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대한민국발레축제를 말한다
창작 발레, 작품을 꿈꾸기 전에 교육 시스템부터 바로 세워야
  • 일    시
    2022년 7월 24일(일) 오전11시
  • 장    소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 사    회
    김혜라
  • 참석자
    김용걸, 허용순


ⓒ춤웹진




김혜라: 오늘 모신 허용순, 김용걸 선생님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서 공교롭게도 대한민국발레축제 무대에서 작품을 올리셨습니다. 관객 입장에서 흥미로웠어요. 김용걸 선생님은 성직자 수사에 초점을 두고 〈로렌스〉라는 제목으로 올렸지요. 두 분의 근황과 함께 작품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 의도 등을 들어보며, 한국 창작 발레나 컨템퍼러리 발레에 관해서도 자유롭게 의견들을 경청했으면 합니다.
김용걸: 우선 허용순 선생님 작품 너무 좋았습니다. 재연작이지만, 시간이 그다지 없었던 걸로 압니다. 제 작품에 출연한 무용수가 선생님 작품에도 출연했기 때문에 무용수들이 굉장히 바빴지요?
허용순: 아무래도 프리랜서 무용수들이라서, 무용수를 모집할 때 이미 다른 작품에 투입된 상황들이었어요. 저는 4월에 와서 오디션을 했고, 여자 무용수는 굉장히 많이 왔는데 남자 무용수가 귀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남자 역할이 많이 필요하기에 걱정했죠. 윤전일님은 광주 공연 때 함께 했고, 윤별님이라든가 다른 무용수들과는 같이 일한 적이 없었어요. 전 국내 전문무용수들을 잘 모릅니다. 3년 전 유니버설발레단과 했고, 외국 프리랜서를 데리고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프리랜서 무용수들과 일한 지 너무 오래된 거예요. 그래서 다른 안무가들에게 추천받았어요. 이은수님은 새 역할을 주고 싶은 정도로 마음에 드는 무용수예요. 김용걸님에게도 감사한 게, 무용수들 스케줄을 양해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작업 기간이 짧았어요. 2주일하고 5일도 안 되어서 떠나야만 했어요. 작품 세팅만 한 게 아니라 안무를 많이 바꾸다 보니 9~10시간 정도 길게 연습하기도 했죠. 컴퍼니가 아니어서 시간 되는 무용수끼리 하고, 주역들은 서로 다른 시간에 만나다 보니 원할 때 다 모인 적은 거의 없었어요.

축제 측에서 이 작품을 의뢰했던가요?
허용순: 네. 2007년 독일에서 초연했을 때와는 세트, 의상이 완전히 달랐어요. 무대와 의상디자인을 맡은 베레나 헤머라인이 초연 때와 달리 세트와 의상을 현대적으로 바꿨어요. 몇 해 전 광주 공연 때는 무용수만 교체했고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예술의전당 쪽에서 업그레이드를 제안했고, 저와 의견이 맞았습니다.
김용걸: 간혹 노고를 통해야만 이런 작품이 나온다고 오해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일찍 오디션을 열어주고, 컴퍼니만큼은 아니지만 안정적으로 리허설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주최 측의 역할인데 말씀처럼 너무 촉박했던 것 같았어요.
허용순: 4월 오디션 후 2~3주 안에 만들었죠. 솔직히 걱정은 됐었어요. 왜냐하면 전막 발레이고, 한 사람 한 사람 역할이 너무 중요했어요. 광주 공연에 참여했던 유모 역할을 맡은 김정희님과 윤전일님을 제외하면 다 새 무용수들이었죠. 처음 작품 의뢰를 받았을 때 너무 감사했고, 서울에서는 작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막 공연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스케줄이 꽉 찼고, 제가 한국에 올 수 있는 일정이 늦게 결정이 되었죠. 힘들 수도 있지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남자 무용수들을 모을 때 힘들었지만 너무 좋은 무용수들을 많이 만났어요.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작업을 진행했어요. 어떤 무용수는 부상당했어도 무리해서 무대에 섰어요. 정말 고맙죠. 앞으로 기회 닿을 때 같이 일하고 싶은 좋은 무용수들을 많이 만났어요.




