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의학의 시각: 춤의 세계 - 그림의 세계 2
무대 이면 춤의 진솔한 모습을 찾다
문국진_원로 법의학자

에드가 드가(1834-1917)가 화가로 출발하고서는 우선 선대 역사와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아카데미의 수업을 받고나서 이에 관한 작품에 몰두하였으나 그보다는 근대적인 삶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을 택하게 되었다. 그 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어 무희(舞姬)들의 테마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화제(畵題)로 되었다.
 그러다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30년 넘게 주로 무희 주제에 몰두하였으며, 그것도 연습에 열중하는 무희들을 관찰할 수 있는 무대 뒤의 모습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한 것은 드가 예술세계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무희들은 오늘날처럼 예술가로 대접 받는 우아한 직업은 아니었고, 요즘으로 치면 쇼걸에 가까운 존재이었다. 당시는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시절이었으며 특히 일하는 여성의 지위는 더욱 낮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드가의 작품에 나타난 어린 무용수들의 대부분이 전문적인 무용교육을 받는 발레지망생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든 직업인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한다.
 그래서 드가의 작품들이 살롱전(展)에서 배척받고 부르주아 계층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던 것은 쇼걸로 인식되던 무용수가 도시 하층민에 속했기 때문에 그들을 소재로 한 작품을 부르주아의 거실에 걸어놓기엔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무희들의 모습이나 그들이 연습을 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회화들은 일반 대중에게는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드가 작품의 반 이상이 무대 뒤의 모습 혹은 무용수들의 심리적 흐름을 그린 것이다. 무희를 지망하는 지망생이 무용실 밖에서 오디션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이나 일단 무희가 되고나서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분장하는 모습에서 눈여겨 보아야할 점은 율동과는 무관한 분장하는 동안에도 두 다리를 서로 엇갈리게 놓아 율동 시의 모습을 취한다는 점이다. 이런 무희의 모습은 율동 표현의 습성이 몸에 배도록 연습하였다는 것이 은연중에 나타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분장이 끝난 무희들이 연습실로 줄지어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이나 무용연습을 위해 복장이나 신발을 준비하는 모습 등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는 무희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드가 〈기다림〉(1882) 폴 게티 박물관, 미국




 우선 드가의 〈기다림〉(1882) 작품은 당시 무희들의 상황을 한 컷의 그림으로 잘 설명해 주는 듯한 그림이다. 즉 일정한 연습을 마친 어린 무희지망생이 어머니와 함께 대기실의 긴 의자에 앉아서 오디션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하얀 ‘튀튀’를 입은 무희지망생은 고개를 숙여 토슈즈 위 발목의 통증을 어루만지고 있으며, 검은 정장 옷을 입은 어머니 역시 모자를 눌러 써서 눈이 보이지 않아 그 표정을 알 수 없으나 양산으로 마루 무늬를 따라가며 초조를 달래고 있다.
 두 모녀가 말을 하지는 않지만 그 암암리에 암시되는 속마음은 오디션의 차례 기다림만이 아니라 그 다음에 올 미래에 대한 희망 즉 궁벽한 현실을 뛰어넘어 꿈이 실현될 수 있는 그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기다림’인 것 같다.
 즉 무희 지망생은 자기 차례가 오면 오디션에 합격해, 연습도 해서 결국 무대에 올라 솟구쳐 오르는 무희가 되어 날개 짓을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어머니는 딸의 재능을 굳게 믿어 아마도 딸의 재능 덕에 먹고 사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 초조히 기다리는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드가 〈계단을 오르는 무희들〉(1886-88) 오르세 미술관, 파리




 드가의 다른 발레 작품인 〈계단을 오르는 무희들〉(1886-88)을 보면 옆으로 길게 펼쳐진 캔버스에 여러 무희들이 보인다. 연습실을 향해 급히 계단을 오르거나 자세를 가다듬으며 연습준비를 하는 무희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포현 되었다.
 이 그림은 드가의 예술세계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종합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품 속 무희들의 여러 포즈들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림의 가운데에서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계단을 오르고 있는 무희의 모습은 그의 작품들에서 처음 등장하는 포즈이다. 유화 작품임에도 파스텔을 사용한 듯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느낌의 붓 터치로 발레복을 표현했고 빛의 효과를 살린 묘사가 돋보인다.
 이렇게 연습에 참여하기 위해서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는 무희의 모습은 마치 스냅사진을 보는 듯 매우 순간적이다. 드가는 근대생활의 장면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모티브들을 통해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고 당시 사회의 새로운 면과 순간적인 모습을 묘사하고자 애쓴 흔적을 남긴 작품이라 평가된다.




드가 〈신발 끈을 묶는 무용수들〉(1886-90) 클리블랜드 미술관, 미국




 또 다른 발레 그림 〈신발 끈을 묶는 무용수들〉(1886-90)을 보면 마치 여러 무희들이 연습하기 위해 동시에 신발 끈을 묶는 것 같이 보이는데, 실은 같은 시간 대의 여러 무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본 한 무희의 여러 모습을 하나의 화면에 담아내 마치 여러 무희가 신발 끈을 동시에 매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은 한 무희를 여러 관점에서 보고 그린 것을 한 장에 표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즉 마치 카메라로 한순간 한순간을 촬영한 것을 나열한 것처럼 이러한 의도적인 구성은 토슈즈를 준비하는 무용수의 순간적인 모습을 전해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래서 그림이 가로로 훨씬 긴 그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림에서 여인이라기보다는 어린소녀에 가까운 무희는 정확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 제각각이다. 그녀가 입은 발레복은 얇은 여러 겹의 천으로 이루어진 듯하며 하늘하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드가의 진취적이고 대담한 면을 찾아볼 수 있다. 즉 다양한 관점에서 본 한 무희의 모습을 하나의 화면에 동시에 담아낸 것은 그의 진취적인 측면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동시대 화가들의 그림이 시간, 공간, 장소가 일치된 순간을 표현한다는 관념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진기가 나오면서 사진이 기존 회화가 지녔던 강력한 현실 재현성을 대체했기 때문에 회화는 사진기의 기능적인 면을 뛰어넘는 인간의 중요한 감각과 지각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를 테면 감각이나 지각 등의 기능적인 요소가 형태의 재현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상주의는 사물이 보이는 그대로의 사실 자체를 묘사하려 하지 않고, 동시에 느껴지는 감각 자체를 중시하였고, 오히려 사진기가 보여주었던 구도를 역으로 받아들여 화폭에 담기도 했다.
 드가는 마치 스냅 사진으로 찍은 것 같은 무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즐겨 그렸는데, 그것은 여성의 사적인 일상과 아름다운 신체의 곡선에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체의 선을 강조하는 발레는 인간의 순수한 미를 그리는 데 몰두한 드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소재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드가는 무대 뒤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고 무대 위의 화려한 순간 동작보다 실제 그들이 흘리는 땀의 노력을 보여주어 그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표현하여 알렸다. 그런 인간적인 면에서 드가는 매우 진취적이고 혁명적이어서 쾌락과 움직임을 동시에 표현해서 발레라는 화려한 율동이 탄생하기 이전의 참 모습을 표현하기에 열중한 것으로 보인다.

문국진 박사(1925~ )는 한국 최초 법의학자이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창립 멤버로 한국 법의학계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
2019.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