공연에서 이러한 북춤을 보는 수가 있는데, 이 춤은 이매방이 만든 것이다.

또한 그는 삼현육각에 의해 추어지는 이른바 삼현승무를 바탕으로 하여 자기가 창작한 보렴승무를 추고 있는데 보렴승무는 한층 불교적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춤이다. 판소리꾼들이 부르는 보렴음악의 대단한 스승인 이대조승무보다 더 격조가 있는 것 같다. 이 춤을 새로운 신고전무용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여생동안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는 아마도 평생을 승무만을 출 것이며, 저승에 가서도 승무를 출 사람이다. 지금도 이매방의 춤을 보고 있으면 아득히 먼 고구여의 호선무나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한삼춤을 비롯하여 마당에서 추어진 장삼춤, 유교에 밀려 산으로 쫒겨간 승려들의 고뇌를 나타낸 법고춤을 보는 듯 하다. 우리 옛 춤의 멋을 이매방의 승무에서 두루 깨닫게 된다. 흔히 우리 춤의 멋을 알려면 승무를 추어 보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승무는 우리나라 춤의 멋과 아름다움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 하겠다.

나는 이매방의 승무를 통해 우리 춤의 미학적 특색을 생각해본 일이 있다. 정갈한 여식에서 감각할 수 있는 맛과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장삼의 다양한 선, 복식에서 느껴지는 완벽한 의상미, 그리고 고깔에 파묻혀 있는 그의 얼굴 표정에서 인간의 고뇌와 자유에의 희구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승무가 한의 예술이라는 것은 무복이라 장삼춤, 그리고 북놀이 등의 조화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도 이 한이 잘 표현되고 있다.

얇은 絲(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薄紗(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려워라
빈 대에 황촛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방에 아롱질듯 두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이 시에서 우리는 승무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복합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고뇌는 고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득 안고 앞날을 기원하며 한의 비탈을 넘어서 장삼이 가지고 있는 비상하는 기개로써 자유와 구원을 희원하는 춤이 바로 승무임을 깨달게 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매방승무의 미학적 본질은 한이라 할 수 있다.

승무에서의 무복인 승복 장삼은 불가의 것과는 달리 기방예인들의 미적 감각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다. 장삼은 검은색과 흰색 두 가지를 쓰고 있는데 보선에 붉은 띠를 두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무복에서 3각형의 고깔은 그 속에 담겨있는 얼굴을 더 한층 맑고 아름답게 해주고 있으며 버선코는 춤을 출 때 은은한 곡선미를 돋보이게 해준다.