허용순 ⓒ춤웹진




작업 기간이 길지 않았어도 역할에 위계가 있지 않고 캐릭터마다 개성이 살아있어 아주 신선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은 수많은 버전이 있고,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만 댄서들이 집중력 있게 하더라고요. 안무자가 어떻게 캐릭터를 분석하고 댄서와 매칭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허용순: 무용수마다 다 다르고 메큐치오 역할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물론 벤볼리오도 가볍게 생각할 수 없고 로미오, 줄리엣은 당연히 중요하죠. 신부님, 유모, 레이디 카풀렛트 등은 한명씩 따로 일할 수 있었어요. 윤별님, 윤전일님 등은 제가 가진 생각을 담으면서 개성이 나올 수 있도록 연습했어요. 그리고 무용수들이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됐잖아요. 그룹 연습할 때 마스크 속에서도 다 보이기 때문에 꼭 연습해달라고 말했어요. 한 명의 주역만 마스크를 벗고 연습하기도 했고요. 다들 열심히 해줬고 고마웠죠.
김용걸: 프리랜서 무용수가 스토리 있는 발레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신선했고 무용수한테도 좋은 기회였다 봅니다. 〈백조의 호수〉나 〈지젤〉과 다르죠. 저 역시 마스크 때문에 힘들었어요. 무대 올라가기 일주일 전에 양해를 구하고 마스크를 벗었어요. 무용수들의 감정 표현이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오해하게 되고 화가 나기도 하고요. 이 점이 가장 힘들었어요.

작품 볼 때 주요 댄서들을 제외하면 대개들 흉내 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이 작품에선 그렇지 않고 댄서와 안무가가 합심해서 그런 지점을 함께 만든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각 캐릭터에서 묻어나오는 성격이 제스쳐와 눈빛에도 담겨 생동감 있게 다가왔고 연습 과정을 통해 댄서들이 연기나 캐릭터에 대해 많은 레슨을 받지 않았을까 해요.
김용걸: 드라마 발레는 학교에서부터 해야 합니다. 드라마는 그 사람이 가진 걸 끌어내기 때문에 춤이 바뀔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중학교, 고등학교일지라도 드라마 관련한 교육, 연기 교육을 일찍이 시켜야 해요. 테크닉적인 것만 수련했을 때 어떤 아이들은 두각을 나타내지만, 또 다른 무용수는 밀려버리니까 자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거죠.
허용순: 첫 번째 장면, 여자들끼리 당구장에서 싸우는 장면을 만들 때 오래 걸렸어요. 싸우는 장면이 잘 안 나왔어요.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남자친구를 빼앗겼을 때 어떡할 것인지 별의별 상황을 제시했어요. 그러다 보니 장면을 만들 때 시간을 많이 들였고 과정이 길었죠.
김용걸: 국내 발레단에서도 이미 했었지만, 감동이 전해지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드라마나 연기를 좋아하고 창작 발레에서 이런 것들이 잘 드러나니까 이번에 관객 입장에서도 속 시원했을 거예요. 클래식이 주는 고귀함도 있지만, 창작이 주는 명확함이 있잖아요. 국내 발레단체에서 드라마 발레가 더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용걸 ⓒ춤웹진




2007년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초연했고 1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작품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독자들을 위해 한 번 더 요약할 수 있을까요?
허용순: 두 번째 할 때 세트나 의상을 현대적으로 변형했고 안무도 많이 바꿨습니다. 세 번째 공연인 광주 공연에선 큰 변화는 없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많이 바꿨죠. 5년 사이에 새롭게 하고 싶은 것들이 추가됐어요. 2막에서의 그룹씬을 무용수들이 열심히 해줬기에 많이 바꿨어요.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렌스 신부인 강준하님이 파드되를 잘한다고 해서 장면을 추가했고, 제가 좋아하는 김다운님에게 춤을 더 주고 싶어서 1막을 추가했고요. 벤볼리오 역시 이은수님에게 맡게 바꿨어요. 음악 자체도 오케스트라로 바꾸면서 음악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무용수들이 무대에 섰을 때 컴퍼니 못지않은 퀄리티가 나왔어요. 이번에 다 프리랜서 무용수였고, 쉽지 않은 과정이었기에 무용수들도 행복해했고 저 역시 감사했습니다. 제가 안무하지만, 제 안무 세계를 표현하는 것은 무용수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작품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무용수들을 아주 존중합니다.

