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공공무용단을 묻는다 3(완)
공공무용단 예술을 도리어 가로막는 조직과 운영
  • 일    시
    2024년 6월 20일(목) 오후 10시
  • 장    소
    비대면 화상 회의
  • 참석자
    김채현 장광열 권옥희 김혜라 송성아 한석진

- 국립, 시립, 도립 차원의 무용단들을 공립무용단이라고들 하며, 춤비협과 <춤웹진>에서는 공공무용단으로 지칭해왔습니다. 공공무용단은 그 여건에서 민간 또는 개인 춤 활동 주체들에 비하여 월등히 우월한 위치에 있습니다. 또한 설립 취지에서 공공성을 달성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공공무용단의 활동이 월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져갑니다. 한마디로 공공무용단의 쇄신을 요구하는 여론이 잦아지는 춤계 요망을 주시하면서, 현장에서 관찰한 바를 토대로 공공무용단의 안팎을 진단하는 방담을 진행하겠습니다. 이 방담에서 제기되는 내용을 간추려서 몇 회에 걸쳐 <춤웹진>에 게재합니다. (<춤웹진> 지난 7, 8월호에 이어 이번 호에는 공공무용단의 조직, 행정 및 감독기관과 연관된 방담 내용을 게재한다 – 편집자 주.)


저조한 실적과 은폐, 초보 경영 마인드마저 부재한 조직

- 공공무용단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좌담에서는 그 단체들의 지난 공연 실적을 파악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공연 실적 자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지요. 우선, <춤웹진> 차원에서 실적 자료를 확보하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 좌담 직후인 6월 28일 여섯 공공무용단(서울시무용단, 국립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발레단, 경기도무용단, 부산시립무용단, 대구시립무용단)에 전화로 취지를 소개하고 자료를 요청한 바 있습니다. 7월 5일, 국립현대무용단이 해당 자료를 보내왔습니다. 비교적 상세하더군요. 나머지 공공무용단으로부터 자료가 오지 않아서, 7월 19일에 2차로 5개 단체의 대표 메일로 공문을 발송하였습니다. 자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8월 16일 3차로 연락을 취하였지요. 5개 공공무용단의 대표 메일 이나 담당자 메일로 공문을 발송하고 나서 담당자를 찾아서 유선 전화로 안내하였습니다. 국립무용단은 대표 메일로 발송하였으되 담당자와는 전화 연결이 되질 않았습니다. 8월 19일, 대구시립무용단, 국립발레단, 8월 20일, 경기도무용단, 부산시립무용단으로부터 해당 자료가 왔습니다. 8월 20일 현재 서울시무용단과 국립무용단으로부터는 자료가 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 당연히 공개되고 또 요청이 있으면 선뜻 제공해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공공기관인 경우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저간의 경위를 들어보니까 정보 공개 청구 절차를 밟아야 할 판이군요.

- 2023년의 연간 공연 일수를 자료에서 보고 있자니 참 뜨악해지는군요. 제공받은 자료에서 국립발레단 84일, 국립현대무용단 66일, 대구시립무용단 28일, 경기도무용단 23일의 연간 공연 일수로 집계됩니다. 공공무용단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해도 연간 공연 일수를 보면, 전반적으로 활동이 미흡하다고 판단되고 심지어 처참해 보입니다. 연간 공연 일수에다 각 무용단의 공연작 수준을 겹쳐 보면 더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 공공무용단들의 자화상이자 맨얼굴이 아닐까요.

