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의 미학
도서 소개
이 책의 제목대로 한성준 바탕- 한영숙 류- 이애주 맥으로 이어지는 승무의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춤의 선구 한성준, 우리춤의 정수 승무, 한영숙 류-이애주 맥 승무 무보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승무 무보는 한영숙 선생이 실제 춤을 추시고 이애주 선생이 기록해서 만든 무보를 다시 정리한 것으로 그동안 이애주 선생이 아끼던 귀중한 자료이다.
저자 소개
(李愛珠. 1947. 10. 17.~ 2021. 5. 10.)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 서울대학교 교수, 명예교수
이애주 선생은 어린 시절 ‘이왕직 아악부(국립국악원의 전신)’의 수장(首長) 김보남으로부터 춤을 익혔다.
서울대학교 진학 후‘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보유자인 벽사(碧史) 한영숙을 사사(師事)했으며, 1996년에는 스승에 이어 2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87년 6월항쟁의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시대를 가르는 춤을 춤으로써 춤의 사회적 과제를 부각시켰다.
이후 전통춤 정립과 후진 교육에 매진하는 한편, 대학교 교수,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2021년 이애주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같은 해 5월 10일 타계했다.
고구려 춤 연구
도서 소개
춤꾼 이애주의 유작 《고구려 춤 연구 - 고구려 무덤벽화에 나타난 춤의 유형과 상징체계》는 한국무용사나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사에서 하나의 획기가 되는 역저이다.
이애주는 이 책에서 고분벽화 중 고구려 춤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20여개의 벽화를 분석하여 고구려 춤의 구조와 유형 등 춤의 기능적 미학을 파악하고, 나아가 그 속에 내재된 고구려인의 미의식과 상징체계를 밝혀내려고 하였다.
이애주는 ‘승무(僧舞)를 비롯한 한국 전통춤의 명인일 뿐 아니라, ‘바람맞이’춤으로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한 신명나는 춤꾼이었다. 그의 춤길은 크게 삼단계로 나눌수 있는데, 어릴 때부터 추어온 궁중무ㆍ승무 등 단아한 한국 전통춤길, 젊은 시절 마당판의 미얄할미나 거리에서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한 ‘바람맞이’등 신명나는 춤길, 고구려의 옛땅이었던 만주와 몽골 초원의 거친 바람을 맞으며 한국 춤의 원형 찾기에 나선 탐구의 춤길이 그것이다.
저자 소개
(李愛珠. 1947. 10. 17.~ 2021. 5. 10.)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 서울대학교 교수, 명예교수
이애주 선생은 어린 시절 ‘이왕직 아악부(국립국악원의 전신)’의 수장(首長) 김보남으로부터 춤을 익혔다.
서울대학교 진학 후‘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보유자인 벽사(碧史) 한영숙을 사사(師事)했으며, 1996년에는 스승에 이어 2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87년 6월항쟁의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시대를 가르는 춤을 춤으로써 춤의 사회적 과제를 부각시켰다.
이후 전통춤 정립과 후진 교육에 매진하는 한편, 대학교 교수,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2021년 이애주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같은 해 5월 10일 타계했다.
춤꾼은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
유고를 정리하다 보니 하나는 이애주님이 어릴 적 춤에 입문할 당시 최초의 스승이었던 김보남 선생님의 관한 글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문과로 편입학 후 스승으로 모신 정병욱 교수님에 관한 글이었다. 무엇보다 1987년 6월 항쟁의 한복판에서 시대의 질곡을 가르는 한판춤을 추고 난 후 그 처절한 소회를 피로서 써낸 <나의 춤, 나의 칼>, 더불어 핍진한 우정으로 교류했던 동년배 예술인들 (오윤, 김영수, 김용태)에 관련한 그림과 글 등을 첨가하여 이 책에 소중히 담아 놓았다.
임진택 Ⅰ 판소리 명창ㆍ이애주문화재단 상임이사
이 책의 내용은 원래 2008년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정보관이 설계하여 추진한 <한국근현대예술 구술사> 프로젝트의 결과물에 바탕하고 있다. 그 해<한국 근현대예술 구술사>는 문학, 시각예술, 무용을 중심으로 생애사와 주제사를 병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이에 따라 무용분과는 ‘해방 이후의 근현대 무용교육과 무용창작’을 주제로 설정한바, 이는 곧 해방 이후 한국무용사의 중요 변수가 무용교육과 무용 창작이었다고 상정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애주님이 <한국 근현대예술 구술사> 프로젝트의 1차 년도 구술 대상자에 포함된 데는 그가 서울대학교 사범대 체육과에서 무용전공 과정을 마친 후 다시 문리대 국문과로 편입하여 학어블 연장한 독특한 학력에, 무용계 창작풍토와는 다른 사회성 짙은 춤판을 벌인 ‘시대의 춤꾼’이라는 점, 즉 그의 무용교육 배경과 창작활동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해리 Ⅰ 구술 채록 및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