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대안공간,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송준호_주간한국 기자

흔히 ‘문화생활’을 말할 때 쉽게 떠오르는 곳은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과 같은 거대 문화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치러지는 공연이나 전시회는 비용 부담이나 장르의 특성상 일반 시민에게 거리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장르의 문화행사를 접할 수 있는 대안적인 문화공간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1993년 문을 연 두산아트센터를 비롯해 KT&G가 운영하는 홍대 앞 ‘상상마당’, 금호건설의 ‘크링(Kring)’ 등이 그것이다. 전시, 공연, 영화 등 다양한 종류의 문화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고 향유되는 이 복합문화공간들은 거대 문화공간이 품지 못하는 독특하고 대안적인 예술이 생산되고 향유되는 곳이다.
 한편 이 같이 기업이 운영하며 주도하는 문화공간과 달리, 예술가와 지역 주민이 한층 더 긴밀하고 능동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들도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시 창작공간’과 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인천아트플랫폼’, 그리고 경기도미술관이 운영하는 ‘경기창작센터’가 그런 곳이다. 흔히 ‘예술공장’으로 대표되는 이 대안공간들은 도심 속에서 버려지거나 낙후된 공간을 재활용해 창작공간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지역주민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예술과 지역이 공존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폐공간 활용한 창작공간의 시작

 주로 지자체가 주도하고 있는 이 창작공간 지원사업은 지난 1990년대 중반 폐교와 같은 유휴공간들이 생겨나면서 시작됐다. 당시 사업은 뉴욕의 폐교된 한 초등학교를 개보수해 현대예술 전시공간으로 만든 ‘P.S.1 현대미술센터(P.S.1 Contemporary Art Center)’의 사례를 참조한 것이다. 주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농어촌 지역에서 시작됐던 초기 창작공간들은 곧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입지적인 조건이나 임대료 문제로 예술가들이 얼마 못가 운영을 포기하는가 하면, 애당초 지역 정서를 고려하지 못해 지역 주민과 마찰을 겪는 일도 허다했다. 이에 따라 지역의 창작공간들은 상당수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도심 속 유휴공간을 활용한 창작공간화 작업도 꾸준히 이어졌다. 초기의 사업들은 주로 미술 분야에 집중되고 있는데,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열렸던 중외공원의 팔각정을 스튜디오로 개조한 것이 시작이다. 서울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농협 창고를 고쳐 2002년 창동스튜디오로, 서울시립미술관은 난지도의 침출수 처리장을 개조해 2006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로 재오픈했다. 특히 창동스튜디오는 주로 미술관의 부속기관 정도로 여겨졌던 그동안의 대안공간들과 달리, 별도의 프로그램 매니저와 레지던시 전문가가 상주하며 다양한 예술가들이 꾸준히 창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10년부터 레지던시 사업을 포함한 창작공간 지원사업을 지역문화재단에 맡기면서 지역의 특색을 살린 프로젝트형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기존의 폐교를 중심으로 하는 창작공간을 비롯해 재래시장이나 지역 공동체 등에서 다양한 주체들과 연계되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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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창작공간 프로젝트 ‘예술공장’


