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무용가 지망 청소년들에게, 선배 세대의 체험 메시지 (2)
제각각의 개성을 지지하도록 안목을 넓히세요
  • 일    시
    2022년 2월 7일(월) 오후 3시 30분
  • 장    소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세미나실(서울 명륜동)
  • 사    회
    김혜라_〈춤웹진〉 편집위원
  • 참석자
    김이경 김예림 홍혜전 김현진




김혜라: 앞서 입시 교육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각자의 체험을 기반으로 짚어 주셨습니다. 청소년들이 자기 주도적 삶을 살기 위한 기초 토양인 시기이나 현실적으로 대학 진학에 매몰된 목표 때문에 벌써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립니다. 오늘의 방담이 청소년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보신다는 가정 아래 청소년을 잘 가이드할 수 있도록 참석자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나 제언을 했으면 합니다.

홍혜전: 저는 공연들을 보고 나서 제 활동 영역들이 확장됐어요. 제 삶에서는 공연들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더군요. 제가 안무가가 되고 싶었던 건 6살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피터팬〉을 보고난 후에요. 이제는 원로이시지만, 당시에 가수 윤복희씨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2000년에 네덜란드에서 즉흥 퍼포먼스를 처음 보게 됐는데 그런 공연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제 안무에서의 움직임 질감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었죠. 그리고 후년, 비엔나에서 제 우상인 제롬벨의 〈The Show Must Go On〉을 본 후 트레이닝되지 않은 몸을 통해 진정한 춤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와서 일반인과 함께 하는 춤, 커뮤니티댄스라고 불리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2013년도에도 또 한 번의 공연의 기적이 있었는데, ‘페스티벌 봄’ 일환으로 서강대 메리홀에서 ‘장애 예술’이라는 공연을 통해 ‘장애인도 춤을 출 수 있구나. 모두 춤출 권리가 있는데, 장애인이 춤추는 모습은 왜 본적이 없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장애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거죠. 많은 공연을 통해 간접적으로 꿈을 꾸게 되었어요. 이러한 측면에서 저는 학생들이 공연을 보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홍혜전 서원대학교 교수




청소년기 다양한 섭렵으로 나 자신을 오롯이 사랑하길

김예림: 너무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저 또한 공연을 봤던 경험이 삶의 전환점마다 크게 작용했었어요. 대학 강의를 하면, 모리스 베자르나 지리 킬리안 같은 세계적 안무가를 모르는 학생들이 많더군요. 그 말은 즉, 자기 선생님의 춤 외에는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선생님과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많은 공연을 보여주고, 그 경험을 통해 어떤 춤을 추고 싶고 자신이 어떤 가능성을 가졌는지 발견하는 것은 중요해요. 어떤 분들은 객석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많은 게 보기 싫다고 하지만, 선생님 공연이라도 봐야 해요. 더블빌이나 그룹전 공연에서는 자기 선생님 외에 다른 안무가의 공연도 관람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라도 보는 게 어딘가 싶어요. 사실 할 수 있다면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많은 체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너무 없죠. 요즘 아이들은 느린 걸 참지 못해요. 유튜브마저 숏폼을 보잖아요. 조금 긴 프랑스 예술 영화를 추천해도, 절대 못 봐요. 그런데 제가 아는 무용가 중에서는 중고교 때 단체로 영화 관람이나 공연 관람을 했던 것이 무용을 시작한 계기였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 관람하는 문화도 없고, 예체능 과목 시간에는 자습을 시켜요. 특히 인문계 학교에서 예술을 접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김예림 춤비평가




김혜라: 청소년기 어떤 영향으로 의식을 확장하는 게 중요한 건 다 압니다만, 현실적으로는 공연 한 편 보는 것도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영상 제작을 시도하고, 모든 교류가 비대면으로 이뤄지며 한 가지 장점은 세계 유수의 공연물을 폰으로 쉽게 관람할 수 있어졌어요. 예를 들면 영국의 공연예술 스트리밍 사이트인 Marquee TV(https://welcome.marquee.tv/) 같은 경우 월 9.99파운드로 무용, 발레, 오페라, 연극과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볼 수가 있지요. 국립현대무용단의 ‘Dance On Air’는 지금도 무료로 시청 가능하고요. 예술의 전당 ‘SAC on Screen’을 비롯하여 네이버, 유튜브에서 넘쳐나는 공연물들을 볼 수 있어요. 이러한 정보를 선생님들이나 부모님이 청소년들에게 제공했으면 합니다.