김용걸님은 로렌스 신부 시각에서 작품을 풀어낼 이유가 있었나요?
김용걸: 파리오페라 발레단에서 프레데릭 애쉬턴(Frederick Ashton)의 작품 〈마그릿과 아르망〉(Marguerite and Armand)을 봤어요. 리스트 곡을 사용한 그 작품을 보고 제가 이전에 가진 클래식 발레의 편견이 많이 깨졌습니다. 작품 음악이 기억에 많이 남았고요. 변화무쌍하잖아요. 그래서 자주 들었고, 한국에서 안무하면서 이 음악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하다가 작년 12월에 작품 장면이 떠올랐어요. 지방 공연 갔다가 무대 리허설 끝나고 카페에 갔는데, 로렌스가 고뇌하는 장면이 그려졌고, 스토리가 끊이지 않고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노트에 적고, 공연 끝나고 2~3일간 집에서 정리했어요.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Jean Christophe Maillot)의 작품을 하면서 영감을 얻은 건 확실해요. 전 개인적으로 〈지젤〉을 힐라리온 입장에서 풀어낸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해요. 약간 비틀어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것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것에 호기심이 많아요. 물론 줄리엣이 부탁했습니다만, 로렌스는 성직자로서 방법을 제시한 거잖아요. 이에 따라 결정적 사건이 발생했고 누군가를 죽게 했는데, 성직자로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신의 뜻이라면, 과연 신이라는 존재는 무엇이고 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깊게 나오진 않지만 로렌스 입장에서 이를 회상하며 고뇌하고, 성직자로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듯한 느낌으로 작품을 시작했어요.

작품 〈Lawrence〉를 봤을 때, 로렌스는 권위를 가졌잖아요. 그리고 좋은 의도를 갖고 했지만 결국 무능으로 끝났어요. 두 가문의 화해를 위해서 그랬지만, 로렌스는 이 일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등 인간적 면모가 많이 보이더군요. 로미오 역할보다는 신부와 줄리엣 역할에서 조금 다른 결이 보였어요. 성직자 신부 역할에 여성을 캐스팅한 이유가 있나요?
김용걸: 남자를 물색하려고 했지만, 허용순님 말씀대로 남자 무용수의 부족이 좀 문제였습니다. 국립무용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에 좋은 무용수들이 많습니다만, 그들은 직장이 있기에 저한테 집중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죠. 밖에서 말고 제가 있는 곳에서 김다운님과 김다애님을 캐스팅했어요. 보물같은 무용수들인데, 이들이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여자 캐릭터로 접근하면 신선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웬만한 남성들보다 훨씬 잘했고요.

리스트 음악과 이 내용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리스트 음악을 가지고 로렌스의 시각으로 소극장에서 풀어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김용걸: 애쉬턴이 왜 이 음악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어요. 음악을 분석해서 스토리를 넣었을 텐데, 이 안무가는 어떤 생각을 갖고 풀어냈을지 궁금했고 저도 음악을 쪼개보고 싶었죠. 작품을 시작할 때 흥분되었고, 길을 찾아 나갈 때 애쉬턴도 ‘이런 느낌이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아까 마이요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김용걸: 시각을 비틀어서 작품을 올리는 건 위험할 수 있지만, 저에게 너무 신선했어요 제가 파리오페라단에서 2009년 6~7월 엑스트라를 하면서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을 봤어요. 그동안 〈로미와 줄리엣〉에선 로렌스가 아주 잠깐 나오는데, 마이요 버전은 완전히 달라요. 미장센이나 풀어가는 과정, 영화적 기법, 조명 등 임팩트가 컸고, 이번 제 작품을 만들 때 마이요 작품으로부터 굉장히 많은 영감과 용기를 얻었어요.

