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2014 SIDance & SPAF를 마치고
춤으로 들뜬 그러나 아쉬움도 많았던 25일의 춤판





(왼쪽부터)
김혜라, 김인아, 방희망, 장광열



사회
: 9월 말부터 10월에 걸쳐 춤 공연이 서울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펼쳐졌습니다. 하루에 9개 이상의 춤 공연이 열린 날도 있었지요. 중요한 춤시장의 하나인 뉴욕에서 많을 때에는 9-10개 공연이 하루에 열리는데 이와도 비견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이하 시댄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이하 스파프)를 비롯해 서울공연예술마켓(PAMS) 쇼케이스와 링크공연, M극장과 포스트극장의 기획공연, 국립발레단ㆍ국립국악원 무용단ㆍ국립현대무용단 공연 등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평소 춤 공연을 자주 보아왔고, 국내의 대표적인 공연예술축제인 스파프와 시댄스 현장을 열심히 오갔던 두 분의 비평가와 한 분의 무용전문기자를 모시고 두 축제에 초청된 무용작품들의 성향을 살펴보고 현장에서의 반응을 곁들여 축제의 이모저모를 진단해보고자 합니다. 스파프와 시댄스는 해외초청작, 국내초청작, 부대행사로 구성되어 있어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9월 25일 같은 날에 개막했고요. 스파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댄스가 해외단체의 공연을 많이 올렸죠. 우선 화제가 되었던 해외단체의 공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았으면 합니다.
 스파프의 대표적인 해외초청작으로는 니드컴퍼니의 <머쉬룸>과 호페쉬 쉑터 컴퍼니의 〈SUN〉을 꼽을 수 있겠는데요.

김혜라: 먼저 스파프의 니드컴퍼니 <머쉬룸>은 기대를 갖고 관람하였습니다. 이제는 춤이 움직임만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완성도 면에서 색깔이 분명하다면 무방하다고 봅니다. 최근 들어 퍼포먼스적 경향과 융복합 공연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에서 <머쉬룸>도 연출적 측면이 부각되어 볼거리를 주었으나 너무 많은 것들이 뒤섞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광란’이라는 본질적인 개념이 읽히기 전에 ‘난잡’에 가까웠다고 보입니다. 머쉬룸과 사람과의 관계설정의 비개연성, 안무가가 나타내려는 주제의식이 복잡함 그리고 머쉬룸의 무대 장치역할도 단순하였습니다. 스파프 대표작으로 내세우기에는 미흡했다라고 생각됩니다.

방희망: 장치를 많이 써서 시선을 잡아끄는 작품으로 스파프 측에서도 이런 효과를 노리고 초청했을 것이라 봅니다. 그러나 내용은 그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체제정복’이라는 주제와 버섯의 이미지가 잘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버섯들이 천장에서 좌우로도 움직이길 기대했으나 도르래 장치로써 위아래로만 단순하게 움직였던 한계도 있었고요. 한국인 단원 허성임의 활약은 반갑고 흐뭇한 부분이었습니다.

김인아 : 벨기에 예술의 물결(Flemish Wave)을 일으킨 1세대 연출가이자 무대미술가 얀 라우어스와 안무가 그레이스 엘렌 바키의 작품이죠. 이들은 2007년 <이사벨라의 방>으로 내한해 국내 공연예술계의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머쉬룸>은 공중에 매달린 버섯모양의 오브제, 귀를 파고드는 레지던츠의 실험적인 음악이 환각적 장치로 기능하면서 무용수들의 춤, 연기, 퍼포먼스가 광기어리게 펼쳐진 작품이었습니다. ‘버섯들의 반란’이라는 단순한 주제 속에서 의인화된 캐릭터들이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갖가지 장면들을 보여줬죠. 강력한 비주얼 때문에 시각적으로 새롭기도 했지만 광란으로 일관된 춤과 연기가 80분 동안 이어지다보니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의미를 알아채기 어려운 텍스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불쑥 들리는 한국어 대사가 청량제처럼 신선하게 들렸는데요. 이 작품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은 한국 무용수 허성임 씨는 시종일관 에너지 넘치는 몸짓과 연기로 관객과의 소통을 주도했어요. 올해 스파프가 내세운 해외초청작 두 편에서 한국인 무용수의 활약상을 볼 수 있어 매우 반가웠고, 지난해 <춤웹진> 해외취재로 게재된 두 편의 작품들을 올해 스파프를 통해 직접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관련 글: 2013 제30회 Impluls Tanz, 유럽을 흔드는 강심장 무용수-허성임, 호페쉬 쉑터의 신작 〈SUN〉)





