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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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24.08.20.(화)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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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예술가의집 다목적홀(서울 대학로)
패널│ 김채현, 장광열, 김영희, 김혜라
한국춤비평가협회(춤비협)는 지난 8월 ‘국내외 춤동향 비평시각 진단 포럼’의 첫 프로그램을 열었다.
국내외 춤동향은 리뷰와 보도 등을 게재하는 매체들을 통해 상시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그러한 활동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종종 집단적으로 이뤄진다. 춤비협의 이 진단 포럼은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다. 이에 더하여 진단 포럼은 해당 일정을 춤계에 공지하고 공개 장소에서 진행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진단 포럼이 다수 집단에 의해 공개 진행됨으로써 춤비협 내외부와 함께 포럼 내용을 현장에서 공유하고 논의하며 객관화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이 진단 포럼은 올해 12월에 2024 국내 하반기, 2024 국외(해외) 연중 동향을 대상으로 하여 각 한 번씩 더 열릴 예정이다.
이번 프로그램의 패널로 김채현(〈춤웹진〉 편집장)·장광열(IPAP 대표)·김영희(전통춤이론가)·김혜라(춤비평가) 4인이 정해졌다. 패널들은 올해 상반기에 온오프라인에서 발표된 춤비평문과 관련 기사들을 공유하고, 사전에 비대면 예비 모임을 가져 이번 진단 포럼의 주제를 몇 가지로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당일 진단 포럼은 정리된 주제를 축으로 전개되었다.
8월 20일 행사는 이종호 춤비협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참석자 소개를 간략히 진행하고 모더레이터를 겸한 김채현 패널의 사회로 본론을 진행하였다. 춤비협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될 본 프로그램이 비평시각을 바탕으로 춤현장을 두루 진단해서 재조망하고 비평의 토대를 다지는 데 이바지할 것을 기대하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 편집자
포럼의 진행 경위
김채현: 2024 국내외 춤동향 비평시각 진단 포럼을 시작합니다. 포럼을 시작하기 전에 이종호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님의 인사 말씀을 잠시 듣겠습니다.
이종호: 평론가의 임무라는 것이 꼭 특정 공연의 잘잘못을 논하는 글을 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용계의 어떤 현상, 집단의 여러 활동 및 경영에 대해서 짚어보며 한 번씩 리마인드 시키는 것도 당연히 저희의 임무라 생각합니다. 사실 실기 예술인들이 무용 사회 측면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고 계실 테지만, 실제로 무대 작업하고 가르치고 하다 보면 어떤 개선책이나 비판적인 정신을 연장해서 발전시키기가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그럴 때 비평가들이 일종의 자극제 역할을 해드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앞으로 진행될 포럼에도 많이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채현: 네, 감사합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국내에서 나온 온오프라인 잡지를 전부 수집해서 패널들이 공유하고, 개별적으로 읽고 분석하고 소화해서 8월 11일 2시간 반 동안 비대면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8가지 정도 중요한 주제가 선정되었습니다. 김혜라 선생님이 일차적으로 정리했습니다. 8가지 주제를 먼저 요점 중심으로 소개해 주시죠.
김혜라: 소개 말씀대로 자료를 공유하고 정리했습니다만, 정리 과정에서 저의 주관적 판단도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24년도 국내 춤동향이라 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팬데믹 이후의 어떤 현상까지 포괄하는 내용이라 봅니다. 공연을 보고 글을 읽고 하지만, 그 많은 현상이나 현장을 모두 정확히 포괄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름 할 수 있는 선에서 작업했다는 걸 미리 말씀드리면서, 팬데믹 이후에 현장에서 드러나는 양상들을 다음의 8가지 섹션으로 나눠 봤습니다.
첫 번째는 창작의 흐름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으로서 작품 활동을 진단하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 체계 혼란 때문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활발한 논의와 여러 대안이 나오곤 했습니다. 세 번째로는 공공 무용단 문제로 저희 협회나 웹진에서 꾸준히 다뤄왔습니다. 다음으로 서울시발레단 창단과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 창단을 보며 기대하는 바와 우려하는 바들을 소개하는 섹션입니다. 곧 신작이 올라갈 예정이어서 이런 부분도 한번 짚어보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큰 이슈로는 전통춤 공연들이 아주 많이 공연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부분서 어떤 양상들로 드러나는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섯 번째로 해외 교류 현황입니다. 보통 가을 축제가 많아서 하반기에 해외 교류를 짚어보기 수월한 편인데 그래도 상반기 해외 교류도 언급하려고 합니다. 팬데믹 이후에 갑자기 해외 교류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해외 교류까지는 짚을 수 없었습니다. 여섯 번째로 어린이 공연 성과와 배리어프리 공연 증가입니다. 아동 공연 작품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전과는 달리 아동 공연이 계속되면서 질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한, 배리어프리 공연도 증가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새로운 인식 확산의 한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전통춤 못지않게 춤 공연의 비수기가 없는 현상입니다. 이와 관련된 문제와 공공 극장 인프라 문제들도 한번 짚어보았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장의 비평과 그 유사 활동에 대해 춤계에서 여론들이 들려서 그에 대해 각성의 목소리를 모아보자는 섹션이 설정되었습니다.
김채현: 8개의 주제에 대해 패널들이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화두를 던지면 정리된 내용들을 토대로 의견을 개진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창작의 흐름, 작품 활동 진단입니다. 이 부분에 아마 시간을 많이 할애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 현상들이 있고, 아무래도 창작에 충실해야 예술 현장이 활발한 거 아닙니까? 창작이 좀 미흡하면 미흡한 대로 길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고, 충실하면 충실한 대로 길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창작의 흐름, 작품 활동 진단에서 좀 정리된 내용 중에서 김혜라님이 먼저 좀 소개해 주실까요?
상반기 작품 활동 진단, 컨템퍼러리 경향
김혜라: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건 젊은 한국춤 전공자들의 어떤 창작 방식입니다. 젊은 나이의 기준이 모호하지만, 제 기준에서 20대 후반에서 40대로 봅니다. 한국무용 계열 젊은 창작자들의 작품이 소위 현대무용 계열 작품과 비교해봤을 때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루지고 있습니다. 일단 굉장히 다양한 형식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심리적인 동작이나 앙상블 위주의 그런 문법 서사에서 벗어났고 이제 접근하는 방식이 예를 들면 이머시브 방식, 전시형 퍼포먼스 아니면 미디어 활용도 굉장히 잦습니다. 그리고 꼭 지금 나타난 현상은 아니고 이전부터 스트릿, 서커스와 같은 타 장르와 융합하는 식의 다양한 형식적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전부터 지금까지 한국춤의 현대화는 큰 과제이지 않았습니까? 근데 이제 젊은 안무가들의 춤을 봤을 때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시대의 이들이 만든 창작 춤들이 동시대 춤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 지금 작품 활동에서 이런 양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매거진들을 봤습니다. 성과 관련된 걸 노골적으로 얘기도 하며 파격적이란 평가도 있습니다. 어느 인터뷰를 보니 한국무용을 전공한 사람인데 본인은 장르를 구분 짓지 않고 작업한다고 합니다. 또 리뷰에서 많이 나오는 문구가 ‘동시대적 감각’ ‘현대적인 요소가 강하다’ ‘상상력이 뛰어나다’ 등등 이런 문구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이 문구들을 제가 수집했을 때, 어떤 경향성을 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예전부터 쌓여온 것이 있겠지만 큰 팬데믹 이후에 가장 주목해볼 부분이고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한국 창작춤, 현대 창작춤을 구분하는 것이 제가 봤을 때는 의미가 없고 이러한 경향이 더 공고해진다면 춤은 클래식과 창작으로 구분될 듯합니다. 이런 추세가 현장에서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공고해지면 심의 체계나 공모 방식과 같은 시스템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김채현: 소개한 경향들은 길게 보아 2000년대 초반부터 조금씩 그런 조짐이 있었고 최근에 와서 좀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근데 2020년대에 들어와서 구분을 짓기가 힘든 경향들이 이제 점차 이렇게 나타나는 거죠. 특히 아무래도 이런 경향은 젊은 세대일수록 두드러지는 경향이겠습니다. 