허용순 선생님의 작품에서 10대의 풋풋하고 순수한 감정 표현과 사랑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장식적 요소를 배제했는데 오히려 감정씬이 늘어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뻔히 아는 내용이지만 집중할 수 있는 거예요. 김용걸 선생님은 드라마 발레를 많이 하지 않았잖아요. 그동안 국내에서 주로 한 작품을 보면 추상적인 전개라고 볼 수 있는데, 이번에 해보니까 어땠습니까?
김용걸: 저도 드라마 발레, 전막 발레를 해보고 싶은 의향이 있어요. 그러려면 많은 캐릭터를 이해하고 제시해야 하는데, 컴퍼니와 함께 역량을 닦아야 할 겁니다. 허용순 선생님 작품에서 캐릭터 역할 모두가 살아있었어요. 확실히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했죠.

허용순 선생님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2007년 버전입니다. 만약에 축제에서 이 작품을 의뢰하지 않았다면, 컨템퍼러리 발레가 취약한 국내 발레계에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시거나, 2022년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든다면 또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허용순: 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너무 좋아했어요. 특히 줄리엣 역할과 매큐치오 역할에 끌렸는데, 제가 남자라면 매큐치오 역할을 꼭 하고 싶었어요. 또 전 연극하는 걸 좋아해요. 연극과 같은 역을 맡을 때 행복했고, 공연마다 역할을 매일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애당초 독일 슈베린 컴퍼니에서 전막 발레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답해서 이게 첫 작품이 되었죠. 초연 이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발레단에서 초연작을 새롭게 했으면 좋겠다고 의뢰해서 세트, 의상, 안무를 많이 손질했어요. 광주시립발레단에서 이 작품을 의뢰했을 때 광주에서 작품을 올릴 수 있다는 게 행복했고 한국 무용수와 작업할 기회가 생겨 또 감사했어요. 오랫동안 외국에 있는 저를 초청해준 거잖아요. 2017년 제가 광주시립발레단에서 일할 때 디렉터가 없었어요. 발레단 단장이 연임되지 않아서 취소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제가 매일 무용수에게 클래스를 주고 리허설했는데, 무용수들도 저도 나중에는 눈물이 나더라고요. 어쨌든 작품을 의뢰받으면 어떤 색이든 그걸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의뢰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신나서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죠.

자유롭게 작품을 하라고 할 때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나 새롭게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허용순: 여러 아이디어가 있어요. 저 역시 〈지젤〉을 해보고 싶어요. 〈백조의 호수〉도 아직 안 했고, 제 관점에서 풀어내는 것도 하고 싶어요. 의뢰받으면 보통 컨템퍼러리 작품을 해요. 그런데 전 스토리가 가미된 발레를 좋아요. 〈Reminiscence〉라고, 쇼팽의 인생 중 파리에서의 죽음을 다뤘는데, 작품을 본 평론가들이 쇼팽의 전 생애를 다루면 어떻겠냐고 했고,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김용걸: 파리에 있을 때 보면 한국 무용수들이 정말 잘합니다. 다만 너무 콩쿠르용으로만 인식되어 있어요. 파리오페라 발레단 무용수 같은 경우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접해요. 클래식 발레 무용수들이 그 선을 넘어서 하는 작품을 많이 접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부분이 부족합니다. 파리오페라 발레단, 유럽 무용수들은 선을 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요.
허용순: 외국 컴퍼니에 기가 막힌 무용수들이 많아요. 클래식뿐 아니라 모던, 여러 레퍼토리를 하므로 어떤 안무가와 일하든 스타일을 받아들이죠. 저 역시 어릴 때 외국에 나가서 여러 안무가와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전 안무가 힘들다고 생각했고, 발레마스터가 되고 싶었어요. 무용수들과 일하고 코칭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러던 중 컴퍼니에서 젊은 안무가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작품을 만들었죠. 뒤셀도르프 발레단에서 발레마스터도 하고 춤도 추며 학교에 출강했는데, 발레단 디렉터가 왜 안무를 하지 않냐고 묻더군요. 전 좋은 안무가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감히 안무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용기를 내서 시도해봤죠.