사회: <춤웹진>이 지난해 소개했던 작품들이 공교롭게도 올해 스파프에서 전면에 내세운 무용대표작이었네요. <머쉬룸>은 제가 지난해 8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mpluls Tanz에서 보고 <춤웸진>을 통해 소개를 했습니다만 당시에도 관객들의 반응이 “좋다” “나쁘다”로 나뉘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자연스럽게 호페쉬 쉑터의 〈SUN〉으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호페쉬 쉑터 컴퍼니는 2010년 <폴리티컬 마더>, 2012년 <반란> <당신들의 방에서>로 두차례 내한한 바 있었습니다. 이미 국내에 호페쉬의 팬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 더욱 주목했을 겁니다. 프로그램 북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사실 호페쉬 쉑터는 안무가로 명성을 떨치기 이전에 차진엽씨와 함께 부산국제무용제에서 공연하기도 했었지요. 〈SUN〉은 이틀 공연 모두 매진되는 가장 뜨거운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김혜라: 〈SUN〉은 간결하고 세련된 무대였습니다. 특히 감각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에너지를 품은 역동적인 움직임이 탁월했습니다. 공연동안 결말이 어떻게 될지를 기대하며 초반부터 집중력 있게 배열한 편집 방식, 나레이션을 통한 극적 상황의 연출 그리고 당당히 권력구도를 폭로하는 정치적인 메시지 등 나무랄 것이 없는 공연이었습니다. 반면 형식적인 시도가 도드라지면서 주제가 단순하게 비춰진 것이 약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김인아: 〈SUN〉에서 먼저 눈에 띈 것은 작품에 도입된 플래시포워드(Flashfoward) 기법이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메멘토>와 같이 주로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어온 기법인데, 순차적인 전개구조 대신 미래의 장면을 앞서 보여주는 것이죠. 이 작품에서는 마지막 장면 10여초를 첫 장면에 보여주며 시작됐습니다. 전체 흐름을 모두 장면으로 처리해 갑작스런 암전이나 굵직한 남성목소리의 나레이션, 여성의 비명소리로 전환하는 구조 역시 이색적이었고요.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에 빗대어 지배와 피지배, 폭력과 대립에 관한 사회비판적인 주제를 춤, 음악, 조명으로 완성시켜냈죠. 퍼커션과 일렉트로닉으로 증폭된 사운드를 반복적으로 배치해 관객을 쿵쾅거리게 만들었어요. 특히 이 작품에서 두드러진 것은 무용수들의 출중한 군무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구부린 몸에서 리듬감있는 스텝이 나오고, 크게 휘젓는 팔과 강렬하게 흔들리는 몸이 역동적으로 구현되었어요. 춤 공연은 역시 춤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인지 공연 후 기립박수가 터져나올 정도로 스파프와 시댄스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호응이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호페쉬 쉑터가 제안하는 여러 연출적 장치들이 춤 작품으로 어우러지는 조화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강약을 조절하는 작품의 흐름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사회: 이 작품은 세 가지 점에서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봅니다. 첫 번째로 마지막 장면을 앞쪽에 배치한 플래시포워드 기법은 기존 무용작품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안무자의 새로운 아이디어였죠. 초반부터 관객들을 작품 속에 몰입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탬버린을 들고 나온 스토리텔러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여자의 경우 작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맡아 색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암전을 이용해 장면을 전환하는 방식이라든지 종이로 만든 양과 늑대, 인디언과 정복자의 판넬 등 소품을 이용해 안무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연상토록 한 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무자에 의해 조율된 무용수들의 움직임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가 아닐까요? 무용이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이었기 때문에 관객은 매료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크로스오버를 융합시키거나 컨셉트를 강조하면서 움직임을 극소화하는 무용작품이 있지만 역시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무용수들이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면서 끊임없이 춤을 추는 것, 거기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죠. 음악을 전공한 안무가답게 호페쉬는 음악과 춤을 매치시키는 능력을 이번 작품에서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우리나라 무용수 김예지 씨는 굉장히 춤을 잘 추더군요. 한국 무용수라는 것을 알고 보아서인지 어쩔 수 없이 시선이 쏠릴 수 밖에 없었는데, 작품의 에너지를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머쉬룸>의 허성임 씨도 그렇고, 해외초청공연에서 단연 돋보이는 한국 무용수의 출중함을 보니 은근히 자부심도 느껴지더군요.
 사실 한 시간 이상의 공연은 텍스트가 있는 드라마 요소, 극적 스토리텔링을 따르지 않으면 끌어나가기 힘듭니다. 호페쉬 쉑터는 70분의 작품 속에서 앞서 언급한 여러 장치들을 삽입해 관객들의 시선을 공연내내 잡있어요. 우리나라의 안무가들은 오로지 움직임으로만 풀어나가려고 하죠. 이 작품은 장편 작품을 안무하는 우리나라 안무가들에게도 그 작업방식에서의 차이점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고 봅니다.





사회: 스파프의 또 다른 해외 초청작품으로 콜롬비아 엑스플로즈의 <십자가의 일기>와 오스트리아 린츠 주립극장의 <블라인드 데이트>가 공연되었습니다.