지금 쓰는 한국춤, 현대춤이라는 말도 그 개념을 아직 명료하게 정리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전보다는 더 정리된 개념화 작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열린 소통 방식으로서, 이머시브, 전시형 퍼포먼스, 미디어 활용, 스트릿 춤, 서커스 융합 등 이것들 역시도 몇 년 동안 쭉 강화된 부분이지요. 특히 이머시브 같은 경우 흔히 갤러리나 뮤지엄에서 쉽게 행해지는 공연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작년과 올해를 보면 바로 극장 무대를 객석 겸 무대로 쓰는 시도도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완전한 이머시브는 아니겠지만 극장 무대를 퍼포먼스 스타일로 바꿔 나가는 그런 어떤 경향은 지난 몇 해 사이에 일어났고 그 예시가 더러 있을 겁니다. 올해 들어서는 이런 부분이 새 현상이라기보다는 그러한 경향에 마침표를 찍는 단계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침표를 찍는다는 말은 그 현상이 끝났다는 것이 아니고 또 이를 완전히 새 경향이라기보다는 조금은 익숙해진 단계에서 더 잦게 발견될 그런 현상으로 판단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써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비수기와 성수기, 즉 춤 공연이 지속되는 계절, 춤 공연이 드문 계절의 구분은 1980년대 후반부터 더러 많이 이야기됐습니다. 당시에는 방학이 되면 춤이 없었습니다. 주로 대학권에 몸담은 무용가들이 학생들, 동료들과 공연하면서 80년대 춤 르네상스에 엄청 이바지하였으나 그 한계로서 방학이 되면 춤이 없는 비수기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쯤 들어오면 비수기 현상이 점차 퇴조하기 시작합니다. 동문무용단이 퇴조하던 시기였습니다. 말하자면 독자적인, 독립적인 개별 무용가들의 활동이 2000년대 들어서 증대했습니다. 아울러서 우리가 매우 중시해야 할 부분은 아까 한국춤과 현대춤의 구분이 없어지기 시작한다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한국춤의 현대화가 과제가 아니라 이제는 컨템퍼러리댄스라는 큰 어떤 범위 내에서 한국무용 계열과 현대무용 계열이 구분되지 않는 양상으로 춤 공연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잦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기존의 현대춤, 컨템퍼러리댄스보다 더 파격적이고 세련된 공연도 보게 되겠죠. 여기에는 세상의 추세뿐 아니라 한국춤 계열에서 상당히 진취적인 생각을 품은 무용가들이 바로 이 컨템퍼러리댄스의 활동, 즉 현대무용의 이런 현대춤에서 자극을 많이 받고 또 그런 작업을 참조하는 어떤 노력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혜라: 어떻게 해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가를 보면 이들이 작가주의를 지향하고 작업도 연작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팬데믹 시기에 시스템이나 축제에서 재연작들을 돌렸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죠. 제 생각에는 그러면서 자기 작품에 대해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해서 피드백을 받고 다시 작품을 심화 및 확장하면서 탄탄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봤을 때 리서치 기간이 확보되어 있다는 겁니다. 특히 쇼케이스나 창작과정공유, 창작활동지원사업, 서울문화재단 입주 등에서 약 20분 길이의 시연작을 공유하는 것 자체도 일종의 작품 활동으로 보는 방향으로 인식이 변하면서 소극장에서 공연하고, 또 지원금을 받아 40분의 분량으로 발전시키고, 그다음 대극장 공연 이런 식으로 합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자기만의 춤 스타일을 구축하려고 하는 겁니다. 자기만의 레퍼토리, 어떤 작가주의를 지향하면서 좀 길게 간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봤을 때 이런 가능성 있는 작품들이 나와 희망적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현대무용에 관해서 진단을 이어보겠습니다. 지금 3분법을 거론하면서 3분법으로 나눠서 발표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지만 그래도 편의상 진행해보겠습니다. 현대무용을 전공한 현대춤 분야는 다양한 양태의 작업 때문에 딱 한 가지를 지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올해 기억에 남는 것은 거시적인 담론보다는 아주 개인적인 어떤 경험을 이야기하는 경향들이 좀 많이 보입니다. 그전에는 시각적인 장치, 오브제, 영상 같은 걸 굉장히 과하게 활용한다거나, 또 거시적인 담론을 이야기하기 위해 드라마트루그를 쓰고 시노그라피를 강화시키는 이런 것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제는 약간 몸의 움직임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자기 몸의 어떤 역학성을 탐구하면서 몸, 본질, 움직임으로 개념을 탐색하는 그런 흐름들이 보였습니다. 장치를 덜 활용하고 자신한테 집중하는 흐름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이야기로 사회적 이슈에서 자기 역사와 경험 같은 개별 관심사에 집중해 보입니다. 당연히 내용은 주로 개인의 공포, 불안, 곤혹, 공허 등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죠. 물론 원형성, 유희, 연대 이런 것도 있지만 뭔가를 만들어내고 보여주겠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어떤 감각적인 사유로 자신에 대한 어떤 자각, 다시 보기와 같은 부분들이 24년도 작품에서 기억에 더 남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하지만 좀 눈에 띄는 것은 탈서구주의, 탈인간중심주의입니다. 물질과 인간을 대등한 존재로 보고 주체적인 관계성을 보는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모다페 아트프로젝트보라의 〈물질이 물질이 되는 방법〉 같은 작품도 있었죠. 그리고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먼이 굉장히 큰 관심사입니다. 특히 창작산실의 정훈목의 〈야라스(Yaras)〉 이런 작품은 트랜스휴머니즘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상반기에 가장 집중한 것이 창작산실이었지만 어떤 날카로운 시대적 전망의 작품은 적었습니다.
이어서 스트릿 춤과 협업, 힙합, 그리고 올림픽에서도 채택된 브레이킹 이 부분을 주목해서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이런 분야가 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용과가 폐과되고 실용무용으로 같이 합쳐지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 왔는데 오히려 이 분야 학회가 결성되고 논문이 약 150편씩나오는 추세입니다. 이런 것이 당장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런 활동을 춤 매거진에서도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공연 현장에서 스트릿 계열 춤과 협업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지난주 심층 인터뷰한 제임스전의 〈현존(Being)〉도 있었고, 국립현대무용단의 근자의 〈힙합HIP合〉도 있습니다. 지금 약간 다른 양상으로 감지되는 것들은 협업을 하거나 표현 방식이나 움직임을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릿 춤의 미학적인 의미 같은 것들을 공연에 가져오는 게 보입니다.
류장현 안무가의 〈블랙〉, 이경은 안무가의 〈올더월즈〉(ALL THE WORLD'S), 이런 작품에서 스트릿댄스 계열이 주도권을 갖습니다. 내용이나 풀어가는 방식 이런 것들이 이제 단순히 움직임 차용이 아니라 스트릿댄스 계열이 사회적 맥락이나 비판 받던 요소를 갖고 오는 것이 지금 현장에서 보인다는 겁니다. 실용무용 쪽 인프라가 커지고 있는데 혹시 이제 무용과가 점차 없어지고 스트릿춤이 주요 무대가 되고 순수무용은 오히려 보조자가 되지 않을지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걸 약간 감지한 사례로 지난달 성남 아트센터에서 보티스 세바(Botis Seva)의 〈블랙독(BLKDOG)〉이라는 힙합 댄스 시어터 공연입니다. 근데 우리 교과 과정은 어떤가요? 이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장광열: 김혜라 패널께서 현장을 폭넓게 진단해 주셨습니다. 말씀 중에 ‘젊은’ 무용가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세계 무용계에서 ‘젊은’ 무용가란 규정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오래 전 뉴욕타임스에 당시 46세인 샤샤 발츠(Sasha Waltz)의 공연 리뷰가 게재되었는데 평자는 ‘젊은 안무가’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안무가로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안무 경력에 상관없이 나이를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젊은 무용가’라고 규정짓고 지원금의 카테고리도 정하고 있는데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반기에 국립정동극장의 기획 공연〈세실풍류〉중 일곱번째 프로그램은 ‘2010년대 이후 컨템포러리한국춤’(4월 25일, 국립정동극장 세실) 이었습니다. 6명 여성 안무가들이 직접 출연한 솔로 작품들은 분명한 콘셉트, 이를 풀어내는 아이디어의 참신성, 음악과 움직임의 뛰어난 매칭, 오브제를 활용한 메시지 전달과 인상적인 시각적 이미지들을 구축했고 공통적으로 세밀한 구성력과 뛰어난 창의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이 선보이는 비슷한 성격의 춤 축제나 안무 경연대회와 비교했을 때 발표자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한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인 데다 한국춤을 전공한 젊은 안무가들의 작업이 장르의 굴레에서 탈피해 동시대의 컨템퍼러리댄스로서 경쟁력을 확연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춤웹진〉에도 평문으로 기록했습니다.
공공극장의 기획 공연 타이틀로 ‘컨템포러리 한국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장르 구분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컨템퍼러리 한국춤이 아니라 ‘컨템퍼러리댄스’로 표기해야 맞다고 봅니다.