- 공공 무용단이 공연 일수를 포함한 활동 내역을 요청하는데 답변이 없다는 것은 운영 행정 부문의 활동이 그만큼 전문적이지 못하고 국민들과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연을 포함한 활동 상황을 기록한 연차 보고서를 발행하지는 못하더라도 홈페이지 등에 공연 횟수나 프로그램 등이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도 운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연도 또는 최근 수년간의 공연 및 활동 내역을 파악할 수 있고 심지어 일반인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국내 공공무용단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홈페이지를 확인해보시지요. 혹시 우리가 그런 단체를 빠트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그렇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무용단이 없다는 이 말이 차라리 틀렸으면 합니다. 설령 홈페이지 등에 공연과 활동 내용이 소개되어 있어도 너무 간소해서 그 내용을 판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흔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해당 단체에다 연락하니까 그냥 홈페이지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될 것이라는 답을 들은 경우도 드물지 않고요.

- 물론 공연과 행사 일수만을 갖고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요. 공연이나 행사 전후의 소요 일정, 특히 정기공연의 경우 작품 개발 기간 등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더라도 말씀대로 먼저 뜨악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 해외 메이저 무용단의 경우 공연 횟수는 많게는 150회, 적게는 100회 정도 합니다. 이 수치에는 교육 프로그램 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연 횟수나 일수만으로 우리나라 공공 단체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역에 소재한 공공무용단의 경우 단원들의 숫자도 적고 예산도 공공 무용단의 예산이라고 생각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곳도 많습니다.

- 소규모 단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중시되는 곳은 역사나 규모 면에서 상위에 속하는 공공무용단들이지요.

- ‘국립’ 단체들의 경우 국립발레단이 100일 가까이 공연을 하고 있으나, 국립현대무용단이나 국립국악원무용단, 부산국립국악원무용단 등은 더 분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도 프로젝트 무용단이라는 한계가 있어도 연간 66일 정도는 너무 적습니다.

- 이런 실정이니까 공공무용단들에서 연간 공연 실적 자료를 선뜻 제공하지 않는 이유를 쉽게 추단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현재의 실정을 감춰서 문제를 노출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내부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든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고 내부적으로 뭉쳐 공공무용단이 운영되면 급여는 받을 것이고 직장으로서 운영은 되겠지요. 이런 조직과 단체에 대해 과연 공연 예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열심히 하려는 단원들이나 예술감독만 엉뚱한 오해를 받지 않을지 우려됩니다. 기회 닿으면 공공무용단에 대해 정보 공개 청구 절차를 밟아 자료를 확보하고 더 메스를 가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지적해야 하는지... 공공무용단은 쇄신되어야 합니다.

- 단체든 개인이든 작품 활동을 널리 알리고 이미지업해서 한 사람 관객이라도 모으는 것은 기본이자 상식입니다. 특히 춤 공연 환경이 녹록치 않은 국내 현실정에서 공공무용단은 자체의 활동을 기회 닿을 때마다 적극 알려야 해요. 그런 적극성이, 공공무용단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대체로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자료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 행태가 이런 지적을 뒷받침합니다. 알려서 홍보하고 관심을 일으키며 관객을 모아들인다는 예술경영의 초보적 발상이 공공무용단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단체마다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예술경영이라는 말은 공공무용단과는 무관하지 않겠습니까. 자체 활동을 알리는 기회가 생기면 그때 그때 적극 나서야 하는데, 도리어 가급적 감추기에 급급하는 데서 무슨 경영이 있겠어요. 공공무용단에서 예술경영은 너무 고차원적인 개념인 것 같아요.

- 공연이나 행사 전후의 소요 일정을 짐작해서 연간 활동 일수를 보든 은폐에 급급하는 행태를 보든 공공무용단은 놀고 먹는 단체가 아닐까 해요. 여기에 더하여 그런 행정 운영 조직은 예술을 뒷받침하는 조직이라기보다는 예술을 빙자한 비예술 조직 아닙니까? 공연과 활동 일수 등을 보면 바깥의 비예술적 일반 기업에 비해 근무 환경이 월등하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당연히 각성해야 합니다.