김혜라: 최근 많은 춤들이 표정이나 감정의 측면을 절제시키고 있죠. 그것에 반해 <블라인드 데이트>는 얼굴이 살아있고 오버할 정도로 감정을 끄집어내 그런 점들이 촌스럽게 보이기는 했지만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춤이라는 것을 그간 얼굴 아래의 영역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즉각적인 정서보다는 사유와 의도된 의미를 표출하기 위해서요. 물론 아시안 감독(메이 홍 린)과 오스트리아 단체의 만남에서 색다른 색깔이 나오길 바라는 기대는 못 미쳤지만 솔직함, 자연스러움, 재미 등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이라는 것이 다양한 기능과 역할이 있다고 보기에 가볍게 축제의 마지막을 즐기기에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회: 타이완 출신의 무용가가 상임안무가로 유럽에서 활약하는 일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주의 깊게 보았습니다. <블라인드 데이트>에는 10명 이상의 무용수들이 출연했죠. 그러나 예술적 완성도는 떨어진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을 풀어나가는 아이디어나 연출 역시 새로운 면은 찾아볼 수 없었고 전체적으로 가볍고 올드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이 올해 스파프의 폐막작이었는데, 주최측이 이를 고려해 다소 코믹한 작품을 선정한 것 같았습니다. 시댄스에 비하면 해외작품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스파프에서 초청한 4개의 해외 무용단은 규모나 성격을 각기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사회: 이제 시댄스 해외초청작을 살펴보지요. 첫 공연작은 마기 마랭과 다비드 망부슈, 뱅자맹 르브르똥의 <징슈필>인데요. 처음 이 작품은 마기 마랭의 최신작이라고 알려져 마기 마랭의 안무를 예상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녀는 컨셉션을 맡았고 퍼포머, 무대 디자이너와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습니다. 올해 2월 프랑스 툴루즈 떼아트르 가론느에서 초연되었으니 상당히 최신작이죠.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직접 초청하여 9월 19-20일 공연한 후, 시댄스 무대에 25일 올랐기 때문인지 첫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시댄스에서는 개막작으로 홍보하지는 않았습니다. <징슈필>은 공연 후 호불호가 나뉘어지면서 다소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김혜라: 마기 마랭의 이번 작품은 선입견을 배제하려고 프로그램북을 먼저 보지 않았습니다. 뭔가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봤는데 시종일관 옷을 갈아입으며 각양각생의 사람들의 얼굴과 인상이 포착되는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 마기 마랭이 직접 주도한 작품은 아니지만 퍼포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관된 표현방식으로 인간에 대한 통찰적인 시각이 잘 드러났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인상은 그 사람의 문화역사적인 맥락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것이고 만남이라는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을 판단하죠. 물론 일반적으로 에너지 넘치는 춤을 기대한 전문가와 대중에게는 다소 당황스럽긴 했겠지만 전작의 기대와는 다른 작품을 내세운 점도 역시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좀 더 해석해 볼 만한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사회: 프로그램 북에는 Conception 마기 마랭으로 표기되어 있더군요. 이 작품은 한 명의 남자 퍼포머가 무대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약 15m정도를 한 시간 동안 이동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종이 가면을 계속 바꿔 쓰면서 다른 사람이 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옷을 갈아입으며 나타냈어요. 컨셉트가 아주 분명했지요. 그러나 춤 공연을 기대하고 보러 온 관객 중에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더군요. 춤은 없고 퍼포먼스만 있었던 점, 가면과 옷을 바꾸는 것이 전부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이런 작업들은 유럽에서 10여 년 전부터 안무라는 말 대신 컨셉이라는 용어로 지칭되며 무용수의 몸 움직임을 극소화시키는 작업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독일의 탄츠플랫폼에서 봤던 〈Face〉라는 작품은 네 명의 무용수들이 앉은 채로 전혀 움직이지 않고 50분 동안 얼굴 안면의 근육만을 움직이더군요. 그것 또한 움직임, 춤이라고 보는 것이죠. 이런 작품들은 다른 형태의 새로운 춤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 수 있어요. 어쨌든 이번 마기 마랭의 <징슈필>은 과할 정도로 컨셉트가 강조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초청하여 아시아 초연을 마치고 서울에 연계된, 매우 바람직한 예술작품의 유통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시댄스, 스파프와 같이 국고지원을 받는 축제에 초청된 작품들이 서울에서만 공연되고 지역 관객들에게 관람의 기회조차 돌아가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서울시에서 지원받은 축제가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원을 받은 축제이니 지역의 관객들을 위한 공연을 당연히 고려해야합니다.





사회: 필립 장띠의 내한 공연도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장띠의 공연은 엄밀하게 무용이라기 보다는 마임이기 때문에 오히려 연극 쪽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내 공연을 통해 워낙 좋은 평을 받았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관객들이 공연장을 메웠습니다. 오랜 만의 내한공연이기도 했구요.