장르를 자꾸 세부적으로 구분하는 한국 춤계의 관행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한국춤을 전공한 무용가들에 의한 6개 작품은 특히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구현된 춤 스타일이 한국의 전통적인 색채가 다분히 묻어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의 컨템퍼러리댄스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한국의 전통적인 호흡법이나 훈련에 의해서 나오는 몸의 질감이 그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사용한 음악 선곡과 그 음악을 활용하는 아이디어입니다. 라이브로 연주하는 경우도 있고 녹음 음악을 쓰기도 했는데 우리의 전통 음악 그대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편곡된 음악을 활용하고 라이브 연주의 경우는 악기를 최대한 활용 음악의 영역을 확대하고 춤과 다양하게 소통시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춤을 전공한 안무가들이 작품 제작 시에 음악을 해석하는 면에서 현대춤을 전공한 무용가들보다 폭이 넓음을 여러 차례 확인했었습니다.
저는 6명 안무가들의 작업이 15분 길이의 소품이기 때문에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판단합니다. 우리나라 춤계에서 60분 이상의 장편 작품을 끌고 나갈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갖춘 안무가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15분 정도의 소품이라면 우리나라 안무가들도 충분히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춤 전공자들의 작업 중 올해 상반기에 제가 본 인상적인 공연은 정훈목의 〈Yaras〉였습니다. 이전 작품을 포함해 정훈목의 작업은 우리나라 안무가들이 보여주는 컨템포러리댄스의 유형과는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안무가가 댄서들에게 요구하는 춤과 연기의 다양성을 주문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 볼만 했습니다.
반면에 가장 최근에 본, 불과 몇 년 전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춤비평가상을 수상한 현대춤 전공 안무가의 개인 공연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60분 길이의 신작 공연이었는데 움직임 탐구도 부족하고, 작품을 풀어나가는 아이디어도 부재하고, 군무를 통한 앙상블이나 개개 댄서들의 춤이 그 자체로 살아나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춤의 나열이 이어졌습니다. 상반기 현대춤 전공자들의 창작 작업에서 보여지는 고만고만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댄서들의 연습부족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디테일이 부재한, 제작 스태프들과의 협업도 빈약한 무대였던 점입니다.
어려운 경쟁을 통과해야 기회를 가질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의 공연이란 점, 안무력과 우수 레퍼토리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쟁쟁한 전문단체들도 떨어진 올해 서울문화재단의 창작 트랙에 선정되어 수천만원의 지원금을 받은 인무력을 어느 정도 검증받은 무용가의 개인 창작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웠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안무가의 공연은 서울문화재단 지원신청 당시 서류에 표기한 공연장과 실제 공연장이 규모에서나 구조 모두 달라진 곳에서 치러졌다는 것입니다. 심의 때 서류를 보고 지원을 결정한 심의위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달라진 공간과 달라진 콘셉트로 치러진 부실한 공연을 확인하게 될 때 어떤 생각이 들까? 공공 지원금을 받은 공연 작품의 평가가 어디까지 미쳐야 되는가? 어느 정도 안무력이 검증되었다고 해서 안무가와 단체에게 과연 쉬지 않고 계속 해마다 적지 않은 창작 지원금을 주어야 하는가? 공공 지원금의 경우 안식년제를 두고 지원토록 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한 편 한 편의 창작 작업에 정성을 다하도록 해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변화를 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등등 공공 지원금의 제도적인 운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던 공연이었습니다.
발레를 전공한 안무가들의 창작 작업은 지금 보다 더 확대될 필요가 생각합니다. 올 상반기에 대한민국발레축제 공모 프로그램을 통해 신작 발레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창작 발레 작품을 만날 기회가 우선 많지 않았습니다. 국립발레단이 단원들에게만 기회를 부여하는 창작 작업의 문호를 외부로도 개방할 필요가 있고 전문 발레 단체들도 객원 안무 기회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반기 춤 창작 작업현장을 지켜보면서 한 편의 작품을 위해 안무가들과 단체들은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만고만한 공연, 수년째 되풀이 되고 있는 유사한 스타일의 공연이 범람했습니다. 안무가와 댄서들에게 무대가 소중한 만큼 관객들에게도 자신이 선택한 공연 무대가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안무가와 단체들이 공공 지원금을 받아 공연하는 것이 관행이 되다보니 무대를 무서워하지 않는 풍토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김혜라 비평가께서 상반기 춤 현장 흐름과 관련 대중무용과의 접목을 말씀하셨는데 외국의 최신 컨템퍼러리댄스의 경향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올 2월에 북유럽의 5개 나라의 컨템퍼러리댄스 작품을 모아 소개하는 아이스핫(ICE HOT)과 실험적인 춤 작업을 선도하는 독일의 컨템퍼러리댄스를 모아소개하는 탄츠플랫폼(Tanzplattform Deutschland)을 통해 30개가 넘는 컨템퍼러리댄스 작품을 보았습니다. 공식적인 쇼케이스 작품을 선정한 심사위원들이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뽑은 작품들이었습니다.
세 가지 정도 특이한 흐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다문화적인 요소들이 반영된 작품, 다양한 국적의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작품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태국의 전통춤, 콜롬비아의 민속음악인 쿰비아의 리듬, 노르웨이 원주민들의 문화 등이 작품 속에 다양하게 접목되었습니다. 쇼케이스로 선정된 작품들 중에는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여러 나라 국적을 안무가들과 무용수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각기 다른 작품에 출연한 우리나라 무용수들도 다섯 명이나 만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컨템퍼러리댄스 작업이 더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애인과 퀴어 문화 등 소외된 계층과 문화가 더욱 적극적으로 춤 작품에 수용되고, 성애장면 등 표현의 수위도 정제되지 않은 채 더욱 노골적으로 보이고, 원주민 문화의 소중함 등 안무자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사회 참여적인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적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는 아까 이머시브 공연이 많아지고 있는 점을 말씀하셨는데 무용 작품이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했습니다. 장소특정형 공연은 물론이고 관객들이 한 곳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를 쫓아다니면서 본다든지 한 공간 안에서 각기 다른 어떤 공연들이 펼쳐지면서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가서 본다든지, 설치된 무대미술을 사이에 객석을 만들어 관람하게 한다든지 하는 것 등이 그런 예였습니다. 이 같은 다양성으로 인해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흐름들이 북유럽과 서유럽 컨템퍼러리댄스의 어떤 경향이라 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간에도 컨템퍼러리댄스는 분명히 진화하고 확장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혜라: 말씀을 해주셨으니까 참고로 덧붙이면 제가 이번 쿼드초이스를 보고 아주 실망했었습니다. 쿼드초이스가 기본적으로 카테고리성이 있는 장혜림, 정보경, 이루다, 윤별, 금배섭, 모던테이블 등 주목받는 안무가들을 선정해서 진행했습니다. 근데 장 선생님이 앞서 말한 어떤 특정 안무가의 방만한 모습을 저는 여기서도 봤습니다. 왜냐면 쿼드초이스에서 내용 자체는 그렇지 않지만 여전히 3분법에 의해서 이틀 동안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에서 한 명씩을 선택합니다. 제 생각에는 차라리 어떤 동시대성, 다양성 이렇게 했으면 두 번째 날에는 다원, 다문화 이런 것들을 가지고 다양하게 나눌 수 있었는데 그냥 기존에 있는 작품을 약간 짜깁기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획이 작품 현장과 따라가지 못하는 좀 올드한 방식 같다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김채현: 죽 살펴보면 무용계가 정체해 있는 것이 아니고, 점차 이렇게 좀 유동적으로 변화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살펴본 자료들을 안 봐도 느끼겠지만, 자료들에서 좀 더 뚜렷이 이런 고민도 있었겠다고 보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파악하고 또 여론을 종합적인 면에서도 환기하는 측면에서도 이런 포럼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기 창작 흐름에 대해서 김영희 선생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영희: 두어 가지 정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창작 공연을 한국춤 쪽에서도 하고 현대무용 쪽에서도 하는데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한국춤이 더 현대적이고 현대무용들이 오히려 전통적인 소재를 더 가져온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소재나 기법, 관심사들이 많이 섞이고 있다는 것이죠. 아까 김채현 선생님이 근래 창작 경향을 별도의 개념으로 새로 설정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또 장광열 선생님이 컨템퍼러리댄스 얘기를 해 주셨는데 두 가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현대무용 쪽에서 전통을 소재로 가지고 와서 하는 작품들을 보면 전통춤을 얼마큼 어디까지 파헤친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2017, 18년 무렵에 국립현대무용단에서 검무의 칼을 가지고 작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작품을 보면서 검무의 외형적인 것만 갖고 작품을 구성했다고 봤습니다. 검무 원래의 미의식, 갈등 구조 같은 것들에 대한 천착은 잘 안 보였습니다. 그분들이 표현하려고 했는데도 제가 못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전통춤 종목을 좀 더 깊게 파헤쳐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훨씬 많습니다. 재작년 서울시립무용단이 〈일무〉를 공연했습니다. 그 작품에 대해 매스게임이라는 비평이 많았습니다. 사실 현재 추어지는 일무는 이미 추상화된 작품입니다. 일무가 원래 추어질 때는 전쟁의 과정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예기』「악기」에 보면 전쟁 과정에서 어느 나라가 무릎을 꿇고 어느 왕이 등극하는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파진악〉이라는 악무는 당나라 건국 과정에서 전쟁 장면을 보여주려고 했던 춤이었고, 그 영향을 받아서 정대업지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현재 더 추상화되어 추어지고 있지요. 저는 〈일무〉를 줄 서는 것만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시립무용단의 제작진이 물론 자문도 받았겠지만 여러 개념과 원리를 풀어낼 수 있는 춤입니다. 매스게임이나 칼군무로 표상되어서 매우 아쉬웠어요. 그래서 한국춤 전공자든 현대무용 전공자든 전통춤 종목에 대해서 더 깊게 천착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건, 실용무용 전공자들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어느 대학 경우에 무용과라는 타이틀 내에서 무용 전공자와 실용무용 전공자를 반씩 입학시킵니다. 과를 분리한 것이 아니고 한 무용과 내에서요.
