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공공무용단을 묻는다 2
예술감독이 있다지만 예술 활동은 얼마나 가능한가?
  • 일    시
    2024년 6월 20일(목) 오후 10시
  • 장    소
    비대면 화상 회의
  • 참석자
    김채현 장광열 권옥희 김혜라 송성아 한석진

- 국립, 시립, 도립 차원의 무용단들을 공립무용단이라고들 하며, 춤비협과 <춤웹진>에서는 공공무용단으로 지칭해왔습니다. 공공무용단은 그 여건에서 민간 또는 개인 춤 활동 주체들에 비하여 월등히 우월한 위치에 있습니다. 또한 설립 취지에서 공공성을 달성해야 한다는 당연한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공공무용단의 활동이 월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져갑니다. 한마디로 공공무용단의 쇄신을 요구하는 여론이 잦아지는 춤계 요망을 주시하면서, 현장에서 관찰한 바를 토대로 공공무용단의 안팎을 진단하는 방담을 진행하겠습니다. 이 방담에서 제기되는 내용을 간추려서 몇 회에 걸쳐 <춤웹진>에 게재합니다. (<춤웹진> 지난 7월호에 이어 이번 호에는 공공무용단의 예술감독과 연관된 방담 내용을 게재한다 – 편집자 주.)

- 단적으로 말해서 2000년대 이후 또는 2010년대 이후 지난 10~20년 정도 예술감독의 권한 자체가 아주 약화한 것 같아요. 권한이 왜 약화가 됐을까 보면, 국립 국공립 기관의 회계 연도 규정이 그 이전부터 발목을 잡아왔지 않는가 해요. 이보다는 노조가 2000년대 중반부터 약 20년간 점점 더 뿌리를 내리는 것과 아울러 문화부나 지자체 등 감독 기관의 입김 자체가 더 세졌다는 판단이 들어요. 예술감독의 권한 자체가 위축되면, 아무리 능력과 재능이 있는 감독이어도 창작물을 제대로 낼 수 있겠나 하는 의문부터 들기 마련입니다. 실제 춤현장에서 주목받는 작품으로 조명받는 실적이 공공무용단에서 저조하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감독의 역량이 핵심이겠고, 그런 전제 아래 공공무용단에서 예술감독이 처한 안팎의 현실 여건부터 짚어보도록 하지요.


공공무용단 노조, 무엇이 문제인가

- 지금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예술감독의 역할이 굉장히 약화한 이유 중 하나는 노조가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요구 사항을 내세웠고, 소위 책임 기관인 극장이나 예술감독이 타협해선 안 되는 점에 타협하면서 예술감독의 위상과 힘이 약화됐어요. 또 하나는 책임기관 형태를 띠는 극장들에서 스태프들의 파워가 지나치게 강화되면서 예술감독의 위상이 약화된 면들이 있었어요. 국립무용단의 경우, 예술감독의 판단에 준해 공연작이 정해지기보다 극장의 기획팀에 의해서 또는 극장장에 의해서 공연작과 외부 안무가들이 정해진다고 해요. 그리고 극장 직원들의 업무가 전문화되면서 가령 프로듀서 역할 면에서 예술감독의 직무를 침범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이러한 것들이 예술감독의 역할을 위축시키는 큰 요인이 된 것 같아요.

- 이와 함께 심각하게 생각할 것으로서 예술감독이 안무자나 작품을 선정해야 하는데, 지금은 노조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와 모든 것들을 협의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경우 예술감독이 단원들의 노조로 이루어진 운영위원회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걸 중재하고 견제해야 할 극장마저 노조에 대해 강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는 말이 들리고요.

- 원론적으로 말하면 예술감독은 예술적 측면에서만큼은 전권(全權)을 행사하고, 또 그 만큼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그런데 들리는 여론이나 소문을 모아보면 예술적 측면에서 예술감독이 노조와 또는 극장 측과 타협해야 한다는 거죠. 방금 말씀에 비추어서는 심지어 예술감독이 조직에 의해 휘둘린다는 인상이 강하게 듭니다. 그 점에서 전권을 보장할 장치가 강조돼야 할 것입니다. 물론 예술감독이 극장 내부 조직이나 사람들의 의견 내지는 여론을 수렴해야 하겠죠. 그러나 어떤 합리적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절차를 통해서 예술감독이 전권을 휘두를 방법이 있는지 내부 운영 규정도 짚어봐야겠습니다.

