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함부르크 현지취재_ 알랑 플라텔의 〈강타〉
새로운 패턴의 음악과 만난 아프리카 댄스
정다슬_<춤웹진> 유럽 통신원

 

 

 “CD는 어디서 구매할 수 있나요?” 공연이 끝난 후 끊임없이 오고가는 질문으로 로비를 꽉 매운 관객들 덕에 공연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5월 29일 독일 함부르크의 캄프나겔에서 공연된 알랑 플라텔의 작품 〈COUP FATAL(강타)〉가 끝난 후였다.
 ‘강타’라는 의미의 ‘Coup Fatal’은 쎄드라베 발레를 이끄는 벨기에 출신의 안무가 알랑 플라텔이 만들어 낸 화려한 비주얼 이미지와 벨기에 작곡가 Fabrizio Cassol, 콩고 출신의 카운터 테너 Segre Kakudji, 지휘자 Rodriguez Vangama 가 만들어 낸 경쾌하고도 슬픈 바로크 음악이 만나 충돌하는 작품이다.
 알랑 플라텔은 <강타>의 공연 프로그램에서 안무가가 아닌 예술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의 이전 작업들과 닮아 있으면서도 조금은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페라나 클래식 음악과 함께 날카로운 사회 인식을 담아내는 그의 작업 형태는 그대로였지만 기괴하고 거칠게 읽히던 그만의 움직임 언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알랑 플라텔의 초점이 춤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음악으로 치우친 것이 더욱 확실해보였다.

 

 



 빈 탄피를 엮어 만들어진 발(簾)이 무대 뒤에서 반짝거리며 빛난다. 콩고 출신의 조각가 Freddy Tsimb의 이 오브제는 화려한 외면과 상이하게 가까이 다가가면 차갑고 텅 비어있는 서늘함을 보여주며 끊임없는 내전의 폭력과 파괴로 피폐해진 콩고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앞에 선 총 13명의 남성 공연자들은 무대를 휘저으며 그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에너지를 그대로 발산한다.
 <강타>는 어쩌면 무용 공연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주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총 12곡의 음악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댄스 시어터와 뮤직 시어터로 그 장르가 분리되어 있었으나 그것은 마치 한 장의 새로운 CD를 듣는 것 같았다. 아프리카의 전통 악기와 전자기타, 신시사이저가 연주하는 헨델, 비발디, 바흐, 몬테베르티의 음악은 익숙하지 않은 혼합물을 빚어낸다. 그것은 단순히 클래식 음악을 다른 악기들로 연주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아프리카 특유의 추임새를 넣고 엑센트의 위치를 변화시킴으로서 기존의 음악을 재해석하고 거기에 아프리카 특유의 느낌을 더하여 새로운 패턴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무대 가운데에서는 전자기타 연주자의 지휘 아래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음악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중간 중간 각 연주자들은 솔로 연주 부분이나 짧은 춤을 선보였는데, 전통 악기 중에서도 간단한 원통형의 악기는 마치 디제이가 턴테이블을 돌리는 듯 지직거리는 소리가 일품이었다. 특히 작품이 절정에 치달으며 연주되는 니나 시몬의 “To be young, gifted and black”은 당시 곡이 등장함과 동시에 흑인 민권 운동 앤섬으로 등극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곡이기도하다. 낙관주의와 가능성을 희망적으로 표현한 이 음악은 리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공연자들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였다.

 



 작품 초중반부에는 풍성한 음악이 메인이 되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면 작품이 후반부로 가면서는 춤이 주가 되는 볼거리가 등장하였다. 공연자들은 획일화된 슈트를 벗어던지고 화려하고 위트 있는 의상과 함께 무대 위를 누빈다. 콩고의 근위병들과 잔뜩 멋을 부린 일명 ‘콩고 스타일 댄디보이’들은 그들의 매너리즘에 빠진 행동들에서 영감을 받아 유쾌한 장면으로 승화시켜냈다. 전체 작품 중 춤의 비중이 가장 많으며, 잘고 빠른 박자에 맞추어 흔들리는 골반과 끊임없이 구르는 발에서는 강한 파동이 전해졌다.
 아프리카 댄스는 전통적으로 사냥, 결혼, 장례 의식 등에서 이용되며 공동체 의식을 고양하지만 사실 그 주목적은 유흥, 즉 즐기는 욕구를 충족하는 데에 있다. 마치 트랜스 상태에 도달한 듯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움직임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야생의 거칠음과 순수를 표출한다. 그들의 삶과 그대로 맞닿아 있는 문화이자 생활의 일부였던 춤과 음악이 알랑 플라텔의 손을 거쳐 유흥이 아닌 공연의 형식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관객의 흥을 돋우는 장면은 사실상 전쟁과 파괴로 점점 피폐해져가는 콩고인들의 문화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강타>는 콩고의 일상에 스며들어 버린 고통과 잔학한 행위에 반대하고 콩코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바로크 음악을 이용해 찬사를 보낸다.
 베르디의 Tocanna, 헨델의 Presti omai와Stille amare, 비발디의 Vedro와 Barbaro, 바흐의 Prélude 로 이어지는 웅장한 사운드 트랙은 작품 전반에 걸쳐 모순된 아름다움과 활력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 곡인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아리아 <울게하소서>가 연주될 때에야 비로소 관객 앞에서 모순을 벗고 여전히 벌겋고 흥건한 상처를 그대로 드러낸다. 작품을 힘 있게 연결시키는 카운트 테너Segre Kakudji 의 풍성한 가성과 탁월한 연기가 그 반전에 힘을 실어 주었다.

 



 알랑 플라텔은 1984년 창단한 쎄드라베 발레를 통해 안느 테레사 케이스르마커나 빔 반데키부스 등 여느 벨기에의 안무가들과는 다른 공연 형태를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예로 그의 작품은 무용수를 포함하지만 주로 서커스 아티스트나 연기자, 오페라 가수들을 늘 무대의 중심에 두었고, 뮤지션들은 춤을 추고 무용수들은 노래를 하는 형태를 고수하였다. 또한 그의 전작인 〈lets op Bach〉, 〈Wolf〉, 〈vsprs〉(저녁기도)> 등 다수의 작품에서도 라이브 음악 연주를 중요한 요소로 내세웠는데 그 음악들은 외로운 영혼과 마음을 달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 초연되어 현재까지 유럽 전역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강타>는 음악의 역할이 –현재까지 그의 작품 중에서- 최대치로 발현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쎄드라베 발레라는 무용단의 이름이 의미하는 ‘C 부터 B’ 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무용단의 목표는 전통주의와 형식주의에 대한 도전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알랑 플라텔은 그 스스로도 정형외과 전문의 그의 전직 - 에서 안무가로, 다시 안무가에서 연출가로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아닐까. 알랑 플라텔의 현실에 입각하여 사실주의에 충실하면서도 꿈을 꾸는 듯 한 무대를 창출해 내는 작업 방식은 <강타>에서도 ‘통했다’.

2015.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