상반기 작품 활동 진단, 스트릿댄스 동향
김채현: 요약하자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무용예술 전공 절반, 실용무용 전공 절반을 뽑았다는 거죠?
김영희: 네, 근데 양쪽 다 불만이 있답니다. 지금 우리 창작 흐름을 얘기하면서 스트릿댄스와의 협업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그렇다면 그 무용과에서 실용무용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소위 순수무용으로 입학했다는 친구들한테는 실용무용을 어떻게 수용시켜야 할지에 대한 관점을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실용무용으로 들어온 친구들한테도 발레나 현대무용이나 옛날부터 추었던 모던댄스 이런 것들에서 어떤 것들을 수용할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봐요. 양쪽이 다 춤계 현장이잖아요. 그래서 서로 불만보다 이런 것들을 상호 보완해서 교육해야 하고 관점을 심어줘야 그 학생들이 졸업해서 다양하게 창작 활동을 할 거 아닙니까? 어떤 춤이든지 스스럼없이, 선입견 없이 그런 것들을 수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두 가지 점을 말씀드립니다.
김채현: 먼저, 3분법이 지금 완전히 동요하고 있는데 지원 현장에서는 뒷북치고 있다는 그런 말씀들이 많습니다. 정말 뼈아픈 소리입니다. 지원기구가 무용계를 망치면 안 된다는 거죠. 더 이상 이야기 안 하겠어요.
두 번째는 아까 장 선생님이 언급하신 약 15분 정도 길이의 정동극장 〈세실풍류〉 작품이 우수하다는 말씀이 맞습니다. 15분 정도 시간에서 한국춤이 많이 성장했고 충실한 작품들도 많이 보입니다. 또 사실 과거에 우리 민속춤 이런 데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근데 그 이상은 왜 흔하지 않느냐 하니까, 호흡이 짧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을 테지만 길게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 방금 김영희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현대춤하는 사람이 전통에 접근할 때 번지수에 맞는 연구 응용이 없거나 적습니다. 깊은 연구가 안 됐고, 학습과 연구를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겁니다. 흔히 말해 수박 겉핥기라 하죠. 근데 길이가 긴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도 춤 안무나 창작하는 데 있어서 어느 춤 장르를 막론하고 지금보다는 연구심이 훨씬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대학 교육의 교과목이나 교과 체제가 혁신되어야 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미 컨템퍼러리댄스 시대인데, 관련 교과는 어떻게 정비되고 있으며 또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관심을 환기하고 싶습니다.
아까 힙합이라든지 스트릿댄스를 소개하실 적에 스트릿댄스가 대상화가 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트릿댄스든 순수춤이든 춤이라는 큰 테두리 내에서 그 나름의 춤입니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모던댄스, 발레, 컨템퍼러리댄스, 스트릿댄스, 모두 그 나름의 춤이란 말이죠. 스트릿댄스를 하는 사람들이 열의가 굉장한데 스트릿댄스를 벗어난 춤에 대해서는 이해가 별로 없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그래서 방금 말씀대로 물과 기름 같은 현상이 야기되는 겁니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하는 사람들도 스트릿댄스, 힙합 쪽 이해를 굉장히 깊게 해야 되겠고요. 교과과정 등에서 서로를 타자화시킬수록 창의력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이제 2번째 섹션으로 넘어가기로 하지요.
상반기 지원 사업의 맹점들
김혜라: 올 들어 체계가 바뀌면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다른 매체에서 많이 다뤘고, 또 연초에 많은 토론이나 포럼을 했던 것으로 압니다.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체계의 변화에서 가장 혼란이 컸던 부분은 창작의 주체 범주 내에서 비평, 공연, 공간에 대한 심의를 한 섹션으로 묶은 것입니다. 물론 그 의도는 알겠습니다. 비평 자체도 어떤 창작을 하는 주체자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여러 분야를 극소수의 사람이 심의한다는 게 사실은 누가 봐도 불가능하기에 많은 문제가 야기됐습니다. 서울문화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랙 기준이 있는데 무용가 자체도 자기가 어느 트랙에 넣어야 맞는지 헷갈렸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B트랙에 넣으면 경력으로 봤을 때 굉장히 차이가 많고 C트랙은 뭐가 안 되는 것 같고 이런 식으로 정확하게 어디에 지원해야 할지 큰 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사위원 배정에서도 균형감이 맞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독립무용액션연대 출범과 일부 연관되고, 많이 거론되었습니다. 춤계는 거의 동문으로 연결되어 있고 작품에서 연결되어 있고 교수직에 있고 그런 때문에 심의가 여간해서 쉽지 않은 걸로 짐작됩니다.
두 번째로 아르코 대관 선정 시기와 결과가 엇박자가 나서 지원을 못 받았는데 극장은 선정이 됐습니다. 이 경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공연을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난관에 봉착합니다. 특히 또 아르코 같은 좋은 극장이 되면 포기하고 싶지 않잖아요. 그래서 공연을 한 사람도 있고 또 공연을 안 한 단체도 있고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올해 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의위원 구성의 문제입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의 전문성이 있을 것이고, 학교에 계시는 분들이도 각각의 전문성이 있을 텐데 이 모든 구획이란 부분이 행정 편의상 평등하게 했다는 거에 너무 갇혀 있는 듯한 아쉬움이 큽니다.
그리고 독립무용액션연대 이들이 여러면에서 교직에 계신 분들보다는 어렵지 않습니까? 특히 이번에 서울문화재단 같은 경우는 동문 단체, 논문 발표회, 퇴임한 교수님들의 작품이 선정되고 이러면서 학교를 나와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친구들은 유달리 많이 선정에서 탈락되었어요. 이들은 1년을 계획해야 하는데 그럼 이걸 어디에 토로해야 하는 건지 모릅니다. 물론 독립무용액션연대가 주장하는 것이 100% 합당한지 의구심은 남는다지만 이들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지원 심의를 다양한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제기되었습니다.
김채현: 패널로서 이 사안에 대해서 의견들을 또 나누시죠.
장광열: 올해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던 공공 지원금 운용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 주체 사업으로 그동안 여러 카테고리로 나눠져 있었던 것을 창작주체 항목으로 통합해 시도한 것이었습니다. 이 부문의 심의위원은 모두 5명이었습니다. 각 장르 1명씩 실기 무용가 세 분과 예술행정 종사자 1명, 그리고 1명이 무용비평 쪽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 분은 2차 인터뷰 심사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심사를 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 심사위원은 서울도 수도권도 아닌 지역에서 거주한다고 하더군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심의에 신청하는 대부분의 무용가들은 서울과 수도권의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무용가와 단체들입니다. 실기 무용가들의 경우는 차치하더라도 비평가들 몫으로 심의에 참여할 경우 가능하면 많은 공연을 현장에서 직접 본 비평가가 참여한다면, 안무가나 단체의 역량이나 무용수의 역량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비평가가 선임된다면, 훨씬 심의위원으로서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공공 지원기관의 창작 부문 지원 심의는 같은 무대에서, 동일한 시간에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용 콩쿠르 심사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지원 심의는 작품 계획서를 면밀히 검토할 수 있는 전문성 외에도 지원자의 예술적 역량이나 출연진들의 역량까지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5명 중 한명이 심의에 불참한 것도 문제였지만, 무용비평가로서의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적임자를 선정하지 못한 위원회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올해 심사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되었던 부문은 창작 트랙 부문이었습니다. 현대무용의 경우 심사위원 5명 중 2명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안무가들과 동일한 학교 졸업생에다 동일한 단체에서 몸담고 있어 심의 기피 대상이 되었고 결국 실제로는 5명의 심의위원 중 3명만 심의에 참여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올해 현대무용 부문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안무력이 검증된 무용가들과 전문 춤 단체로서 국내외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탈락한 것도 이로 인해 야기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공공 지원기관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도입하고 있는 지역 할당제, 심의기피제, 남녀 성비율 맞추기 등의 운용 지침이 오히려 공정한 심의를 방해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지요.
