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이순열

2013. 05.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홀로 깨어있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별들이 성성(惺惺)하게 반짝이고 있는 적적(寂寂)한 밤에 홀로 뜰을 거니는 것 또한 황홀한 일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길 때마다 가슴 가득히 차오른 적막의 숨결이 온 몸을 감싸는 그 전율을 한 밤중이 아니라면 언제 맛보랴. 밤 하늘에 총총한 저 별들처럼 빛나는 것...

2013봄페스티벌 단상 : 윌리엄 포사이드의 <헤테로토피아>

조성주

2013. 05.

 어떤 예술가들의 정신세계나 철학은 특별히 더욱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ythe)는 그런 대상들 중 1순위이다. 혁신과 실험을 멈추지 않는 21세기 예술의 최전방에 선 거장 포사이드가 드러내는 신체의 운영방식과 공연 형식의 면면을 살피자면 그가 온갖 종류의 장르적 규범들을 얼마나 거침없이 실험의 대상으로...

뜰을 거닐면서(11)

이순열

2013. 04..

 “이 지상에 빠리가 없다면?”  어느 기자가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에게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이랬다.  “하나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Faut-en batir un.)     빠리, 그건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바로 너의 것이지.   ...

뜰을 거닐면서(10)

이순열 _ 춤비평

2013. 02.

 ‘손에서 책을 떼어 놓지 않다.’(手不釋卷) — 여몽이 별안간 달라진 모습으로 노숙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지난 번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 수불석권의 마력 때문이었다. 수불석권의 표본 같은 존재라면, 우선 새뮤얼 존슨이 떠오른다. 그가 편찬한 영어사전 (1755)은 온 세계를 통틀어 사전의 역사상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룩...

뜰을 거닐면서(9)

이순열_본 협회 공동대표

2012. 12.

Tabla Rasa  연일 눈이 내린데다 한파가 몰아닥쳐 우리 집 뜰에도, 앞산에도 온 천지를 뒤덮은 눈이 수북이 쌓여있다. 눈은 tabla rasa, 모든 것이 지워진 백지처럼 언제나 황홀하다. 그러나 조만간 그 눈은 녹고 말 것이다.  백지는 아름답다. 그렇다 해서 어찌 영원히 백지인 채 남아있기를 바라랴. 백지는 모든 가능성의 무덤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