김인아: 스파프의 니드컴퍼니 <머쉬룸>과 견줄만한 시댄스의 비주얼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머쉬룸>이 ‘환각’의 시각세계를 그렸다면 <나를 잊지 마세요>는 상상 속 이미지가 가득한 ‘환상’의 꿈세계를 초현실적으로 드러냈죠. 관객의 몰입을 자아냈던 그림자 인형극으로 시작해서 실제 어른크기의 인형이 18세기 복장을 한 8명의 퍼포머와 펼쳐낸 장면에서는 출연자들이 더 많다고 착각할 만큼 사람처럼 리얼하고 능수능란한 움직임을 선보였습니다. 공연장 끝 쪽에서 보았다면 인형과 퍼포머를 분간하기 어려웠을 듯해요. 소용돌이치듯 회전하는 검은 패브릭으로 구름이나 조개껍질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내며 마술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그들이 보여주는 슬랩스틱 코미디는 환상적인 비주얼에 웃음을 가미한 연출로 드러났습니다. 전반적으로 움직임보다는 새로운 시각언어를 제시한 작품이었습니다.

방희망: 등신비율의 인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만큼 퍼포머들이 몸을 훈련했다는 점, 한 작품에서 춤, 노래, 마임 등 다양한 상차림을 한 것이 가장 특징적이라고 봅니다. 우리 정서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던 것이, 등신비율의 인형인 만큼 그것이 죽음을 맞이할 때 끔찍한 느낌이 더 실제적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면서 풀어낸 것이랄까요. 인형극의 세트를 옮긴 듯 사물을 다양하게 끌어와 오밀조밀하게 연출한 분위기는 봄에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던 <키스 앤 크라이>를 연상시키기도 했습니다.

김혜라: 움직임보다도 기술적인 장치 활용과 스토리 구조가 자연스럽게 춤과 협업을 잘 이뤄냈습니다. 대중들 특히 어린아이들과 함께 보면 좋을 공연이었습니다. 특히 연출 요소의 활용이 매우 전문적이고, 시각적 장치를 내세워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어서 스파프가 초청한 니드컴퍼니 <머쉬룸>과 비교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회: 이어진 해외공연은 스위스에 베이스를 둔 링가무용단의 <신체지도 다시 그리기>였지요.

방희망: 무용수의 몸에 센서를 부착해 움직임에 따라 음악과 조명이 변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인지 모르겠지만 움직임을 소리로 변환하는데 시간차가 있어 동작이 앞서가고 소리가 뒤따르는 식으로 싱크로가 맞지 않는 느낌이어서 즉각적인 변환을 인식하면서 즐기기엔 효과가 떨어졌어요. 상반기 국립무용단의 <회오리>를 비롯하여 이렇게 동작 정보를 소리로 변환하는 유형의 작품들을 제법 만나게 되었는데, 한 때의 유행인 것 같기도 해서 저로서는 감상의 참신함은 떨어졌습니다. 섹터를 나누어 사람 수를 점점 줄여가면서 안무를 구성했는데 춤이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높아졌습니다.

김인아: ‘음악을 보고 동작을 듣는다’는 테마가 와 닿았던 작품이었습니다. 하나의 무용단과 4개의 협력 기관의 협업으로 근육의 움직임에 따른 자극반응을 소리로 변환하는 인터랙티브 시스템을 개발해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지점을 무대 위에 실현해냈는데요. 춤 언어가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확장됐다는 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과 과학의 상호작용, 그 자체에서 획득되는 강렬함과 근육지각적인 신체성을 발견할 수 있었죠. 수단으로만 활용되던 테크놀로지가 작품 자체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지적 자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합니다. 국내에서는 이런 실험적인 시도가 부진한데다, 있다 하더라도 기술을 활용하는데 그친 적이 많죠. 작품을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춤과 기술이 동반자적 위치에 놓인 진정한 의미의 융복합 작품을 국내 춤계에서 만나길 기대해 봅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링가무용단과 나란히 무대에 오른 한국 무용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7-8월 모집, 9월 오디션을 거쳐 최종 선발된 김동욱, 남현우, 이제성 씨는 4일간의 연습을 거쳐 이번 무대에 올랐죠. 국내 무용수가 해외단체와 인적 교류를 만들어 나아가는 하나의 방안으로서 앞으로도 국제 춤축제에서 지속적으로 모색되었으면 합니다.





사회: 올해 시댄스에서는 덴마크포커스를 기획해 돈*그누/루시 서기트&더 바디팜, 덴마크 댄스시어터, 그란회이 무용단을 조명했습니다. 이번에 선보인 덴마크의 무용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방희망: 저는 돈*그누/루시 서기트&더 바디팜의 공연을 봤는데요. 일단 시댄스가 초청할 만큼 덴마크의 현대 무용을 대표한다고 볼 그런 작품 수준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품으로는 재미있었으나 굳이 덴마크 포커스라고 이름붙일 만한 특장점이 느껴지진 않았지요. 돈*그누의 <샌들 신은 남자들>은 양말 위에 샌들 신는 것을 촌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테마로 만든 작품이었는데, 외국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점은 재미있었습니다. 작업복을 착용한 두 남성무용수들이 장롱을 뒤흔들어 옮기거나 그 위에 뛰어오르는 등 노동자의 코드를 무용작품으로 불러왔다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회: 돈*그누의 <샌들 신은 남자들>은 음악을 틀어주는 여자의 역할이 애매하고 남자 무용수들의 코믹한 움직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루시 서기트의 <순례자>는 여자 무용수 솔로작품이었는데 단조로운 춤 구조와 같은 스타일이 30분가량 반복해 이어지는 작품이었어요. 앞의 작품이 남자 무용수에 의한 행위적이고 연극적 요소가 보여졌다면 뒤의 작품은 움직임만으로 풀어냈기 때문에 서로 대비가 되었습니다.
 덴마크포커스는 무용수의 규모에서도 그렇고 최신작을 선보인 덴마크 댄스시어터의 <블랙 다이아몬드>에 가장 많은 관심이 쏠렸던 것 같습니다.