행정기관에서 지원 단체 서류를 면밀히 검토하면 심의위원 선정에서부터 기피 대상자를 줄일 수도 있었을 텐데 이 같은 절차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든지 아니면 담당자들이 비적임자를 걸러낼 수 있을 정도로 춤계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전문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심의위원 선임시 필요하면 전문위원 제도 같은 것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은 예술행정에서의 전문성의 부재가 화를 자초한 것이지요.
지원심의 결과와 관련, 한국현대춤협회에서 올해 상반기에 예정되었던 한국현대춤 춤작가12인전 공연을 취소했지요. 무용가들이 가장 서고 싶어 하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10일 넘게 대관이 확정된 사업이었습니다. 공연 일정이 3월과 4월에 걸쳐 있다 보니 한참 공연을 준비 중이던 12명의 무용가들은 일반적인 공연 취소 결정을 통보받은 것이지요. 그것도 무용가들로 구성된 단체로부터요. 공연을 앞두고 지원을 받지 못해 제작비 확보에 어려움에 처한 단체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임박한 공연을 준비 중인 무용가들은 더 큰 상처를 받은 셈이지요. 결과적으로 동료 무용가들의 창작 작업 무대를 빼앗아 버린 이 같은 결정은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서울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전문 공연장을 함께 운영합니다. 두 기관의 지원 심의결과로 인해 올해는 유난히 아르코, 대학로 예술극장과 쿼드극장 등대관 취소 사태가 이어졌고 예비 선정단체들과 대관계약을 맺지 못한 극장 측에서는 재대관 공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모두 예년에는 볼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외국의 경우 공공지원 기관에서 직접 극장을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표적 지원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아르코예술극장, 대학로예술극장을 포함한 중요한 극장들을 직접 운영합니다. A라는 무용가한테 지원금을 주면 A는 그 지원금을 다시 아르코 극장에 대관료로 내야 하고 아르코 극장에 소속된 스태프들의 사례비로 다시 내야 하는 이상한 구조입니다. 지원단체를 선정해서 스탭과 대관료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지원금을 주고 다시 가져가는 시스템이죠. 서울문화재단도 쿼드극장을 직접 운영합니다.
문제는 이들 두 지원 기관들이 지원 신청서를 받을 시기에는 공연장의 대관 선정 여부가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원 신청서에 대관 여부를 표기하게 되어 있는데 대부분 미확정으로 제출합니다. 지원금을 받으면 막상 신청했던 극장의 대관에서 떨어지고,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대관 단체로는 선정되는 상황이 발생되고 이 과정에서 대관 취소사태와 지원 신청서와는 다른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이 같은 비효율적인 구조는 하루 속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대관 신청을 빨리 받아서 그 결과를 공공 지원금 신청 마감일 전에 발표하는 일정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채현: 지원 기관에 큰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세 번째 섹션, 공공발레단 창설 이슈로 넘어가겠습니다.
공공 발레단 창설 작업, 우려 낳는 밀실 추진
김혜라: 어느 정도 발레 대중화가 됐다고 보는 시기에 컨템퍼러리 발레단이 나와야 된다고 여론이 잦아진 상황에서 서울시발레단이 창설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기대감이 있었죠. 광주시립발레단 이후에 48년 만에 나온 시립 공공발레단이라는 점, 또 클래식에 편중되었던 창작 발레의 환경이 서울시발레단의 창설을 계기로 개선되고, 아까 대한민국 발레 축제 밖에 창작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그런 한계가 있었는데 창작 기회 증대에 대한 기대감, 국공립 무용단에 못 들어간 친구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 어느 정도 매니아층이 있는 상황에서 관객층에도 또 다른 취향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기대감 등 굉장히 기대하는 바가 많죠. 반면에 여러 우려가 현장에 많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일단 감독이 부재하죠. 감독이 없는 발레단은 상상하기가 어렵죠. 그리고 앞으로 10월에 한스 판 마넨 / 차진엽 작업이 예정돼 있는데, 시즌 무용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프로젝트 안무 방향성을 청사진이 얼마만큼 제시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우려가 되죠. 지금까지 국립현대무용단의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 장단점을 봐왔기 때문에 우려가 생기는 바가 있습니다. 서울시발레단이 에피타이저처럼 5월에 미리 〈봄의 제전〉이라는 작품을 내놓았고 리뷰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관심이 크다는 것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겠죠.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광주시립발레단의 5·18 희생을 다룬 〈디바인(DIVINE)〉 작품은 개인적으로 좋게 봤습니다. 이번 서울시발레단 창단 공연을 안무한 주재만 씨가 안무한 작품입니다. 대구시립무용단 〈대구보디〉(DaeguBody) 이런 것도 좋았고요. 다음에 부산국립국악원은 영남춤을 메인에 두고 지역성을 토대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오히려 지역에 있는 국립·시립들은 자기 정체성을 밟아가고 있는데 서울에 있는 국립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 새로 창설되는 발레단 같은 경우들은 제가 봤을 때 상대적으로 더 좋은 조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신작 안무와 그들이 내놓은 프로그램 이런 것들이 조금 미비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가장 많은 예산을 집행하는 국립발레단은 어떤 작품(현대발레)을 남겼습니까? 네 번의 연임을 하는 동안 강수진 단장은 독일계 레퍼토리만 가져와 마치 슈투트가르트 자매학교 발레단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편파적이고 기울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거의 독일계 거장들의 드라마 발레만 선보이고 있습니다. 사정이 어려운 민간발레단들도 하는 일을 국립발레단이 하지 않는 것은 인식이 부족하고 방만하게 운영한다는 방증입니다.
그리고 부산오페라하우스발레단도 1년 시즌 감독제를 운영을 한다고 합니다. 김주원씨가 맡는데 방향이 컨템퍼러리 발레로 갈지 무엇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발표하기로는 11월에 〈샤이닝 웨이브〉를 하고 12월에 갈라가 예정돼 있는데 여기에 한국무용과 이경림 씨하고 20대에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발레단(Dresden Semperoper Ballett)을 나온 박소현씨하고 공동 안무를 한다고 합니다. 그다음에도 계획이 있다는데, 지켜봐야죠. 방향성을 어떻게 잡고 갈지, 지역 발레팬들과 지역의 무용수들에게 직업적으로 얼마만큼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칠지 이런 것들 역시 고려할 사항들입니다.
김채현: 48년 만의 신설 공공발레단이 창단을 각각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평가라기보다는 기대가 있을 것이고, 새 시스템에 대한 재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에 서울시발레단을 준비하면서 내놓은 〈봄의 제전〉은 공연을 트리플빌로 했죠. 긍정적 평가보다는 우려가 많았던 부분은 확실합니다. 이번에 8월 말에 계획하는 창단 공연을 어떻게 할지 일단 봐야 알겠습니다.
근데 시스템 체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공청회라든지 공론화된 의견을 공개적으로 모아야 하며, 열린 운영 시스템을 서울시발레단이나 부산오페라하우스발레단이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간의 추이를 듣거나 보자면 창단을 위한 예비 과정을 공론화하지 않고 생략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공공단체라는 게 재원이 뒷받침되고 예술적인 성과를 내면 그와 연관된 사람들이 그 성과를 자기 성과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쉬운 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용하려는 어떤 심리가 있어서 그런 건지 여론을 공적으로 정정당당하게 수렴하는 그런 활동을 듣기 힘듭니다. 혹시 그런 소식을 듣고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올해 매거진들을 봐도 그런 소식이 눈에 띄질 않습니다. 48년 만에 신설되는 공공발레단이라고 하고 48년 만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 역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역사입니다. 48년 전 과거에는 클래식 발레 위주로 생각하면서 그 시대 발레단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완전 컨템퍼러리발레 시대 아닙니까? 그럼 컨템퍼러리 발레단을 미래지향적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 한두 사람의 머리가 아닌 중지의 대대적 교환이 필요합니다. 우리 무용계 내에 나름들 경험하고 학습한 것들이 있는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열어놓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감독 선임 문제뿐만 아니고, 상주 단원을 둘지, 상주 단원을 둔다면 몇 명까지 둘 것인지, 그리고 상주 단원은 어디까지 권한을 가질 것인지와 같은 문제들을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노조 때문에 공공무용단도 문제가 많습니다. 조직은 어떻게 구성할 것이며, 이사회나 운영위가 있다면 어떻게 짜고 권한은 얼마나 줄 것인가 등 그런 과제를 수용하는 시스템은 어떤 것인가? 고려할 점들이 첩첩이 쌓여 있지 않습니까. 임박한 공연만 진행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공공발레단 창설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고, 창설을 밀어붙이면 기정사실로 수용될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은 무리를 낳기 쉽습니다. 그러다 더 큰 난제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장광열: 서울시발레단의 창단 사전 공연이었던 〈봄의 제전〉은 3명의 안무가가 참여했는데 2명은 기존 작품을 공연했고 한 명의 안무가만 새 작품을 올려 총 3개 작품을 묶어서 하루에 공연했습니다. 이 공연은 예술감독이 없는 공공 발레단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기존 작품 두 개는 이전 작품보다 훨씬 더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졌습니다. 오디션을 통해 무용수를 뽑고 프로젝트 발레단으로의 출범을 알렸으나 정작 이들 새로운 무용수들이 합류한 작품이 전작보다 더 좋지 않았다는 것은 3개의 작품에 출연하는 무용수들을 관리하고 세 개 작품을 하나로 모아 공연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예술적인 문제들을 조율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서울시발레단은 예술감독을 선임하지 않는가? 행정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안무가를 선정하고 무용수를 관리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예술행정과 예술작품 제작은 엄연히 다른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게 사실이라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됩니다.