- 그래서 국립무용단이 속한 ‘국립중앙극장(국립극장) 세부 단체 운영 규정’을 대표적 예로 살펴보았습니다. 이 운영 규정을 봐도 원론만 열거되어 있어서 운영 규정만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기 힘듭니다. 국립중앙극장 세부 단체 운영 규정 11조에는 예술감독 채용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이고 예술감독의 예술적 권한에 관한 규정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술감독의 예술적 권한을 명시한 규정이나 내규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국립발레단 정관, 국립현대무용단의 정관도 대동소이합니다. 예술감독의 예술적 의무와 권한을 명시한 조항이 공공무용단의 운영 규정이나 정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설령 그것이 있다 한들 외부에서는 그런 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큰 문제로 보입니다. 다만 불투명한 상태에서도 합리적 관행이나 불문율이 정착되어 양질의 공연 활동으로 연결되고 공공성에 충실해왔다면야, 왜 문제 삼겠습니까. 다시 말하자면, 운영 규정이 문제라기보다는 운영 규정을 구체화해서 활동하는 내용이 중요할 겁니다.

- 운영 규정은 원칙을 말하므로 운영 규정 세부 조항들에서 문제점을 찾아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운영 규정 자체가 원천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물어봐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예술감독의 예술적 권한에 관한 규정이 없는 식으로 운영 규정이 아주 느슨해서 예술감독의 예술적 권한이 모호하고 심지어 예술적 권한을 인정하지 않아도 무방한 현실을 운영 규정이 버젓이 조장하고 있다는 판단도 가능하겠습니다. 여기서 보듯이, 예술감독을 임명해놓고 예술적 권한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 공공무용단의 현실 아닐까요? 그러려면 예술감독을 왜 선임하여 정기 급여를 주는가요? 어쩌면 예술감독은 공공극장을 운영하는 데 있어 장식에 불과한 허수아비가 아닐까 합니다.

- 이런 이유에서, 운영 규정을 원천적으로 손질하는 일이 절실합니다. 향후 공공무용단이 속한 공공극장들이 쇄신된 운영 규정을 갖춰야 한다고 보며, 이런 면에서 국회의 입법 활동을 추진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 해외 공공 무용단들을 보면, 국가 지원을 받고 운영되는 단체들에 노조가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와 노조 역할이 굉장히 다르죠. 우리나라 예술단체 노조는 대개 공공운수노조의 가맹 단체입니다. 일반 노동자들의 노조 방식에 의해서 운영되는데, 무리가 있어 보여요. 외국은 무용수들의 대표가 자동으로 노조의 대표가 되고, 협의할 때 예술감독과 하는 게 아닙니다. 급여를 주거나 운영하는 기관과 협의하는 거죠. 그리고 극장 구내식당의 음식의 질이 단원의 건강을 해칠 수 있을 경우, 체력 보완을 위해 헬스를 하는데 그 기구가 낡았다든지, 크리스마스나 일요일에 공연할 때 평일보다 수당을 올려달라든지, 이동할 때 편한 자리가 있는 버스 대절해달라는 등등 좋은 공연을 하기 위한 체력 관리에 맞춰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술감독의 권한을 인정하고 협조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요. 이것이 우리나라와 큰 차이점이 아닌가 합니다.

- 해외 공공무용단의 활동을 속속들이 아는 처지는 아니지만, 지금 말씀은 그들이 예술적 권한을 침해하는 일은 자제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 비예술적 측면에서 예술감독이 적극 협의하는 일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술적 측면에서 예술감독의 권한을 침범하거나 뭉개는 일은 있어선 안 되겠지요. 예술감독들도 자신의 직을 걸고 이런 권한 침범 같은 비정상을 용납해선 안 될 것입니다.