- 활동이 미흡하면 미흡한 대로 정리해서 외부 요청에 응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렇게 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두어 가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활동이 미흡하니까 은폐하려는 의도가 첫째일 것이고, 둘째로는 활동을 제대로 소개하려는 경영 마인드가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두 이유 모두 공공무용단의 내부 운영 조직과 연관될 것입니다. 운영 조직의 비협조로 작품 개발 등 제반 활동이 미흡해질 가능성이 있고, 또 운영 조직이 당연히 해야 할 백서 작성과 공개 같은 업무를 방치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결산보고서나 백서를 제대로 된 자료로 공시하는 사례가 국내 공공 예술기관과 단체 가운데 얼마나 있을까요.

- 이와 관련해서는 예술행정이나 예술단체 운영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실제로 예전에 이 부문의 전문가가 몸을 담았었던 모 공공 무용단의 경우는 대외 홍보나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적이 있습니다. 공무원 신분으로 재직하고 있는 공공 무용단의 경우는 특히 담당자들의 소극성과 매너리즘이 단체의 운영활성화를 저해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국립 단체들의 경우 문화부 퇴직 관리들의 다음 행선지로 낙하산 인사가 이루어지다 보니 발전이 정체되어 있는 곳도 있고 장기간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는 매너리즘도 단체의 발전을 견인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 공공무용단이 재정, 시설, 단원을 확보해서 민간 단체나 개인들보다 월등한 여건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가 보든 문제입니다. 그 원인으로서 <춤웹진> 지난 호들에서 노조의 득세와 단원 집단의 권력화, 예술감독의 권한 위축, 예술감독의 선임을 좌우하는 부조리, 예술감독의 미흡한 역량, 65세로 정년 퇴임 규정이 변경된 사실, 유연하지 않은 출퇴근 규정, 불합리한 내부 오디션 규정, 외부 공연 행사와 관련 납득하기 힘든 여비나 숙박 제공 등등의 문제점이 거론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공공무용단 내부에서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만, 그런 주체적인 활동에 대해 들은 바 없습니다.


균형과 중심, 기대하기 어려운 예술감독

- 공공무용단에서 예술감독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행정 조직이나 운영기관이 뒷전에서 조종한다는 지적도 있었지요. 예술감독의 역할과 권한을 회복하려면 이런 폐단부터 시정되어야 합니다. 공공무용단 예술을 가로막는 조직과 행정은 존재할 이유가 없고 심하게는 백해무익하고 없어져야 한다고 굳이 말해야 할까요?

- 그래도 예술감독의 책임이 최우선적이고 일차적이라는 것은 강조되어야 하겠습니다.

- 지난 회차 방담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우선 예술감독의 예술 권한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예술감독 선임 과정이 보다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공개적이어야 예술감독으로서의 기능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바 있습니다. 예술감독 선임이 현장에서 의아해하는 선임이라면 그 의구심은 대부분 해당 선임 인물의 적합성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여러 면에서 적합성을 압도할 만한 다른 이유가 추정된다는 건데 그것이 예술을 위하는 선한 이유가 아니기 때문에 예술인들이 불쾌해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 결과로서 예술감독이 허수아비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있는 것이고요. 저는 이것을 예술감독과 행정조직의 힘의 균형 문제라고 보는데, 이 균형 작용은 공공성 실현을 위해 너무 당연하고, 상황에 따라서, 인물에 따라서 균형점은 다소 유동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 운영 행정 조직의 나태함과 방만한 행정이 내부 병폐의 근원이자 고질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행태가 프랙탈구조처럼 각 산하단체, 즉 공공무용단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 예술계 풍토에서 ‘어쩌다 예술감독’이 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 그 자리를 차지하고, 더 나은 곳으로 옮겨가기 위해 본업인 예술창작과는 담을 쌓고, 자신의 자리를 보장해줄 듯한 권력에 타협하고 줄을 댑니다. 방해되는 이가 있다면 치우는 일에 또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겠습니까.