 버려진 공간의 재활용이라는 점과 예술을 통해 지역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런 성격을 잘 살린 장소특정적 프로그램들은 그동안의 대안적인 창작공간들이 갖추지 못했던 장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 이를 가장 활발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서울시 창작공간’이다.
 서울시 창작공간의 추진단장이었던 김윤환 씨는 최근 서울시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는 이 생활친화형 창작공간들을 ‘창작스튜디오 2.0’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갖추고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복합적 기능의 문화공간을 가리킨다. 즉 이 새로운 형태의 창작공간들은 단순히 예술가를 지원하는 차원이 아니라 지역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지역 활성화를 추구하고, 나아가 국제 교류의 허브 기능을 염두에 둔 차세대 복합문화공간이다. 이 같은 특성은 현재 창작공간사업단이 운영하고 있는 아홉 곳의 창작공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예술-사람-도시’를 잇겠다는 취지 아래 2009년부터 차례로 문을 연 창작공간들은 서울시의 컬처노믹스(Culturenomics) 정책에 따라 도심 재생의 측면과 예술가들의 창작 지원,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생활문화공간의 성격을 고루 가지고 있다.
 아홉 군데의 창작공간 중 제일 먼저 문을 연(2009년 6월) ‘서교예술실험센터’는 옛 서교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한 것으로, 홍대 앞의 다양한 문화생태계를 잇는 중심적인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있다. 같은 해 금천구 독산동의 한 인쇄공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금천예술공장’은 옛 창고를 대형 작업실로 성공적으로 변신시켜 창작자들로부터 ‘신개념 예술공장’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국내 최초의 공예 중심 아케이드인 ‘신당창작아케이드’는 쇠퇴일로에 있던 황학동 신당중앙시장의 지하상가 점포를 리모델링해, 다양한 공공예술을 통해 중앙시장을 다시 개성 넘치는 시장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또 시사편찬위원회가 1980년대부터 사용하던 곳을 전원형 문학촌으로 탈바꿈시킨 ‘연희문학창작촌’은 다양한 문학 이벤트와 문화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며 문인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창작욕과 문학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는 중이다.  




 │예술과 지역민이 만나는 새로운 방식

 지난해 초 문래동 철공소 거리의 옛 철재상가 자리에 전문창작공간으로 새롭게 건립된 ‘문래예술공장’은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문래창작촌’의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원래 홍대나 대학로 등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모이면서 문래창작촌이 형성됐고, 여기서 5분 거리에 문래예술공장이 개관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 특히 비언어 신체예술, 음악, 장소특정적 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유망 예술가들을 발굴, 육성하는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 ‘MAP(Mullae Arts Plus)’ 같은 기획 프로그램들은 문래동 일대를 국내외 예술 교류의 플랫폼이자 새로운 예술의 발신지로 만들고 있다.
 성북구 보건소가 이전하면서 생긴 유휴공간을 활용해 만든 ‘성북예술창작센터’는 보건소라는 콘셉트를 그대로 살려 푸드 테라피,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 프로그램의 초점을 치유와 재생에 맞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얼마 전에는 여름방학을 맞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무용·동작치료 프로그램 <무더위 테라피>를 진행하며, 신체를 통한 사회성 증진 프로그램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호응을 얻었다.
 한편 5월 개관해 3개월째가 된 서대문구의 ‘홍은예술창작센터’는 서부도로교통사업소 이전에 따라 비게 된 공간을 개조했다. 친환경 예술로서의 무용과 시각예술을 지원하고 있는 이곳은 지난 7월 말 입주 무용단체 ‘유빈댄스’, ‘서정춤세상’, ‘렉나드 댄스 프로젝트’, ‘미류무용단’, ‘빛소리친구들’이 입주기간동안 발전시킨 무용작품들을 지역민에게 공개하는 공연 <춤, 열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버려진 공간을 재활용해 생산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그 안에서 예술과 새로운 관객으로서의 지역민들이 만나는 대안공간들은 그 자체로 커뮤니티 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특히 무용과 같이 기존의 문화공간에서는 보다 쉽고 다양하게 접할 수 없었던 장르의 예술은 이 같은 지역민의 생활공간에서 관람과 체험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통해 저변을 넓히는 계기를 맞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8월 31일까지 성인을 위한 무용 체험 프로젝트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을 진행하며 일반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는 아예 본격 ‘커뮤니티 댄스’ 프로그램인 <몸, 좋다>를 8월 12일부터 두 달간 실시한다. 입주예술가들이 직접 강사로 나와 성별과 연령, 장애 유무를 가리지 않고 참가 대상에 맞춰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공연장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예술을 새롭게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
 각 지역에서 태동하고 있는 이 대안공간들은 기획․행정가의 의도에 따라 예술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입주 예술가가 직접 프로그램에 기여하게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나아가 대안공간에서 이뤄지는 창작 작업들이 시민사회의 요청과 공조에 따라 다른 형태의 문화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은 의미가 깊다. 이 새로운 창작공간들은 기존의 문화공간과는 달리 예술가와 지역 주민의 소통에 따라 작업이 진행되고, 또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지역 고유의 자산이 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주목할 만하다.

2011.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