공공무용단 행정 조직, 무엇이 문제인가

- 예술감독은 길어야 3년 만에 바뀌지만, 공공무용단 내에는 행정 등 팀장이나 바뀌지 않는 조직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의 입김이 예술감독보다 세죠. 이것이 부인하지 못할 그리고 웃픈 현실입니다. 방금 공공극장 운영에서 예술감독이 허수아비가 아닐까 했듯이 말입니다.

- 노조나 행정, 기획 조직이 예술감독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지경입니다. 예술감독은 허수아비라는 자조 섞인 표현을 공공무용단 조직이나 극장, 그리고 예술감독 자신이 새겨들어야 하겠습니다.

- 언급되고 있는 노조가 예술활동에 제약이 된다는 상황은 지나간 얘기인 것 같습니다. 노조 설립 초기엔 운영 미숙과 관계 미숙으로 인해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었지만 현재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예술감독이 자유롭게 독립무용가로 작업하다가 시스템안에 들어가 작업 해야하는 것에 적응의 어려움이 노조를 과대하게 느끼도록 하는 요인일 수 있죠.

- 노조가 어느 정도 제약을 가하느냐 하는 점에 대해 외부에서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감독들이 토로하는 바를 들어보면 심각하다는 점이 느껴집니다. 다만 예술감독들 중에 혹시 면피하기 위해 노조의 문제점을 과장되게 말하는 점은 없는지 신중하게 새겨볼 점은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2010년 이후 국공립무용단의 정체기로 평가한 부분은 상당히 타당해 보입니다. 그 저변에는 국공립무용단의 수적 팽창이라는 변화가 주요하게 있을 것이고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국공립무용단의 체제가 어느 정도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술감독의 독주 시대를 넘어, 노조 설립을 비롯하여 행정직원들의 보강과 더불어 이 모든 체제를 감독할 극장과 문화부 등 무용단 운영과 관련하여 여러 관계가 생겨났다고 볼 수 있겠지요.

- 이런 변화 속에서 예전을 기준으로 예술감독의 권한이 축소됐고, 그것은 무조건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시대적 상황 변화를 인지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역으로 본다면 이전의 예술감독의 권한이 체제가 단순함으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과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때와 비교해서 지금의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2010년 이후 좋은 작품 창작의 고갈 문제와 각 무용단의 성격과 정체성에 적합한 활동의 문제는 이런 변화된 무용단의 환경 속에서 다른 관계들과의 역관계를 인식하고 그 안에 만들어나가야 하는 보다 복잡한 함수 관계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저는 가장 큰 문제는 예술감독 인선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아직도 예술감독에 대한 현장의 기대와 인식은 상당히 높은 상황에서, 임명된 후 예술감독이 감독직을 하는 3년의 시간 동안에 밝혀진 역량 부족 문제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이는 코로나 이후 현장에서 문제로 지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직무수행에 대한 공개된 계획서 하나 없이 낙점되는 식으로 밀실에서 결정된 예술감독에 대한 신뢰와 응원이 과연 생길 수 있을까요? 이상하게도 이런 과정에서 선임된 예술감독 스스로도 역량 발휘를 하기 어려운 어떤 심리적 신드롬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 세월이 흐르면서 극장이나 공공무용단의 체제가 변한다는 점도 고려할 사항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술감독의 역량이 가장 근본이라는 점은 다시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술감독의 역량은 기본

- 국립현대무용단이나 국립무용단을 보면, 정기공연 말고도 조안무를 너무 많이 써요. 그 이유가 애매하나 아무튼 예술감독 본인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국립무용단은 그나마 예전에 비해 젊은 안무자들이 있어서 기대했었는데 작품의 질과 양상 면에서 더 후퇴한 듯합니다. 국립현대무용단 작품들은 가령 즉흥춤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모호한 점이 있고요. 지역 무용단들은 무용극 위주의 공연, 이벤트가 많죠.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과제가 쌓이고 있습니다.

