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댄스씨어터 TIC 창단한 김윤규
사회를 향한 저항과 책임을 다하는 무용단으로의 첫 걸음

 

그동안 주로 트러스트무용단과 함께 안무 작업을 해오던 김윤규가 자신의 독자적인 무용단을 창단하고 그 첫 작품으로 <문밖에서>를 무대에 올렸다. 연극 작업에도 꾸준히 안무가로 참여하고 있는 김윤규를 춤비평가 김혜라가 만나 첫 작품과 새 무용단의 창단 배경,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김혜라
<문밖에서> (2014년 6월 19-21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공연 잘 봤습니다. 트러스트무용단에서 독립한 후 올린 첫 작품이죠. 무용단에서 작업한 기간이 어떻게 됩니까? 더불어 독립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김윤규 트러스트무용단은 1995년도에 창단했고 저는 창단과 함께한 멤버였습니다. 제가 올 해 1월 독립을 했으니 어언 20여 년 동안 한 단체에서 작업을 했네요. 갑자기 독립한 것은 아니고요. 오래전부터 독립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사실 초창기 단체의 규모가 커지기 전부터 무용단에서 각각의 역할에 대한 세분화를 원했었는데……. 아무래도 많은 일들을 진행하며 단체의 지향점과 진행에 관한 협의가 점차 힘들어지는 등의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트러스트무용단과 관계는 어떠하신지요.
20년 함께 해온 단체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였으니 혼란스러운 면도 있지만, 긴 시간을 함께한 동료로서 트러스트무용단과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른 지향점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네요.
근래 독립단체들의 활동영역이 다양하게 확장되었듯, 트러스트무용단 또한 사업의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현실적으로 트러스트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독립 단체들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만 예술지원정책의 변화에 따라 휘둘리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정된 단원에게 부가되는 부담 또한 증가하게 되었죠. 이 문제는 단체의 정체성과 전문성과 관련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독 공연은 오랜만이지요?

네. 개인적으로 솔로 작업은 해마다 거리 공연까지 포함해서 한, 두 편씩은 올렸습니다. 그래도 단독 공연으로는 7~8년 만이네요.

작품 <문밖에서>에서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문밖에서> 작품이 현대적 씻김굿이 되길 원했습니다. 굳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구체적 현실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무기력함과 삶이라는 허구를 상징적으로 보이고자 한 것입니다. 문은 인간의 욕망의 경계에 있습니다. 작품은 인간은 누구나 문밖에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허무주의가 아닌 저항의 하나라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과 삶 앞에 무기력한 인간임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들을 아픔을 나누고 씻겨주는 것이 패배주의가 아닌 저항이며 예술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체 작품에서 물과 천이 주요 상징으로 역할을 했죠.

그렇습니다. 무기력한 인간의 죽음을 멈추지 않고 물을 마시는 장면으로 설정했고, 흥건한 바닥에 쌓인 물을 닦아내고 정리하는 것이 우리가 사회적 부당함을 기억하고 받아들이며 보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연습초기에 무용수들에게 세월호의 희생자들이 마셔야 했을 물의 양만큼을 함께 마셔보자는 아주 순진한 맘에서 제안한 부분이기도 했구요.