김인아: 올해 5월 초연된 신작으로 총 16명의 무용수가 출연했습니다. 미래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인류의 어둡고 밝은 양면으로 풀어서 흑과 백의 무대 및 의상디자인을 보여줬죠. 시끄럽고 분절적인 일렉트로닉 비트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음악도 이런 대립 구도에 적절히 배치됐습니다. 특히 기하학적인 움직임과 무대디자인이 치밀히 계산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화려하고 웅장한 작품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덴마크포커스 부대행사로 ‘덴마크 무용 설명회’가 있었는데요. 코펜하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 오르후스(Aarhus)에 위치한 보라보라 무용극장의 예술감독, 예스퍼 디 니어고가 발제를 맡았습니다. 역사에서부터 무용까지 덴마크 문화예술의 양상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죠. 축제에서 소개한 덴마크 댄스시어터를 비롯해 주목할 만한 무용단과 안무가, 기관에 대한 소개도 있었습니다. 공연과 학술행사로 구성된 시댄스의 ‘포커스’ 기획은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나라의 무용을 개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사회: 한 나라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공연 이외에 이같은 학술행사를 곁들이는 것은 시댄스가 그만큼 국제 축제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이같은 부대행사들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별도의 홍보도 더욱 강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더보드 프로덕션의 <대홍수>도 공연됐죠. 후에 이 작품은 문래예술공장에서도 재공연되었는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방희망: 제목이 <대홍수>여서 장치를 기대하게 하는데 무대구성은 의외로 원시적이었습니다. 공연 시작 전 무대에 가득 널린 물병들은 물에 대한 소소한 연상만 일으키고 실질적으론 쓰임이 없었고, 상반신을 노출한 무용수들의 의상이 겹겹이 염색된 천으로 부풀려져 파도의 포말을 연상시킨다거나 공연 후반부 좌우 기둥에 걸린 성긴 그물을 끌어내릴 때 그것이 물이 떨어지는 것 같은 효과를 내서 물 없이 물의 이미지를 연출하려 했다는 점이 의외였어요.
 문제는 책자엔 특별히 안내 문구가 없지만 공연 예매 사이트에는 분명히 한호 합작이라고 안내되어 있는데, 한국인 무용수 세 명이 참여했다는 것 말고는 합작의 의미를 알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책자에는 안무가 제레미 네이덱이 이 공연에 부토와 판소리를 결합하였다고 설명하는데, 저는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흔히 그러하듯 작품에는 오히려 일본풍의 요소가 지배적으로 들어가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무용수들이 기마 자세로 좌우 발을 구른다던지 그런 것이 일본 전통극을 연상시켰거든요.
 우리 무용수가 소리를 했다고 해서 우리 것을 작품에 녹여냈다고 볼 수는 없기에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한국 측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도 궁금하고 얻은 것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전날 보았던 스파프 김남진의 <봄의 제전>이 오히려 ‘대홍수’에 대한 영감을 주어 흥미로웠습니다.





사회: 한호 합작을 통해 특별히 새로운 동서양의 만남이 표출된 것 같지는 않네요. 합작 과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프로그램북에는 설명이 빠져있어 관객들로서는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관객 서비스 측면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국제 합작ㆍ협력ㆍ공동제작 작품들은 두 축제에서 여러 작품 볼 수 있었는데요. 시댄스에서는 <아프리카&남미 댄스 익스체인지 2014>가 공동제작 작품이었고 스파프에서는 김경영 안무의 <무림강호>가 중국 무용단과의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공동제작이든 협력이든 그 작업 과정이 참여 아티스트들에게 도움이 되고 만들어진 창작품이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면 의미가 있지요.
 제가 본 아프리카&남미 댄스 익스체인지 2014는 밝넝쿨 씨와 4인의 아프리카 안무가가 공동안무한 <나는 여기입니다>란 제목의 작품이었는데 작품의 완성도에서나 컨셉트에서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5명의 안무가들이 약간의 움직임을 하다가, 커뮤니티댄스처럼 한국에 살고 있는 국내외 25명의 일반인들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씨댄스 자체에서 아티스트들을 선별해 이루어진 공동작업인줄 알고 갔었는데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는 “문화동반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행해진 작업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유망한, 비슷한 경력을 가진 안무가들이 한국에 와서 국내 안무가와 공동 작업한다는 예술적 의미보다는 문화부의 지원을 받은 문화동반자사업에 참여한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 듯 보였습니다. 이런 성격이었다면 메인 프로그램 보다는 부대행사로 편성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입니다.
 박넝쿨씨와 비교했을 때 아프리카 안무가들은 모든 면에서 많이 뒤떨어져 보였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과 아프리카 예술가들의 조합에서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기대할 수 없지요. 한국을 대표하는 춤축제인 시댄스에서 이뤄지는 공동작업은 다른 무엇보다 예술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 초청에서부터 작업과정의 전반이 관리되어야 하고 나아가 관객들의 관심도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죠.