- 조안무가 많은 이유는 혹시 노조의 요구 때문이 아닐까요. 예술감독이 자기 뜻대로 못 한다는 말도 있어요. 노조에서 예를 들어 이번에 조안무를 누가 할지, 심지어 캐스팅까지 간여한다고 합니다.

- 저로서 덧붙이면, 조안무를 기용하는 또 다른 이유로서 예술감독이 부족한 자신의 역량을 커버하려는 속마음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 예술감독들과 말을 나눠보면, 단원들이 타 장르 무용 예컨대 현대무용, 한국무용과 접목하려 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요. 고령의 단원들은 더더욱 새로운 안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무대 뒷전에 서야 하는데 그럼 노조가 반발하는 거죠. 그러니까 파격적인 작품을 하고 싶어도 단원들과 얘기가 잘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때문에 예술감독의 힘은 더 약화되고, 어려워지는 거죠.

- 지역의 공공무용단에서도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아요. 선임과 관련해서, 말도 안 되는 식으로 예술감독 뽑을 때 작품을 만들어보게 하는 등 현실에 맞지 않고 비효율적인 형태들을 보이고 있어요. 공공무용단의 공연을 늘리려면 지역 공연을 많이 할 필요가 있는데, 그 지역 간에 교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텐데 노력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 지역의 공공무용단이 안은 기본 문제 중 하나는 그 작품에 대한 평가나 비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입니다. 작품에 대한 평가나 운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공공무용단 안팎에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심지어는 평론가들에게 프레스 티켓을 보내지도 않는 일부 지역 공공무용단의 몰상식도 그렇게 몰상식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 지역의 공공무용단에서도 매너리즘은 매우 심각해 보입니다.

- 공공무용단 어디에서나 내부 운영위가 존재하겠는데, 존재하면 뭐합니까. 지역 원로가 맡는다든지 또 그 원로가 공공무용단 운영과 직간접적으로 이해 충돌 소지가 있는 분이라든지 사정으로 인해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지요. 지역 공공무용단 예술감독이 지역 저명 정치인과 연계되었다는 소문이 과거에 파다하였고, 그러다 보니 어느 지역 문화회관에서는 예술감독을 통제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는 지경이라고들 합니다. 그렇게 연계되어 양질의 공연과 활동을 낸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양해할 바도 얼마간 있을지 모르겠군요. 이런 상태에서 예술감독이 역량이 부족해도 주변에서 별 말도 못한다고 합니다. 지역 춤현장은 지금도 문드러져 간다고 할까 그런 실정입니다. 이런 실정에서 제대로 열심히 하려는 지역 공공무용단마저 의지가 꺾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한국춤비평가협회 차원에서 기대하자면 지역 공공무용단 내실화 배가 운동이라 할까 그런 활동이 절실합니다.

- 지역의 어느 공공무용단을 보면 단원들의 노쇠 추세가 뚜렷한데, 공연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상임 젊은 단원이고 그들이 공연에서 주된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노조가 이런 폐단을 더 부추기지요. 한편으로 지역의 열악한 춤판과 상황 속에서도 지역 춤판의 활성화라든지 축제를 마련해서 지역사회를 위한 노력을 그나마 충실하게 하려고 다각적으로 고민하는 공공무용단도 있습니다.


우려 낳는 외부 입김과 예술감독 선임

- 공공무용단에서 정책의 입김이 지나치다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정부 기조가 로컬리티, 지역 상생이잖아요. 국립현대무용단의 1년 공연 리스트에서 지역에 있는 몇 팀을 선정해서 함께 공연을 하게 돼 있어요. 그런 식으로 정부 정책 방향에 호응한 공연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공연이 사전에 얼마나 협의되었는지 공연은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무용단의 자발적인 예술적 동기가 핵심을 이루어야 그런 공연도 결실을 맺을 거라 봅니다.