광주시립발레단에 박경숙씨가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부임하고 난 후 공연 작품의 질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공공 무용단의 예술감독을 평가할 때 재임 중 다음의 세 가지가 그 기준이 됩니다.
첫째, 일단 좋은 작품, 좋은 공연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좋은 작품은 예술감독 스스로가 안무하지 않더라도 외부 안무가를 초빙하거나 기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을 때 잘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두 번째는 재임 기간에 단원들의 실력과 기량 이런 것들이 놀랍게 좋아져서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이어졌을 경우입니다. 세 번째는 새로운 레퍼토리를 확충하는 것입니다.
광주시립발레단에 박경숙 감독의 경우 본인이 직접 안무한 작품은 없더라도 객원 안무가를 초빙해 만든 새 작품이 호평을 받았고 〈돈키호테〉 경우 프로덕션 자체를 매칭시켜 굉장히 다른 형태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성취하는 결과를 하는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한 작업들이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았던 사례입니다.
반면에 국립현대무용단은 지금 창단된 지 10년을 훨씬 넘겼죠. 국제무대에 내놓을 만한 경쟁력 있는 작품, 국립현대무용단을 대표할 만한 작품은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 금방 떠오르는 작품이 있나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프로젝트 무용단 체제로 운영하는 방식이 과연 바람직한지 되돌아볼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 무용단이 활성화되어 있는 유럽의 경우 프로젝트 무용단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공연할 기회가 많고 이를 통해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가 만들어져 가는 것과 달리 유통 기회가 적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국립현대무용단의 예산이 처음에 10억에서 지금은 10배 정도로 증액된 것으로 압니다. 늘어난 제작비는 좋은 작품을 제작하는 데 투여해야 합니다. 작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문성이 발휘되고 제작 스탭의 구성에서부터 연습기간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을 들여야 합니다. 이것저것 많은 프로그램으로 공연 횟수를 늘리는 것보다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완성도 높은 에술작품을 통한 공공성의 실현입니다.
국립발레단과 국립현대무용단에 이사회가 있는데 이 이사회가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예술감독의 선임에서부터 단체의 중요한 사항들을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로 이사회가 구성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공공무용단의 경우 제일 첫 번째로 정해야 하는 게 단체의 정체성입니다. 우리 무용단이 뭘 추구할 것인가, 예술성인지 대중성인지, 아니면 클래식 발레만 할 건지 컨템퍼러리발레를 섞어서 같이 할 건지 이런 모든 방향성을 먼저 정해 놓고 그다음에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야 하는 겁니다. 그 적임자를 찾는 것이 이사회의 기능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중요한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기관은 문화부 곧 정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사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이사의 임기가 끝났는데도 충원하지 않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예술단체 노조가 지나치게 예술감독의 권한을 침범하고 있는 것 또한 커다란 문제입니다. 이 같은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으면 공공무용단의 효율적 운영은 요원하다고 생각됩니다.
김채현: 공공무용단 관련해서는 제가 첨언하겠습니다. 바로 지난주 화요일에 제임스전 발레 안무가를 공개 심층 인터뷰했었죠. 그 자리에서 30년전 서울발레시어터 창단의 목적을 질문했더니 곧장 나온 답변으로 국립발레단, 유니버설 발레단보다 봉급을 더 많이 주는 발레단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런 배포 있는 무용가가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간략히 말씀은, 제 기억에 착오가 없다면, 2019년도 국립발레단 1년 예산이 약 125억가량이었고 그 가운데서 국립발레단이 벌어들인 돈은 33억 원입니다. 125억은 국고 지원을 받은 것으로 정부가 모든 걸 갖춰 줬습니다. 많이 벌어들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뉴욕시티발레단의 사례는 어떻습니까? 세계 최고 최대와의 비교가 좀 무리스럽긴 하겠지만, 2019년 회계연도에 수입으로 티켓팅 500억, 후원금 500억입니다. 연간 수입이 천억 원으로 보입니다. 뉴욕시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제가 지금 기억하기로 2019년도에 27억 원인가였습니다. 천억 원에서 27억 원은 결코 큰 금액이 아닙니다. 이에 비해 125억을 지원받는데 33억밖에 못 벌었다는 건 정말 스스로 문제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런 창피스런 비교를 자기 분발의 밑거름으로 삼는 전화위복의 일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다음 순서로 넘어갑니다.
김혜라: 이와 관련해서 국립, 시립 단체, 감독 선임 문제를 굉장히 공개적으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내리꽂는 행태, 정치적인 어떤 변화에 따른 무용계의 카르텔이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듭니다. 선임된 다음에 어떤 청사진을 내세운 적이 있나요? 아니면 선정 이유를 본 적이 있나요? 그런 것들을 투명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강합니다. 이런 문제에 비추어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번 신작에 대한 평가가 굉장히 실망스러운 건 당연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 선생님이 지금 국립현대무용단이 개인 무용단처럼 한다고 그러셨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이번에 김성용 예술감독의 작품도 〈정글〉 두 번에 〈인잇〉도 했는데 이렇게 개인의 방법론을 내세우는 작업을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세 번씩이나 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적절한지 의구심이 듭니다. 국립무용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봤을 때 국립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의 정체성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안애순씨, 예효승 씨와 협업하는 등의 이런 행사와 계획들을 보면서 서로 엇비슷 한 행보를 보여 이 단체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결국 감독 선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합니다. 또 국립발레단의 경우 한 단장이 이렇게까지 오래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아까 말했지만 제대로 된 작품 한국적인 창작도 없고 레퍼토리는 독일 쪽으로만 편향되어 있습니다. 예산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굉장히 심각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스타 마케팅을 등에 업고 진행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오는 게 미약합니다. 지역의 시립감독 선임 문제도 몇몇의 풀 내에서 이동합니다. 그러니 지역단체 작품이 다 엇비슷하고 발전이 없습니다. 물론 단체를 운용해 본 경험치는 중요하지만 심사기준에 이 부분의 배점이 높으면 새로운 인재들이 시립감독으로 지원할 기회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어떤 변화가 제도적 장치에서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은 말을 하면 끝도 없지만 이번 상반기에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김채현: 명확히 말해, 지금 우리나라 공공무용단의 운영이나 시스템은 딱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이런 터에 새 공공발레단을 만든다고 하면서 어떤 공론화도 거치지 않고 중지를 모으지 않는 거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자, 다음 섹션은 전통춤 분야이죠.
상반기 전통춤 공연 남발 속의 새로운 접근
김혜라: 전통춤 부분은 짧게 개괄하겠습니다. 전통춤 공연은 여전히 ~류, ~계, 재구성, 신전통으로 분화되어 범람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정립된 공연인지, 이 용어들을 쓰는 게 맞는 건지, 또 이런 것들에서 참신성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또 극장과 공동 기획공연이 굉장히 증가했고 근대춤 유산을 조명한 작품들, 신무용을 재조명하는 큰 공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이 전통춤에서 잡히는 부분이라 판단했습니다.
김채현: 김영희 선생님, 말씀해주시지요.