방희망: 말씀하신 것처럼 스파프에서도 한중 공동작업인 <무림강호>가 있었어요. 이 작품은 무림의 절대 강자인 여자를 그녀의 남자친구 관점에서 만화처럼 묘사해 객석에선 반응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중국의 기예와 같이 유연하게 늘렁늘렁 늘어지는 무용수들의 신체나 안무는 특별히 현대적인 어법이라고 하기 어려웠고 중국 본토에 원래 있던 요소들을 모은 것 같아서 우리나라 사람이 안무했다는 흔적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사회: 우리나라의 안무가가 중국의 무용수들과 공동 작업한 작품인데, 전체적으로 중국 무용수들의 기량이 떨어졌어요. 무용수들이 컨템포러리 댄스를 소화할 정도로 기량이 따라주지 못하다보니 아마추어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중국의 무술을 사랑의 이야기와 연결시키는 것은 영화에서 자주 접했던 친숙한 소재였기 때문에 관객들이 재미있어하긴 했지만, 이왕에 한국과 중국의 예술적 공동작업을 시도한 것이라면 소재를 찾는 과정이나 중국의 문화를 차용하는 과정에서 좀더 신중한 접근이 이루어졌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입니다. 이번 작품은 쿵푸와 같이 영화에서 따온 무술적 소재를 춤으로 끌어왔다는 것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예술적인 상상력에서 실망스런 작품이었어요.
 한국의 컨템포러리 댄스는 예술성, 무용수의 기량, 작업과정 등에서 중국보다 10여년 앞서 있다고들 말합니다. 중국의 문화는 한국보다 해외에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한 소재 개발은 시대적으로 해외 진출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클라우드게이트의 1970년대 작품에는 한국의 <승무>에서 사용하는 장삼이 등장했죠. 안무가 린 화이민이 한국 작품에 시각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아 만든 작품이었는데 한국적인 소재로 동양적인 문화적 코드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도 충분히 중국의 소재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텐데 이것이 가볍고 거칠게 이어져 아쉬웠습니다.
 스파프와 같이 공신력 있는 축제에서 이뤄진 공동제작이라면 주최측이 작품의 시작부터 코디네이팅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안무가에게 작품을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제작과정, 컨셉트까지 확인해야 하는 것이죠. 시댄스의 해외 초청 무용단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야 할 것 같네요.





김인아: 시댄스 해외무용작 중에서 비르지니 브뤼넬의 <젠더 콤플렉스>는 남녀 성차에서 오는 젠더 개념의 한계와 극복 과정을 신체성이 돋보이는 아크로바틱한 테크닉으로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무대를 어둡게 조명하여 움직임에 집중하게끔 만들었죠.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열렸는데 850석에 달하는 객석에 비해 점유율이 낮아 아쉬웠습니다. 작품의 성격과 규모를 고려할 때 중소형 극장 크기가 적당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비롯해 앞서 언급된 덴마크 댄스시어터, 그란회이 무용단, 피터 암퍼&길례르므 가리두/캄포, 호드웍스가 19금 누드 공연이었습니다. 이 5편에 대해 언론에서도 적지 않게 보도되었고요.

사회: 유독 시댄스에 관련해서는 누드 무용에 대한 기사가 많았는데 오히려 편향된 보도로 인해 시댄스 프로그래밍의 다양성이 가려지는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도 들더군요. 누드무용에 대한 보도로 인해 순수무용이 좋아서 보러오는 관객들이 늘어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19금 공연을 기대하는 일부 관객들은 더 자극적인 장면이 없다면 보러오지 않을수도 있을 겁니다. 편향된 언론보도는 무용대중화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듯 싶어요. 시댄스 폐막공연이었던 호드웍스의 <새벽>은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해 화제가 되었지요.