김예림: 춤 전공 청소년들에게 부모님과 지도 선생님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오로지 입시에 적합한 학생으로 조련하지 말고 예술가로 성장시킨다는 마인드부터 가져야 하고, 부모님 역시 준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적어도 자녀가 춤을 한다면, 세계적으로 어떤 무용단들이 있고 국내에서 어떤 공연이 이뤄지는지 관심을 같이 가져야 해요. 학생들 스스로 무용의 판도를 읽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는 ‘김예림이 만난 예술가들’이라는 코너로 17년간 200여 명의 국내외 무용가를 인터뷰했는데, 가족이 나를 위해 희생했다거나 큰 응원을 줬다고 말하는 무용가들을 많이 만났어요. 청소년기에 혼자만의 힘으로 예술적 방향을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늘 격려와 응원을 해주고 기능인이 아닌 예술가로 커야 한다는 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해요.

김현진: 저는 입시제도와 사회적 기준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각이 일어나기를 희망합니다. 춤전공자들의 몸은 실기수업 과정에서 많이 통제되고 검열을 받아요. 끊임없는 지시와 복종의 과정 속에 탄생한 이상적인 무용 테크닉에 도달하면 높은 점수와 예술적 성취감이 따르겠지만, 그 외의 많은 것들은 무시되고 배제되고 맙니다. 학생들 개개인의 정서와 저마다 다른 몸의 조건, 기질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닌 거죠. 그런 때문에 엄격한 테크닉 수업에서 학생들은 끊임없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몸의 부상도 많을 뿐더러, 선생님이 정한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할까, 내 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하고 자신을 탓하게 되죠. 한참 민감한 사춘기 시기에 춤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이 자신에 대해 오히려 왜곡된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죠. 실제로 제가 가르쳤던 경우로 예고 입시를 앞둔 학생이 있었는데요, 그 학생은 발레 전공을 하던 중 발목 부상과 여러 가지 이유로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꾼 상태였어요. 제가 보기에 그 학생의 신체조건은 무용하기에 아무 문제없이 훌륭했지만, 학생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몸에 대한 평가는 달랐나 봐요. 늘 자신감이 없이 위축되어 있고, 그래서인지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어요. 그 학생이 신나게 웃으며 활기찬 동작을 펼칠 수 있기까지 꽤 오랫동안 학생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 칭찬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저 또한 큰 키로 인해 발레를 포기하고 현대무용으로 전향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그 학생의 상태를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현진 안무가




김혜라: 예술이라는 것이 객관화된 지표로 평가되지 않잖아요. 그런데 예술가를 만드는 현재 시스템은 어떤 스테레오타입에 맞춰가기 때문에 대략 한 명을 제외한 대다수의 모든 아이는 스스로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생각해요. 김현진님 말대로 그저 춤추는 게 좋아서 시작한 아이들이 타인의 잣대에 종속 받지 않는 나만의 춤,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의 몸을 존중하는 생각은 청소년기에 정말 중요합니다.

김현진: 예원중에서 예고 갔을 때 현대무용 파트가 생기잖아요. 그러다 보니 무언가 이탈된 아이들은 현대무용으로 전환시키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굉장히 상처를 받아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학하고 자신감이 없어지죠. 그런 아이들에게 칭찬 몇 마디만 해줘도 얼굴이 확 달라집니다.

김이경: 그러니까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한 거예요. 아이들 가르쳐 보면, 음악적 센스가 있거나 기획력 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선생님이 눈여겨보고, 그런 쪽으로 공부해보라고 말하면 나중에 그 친구에게는 큰 기억으로 남습니다.

김현진: 이제는 규격화된 프로시니엄 무대에서만 춤추지 않잖아요. 장애인 무용도 있고 춤 교육을 받지 않은 분들과 춤출 수도 있고 다양한 개념으로 다양한 공간에서 춤들을 풀어낼 수 있어요. 이제는 극장을 넘어 일상공간과 영상 그리고 메타버스에서도 춤이 이루어지고 공유되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는데, 춤계도 시선을 확장해야 한다고 봐요. 변화된 세상에 맞춰 아이들에게 춤의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아이들도 달라진 춤 환경에 맞춰 미래를 꿈꾸지 않을까요. 동시에 아이들이 스스로 멘토를 찾아갈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홍혜전: 김현진님 얘기를 연장해서 덧붙이고 싶은 건, 잘하는 것 말고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봤으면 해요. 스스로 지속적인 질문을 통해서 찾아가는 경험이 필요해요.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직업군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는 시대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잘하게 되고 잘하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공유하고, 더 나아가 수익 창출로 발전되기도 하죠.

김이경: 점차 이야기가 합치되는 것 같은데, ‘자기를 사랑하라’는 거죠. 옛날에 일기 썼잖아요. 무엇이 좋았고 싫었는지 자기를 분석하고 돌아볼 수 있잖아요.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한발 더 멀리가기 위해서 제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여유,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여유가 필요할 거 같아요.