- 공공무용단 입장에서는 정책의 입김을 외면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할 겁니다. 예산과 인사권을 쥐고 있는 쪽에서 정책을 강조하며 협력을 요청할 경우, 부당하다면 물리칠 예술감독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 비예술적 측면에서 문화체육관광부 혹은 그 너머의 어떤 힘이 작동하니까 덩달아 노조의 힘마저 강화되어 비예술적 측면에서 관여하고, 그것이 급기야는 예술감독의 예술적 권한까지도 다 갉아먹은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공공무용단 내에서 예술적 측면에서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문제는 규정이 모호하다는 점과 연관이 깊을 것입니다.

- 노조 때문인지 몰라도, 공공무용단 예술감독 재임 기간도 점차 짧아지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예술감독의 단명이 전반적 추세로 굳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안정적 운영은 고사하고 예술적 전망마저 찾아보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재임 기간이 긴 게 원칙적으로 좋은가 하는 건 단언할 수 없지요. 그 문제를 떠나서 어쨌든 예술감독의 재임 기간은 점차 짧아지고, 게다가 새로 예술감독을 선임하는 공공무용단들이 자꾸 나타나는데, A단체에서 예술감독을 한 사람이 B 단체에 지원을 하고, 아니면 C 단체에 지원하는 식으로 반복해서 예술감독을 맡는 회전문 현상이 일어납니다. 예술감독의 철새 현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쳇바퀴 돌 듯이 비슷한 사람들이 자꾸 예술감독을 맡게 되므로, 새로운 피 내지는 신진이 진입할 수 있는 틈 자체는 상당히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술감독의 권한 자체가 약화되니까 예술감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인원수도 많아지기보다는 혹시 줄어들지 않겠는가 싶어요. 춤계 내에서도 관심을 갖는 사람만 갖는 식으로 공공무용단 예술감독 지망에 대해 관심도 자체가 형편 없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해요. 어느 분이 어느 공공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소식도 이제는 식상해졌고 ‘또 그렇군’ 하는 반응도 흔한 줄로 압니다. 지금 우리 춤계는 예술감독의 실종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 예술감독이 예술에 중심을 두고 정치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적이어야 하는데, 인선과정의 역관계를 알다 보니 그럴 수 없어서 그런지 많이 의식하는 것을 봅니다. 정책은 큰 방향성일 뿐 그것을 적용하는 것은 현장을 아는 예술감독이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판단해야 하는데 현장에 대한 애정과 판단보다는 굉장히 관의 입장에 쏠려 있는 것을 많이 봅니다. 심지어 단체의 역사성에 대한 공부도 모자란 듯 보여요. 이미 논의가 끝난 사안을 본인이 인지하지 못해서 그런지 또 소모적인 이슈를 던지기도 합니다. 물론 설득력도 없지요.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공공무용단의 예술감독이 임기 시작 전에 공공무용단이 무엇인지, 이 단체의 역사는 어땠는지 등을 공부하고 일을 시작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예술감독에게 전권을 주는 건 매우 위험하지요.

- 예술감독 선임에서 회전문 인사 풍조는 큰 문제입니다. 물론 경험이 주는 여러 긍정적인 역할도 있지만, 새로운 세대나 재능 있는 사람들이 진입할 어떤 문이 되려 좁아진다는 거죠. 선정 과정에서 새 인물이 들어올 수 있는 별도의 문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엇비슷한 사람만 뽑는 양상을 자주 접하다 보면 공공무용단에서 물이 고여서 썩고 있는 중이라는 진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주요 공공무용단의 예술감독 선임과 관련 가장 큰 문제로 두어 가지를 꼽을 수 있어요. 첫째는 대선이나 총선, 특히 지자체장 선거 등 선거의 결과에 따라 예술감독이 선임되는 경우죠. 선임하는 감독의 예술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거를 도운 사람이냐 아니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거죠. 지역에서는 비일비재합니다. 둘째는 공공 단체에서 해당 극장, 문화예술회관 등에 의해 뽑히는 것보단 그보다 모처에서 내정 명단이 내려온다는 말도 들립니다. 국립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발레단에서 예술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이사회가 있는데, 이사회의 결정이 중요할까요? 춤현장 전문가들로 선정위를 구성하여 무용단 자체 내에서 선임해야 합니다. 정치적인 동향에 영향을 받고,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는 건 시정되어야 합니다. 적정 인물 조사를 해서 단체 내부에서 선임해야 하는데 그게 안 이뤄지는 거죠. 그러니까 모처에서 내정 명단이 내려오고 그런 과정에서 선임이 늦어지고, 이런 소문이 파다한 경우도 있어요. 정치적인 것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어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할 필요가 있고요. 그다음에 선임과 관련해서 공론화시킬 것은 예술감독을 조기 선임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에 국립현대무용단도 마찬가지로 임기 다 끝나고 난 후 예술감독을 뽑아요. 외국처럼 임기 1년 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도 6개월 전에는 선임해서 준비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좋은 작품이 안 나오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3년 임기를 받았지만, 너무 늦게 선임되다 보니 신임 감독이 염두에 둔 대로 할 수 있는 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은 거죠. 그래서 선임 시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어요.