그때가 언제예요?
허용순: 2001년입니다. 그때 좋은 평을 받았고, 작품을 본 디렉터가 제 작품을 사고 싶다고 했어요. 그리고 〈백 스테이지〉를 안무했어요. 이 작품은 국립발레단에서 올리기도 했죠. 작품 만들 때마다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작품을 올리고 나면 ‘왜 이렇게 했지?’라는 생각에 거듭해서 바꾸는 거 같아요.

신진 안무가를 발굴하는 외국 시스템을 통해서 안무가로서 가능성을 발견하셨군요. 국내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접할 기회가 아직 충분하지 않아요. 역량을 발휘할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것과 좋은 안무가가 많지 않다는 게 연관되지 않을까 해요. 이제는 발레가 대중화되었고 클래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면면들을 흡수하고 완성해서 스펙트럼을 넓혀야 할 때입니다.
허용순: 외국 아카데미를 보면 학생들한테 즉흥을 하게 하고, 작품을 만들게 하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요. 우리는 그런 게 되지 않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국립발레단에만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가 있죠. 외국은 무용단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정착되어 단원들한테 안무할 기회를 줍니다. 저 역시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안무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 감사하죠.

김용걸님은 국립발레단에 있다가 2000년도에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했었지요. 허선생님은 해외에 언제 나가셨어요?
허용순: 선화예고 2학년 말에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어요. 컨템퍼러리 클래스 때 바닷가 모래를 걷거나 여러 경험을 쌓았고, 그때부터 모던이 좋았어요. 함께 유학길에 오른 친구들을 다시 한국에 갔고, 유니버설발레단이 창단되었어요. 그리고 강수진 단장이 외국에 와서 둘이 남았어요. 그때는 외국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프랑크푸르트발레단에 입단했고, 6개월 후 윌리엄 포사이드를 만났습니다. 재밌는 일화가 있었는데, 포사이드가 누추한 무용수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전 나이가 어렸고, 발레단에서 잘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다행히 저를 좋아하셨죠. 이후 마츠 에크와 한스 반 마농 등 세계적 안무가를 만났어요. 물론 너무 안 좋은 안무가들도 많이 만났고요.
김용걸: 요즘 ‘전통의 재해석’이란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러려면 전통을 알아야 하는데, 전통과 관련한 책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다 보면 다시 전통을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에 놓이죠. 그게 창작인 거예요. 창작을 위해선 전통을 재해석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창작에 몰입할 교육 시스템이 필요한데 오히려 그런 교육이 부재합니다. 어릴 때부터 창의적 교육이 필요해요. 기량이 뛰어나도 그 뿐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안무할 능력까지 주어진다면, 10배 이상 가능성이 늘어날 거예요. 물론 창작발표회도 하지만, 대부분 클래식 작품을 합니다. 창작을 두려워하고 시간도 없죠. 사실 학교만큼 좋은 여건을 주는 곳은 없어요. 극장, 무용수, 조명 다 지원해주잖아요. 그래서 전 학생들에게 이러한 혜택을 받으라고 말해요. 그런데 콩쿠르에서 일등 하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짓눌리잖아요. 초, 중, 고등학교 때부터 창작 교육이 정말 절실합니다. 콩쿠르에 몰입해서 창작력을 함양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은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고쳐져야 합니다.




허용순, 김용걸 ⓒ춤웹진




국내의 학교 과정에서까지 콩쿠르에 몰두할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김용걸: 학생들이 클래식 발레가 좋아서 왔다면, 모두 발레단에 입단해야죠. 그런데 입단하지 못한 8~9명은 자괴감에 빠져요.
허용순: 제가 10년 이상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하계 학교 수업을 하고 있고, 코로나로 인해 3년만에 수업을 재개했습니다. 전 컨템퍼러리에 맞는 클래스를 하는 게 아니라 안무해줍니다. 5~6학년 아이들과 작품의 도입부를 만들고, 아이들이 작품 만드는 과정을 보게 합니다.
김용걸: 내년 4월에 파리 콘서바토리에서 작품을 올려요. 파리 콘서바토리의 장점은 다양한 안무가를 접하게 하는 거예요. 무용수들이 여러 움직임을 경험하다 보면 졸업할 때 발레단에 갈 친구, 안무할 친구가 어느 정도 결정됩니다. 우리 시스템은 아직 그렇지 않고 취약합니다.