말씀하신 대로 작품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선과 오브제에 심오한 의미성을 부여하는 방식이 트러스트무용단의 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독립 후 올린 <문밖에서> 역시 이전 트러스트 작업의 연장선으로 보였습니다만.
그렇죠. 반면 저의 숙제이기도 합니다만...... 20여 년 동안 트러스트에서 활동하면서 글, 주제, 연출 등 모든 작업을 다 관여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실 그래서 최대한 움직임과 표현방법을 차별화 하려 노력을 했는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트러스트와 변별되는 것이 독립의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없고, 이제 독립 후 첫 작업이니 앞으로 작업해 가는 사이 조금씩 드러나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댄스 씨어터 집’이라는 단체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저의 느낌은 전체 작품이 연극적 의미를 전달하는데 묻혀버렸기 때문인지 춤으로 해원하는 씻김을 전달받지는 못했습니다. 더불어 여러 장면에서 설정된 오브제가 주제로 반복 연결되어 시간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어렵게 정한 단체 이름을 바꿔야 하는 혼란이 있었습니다. ‘집’이라는 단체명을 이미 타 단체에서 사용하고 있어 ‘TIC'으로 단체명을 바꿨습니다. 저는 눈꺼풀까지도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안무를 합니다. 사실 이 작품도 많은 의미를 드러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길게 느껴졌다면 제가 더욱 압축시키지 못해서인 것 같습니다. 사실 첫날 공연은 관람하신 공연 날 보다 작품시간은 더 걸렸습니다. 장면마다 무용수가 충분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주려고 했고, 물을 마시는 장면에서는 무용수들이 즉흥적으로 더 몰입하기를 원했죠. 첫날 공연은 시간이 늘어지기는 했지만 연습실에서와 달리 무용수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표현은 더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으로 봤을 때는 매 장면 무용수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자 했지만 관객을 필요이상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둘째 날 15분을 줄였습니다. 그렇다고 작품의 장면을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분명 비슷한 장면일 수는 있으나 같은 장면의 반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2004년 <솟나기> 이후 오랜만의 작업이기에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전체구조의 탄탄함과 주제 전달력, 구체적으로 원형적 시간개념, 전 방위적 공간 활용방식, 탈춤사위에서 추출해낸 움직임이 조화를 이뤄 신명나는 무대였습니다. <솟나기>에서 보인 김윤규 만의 신명나는 개성을 기대했는데, <문밖에서>는 전작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저의 모든 작업의 모토도 신명성에 있습니다. <솟나기>때는 긴 시간 무용수와 함께 춤추고 놀면서 공유한 부분이 많았었기에 자연스럽게 제 의도가 작품에 녹아들어 갔습니다. 이번에는 작품의 주제가 다른 이유이기도 하지만, 무용수들이 작품의 의도와 무대를 좀 더 깊이 경험하고 견뎌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의 입장을 고려한 면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무대는 의미의 재현만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관객이 전체 작품을 통해서 의미와 사건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관객에게 이해와 만족을 줄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한 장면에서라도 공감이 된다면 혹은 졸다가 깨어 눈에 들어오는 그 무엇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향하는 안무방식은 여러 스틸 컷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 하는 것뿐입니다.
전작에 비해 만족스러운 공연이 아니었다는 평가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독립한 제 상황에서 이전과는 다른 작업을 보이겠다는 목표와 예술가로서 이 시대적 아픔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현실적으로 연습실을 구하는 일부터 무대에 작품을 올리기 위한 작은 부분들까지 그간의 활동과 단절된 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입장에서의 감당해야 할 무게감까지 복합적인 고민의 하중에 충분한 시간과 집중을 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작업에 참여한 무용수들이 연극이나 일반인들 같았습니다.

네. 트러스트무용단의 단원이었던 무용수가 있었고요. 저랑 예전부터 주에 하루 열리는 움직임 워크숍에 참여했던 다른 이력을 가진 무용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작업하기 좋은 무용수는 움직임의 기량이 훌륭한 춤꾼만이 아니라 다양한 내력을 가진 사람들도 좋은 무용수라고 봅니다. 물론 전제 조건은 타고났건 훈련되었건 몸을 잘 이해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어야겠죠.(웃음)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집니다.

연극에서의 움직임 연출 혹은 안무를 계속해 왔습니다. <에쿠우스><피의결혼>을 봄에 올렸고요. 어제부터 명동예술극장에 시작된 한국근대미술의 대표적 화가이자 비운의 예술가였던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길 떠나는 가족>이라는 작품 외에도 다수의 연극작품 안무 작업이 잡혀 있습니다. 춤의 영역을 확장하고 우리식의 춤극을 찾아보고자 하는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많은 배움의 기회가 되어 꾸준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문밖에서> 작품을 수정 보완하여 대학로 소극장에서 재공연과 지역 초청공연을 준비하고 있고요. 7월부터는 서울문화재단의 커뮤니티 댄스랩 프로젝트의 하나로 창신동 봉제 골목 주민들과 함께하는 지역공동체의 예술 커뮤니티에 관한 연구 작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댄스씨어터 틱' 이 함께 모여서 춤출 공간이 아직 없습니다. 연습실을 구하는 것으로 부터 춤 단체로서의 기반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려 합니다.

커뮤니티 댄스를 할 계획이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잘 극복하시길 바라며 새로운 출발을 기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 07.
사진제공_댄스씨어터 TIC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