김혜라: 관람 자체가 힘들긴 했습니다. 시작부터 무용수들이 이유를 알 수 없이 적나라하게 옷을 벗었고 성교를 표현하는 단순한 동작들이 이어졌어요. 안무가가 의도한 원초성이나 피부의 결을 부각시킨 진행방식이었죠. 포르노그라피와 예술의 경계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헝가리무용단의 시도는 다소 부담스럽긴 했지만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깔끔하게 각인된 작품이긴 합니다. 무엇보다도 미적인 관점에서 누드라는 것을 거부한 관점을 높이 사고 싶어요. 다시 말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읽혔습니다. 분위기 있는 적막한 음악, 남녀 무용수들의 춤이라기 보다는 노동으로 보이는 행위 그리고 마지막 즈음의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춤 등... 일반 관객들에게 무용을 알리는데 유익한 작품은 아니지만 예술적인 관점에서는 생각해볼 지점이 있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사회: 스파프에는 메인 공연 외에 연계 프로그램을 축제에 포함시키고 있지요. 젊은 안무가들의 경연무대인 ‘서울댄스콜렉션’이 그렇고 한국공연예술센터의 기획공연 ‘솔로이스트’에는 김판선, 이정윤, 최문석, 김재승 씨가 참여했습니다.

김혜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김판선씨의 〈Share, Sound〉는 일상적인 소재를 리듬감 있게 풀어냈습니다. 35분에 달하는 긴 시간을 혼자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은데 그의 에너지와 감각, 미소년 같은 재기발랄함이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사회: 김판선씨는 작년 서강대 메리홀에서 개인 공연을 가졌을 때 안무가로서의 남다른 감각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지요. 이정윤 씨는 아직도 국립무용단 간판 무용수로서의 존재감이 더 크지요. 김판선 씨는 유럽에서 많이 보아오던 스타일, 본인의 전작에서 보여준 색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작품이었어요. 분위기를 바꿔가며 35분을 이끌어갔던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정윤씨의 <판>은 한국춤 전공자로서 춤 어휘가 한정적인데 데다 사용한 솟대 등의 오브제도 춤과 그다지 매칭되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춤을 전공한 무용수들의 경우 새로운 움직임을 조합하지 못하면 솔로작품으로 15분 이상을 버티기가 굉장히 힘든 것 같습니다.

김인아: 솔로이스트의 기획방안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안무자가 작품의 분량을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솔로로 각각 30분씩 공연하라고 했다면 이것은 아티스트에게 과한 것을 주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분 길이의 작품도 괜찮으니 안무가의 예술성을 열어주고 보장하는 기획이어야 합니다. 1부 김판선, 2부 이정윤의 무대가 관객 입장에서 강하게 대비되므로 한 공연에 3명의 솔로이스트 작품으로 구성하는 것도 좋았을 법 했습니다.

김혜라: 이 작품 외에도 시간에 얽매여 예술적으로 상처 입은 작품이 많습니다. 전반적으로 공연물들에 할당된 시간이 안무가나 단체의 상황에 맞지 않게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공연기획자나 안무가들이 작품이 20분용인지 한 시간용인지, 소극장용인지 등 기본적인 컨셉부터 다시 다잡아야 할 것 같아요. 이는 여러 공연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겠으나 궁극적으로 작품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자유롭게 자신의 창작적 산물을 보이는데 독이 되는 경우로 이번 이정윤 씨의 작업도 이러한 관행의 피해자라고 생각됩니다. 본인이 국립무용단을 나와서 자신만의 작업을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안무작을 보였는데.... 춤꾼으로 살았던 자신의 역량을 고려해 충분히 시간을 갖고 적절한 시간을 배치한 작품을 올렸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습니다.

방희망: 솔로이스트는 전반적으로 사족이 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공연이 적정한 선에서 멈췄으면 좋겠는데 시간을 채우기 위해 연장하느라 필요 없는 부분까지 덧붙여지니 주제의식이 흐려져 문제였습니다. 특히 김판선 씨와 이정윤 씨는 대극장을 배정받아 혼자서 그 큰 공간을 채우기에 버거워 보였어요. 차라리 일관되게 모두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더라면 솔로이스트의 기조랄까, 솔로춤의 진수를 집중하여 보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사회: 김판선 씨와 이정윤 씨는 본인의 안무작을 올렸고 솔로이스트 두 번째 공연에 초대된 김재승 씨는 조주현 씨의 안무작을, 최문석 씨는 콴 부이 뇩과 공동안무작을 선보였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방희망: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조주현 씨가 안무한 김재승의 출연 작품 <가는 세월, 오는 세월>에서는 상반신, 팔의 자세에서 발레 요소를 느낄 수 있었지만 생각만큼 강하게 들어가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서 김재승씨의 연기력을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얼굴에 흰 칠을 하고 나와 춤을 추면서 돌아가신 할머니, 저승사자, 무당 등의 얼굴로 차례로 변화하는 과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서양의 ‘죽음의 무도’가 우리 식으로 바뀌면 이렇게 되겠구나 그런 점에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최문석 씨의 작품 〈Going Below〉는 전반부에 강도 높은 춤을 몰아놓고도 후반부가 지나치게 사변적으로 흐르면서 지루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땀에 흠뻑 젖은 상태에서 전등을 돌리거나 입에 무는 것도 위험해보여 조마조마했구요.