김영희: 세 번째 주제로 전통춤 근황을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상반기에 전통춤 공연들이 다양한 기획으로 많았어요. ‘강선영 탄신 100주년 불멸의 춤’, ‘세실풍류: 법고창신,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 ‘시간의 춤, 情을 나누다’, 국립국악원 기획 ‘일이관지’, 한국전통춤협회의 ‘수건춤 100년’, 돈화문국악당 기획 ‘일무일악(一舞一樂)’, ‘소고 놀음 4 허튼’도 있었죠. 상반기 흐름을 보면 오리지널 전통춤을 그대로 하는 공연이 줄어들었습니다. 무대에 맞게 각색한다거나 아니면 새 아이디어를 넣어서 창작을 가미하는 식으로 새롭게 시도했죠. 그래서 전통춤 외에 신전통춤 분야로 칭하는데, 이 신전통춤이라는 용어는 2007년에 저하고 김태원 무용평론가가 전통재구성무라든가 신전통춤이라는 용어로 칭하며 시작됐어요. 당시 전통춤계의 현상을 관찰하고 그러한 흐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봤죠. 당시에 윤미라의 5인이 추는 〈진쇠춤〉, 백현순의 〈덧배기춤〉, 배정혜의 〈흥풀이〉, 국수호의 〈장한가〉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전통춤이 요구되었던 몇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전통춤의 토대가 바뀌었다는 거죠. 우리나라의 전통춤은 옛날 궁중과 농촌 공동체를 배경으로 해서 1년의 농사 절기나 왕실 행사에 따라서 추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요. 이제는 100년 가까이 전통춤들은 다 무대로 올라갔고 무대라는 환경에서 추어지고 있기에 그 토대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또 하나는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옛날 오리지널 전통춤을 보셨던 분, 들으셨던 분, 배웠던 분들이 살아계셨지만, 이제는 다 돌아가셔서 전통춤의 옛 흔적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살풀이춤, 태평무 같은 춤을 전통춤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간의 연구 결과로 이것은 20세기에 만들어진 춤이라는 것으로 시각이 바뀌었고, 그러면서 전통춤에 대한 관점이 박제화되지 않고 유연하게 생각들이 바뀌기 시작한 거죠. 그 다음으로 2010년대를 지나면서 K컬처의 흥행 때문인지, 문화재재단, 국립무형유산원,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같은 기관이 전통 혹은 전통에 창작을 가미한 작품을 공모하는 흐름으로 바뀌었어요. 이날치와 엠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범 내려온다”가 흥행을 일으켜서 그랬는지 전통을 그대로 보여주고 전통을 보존하려고 하는 단체조차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현재적 감각으로 각색하는 공모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연 환경으로 마당 같은 곳에서 할 장소가 없습니다. 다 극장으로 옮겨졌는데 극장 안에는 조명, 영상, 무대 공간, 객석과 무대의 분리 등등의 특성, 21세기 극장 환경에서 전통춤을 출 수밖에 없습니다. 또 무엇보다 무용가들이 전통춤을 오리지널로 추는 것이 아니고 창의가 발현되면서 창작 욕구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전통춤에서 새롭게 작품들이 시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좀 전 언급한 몇 가지 작품들은 2000년대 초반의 작품들이고요. 근래에 시도되는 작품으로 임성옥의 ‘살풀이춤’, 유정숙의 ‘협풍무’, 김경란의 ‘논개별곡’, ‘애린’, 김유미의 ‘산홍’, 또 서정숙이 올봄에 승무를 재구성한 ‘상춘도량’ 등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기 단계에서 넘어가고 있는 신전통춤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신전통춤 작품에 이제는 누구누구 ‘류’가 아니고 누구누구 ‘안무’내지 누구 ‘작’이라고 해야 한다고 봅니다. 분명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작품을 만들고 전통춤의 새로운 정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작품들에 비평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미 현재 무용계 안에서 하나의 영역 내지 분야로 실행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에 한국춤의 창작을 두고 비평가들이 논의했듯이 신전통춤의 영역들도 비평의 대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공교롭게도 근래에 신무용 작품들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원로 무용가들이 돌아가시고 추모 행사 공연을 하면서 신무용 작품들이 소개되었어요. 그런데 신무용 작품이라 밝히지 않고 전통춤 공연에 포함되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재 신무용 위상이 분명치 않고, 신무용이 거둔 예술적 성취들이 무시됐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신무용 작품들은 분명히 20세기 중후반에 우리 무용계의 예술적 성취입니다. 한계가 있으면 있는 대로 평가해야 하고요. 그래서 신무용이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다른 영역에 얹히려 하지 말아야 하고, 한편 무용학, 무용비평 쪽에서 이 부분을 학문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시간의 춤, 情을 나누다’라는 공연이 있었어요. 프로그램에 전통춤, 신무용, 신전통춤이라고 분명히 명시해서 홍보했습니다. 각 작품의 정체성을 분명히 제시하면서 감상의 올바른 길을 제시한 것으로 봅니다.
현재 전통춤이 우리 춤계 공연에서 비중이 50%에 육박할 겁니다. 그리고 전통춤 분야 종사자도 많고, 콩쿠르, 대학 입시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훨씬 더 시장이 넓습니다. 상반기 춤 동향으로 이슈를 잘 뽑아주셨습니다.
김혜라: 국립국악원의 〈일이관지(一以貫之)-조선춤방〉이나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일무일악〉(一舞一樂) 같은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60년대 후반 문화재 지정이 되는 춤 이외의 것들을 조망하였고, 그다음에 70년대 이후에 한국무용을 전공한 대학 출신의 사람들이 한국춤 창작에 집중하면서 학교 창작에서 벗어난 춤, 어떤 지역성, 지역의 가락, 지역의 굿 이런 것도 다시 무대화시켰습니다. 이런 것들을 조망하고 확장시킨 부분들은 고무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승무, 살풀이만 콩쿠르를 하고 학교에서 가르치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현상이 더 확산되면서 결국은 학교 교육이나 여러 시스템, 콩쿠르 종목 이런 쪽에서 다양한 춤이 소통되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이런 창작적 기획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영희: 동감합니다.
김채현: 다음에 해외교류 현황을 보겠습니다.
내실 흐린 상반기 해외 교류
김혜라: 해외교류와 국제춤축제가 연관성이 있습니다. 현재 국제춤축제가 굉장히 많은데 네트워킹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춤축제의 좋은 점과 한계, 내용이 부실한 이런 문제도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창작 이야기를 했는데 런던 더플레이스극장(The Place)에서 장혜림, 정철인, 허성임, 이렇게 공연을 올렸습니다. 외국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 창작춤, 현대무용 이런 식으로 구분 지어서 인식하지 않고 그냥 한국 컨템퍼러리 무용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장르가 와해되는 상황이면 모다페나 서울무용제에서 장르를 구분해서 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광열: 국제교류와 관련해 제일 큰 문제는 거품을 걷어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제교류도 이제는 양보다는 질을 따져야 합니다. 옛날처럼 단순히 외국에서 공연했다는 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극장에서 양질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공연하고 현지 언론으로부터 양질의 리뷰를 받고 이런 식으로 소위 업그레이드된 교류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국제’를 붙인 무용 축제가 20개가 넘습니다. 국내에서 하는 개최하는 국제무용축제도 차별성을 살리고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변신해야 합니다. 특히 오래된 축제는 다시 점검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모다페, 서울세계무용축제, 창무국제공연예술축제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들 축제들은 예전에 가지고 있던 정체성을 지금 다 잃어가고 있습니다. 창무국제예술제 같은 경우, 과거엔 아시아 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당위성과 독창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축제의 방향성을 잘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서울세계무용축제는 공연 작품의 평균점을 더 향상시켜야 하고 모다페는 ‘국제’ 축제로서의 프로그래밍에 더 신경을 써야합니다. 세 개 축제 모두 기존의 작품들을 연계시킨 재탕 공연의 비율을 더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고양, 군산 국제무용제 등 신생 무용제는 여타 축제와의 차별성을 살리는 미션 설정과 프로그래밍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외국팀을 불러들이는데 있어 LG아트센터 같은 이런 대형극장의 프로그래밍도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같은 단체들의 같은 작품을 수년 째 계속 초청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행보입니다. 실험적이고 참신한 새로운 양질의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새로운 조류를 발 빠르게 소개했던 예전의 선구적인 모습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무용축제의 경우 꼭 공연이 아니더라도 국내 무용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워크숍 개최나 지역 극장 연계공연 시도, 그리고 국내 우관기관과 무용가들과의 네트워킹 확장 프로그램 운용에도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배리어프리 추세와 춤전용극장 여론 모으기
김채현: 시간 관계상, 다음으로 배리어 프리 공연 증가에 관해 의견을 나누겠습니다. 배리어 프리 공연의 개념을 좀 더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장벽, 장애물을 치우는 공연인데 지금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다다익선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너무 긍정적으로 보거나 강한 애정으로 인해 작업의 허점을 못 보게 되는 경우가 염려되는군요.
장광열: 덧붙여 말씀드리면 수색에 무용창작센터극장이 생기고 있습니다. 지금 공연이 너무 많이 이루어져서 공연할 장소가 진짜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전용 극장이 더 생겨야 합니다. 그리고 수색에 생길 극장도 지자체에서 무용 전용 극장이란 말을 쓰지 않는데 무용 전용 극장으로 활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장르에서 금방 개입해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무용계에서 어떻게든 무용 전용 극장 설립에 대한 공론을 계속 지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채현: 네, 시간의 제약도 있고 해서, 배리어프리 공연, 공공극장 인프라 등의 이슈는 이 다음 춤현장 진단 포럼에서 자세히 거론할 기회를 갖도록 하지요. 마지막으로 춤 현장의 비평이나 유사 활동에 관한 여론을 모아 8번 섹션을 딘단하기로 합니다.