김이경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사무국장




김현진: 그렇지요. 전 학생들에게 자신이 꿈꾸는 가치를 절대 저버리지 말고, 스스로 몸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이 최고라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최근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여성 댄서 크루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어요. 일반 무대 춤과는 출발이 조금 다른 지점이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하위문화로 출발해 지금은 방송과 대중문화의 중심에 선 장르 아닙니까. 입문 과정이 순수무용계에 비해 비교적 열려있고 다양하다 보니 한참 전성기를 이룬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저보다 10년 이상은 다 젊었어요. 저보다도 어린 친구들이지만 예술가로서 어른이자 리더로서 자신의 몫을 당당히 수행해내고 있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어요. 그러면서 나는 저 나이 때 뭘 했던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되었어요. 저 나이 때의 나는 누군가의 제자로 아니면 어디 소속과 어디 출신으로 불리며, 무용계에서 주변인으로 맴돌았던 것 같아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어요. 왜 그렇게 주변을 의식하며 스스로 당당하게 꿈을 펼치지 못했는지 하는 마음도 들더라고요. 그렇게 감정이입을 하며 프로그램을 끝까지 응원하면서 보게 되었어요. 그 프로그램이 성공하면서 후속편으로 고등학생이 주축이 된 ‘스트릿 걸스 파이터’가 방영되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어린 학생들의 태도였어요. 같은 또래 무용과 학생들과 비교해서 특히 프로그램 속 학생들은 이미 예술가다운 면모를 충분히 갖추고 자기 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우선 참가자들의 신체 조건이 다 달랐어요. 무용과 입시 기준으로 보면 한참 지적을 받고도 남을 신체조건들이었지만, 참가 고등학생들은 그것에 상관하지 않는 듯이 자신의 몸매와 춤을 뽐내고 있었어요. 그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에 맞춰 안무를 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표정을 짓거나 신나게 끼를 발산하며 즉흥춤을 추는가 하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전략을 짜고, 때에 따라 공격과 배려를 조율할 줄 알고 건강하여 성숙한 예술인들에 버금갔어요. 그런 모습을 보며 저의 학창시절은 차치하고 선생으로서 부족했던 점들만 떠올라서 그간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스스로 미안해지더라고요. 프로그램 속 행복하게 춤을 추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춤의 목적이자 가치가 무엇인가를 다시 되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자신을 사랑하고, 춤추며 행복할 수 있기를, 그로 인해 성취감을 느끼고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로 이것이 우리가 애초에 춤을 추고자 했던 동기가 아니었나 싶었어요. 우리의 무용과 친구들도 타율적인 누군가에게 종속된 춤이 아닌 자기가 주도하는 춤, 자신이 우선인 춤을 추고, 창의적인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가치가 부정되지 않는 삶을 준비하길 바라면서, 내가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기준이 있을 뿐이라는 걸 명심했으면 합니다.


자기가 꿈꾸는 가치를 존중하고 넓고 멀리 보며 학습하세요

김혜라: 덧붙여서, 영상 세대에게 우리 세대처럼 책을 읽으라고 할 순 없지만 영상을 보든 무엇을 경험하든 자기 느낌, 생각을 메모라도 하는 작은 실천을 하길 권유합니다. 댄서가 되든 창작자가 되든 관련 분야에서 직업을 갖더라도 자기 생각을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하는데 이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지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동작을 익히더라도 맹목적인 따라 하기가 아니라 자신의 타고난 신체조건을 잘 파악해 가며 익히는 것도 내 몸을 이해하는 작은 습관인 것 같아요.




김혜라 춤비평가




김예림: 아웃풋의 기회가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자기 의견을 말하거나 생각을 글로 쓸 기회가 너무 없기에 인풋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학생들에게 “공연이 어땠어?”라고 물으면 “좋았어요.”라고 답하고 더 이상 설명을 못해요.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언급된 문제점들이 해결되려면,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학생 스스로가 예술가로서의 성장을 향해 노력해야 합니다. 학생은 좋은 무용가, 더 나아가 성공한 예술가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해요. 무용을 하면서 ‘만족’과 ‘성공’에 대해 광범위한 기준을 가졌으면 합니다. 성공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 한 가지 목표만 삼으면 곤란해요. 아까 말씀대로 그것이 깨졌을 때 상실감이 너무 크거든요.

홍혜전: 공연이든 책이든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김예림: 그리고 질문할 수 있는 학생이 되어야 하죠. 학생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각자의 다름 속에서 많은 가능성을 찾기 바랍니다.

김혜라: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체험을 진솔하게 나눠주신 참석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자기 위치에서 젊은 세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해 보도록 하지요.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 ​​​ ​​​​​

2022. 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