사회: 스파프의 또다른 국내작이었던 김남진 씨가 안무한 <봄의 제전>은 주목할 만한 작업이었습니다. 동서양의 많은 안무가들이 <봄의 제전>을 재해석했죠. 비슷한 시기에 국립발레단이 <봄의 제전>을 올렸고요. 해외 프리젠터들의 경우도 <봄의 제전>은 그 제목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보이더군요. 2010년과 2013년에 이루어진 장기 유럽 투어 프로젝트인 Kore-A-Moves에 참가한 안성수 씨 안무작 <로즈>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음악 34분을 그대로 끌고 간 작품이었는데, 유럽 현지 극장에서는 ‘한국의 안무가가 만든 <봄의 제전>’으로 홍보하더군요.

방희망: 김남진 씨는 지난달 신작 <바늘>에서 이렇다 할 안무를 볼 수 없어 다소 실망했었는데 한 달 사이 작품성을 끌어올린 <봄의 제전>을 선보였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여러 아티스트가 이를 작품으로 다루었는데 안무가 김남진 씨가 가장 적극적으로 풀었습니다. 주제를 명확하게 부상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다룰 줄 안다는 것은 김남진 씨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세월호 사고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결시킨 것은 음악을 새롭게 들리게 할 만큼 참신했어요.

사회: 서울아트마켓 팸스에 참가했던 해외 델리게이트 여러 명도 객석에서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김남진 씨의 작품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롭게 느꼈을 것이라 봅니다. 하나는 장애인을 출연시켜 전문무용수와 혼재시킨 것, 두 번째는 안무가가 사회적인, 현실적인 소재를 춤으로 담았다는 것이죠. 세월호 사건을 다루었고 프로그램북에 소개된 영문 작품설명에도 사회비판에 대해 강하게 언급되어 있어요. 함께 공연을 보면서 장애우들이 나오고, 적지 않은 물 속에서의 춤과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만으로도 그들이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공연 후 “아주 인상적이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재해석할 때에는 제의성에 초점을 둔다든지 아니면 음악 자체에 의존해서 움직임으로 승부를 걸곤 하는데, 김남진 씨의 작품은 여러 가지 차별화된 요소가 혼재해 있기 때문에 신선했죠. 다만 장면 전환의 타이밍을 세밀하게 연출하는 데에 부족함이 느껴졌고, 물 속에서 보여준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이와 유사한 유형이 외국의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보아왔던 것이라 아쉬웠습니다.





사회 : 시댄스에서도 올해 프로그래밍에 늘 해 오던 전통춤 프로그램과 한국춤 빛깔찾기 외에도 전문 무용수 초청 무대인 <댄서의 순정>, 그리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용가(신은주 임지형)들의 초청무대를 새로 마련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시댄스와 스파프는 적지 않은 국고 지원금이 투입되는 축제입니다. 두 축제에서 공연된 춤 공연 작품만도 3주 넘는 기간 동안 60여편이나 되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고 지원을 받는 두 개의 공연예술 축제가 왜 같은 기간에 경쟁하듯 개최해야 하는지 현장에서 불만의 소리가 높았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이제 마무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김혜라: 먼저 풍성한 가을에 서울 한 복판에서 다양한 공연을 제공해준 시댄스와 스파프의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축제의 시기가 겹치고 여러 공연장에서 하는 문제로 선택의 폭이 줄어든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또한 스파프가 예년에 비해 무용이 축소된 점도 왠지 연극에 밀린 느낌이 들어 아쉽습니다. 시댄스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시댄스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춤축제로 이제는 양보다는 질적 성장을 이룰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희망: 저는 비평가로 등단하고 처음으로 두 행사들을 본격적으로 관람한 셈인데 스파프의 경우는 연극에 비해 무용의 프로그래밍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떨어진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올해 스파프로 유입된 한팩 솔로이스트도 기대했던 만큼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고요. 차라리 이전처럼 안무가-무용수의 커플링을 유지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시댄스는 축제의 명성에 비해 일관된 철학이나 기조를 찾기 어려울 만큼 산만했는데 작품을 선별하는 시댄스 만의 독특한 시각이 정립되었으면 합니다.

김인아: 그것은 아마도 컨템포러리 댄스가 아직도 충분히 자리잡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현대무용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댄스의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다양한 작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권유하다 보니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는 것이죠. 한편으로 시댄스는 어렵게 초청한 단체들이 대부분 하루 공연으로 그치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관객이나 대관의 문제가 원인일 수도 있겠죠. 같은 날 공연이 중복되어 있고, 공연장이 서울 곳곳에 분산되다 보니 의미있는 작품을 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작품 수가 오히려 집중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어요. 기간 동안 공연의 시간대를 달리해 모든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일정이 조율되었으면 합니다. 두 축제가 동일한 일정으로 진행되는 점도 관객의 여유로운 선택을 위해 개선되었으면 좋겠고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춤 축제로서 앞으로도 완성도 높은 공연을 다채롭게 선보여 주시길 기대합니다.

사회: 지난 몇 주간 춤 공연장에서 거의 매일 마주치다시피 했던 세분 전문가들의,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4.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