- 춤계에서 몇몇 예술감독을 둘러싸고 떠도는 낙하산 인사가 빈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기 선임도 매우 필요하지요.

- 단원이 바라보는 예술감독의 역할과 위상, 공공무용단과 감독기관의 관계를 말해보면, 외국처럼 공공무용단의 이사회라든지 무용단 안에 있는 기구에 소속된 전문가에 의해 예술감독을 선임해야만 예술감독의 역할이 커질 거라고 봅니다. 낙하산 식으로 선임됐다고 하면, 단원들이 인정하지 않는 거죠. 국립발레단도 분명히 이사회가 있어요. 이사회를 잘 구성해서 파리오페라 발레단처럼 이사회에서 예술감독을 선임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국립발레단의 이사회를 문화부가 구성하고, 이사회에서는 발레단 단장 후보조차 추천을 못 해요. 문화부가 나서서 적임자를 뽑고, 높은 데서 지침을 받아서 선임하는 구조입니다. 국립현대무용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국립현대무용단 이사회에는 기업인들 한두 사람 빼면 전부 다 무용가들입니다. 이사회에서 사실은 목소리를 내줘야 합니다. 무용단 예술감독을 왜 이사회에서 뽑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내야 해요. 말하자면 어떤 면에서 직무유기 아닙니까. 명예직이 아니잖아요. 그 역할에 맞게끔 역할을 해야죠. 전문가들이 예술감독을 선임하면, 예술감독의 발언권도 강해지고 감독 기관도 무시하지 못할 거예요. 이런 게 개선되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될 겁니다.

- 공공무용단이 제 기능을 못 하면, 다른 지역에서 공공무용단이 만들어지지 못하도록 하는 악영향을 미칠 겁니다. 무용인들의 일자리 창출이라든지 또 지역 무용계 활성화 측면에서 공공무용단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게 막히는 악순환이 계속 생길 수 있죠. 무용인들 스스로 공공무용단이 제 기능을 못 하는 문제에 관해 관심을 두고, 내부적으로 타파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여기서 말하는 과제들이 무용계의 생태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무용인들이 재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무용단만이 절대 유일한 방안은 아닐 것

- 이와 결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게 1980년대에 프랑스 정부가 춤을 진흥하기 위해 춤의집을 만든다든지 여러 가지 정책을 썼죠. 그중 중요한 건 전국의 여러 거점에 국립안무센터를 만든 거였거든요.

- 프랑스의 국립무용단 체제로 운영되는 안무센터와 연계된 게 29개예요.