- 공공무용단의 경우 예술감독 선임이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임위원회나 조직 내에 운용되고 있는 이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무 부서인 문화부에 의해 후보자가 추려지고, 지역 공공무용단의 경우 시장이나 도지사에 의해 낙점된 인사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이 과정에서 문화부 너머의 곳에서도 인사 청탁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내정된 사람에게 유리한 심사기준이 만들어지고 낙점자를 뽑기 위한 선임위원 구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최근에 예술감독을 선임한 수도권의 메이저 공공무용단의 경우도 이 같은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니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감독 선임 폐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지요. 지역에 있는 모 공공무용단의 경우는 예술감독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절차도 없이 도지사와 친분이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연이어 재위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국립발레단의 경우처럼 현 감독이 나름 스타성이 있고, 대중적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그 다음 감독으로의 교체가 어렵고 그 상태로 너무 오래 머물러 교체되는 시기를 훨씬 넘겨 버린 상태고, 이는 거대 예산의 공공무용단이 발레계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신뢰를 잃어가는 이상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죠.

- 국립발레단의 극히 편중된 레퍼토리들만 봐도 그런 걸림돌이라는 것을 한눈에 이해하게 되죠. 내부적으로도 어떻게 운영되는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의 경우 한 사람이 10년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단원들의 숫자가 적지 않고 단체 내에 노조가 결성되어 있는데 예술감독으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내부적으로도 용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공공발레단의 거대 예산, 국립발레단이 발레계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한정된 작품에 치우치고 있다는 것은 창작발레 작업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라면 동의할 수 있지만 외국인 안무가의 경우는 한 쪽에 편향되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현 예술감독의 재임 기간 동안 우선 단원들의 기량이 몰라보게 향상되었고, 세계적인 반열에 있는 유명 안무가들의 작품들이 공연되었고 그것을 레퍼토리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 정상 안무가들의 작품을 공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청한다고 해서,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공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예술감독의 인맥과 예술성이 이루어낸 결과로 봅니다. 오히려 국립발레단의 경우 문제는 예술감독의 계약 기간 만료가 다가오는데도 재임용에 대한 가부를 결정해주지 않았고, 심지어 임기가 끝나고 짐을 싸서 나간 후에 다시 간곡하게 다시 예술감독을 부탁할 정도로 방만한 행정 처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만한 행정 운용을 하고서도 주무부서의 그 누구도 징계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 경우는 행정이 예술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 지금 국립발레단을 평가할 계제는 아닙니다만, 그간의 여론과 평가에 비추어 국립발레단의 위상과 방향성 그리고 그간의 성과를 예술감독의 역할과 관련해서 논하는 공론의 장이 있을 필요성은 갈수록 커 보입니다.

- 예술감독에 따라서는 예술감독이 되면 당연한 수순으로 그 자리를 보장해준 쪽에서 보내는 여러 형태의 청구서를 받아들게 될 것입니다. 행정이나 문화예술계 정치, 언저리 사업을 더 열심히 한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애초에 자격 미달인 이가 연줄을 대고, 더 나은 자리 이동과 자기 보신에 연연한다면 언제 본업에 힘을 쏟겠습니까. 유통기간이 한참 지난 작품의 먼지만 대충 털어 다시 무대에 올리는 행태들이 그 증거입니다. 고전에 들 만한 작품은 물론 보기 힘들고. 공공 예산 낭비가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관객모독이라는 느낌입니다. 어떤 예술단체는 상급 행정기관이나 중앙의 하부조직처럼 보이는 곳도 있습니다. 예술감독이란 이는 마치 수습 감독처럼 존재감이 1도 없어,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합니다. 행정조직과 문화예술계 사이 커넥션의 산물입니다. 존중, 존경은커녕 때론 경멸의 대상이 된다는 것,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 공공무용단 예술감독을 할 만한 중견무용가들이라고 해도 개인 무용단을 운영하면서 약간 큰 지원금을 운영해보는 정도의 경험을 갖고 있는데 갑자기 공공무용단의 큰 예산과 공공성 실현이라는 무게를 감당하게 되는 상황과의 간극이 작지 않다는 게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3년 정도의 활동을 하고 나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개인무용단의 안무자가 되어야 하므로, 예술감독이 매우 일시적인 직분이라는 이 상황을 잘 봐야할 거 같습니다. 과연 공공무용단 단장으로 준비된 무용가가 얼마나 있을까요? 준비 안 된 예술감독을 자리에 앉혔을 때 그 책임과 뒷감당은 누가 해야 할까요? 저는 이런 경우의 문제도 많다고 봅니다. 예전에 어느 공공무용단 예술감독님은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취임하자마자 자문위원 몇 명을 구성하여 일체의 심사와 회의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자신이 할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서 자문을 구하고 자신은 작품에 몰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분별력도 없이 자기가 다 해야 한다는 과욕에 휘둘려 누가 부여하지도 않은 권력을 행사하려는 예술감독은 없을까요?