상반기 비평 현장, 돌출한 혼탁스러움과 이해충돌
김혜라: 이 부분은 저를 비롯한 비평계, 비평가 모두에게 연관될 것입니다. 지금 현장에서 비평가의 글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또 비평문을 읽지 않는다는 말도 들립니다. 우리끼리만 쓰고 있는 건지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현장 비평에서 문제 감시 기능은 저조하고 호평 일색의 글들이 무성합니다. 이해관계로 좋은 평가를 해주면 심의를 시키거나 강의 수업을 주는 이런 구조가 있다 합니다. 그래서 평들이 호평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어느 공공극장 심층리뷰 쪽과 이야기를 했는데 안 좋은 평을 쓰면 평을 의뢰할 수 없다면서 그런 비판을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걸 심층리뷰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공공극장에서 발행하는 웹진에서도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합니다. 제가 심의도 몇 번 했었는데 예를 들어 비판하면 그다음부터는 의뢰를 안 합니다. 본인들은 비평을 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칭찬받기만을 원하고 담당 공무원으로서 공평하게 모든 일을 처리했음에 만족하는 것으로 그치고, 지역에 갔을 때는 비평가들이 사회 보고 대본 써주고 수입을 챙기고 그런답니다. 이런 점들이 창작자들이 비평가의 모종의 관계를 의심하고 신뢰하지 않도록 하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광열: 올해 상반기에만 나타난 현상들이 아니고 인터넷 매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공공 극장에서 뉴스레터 등을 발간하면서 자체 기획공연을 중심으로 한 리뷰 등을 게재하기 시작하면서 기존 무용 전문지들의 광고 수주를 위한 형평성을 잃은 편집관행과 맞물려 더욱 비평의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비평가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공연 작품에 리뷰 혹은 비평작업 외에도 공적인 제도나 운용에 대한 감시기능인데 두 가지 모두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르코예술극장 같은 공공기관에서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자체 기획공연이나 대관 공연에 대한 리뷰를 게제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시도로 생각되나 객관적인 리뷰가 아닌 좋지 않은 작품인데도 호평 일색으로 게재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공공성을 해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비평가들 중에는 아주 드물게 평문의 질이 높아 신뢰를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대다수의 리뷰는 지나친 호평 일색으로 오히려 극장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공공무용단의 경우는 의무적으로 자체 평가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통해 작품의 질을 더욱 높이는 기회롤 활용하기보다는 당장의 실적을 위해 안무자나 예술감독 단체장들과 친밀한 비평가나 무용가에게 평가를 의뢰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비평가와 무용가, 비평가와 무용단체 비평가과 극장이 이른바 공생 관계, 밀월 관계가 부정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최근 들어 전통춤 공연이 많아지고 기획공연이 늘어나면서 전통춤 공연의 해설자가 리뷰를 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공연자들은 해설을 통해 사진을 더욱 홍보하고 더불어 호평까지 받을 수 있다면 일석이조가 되니 이런 비평가를 자처한 사람들의 제안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무용가들에게 연락을 해서 나에게 해설을 맡기면 비평까지 써주겠다고 제안하는 것은 일종의 흥정이 되고 이는 비평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악행이 됩니다.
다음으로 인터넷 매체들이 많이 생기면서 광고 수주와 지면 채우기를 위해 공연 리뷰의 필요성이 커지다 보니 무용 분야에 몸을 담은 지 오래된 사람들이나 혹은 글을 조금 쓴다는 사람에게 비평가라는 명칭을 붙여주면서 글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터넷 매체가 다 그런 건 아닙니다. 〈프리뷰〉 같은 경우는 평문의 질을 꼼꼼하게 검증 후 게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데가 더 많다 보니 비평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혼탁해지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발레 안무가가 자문을 구한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이 공연을 보러 갈 테니 거마비를 준비해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카톡으로 받았다며 이런 경우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어보더군요. 그 발신인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전문 춤비평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분이더군요. 무용가 본인도 잘 모르는 비평가라고 소개한 사람이 자기 공연을 보고 비평을 써줄 테니 돈을 달라고 했으니 굉장히 당황스러웠겠죠. 건강한 춤 문화를 해치는 이런 사례가 아직도 판을 치고 있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올 상반기에 모 대학교 교수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공연을 했는데 공연 작품의 완성도 부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었고 안 좋은 비평이 게재되었는데 단 한 명의 비평가는 아주 좋게 썼습니다. 나중에 봤더니 그 사람이 그 대학교의 강사였습니다. 이해관계가 형성되면 비평가로서 객관성을 담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아직도 버젓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실 비평가는 지금 비평 작업뿐 아니라 심사, 평가도 해야 하고 여러 현장에 대한 진단과 시평도 작성하게 됩니다. 춤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아야 되는 이유입니다. 비평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더 많이 보고, 더 정확하게 기록해야 합니다. 우스개 소리로 “열심히 가서 보고 쓴다고 한들 누가 보느냐” 그러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 보고 있고 다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후대에 그 비평가가 어떤 기록을 했고 어떤 관점에서 글을 썼는지 연구되고 밝혀질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평가들의 도덕성과 윤리 문제는 비평가들의 재무장과 함께 감시 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공무용단의 작업에 대해서는 엄격한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야 합니다.
무용가들도 자기가 만든 작품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받고 다른 시각에서의 관점도 들을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김채현: 비평가라는 말과 개념에 다소 혼선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크리틱(critic)과 춤촉매자 댄스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춤촉매자는 그 역할이 있을 것이고, 이것이 비평가의 역할과 겹치는 점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비평가를 자처하기가 손쉬울 것이고, 비평가라는 호칭을 남발하는 진원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춤 현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은 스스로 비평가이기를 포기하는 이라 하겠습니다. 상식 이하 사람들이지요. 동시에 공공극장이나 기관에서 스스로 호평에만 연연하는 그런 태도는 비평 현장을 혼탁하게 하는 부작용이 엄청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고 맹성을 촉구합니다. 공공극장이나 기관에서 선정한 무용인의 작업을 소개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지만, 수긍할 만한 객관성과 형평성을 갖춰야 합니다. 이와는 달리, 호평 일색의 비평 내용을 묵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특히 공공극장이 공공의 자금으로 비평 현장을 어지럽힌다는 점에서 주시하고 싶군요. 비평은 비평 전문지에 맡겨야지, 공공극장 자체의 공연에 대한 비평이나 준비평을 호평 위주로 그 극장의 기관지나 매체에 게재하는 것은 특히 ‘이해충돌의 위험성’이 적지 않습니다. 이해충돌의 우를 거듭하면 비판 성토의 화살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습니다. 공공극장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객석의 의견을 받겠습니다.
이종호: 아까 장광열 패널께서 마지막 코멘트를 열정적으로 하는 가운데 제가 하는 일이 두 가지나 언급되었기 때문에 좋은 해명을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시댄스에 대한 비판적인 충고를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은 굉장히 힘들어요. 시댄스가 예전보다 시시하다는 거를 누구보다도 시댄스를 만들고 있는 제가 잘 알고 있고 거기에는 여러 사정들이 있습니다. 근데 사람들은 축제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축제에 와서 작품만 볼 뿐이지 관객이든 심지어 거기에 출연하는 무용가든 아니면 지원하는 관청이든 축제 자체의 구조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지금 민간 축제들이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축제를 통합하는 얘기도 하셨고 문체부에서도 추진 계획이 있다고 해서 어떻게 개선하려는지 기대를 좀 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좀 따로 또 해야 할 것 같고, 인터넷 신문에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더프리뷰 같은 데는 괜찮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그 더프리뷰 제가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많이 애용해 주세요.
김채현: 진솔한 의견, 감사합니다. 오늘 8가지 주제로 2024 상반기 국내 춤현장을 진단해보았습니다. 8개의 주제는 각각 하나의 심도 있는 포럼 행사 주제로도 가능한 중요한 것들인데, 이것들을 모아 개괄하는 것도 오늘처럼 나름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상반기 국내 자료들을 속속들이 일별하며 주목할 현상이나 검토할 주제를 추출하고 집단적으로 논의한 데 오늘 포럼의 일차적 의의가 있을 듯합니다. 이런 형식의 포럼을 통해 상반기의 춤동향을 집중적으로 조망하고 또 대안을 환기한 의의가 작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노력이 미흡해서 혹시 놓친 주제가 있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향후 보완하며 다듬어나가면서 보다 충실한 포럼이 되도록 다 함께 힘을 모아봅시다. 장시간 경청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본 포럼 내용에 대한 의견은 춤비협과 춤웹진의 공식 이메일 계정 dancewebzine@naver.com 으로 주시기 바라며, 향후 포럼 추진에 참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