- 안무센터의 구조를 더 알 필요는 있겠습니다만, 무용인들이 주체가 되어 예술적 창의성을 기본으로 사업을 짜가는 방식이죠. 우리 춤계에 그만한 역량이 없느냐? 저는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런 역량을 발휘할 만한 토대를 정부가 제대로 만들 줄 모른다는 거죠. 정부 그리고 지자체가 정신차려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춤과 무용인을 보는 각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무용인을 바라보는 눈, 공공무용단 예술감독의 하는 활동이 정부 주요 인사에게 어떻게 비쳤는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말하자면 만만하게 보이도록 처신하지 않았는지, 차제에 이런 점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 국립단체가 서울에 장르마다 1개씩 있고, 거기에 다양한 역할을 주는 것은 그 효율성에 있어 매우 떨어지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공공무용단 시스템을 잘 알고 그것을 리드할 예술감독도 흔치 않고요. 오히려 그 예산을 나눠 무용센터처럼 지역에 소규모의 센터를 만들어 확산하고 통합하여 논의하고 활동하는 구조를 점차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앞으로의 발전 방향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의 정체는 이 시스템을 돌아보게 합니다. 서울의 어느 단체의 경우 단원의 하중이 이제는 턱까지 찬 게 아닌가 느껴질 정도예요. 단원들의 출중한 역량으로 유지하고는 있으나 한정된 인원으로 다양한 공공무용단으로서의 활동을 하면서 예술 작업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초빙된 안무가들은 한 목소리로 연습시간 확보가 안된다고 말합니다. 관객은 국시립에 거는 기대가 큰데, 그걸 채울 수 있는 여건은 부족한 거지요. 우리가 원하는 공공성도 갖추고, 예술성도 갖춘 작품과 활동을 위해서 창작여건 어디가 문제인지 짚어 보고 변화가 시급해 보입니다.

- 지난 20년간 노조가 굳어질 대로 굳어진 결과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습니다. 노조의 심각한 폐단을 겪어온 상황에 비추어 국립현대무용단이 상주단원을 두지 않고 공연 때마다 프로젝트로 출연 퍼포머를 뽑아 작품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매우 효율적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도 발레 분야 등 새 공공무용단이 세워질 가능성이 소식으로 전해옵니다. 상주단원으로 새 공공무용단을 세우는 방안은 정말 심사숙고할 일입니다. 상주단원을 최소화하고 프로젝트마다 출연진을 선발하는 계약제를 고려해볼 수도 있겠으나 최소 상주단원으로 출발했다가 점차 어물쩍 늘여가는 잔꾀나 편법도 매우 우려됩니다. 그래서 프로젝트 별 선발을 통한 공연 제작 방식이 오히려 안정적일 것이고, 공공무용단의 효용성을 보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더욱이 공공무용단 상주 단원이 아니더라도 공공무용단 바깥에도 유능한 춤 활동 인력이 많다는 오늘의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공공무용단의 발전사를 보면 공공무용단을 세워서 상주단원으로 뽑아 인력을 양성하던 과거 관행이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이젠 이런 관행 그리고 조직을 상주단원으로 꽉 채워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탈피해야 합니다. 비단 노조의 폐단 때문에 이렇게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크게 변했고 공공무용단 바깥에도 춤 활동 인력이 아주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 공공무용단의 퇴행에 있어 노조가 결정적인 요인은 아닐지라도 노조로부터 발생하는 퇴행 요인은 막아야 할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기본적인 것은 예술감독의 출중한 역량과 연구 마인드입니다. 작품이 잘 안 되는 이유를 무조건 노조 탓으로 돌리고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예술감독이라면 어쩌면 노조보다 더 심각한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 공공무용단에서 예술감독의 위축에 더하여 예술감독의 실종이라는 말은 참 뼈아픈 지적입니다. 공공무용단에서 예술감독은 사람으로 치면 핵심 두뇌에 해당할 겁니다. 뇌가 활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공공무용단의 수족(手足) 같은 행정 조직, 기획은 매너리즘을 벗어나 예술 활동을 자기 일처럼 보조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노조는 구태를 벗고 예술감독의 예술적 권한을 존중해서 함께 창작에 매진해야 하겠고, 문화부나 지자체는 예술감독 인선이나 운영 면에서 공공무용단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대전제에 따라 부당한 개입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필요성이 커 보이는 운영 규정 개정도 논의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술감독 자신은 스스로 창의성을 갈고 닦아 공연작의 수준을 배가하는 동시에 예술적 권한을 뒤흔드는 안팎의 부조리를 배제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공공무용단의 쇄신에 있어 예술감독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2024. 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