이러한 인식을 지도자가 갖춰야 하고, 그러면 순식간에 문제는 바뀔 수 있다 봅니다. 이제 안무 창작 계통에서 토대를 쌓아가야 할 때입니다. 허선생님은 해외에서 많은 경험을 했는데, 소개하고 싶은 좋은 시스템이 있나요?
허용순: 학교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요. 3분짜리라도 작품 만들 기회가 오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안무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많습니다. 전 안무를 굉장히 늦게 시작했어요. 외국 아이들은 일찍이 더 많은 걸 배우려 하고 안무 활동을 이른 나이에 시작하죠.
김용걸: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같은 것도 환경적인 지원이 아니라 좋은 안무가를 데리고 와서 작품하게 하고, 무용수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진화해야 할 겁니다.

테크닉 중심으로 성장한 무용가에게 갑자기 안무하라고 하면 작품이 안 나오죠.
허용순: 중요한 거는 크레이션 타임입니다. 안무가가 와서 작품을 만들 때 만드는 과정을 무용수가 보잖아요. 이전에는 제 작품을 알려주는 수업을 했다가 몇 년 전부터 신작을 만드는 수업으로 바꿨어요. 짧더라도 3~4분짜리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러한 과정이 아이들한테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프로세스가 한국에 더 있으면 어떨까 합니다.

일본에서 레슨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참여하는 사람의 태도나 수용하는 태도는 어떤가요? 한국에서 워크숍 하는 것과 차이가 있나요?
허용순: 22~23년의 세월을 지닌 아키탄츠에서 수업하는데 우리나라 탄츠스테이션과 비슷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설립자가 건축가이고, 발레를 너무 사랑해서 만든 공간이죠. 특히 휴가 때 외국에 나갔던 무용수들이 돌아오는데, 다 여기서 클래스를 듣습니다. 아마추어 대상의 수업도 있고요. 하루에 두 클래스를 주고, 2년에 한 번 씩 큰 공연을 해요. 그래서 일본에서 무용수를 선택해서 작품 올릴 기회가 있었어요. 이러한 시스템이 잘 되어 있더라고요. 일본에 가족이 있고 겸사겸사 작품 할 기회가 있어서 좋아요.

앞으로 계획을 듣고 싶어요.
허용순: 프랑스 쪽에 가고 주니어 컴퍼니에도 가고, 내년에는 독일과 미국에 갑니다. 코로나로 닫혀있던 것들이 조금씩 열리고 있어요. 솔직히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만, 뒤셀도르프발레단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한국에서 한국 무용수와도 작업하고 싶어요.

이번 축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다른 때에 비해서 다양한 안무가들과 섹션을 보여주었다는 소감들이 있더군요.
허용순: 한국에서 바빴지만 볼 수 있는 공연은 봤어요. 전체적으로 좋았습니다. 공동제작은 이번에 처음이고, 투자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세트도 만들어야 했고,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끔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뮤지컬, 연기, 발레 등 예술을 좋아한다고 느꼈어요. 이번 축제를 보니까 제주도와 춘천도 가더라고요. 이전에는 서울에서만 했는데, 축제를 퍼뜨려서 하는 점은 좋은 것 같아요
김용걸: 주최 측도 그렇고 관객 반응이 좋았어요. 이번 축제 수준이 높았습니다. 토월극장 공연을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큰 환호가 나오는 공연을 봤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역시 좋은 작품을 알아본다고 생각했죠. 올해 12회째 축제였는데, 저는 딱 한 번 빼고 축제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축제 간담회 때 공개적으로 말씀드린 바 있어 여기서 굳이 재론하고 싶진 않지만, 환기하고 싶은 점으로서 지원 시스템이 10년 전과 별 다를 바 없는 점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발레 축제나 모다페도 그렇고 축제들이 지방으로 루트를 뚫는 것 같아요. 그쪽 극장과 연계해서 하는 거죠. 바람직하다 봅니다. 두 분은 앞으로도 국내 발레계를 위해서 힘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장시간 귀한 말씀들, 감사합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 ​ ​​​ ​​​​​​​

2022. 8.
사진제공_춤웹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