또한 장삼에 두른 붉은 띠는 매우 정열적이고 예리한 인상을 준다. 이렇게 보았을 때 승무의 옷차림은 사람의 얼굴을 밝고 아름답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은은한 곡선미, 정열적이고 예리한 느낌을 주는 미적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이매방승무의 동작구조를 분석해보면 동작의 짜임새가 맺고 어렀다 푸는 3요소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맺는 형에서 비정비팔의 발딛음과 무동작 사위, 목과 어깨 떨어뜨림, 학체 등과 같은 동작은 춤폭이 작고 동작이 단조로운 가운데 호흡이 일시 중지되는 상태에서 긴장하는 가운데 제자리에서 장단을 먹고 선다. 그런데 이러한 맺는 동작은 춤맥을 이어갈 때 주로 도입부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푸는 형에는 꼬아서 뿌림, 돌려서 뿌림, 옆으로 뿌림, 위로뿌림, 뛰어서 뿌림, 앞으로 뿌림, 뒤로 던져서 뿌림, 앞으로 던져서 뿌림, 감아서 뿌림, 번갈아서 뿌림 등 다양한 뿌림사위가 나온다. 이러한 동작은 감정을 풀기 때문에 쾌활하고 활달하며 모든 동작이 관절을 펴서 시원스럽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 춤사위는 춤맥을 이어가는데 있어서 자유와 해방을 나타내는 것으로 마지막 종결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어르는 형은 어깨얹으기, 팔펴넘기기, 어깨춤, 장삼꼬리치기와 같은 팔동작과 까치걸음, 완자걸이, 잉어걸이, 좌우걸음 등과 같은 발동작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동작은 내면적인 움직임으로 하는 경우와 외면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또한 어르는 동작은 기능적으로 볼 때 푸는 동작과 맺는 동작의 사이에서 춤맥을 이어주는 연결부의 역할을 하고 있는것이 특징이다. 이매방의 승무는 이렇게 맺고 어렀다 푸는 춤을 추고 있는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맺고 어렀다 주는 춤맥을 하나씩 만들어감에 있어서 그는 장단의 구조뿐만 아니라 춤곡의 흐름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 그리하여 장단을 보내고 동작이 뒤따르거나(쪼갬춤) 장단 앞에서 노는 「끌채」등의 동작(끊었다 늘였다)를 하면서 어떠한 동작을 위치의 변화나 형의 크고 작음으로 변화를 주어 가면서 춤추는 가운데 현실적 자기를 잊어버리고 무로 돌아간다. 이렇게 하여 황홀한 상태로 몰입되어 초인간적인 자태에 도달한다. 따라서 이매방의 춤에는 단지 시각적으로 나타난 미적동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재한 희로애락의 시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매방 승무에서 우리들이 감탄하는 것은 춤사위에있어서 고개를 좌우상하로 조심스럽게 어르는 것과 장삼을‘대삼’ ‘소삼’으로 조화를 이룬 가운데 겨드랑사위나 감았다 뿌리는 대머리사위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하늘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또하나의 비법은 제자리에서 모든 움직임이 정지 상태에 있을 때 또는 팔을 앞으로 내밀고 엎드려 있을 때 이른바 ‘꼬리치기’라 해서 극히 가벼운 느낌으로 한손 장삼 끝을 순간적으로 튀겨서 장삼을 팔랑거리게 하는 동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매방만이 도달할 수 있는 춤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이매방 승무에서 빼놀 수 없는 장기는 북놀음춤이다. 북놀음은 ‘변죽’과 ‘구레’(궁편과 각)로 ‘대삼’ ‘소삼’의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많은 가락을 만들어 신명나게 두들기면서 무아의경지에 도달한다. 그러면 장내가 화끈한 열기로 가득차고 구경꾼들은 이에 매료되어 꼼작 못하게 되고 만다. 그러고 그는 자기의 한을 힘찬 북소리에 실어 외계로 날려버린다. 지금도 그러한 일이 있는지는 모르나 이매방의 전성기 때인30~40대에는 신명이 나서 ‘완자거리’ ‘잉어거리’라는 발딛음을 할 때면 고깔너머로 그의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고 춤이 끝나고 북을 향해 앉아 합장할 때나 북에 접근하여 북을 어루만지면서는 눈물을 흘리는 수가 많았다. 그런데 이매방의 많은 춤동작에서는 예를 들어 얼굴을 감추고 몸을 앞으로 굽혀 엎드리거나 무릎 굽히고 고개숙인 동작, 장삼으로 얼굴가리는 동작, 장삼을 옆구리에 붙이는 동작 등에서 어둡고 번뇌하는 표정이 나타나는 반면 몸을 바르게 펴거나 뒤로 펴는 동작, 그리고 연풍대로 도는 동작과 뛰는 동작에서는 명량하고도 화려한 느낌을 주는 환희의 표정이 나타난다. 이매방 승무에 있어서 사상적 감정의 표출은 동작으로 나타나며 그 움직임에서 나타난 선은 이매방의 마음을 한층 구체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동작 하나하나에는 이매방의 마음이 담겨 있으므로 장삼 움직임의 선이 가진 밀의나 움직임의 비법을 풀어야 춤 속에 숨어있는 심성이 파악되는 것이다.

이매방 승무에서 선이 잘 나타나는 것은 주로 뿌리는 사위와 「꼬리치기」와 같은 동작에서이다. 춤의 이행을 관찰해 보면 모든 움직임이 같은 방향으로 끝까지 가지 않고 반드시 방향을 바꾸어 버리거나 손동작의 움직임이 밑으로 쳐지다가도 위로 솟아 뾰쪽한 선을 만들기도 하고, 또 밋밋한 선을 길게 뻗치다가도 순간적으로 매듭을 형성하여 점을 찍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 상징선은 원, 나선형, 파동형, 태극형, 완자무늬형 등과 같이 부드럽고 무한하며 따뜻하고 융통성이 많은 곡선으로 나타난다. 또 한편으로는 탄력성이 있는 힘과 스마트하고도 예리한 직곡선을 만들기도 한다. 이매방은 소년시절에 기방세계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그들에 영향을 받아 춤에는 억눌렀던 지난 시대의 한이 담겨있고 그 한이 애상미로 표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춤에는 인간 낭만과 정이 흐르는 가운데 아름다운 우아미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이매방의 승무는 인간의 희비를 높은 차원에서 극복하고 승화시킨 구도적인 춤이라 할 수도 있다.

2011.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