- 무용인들은 예산을 늘려라고 요구하는 것이 춤계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오랜 풍토가 있습니다. 공적 지원금이 늘어나더라도 그것을 감당할 신뢰할 만한 조직이 갖춰져 있지 않을 경우 오히려 분열과 화를 자초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봅니다. 예산과 조직이 커질수록 예술감독에게 전권을 주지 않고, 그것을 관리하고 운영할 행정조직 등 내외적 지원조직이 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공공의식이 미흡하거나 없는 준비되지 않은 예술감독일 경우 더욱 공공기관과의 관계에서 통제받는 것은 어쩌면 필요한 일이겠죠. 하지만 이 통제가 그 내용에 있어서, 공공성보다는 삿된 이해관계 때문이라거나, 예술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힘 조절을 섬세하게 못해서 간섭이 지나치게 커지는 방향으로 기울 경우 예술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유명무실한 이사회 · 운영위

- 예술감독의 선임이나 단체의 운영 등에 자문하기 위해 대부분의 공공 무용단들이 운영자문위원 혹은 자문위원, 이사회 등의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기구가 제대로 가동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자문위원들은 대부분 거수기, 들러리에 불과합니다. 한 마디로 방패막이로 운영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우선은 이들 있는 기구들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훨씬 시급합니다. 우선은 적임자를 뽑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공무용단에서는 이들 기구를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데서 벗어나 단체의 발전을 위한 매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합니다. 무용단 운영에 대한 의견수렴뿐 아니라 작품 개발, 공연에 대한 리뷰와 무용계의 여론을 수렴하는 창구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 선임된 자문위원들 역시 공공무용단의 공공성을 염두에 둔 전문적인 자문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이력 관리를 위한 데서 벗어나 제재로된 자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말할 것은 말하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자문위원들 스스로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단체 운영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 지금 현재 이사회들이 전문성이 떨어지는 문제, 즉 관련도 없는 분야의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들어와 있는 폐단 외에도 장르 관련 분들이 들어와 있더라도 회의비 정도 받고 분기별 1회, 아니면 연중 2회 정도 예결산 의결만을 하는 구조여서 무용단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운영방식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사장을 실제 공헌하실 분이 아니라 그저 명망을 가진 분으로 해 놓으면 회의 진행 자체가 어려운 경우까지 생깁니다. 허례허식인 거죠. 무용단 운영에 도움이 될, 보다 실질적인 이사회와 운영 방식이 필요하고 개선되어야 합니다. 한 두 번 모여서 회의비 받는 수준에서 운영되는 자문회의나 운영위원회만도 못한 수준으로 이사회가 운영되는 게 우리나라 공공무용단의 이사회수준이 아닌가 싶어요.

- 그러다 보니 공공무용단 운영위나 이사회에서 자율적으로 차기 예술감독을 선임하는 일은 꿈도 못 꾸겠지요. 이런 핵심 자율성부터 갖추도록 운영위나 이사회가 책임 의식을 갖고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외부의 입김을 차단하되 결정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것이 자율성이겠지요.

- 그나마 긍정적인 경우는, 상급 기관에서 파견된 이사가 예술감독의 실수와 무지를보완해 주는 경우입니다. 무용가들이 단체 운영 경험이 미약하고, 생각 정리도 안 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고, 어떻게 협력하며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없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 경우 상급기관과 많은 소통이 필요해 보입니다. 예술적인 측면을 건드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건 있어서도 안되죠.

- 오히려 문제는 공공무용단 내 경영진이죠. 지난 몇 년 사이 예산이 늘어나 인력이 확충되었고, 거기엔 예술감독이나 운영 조직에 인사청탁해서 들어 온 인력도 있을 듯합니다. 그런 인력들이 일을 잘하면 문제가 없을 텐데 무능할 경우 문제는 커지는 거죠. 목전의 이익에 급급한 단세포적 생각으로 무용계 발전을 망치면 안 됩니다. 권력을 가진 무용인이 그야말로 공공성의 적이 되는 건 이런 행동에 의해서고, 이는 강력한 제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성공을 숭배하는 모든 윤리를 혐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술가들이 부당한 외부권력의 명령이나 간섭이나 개입이나 억압 없이 행정 등 운영이 평등하고 자율성이 보장되는 구조라야 예술이 가능할까요. 적어도 그런 구조에서라면 예술이 망할 위기에 처해도 구원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 공공무용단의 상급 기관도 운영위, 자문위, 이사회 등을 꼭두각시 조직으로 보고 상급기관의 비예술적 욕구를 달성하는 장치나 상급기관의 무지와 책임에 대한 면죄부로 이용하려는 심리를 버려야 합니다.


절대적이지 않은 공공무용단, 그 대안

- 한국춤비평가협회가 2015년에 공공무용단 운영 실태를 당시 단원들과 현장 무용인들에게 물어 조사하는 작업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조사 결과가 <춤웹진>에 상세히 보도 게재된 바 있습니다. 그후 9년이 흘러 곧 10년을 내다봅니다. 그후 우리 공공무용단은 얼마나 개선 발전되었을까요, 아니면 퇴행을 거듭했을까요? 근 10년이 흐르는 사이에도 전반적으로 문제점은 계속 반복 거론되며 전보다 더 악화된 문제들도 있어 보여서 공공무용단들이 퇴행 혹은 정체를 거듭했다는 진단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근 10년을 허송헤월했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올바른 전망을 갖고 바꿔야 하겠지요.

-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공공무용단의 존재를 절대시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각이 과연 올바른지 하는 의문이 지난 호 <춤웹진>에서 언급되었지요. 한편으로는 공공무용단의 운영에서 지금처럼 폐단이 많다면 다른 대안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일입니다.

- 제 생각에는 먼저 무용계 자체에서 공공무용단의 공공성에 대한 담론이 많이 생성되어 공공성에 대한 의식이 높아져야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내외 행정지원 조직과 함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무용계 안에서 이 부분을 지속적으로 끌어나갈 구심점도 필요합니다.

- 아무튼 공공무용단으로 가는 길에 뭔가 중간적인, 단계적인 어떤 과정이 필요해 보이고, 그것이 민간 조직이든, 민관협 조직이든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공공무용단을 밖에서 바라보고 견제하고, 제안하는 역할도 할 수 있겠죠.

- 공공무용단에 대해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공공 조직에 대해서도 앞으로 논의가 활발해지고 공론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작품 개발, 춤 보급과 유통 및 교육 측면에서 공공무용단의 활동을 아우르면서 열린 조직으로 운영되는, 그리고 공공무용단을 능가하는 실적으로 내는 새로운 공공 조직을 구상하고 공론에 붙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공공무용단과 경쟁하는 공공 단체가 이제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겁니다.

2024. 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