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열 : 장수미님의 경우, 미국도 있는데 왜 유럽으로 가게 된 것인지 궁금하네요.
장수미 : 저는 중앙대학교를 나왔는데, 당시 학교에서 워크샵을 할 때 유럽의 컴퍼니에서 강사들이 초청되어 왔어요. 마기 마랭 컴퍼니, 피나 바우쉬 컴퍼니에서도 왔지요. 그러다보니 미국보다는 유럽 쪽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졸업 당시 연극과 무용이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졸업 논문도 피나 바우쉬의 탄츠 테아터에 대해 썼고요. 졸업한 후에도 연기를 배우려고 극단에 들어갔거든요. 기술적인 면을 배우면서 접목시키려는 취지에서 2년간 극단생활을 했고, 그 뒤 무용이 다시 하고 싶어서 극단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무용수로서 무용과 연기 활동을 2년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춤추면서 제 자신이 너무 답답했어요. 자유롭게 추고 싶은데 잘 안됐고, 배움의 기회도 그렇고. 작업할 때 생각의 틀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제 판단에 미국 쪽 무용은 테크닉에 치중한다면, 유럽 쪽 무용은 작품성이 복합적이라고 생각했고 또한 탄츠 테아터의 본고장이 독일이니까, 독일로 가는 것을 당연하게 결정했어요. 폴크방을 가게 된 것도 그 이유였습니다. 마침 가기 직전에 본 작품이 사샤 발츠의 <코스모나우텐>이었어요.
장광열 : 아, 사샤 발츠의 <코스모나우텐>은 1997년인가 서울국제연극제에서 공연됐던 작품이죠? 그 당시에 샤샤 발츠는 공연료도 무척 낮았었는데 지금은 엄청난 공연료에다 세계 여러나라로부터 초청공연이 쇄도하는 안무가가 되었지요. 올해 SPAF에서 공연한 호페쉬 섹터도 마찬가지고, 여기 계신 분들도 그렇게 될지 모르겠군요(일동 웃음). 컴퍼니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럽에서 무용수로든 안무가로든 프리랜서로 활동을 할 때 어떻게 안무가와 컨택을 하고, 무용수를 모집하는지 궁금합니다.
정다슬 : 저는 오디션도 많이 봤어요. 부퍼탈에서도 학교의 오디션을 통해서 하게 된 경우인데 이것은 특별한 경우였고요. 보통의 경우 주로 인맥을 통해서 이루어져요. 예전에 한번 작업을 했었는데 좋았던 경우 다음 작업도 같이 하게 되고, 다른 안무가 작업에 같이 무용수로 참여했던 친구가 자기 작업을 하면서 연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 어떤 스타일로 하는지 많이 알고 있으니까 소개해주기도 하지요.
장수미 : 저도 7년 이상 무용수로 활동을 했는데 오디션을 그리 많이 보진 않았습니다. 물론 네다섯 군데 웹사이트 통해서 체크는 자주 하지요. 현대무용의 경우 안무자마다 스타일이 너무 다르니까 웬만하면 그 전에 공연을 봅니다. 공연을 보고 스타일이 정말 마음에 들면 워크샵을 찾아서 참여하면서 저에게 맞는 스타일의 안무가를 찾았어요. 슈타츠테아터는 오디션을 통해 함께 작업한 경우입니다.
장광열: 허성임 님은 예전에 얀 파블로와의 솔로 작업도 있었는데 어떻게 성사된 건가요?
허성임 : 저는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습니다. 당시 제 삶의 목표가 원하는 무용단에 들어가 작업을 하는 것이어서 학창시절부터 100번도 넘게 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목표에 가기까지 비자도 해결해야 하지, 생활도 해야 하지, 여러 가지 경험도 쌓아야 하니 오디션을 많이 볼 수밖에요. 사실 오디션에 안 되면 아주 쓰라림이 이루 말할 수 없거든요. 나는 무엇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건가, 그런데 오디션을 보면서 굉장히 강해지더라구요. 배우는 것도 많고, 자기 아이덴티티도 찾게 되고, 안무가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니 자신을 더 많이 오픈하게 되고요.
얀 파블로 오디션을 봤을 때는 ‘이탈리아의, 가슴이 없는 여자’를 찾는다고 공고가 났었어요. ‘볼라레’ 노래를 해야 하니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모두 이탈리아 사람만 오디션을 보러 왔는데 저 혼자만 간 거라 이건 안 되는 거구나 했는데 무대에 올라가니 한 사람씩 이탈리아어를 하라는 거에요. 저는 “스파게티? 볼로네즈?” 할 줄 아는 게 이거 밖에 없어서 했는데 그게 굉장히 위트 있게 보였나 봐요. 이 친구는 가슴도 있는데? 주변에서는 만류하고 (웃음) 그런데 얀이 믿어보기로 한 거죠. 그래서 이탈리아 여자 분과 제가 최종에서 남았고, 저는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이었는데 다행히 돼서, 2년간 정말 많이 배웠죠. 사실 얀 파브르랑 니드 컴퍼니 얀 라우어스랑 두 분이 절친한 친구에요. 그런데 색깔이 너무 달라서, 얀 파브르는 무대는 신성한 성전이라고 생각하는데 니드 컴퍼니는 무대는 놀이터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이런 식이라 나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 고민을 많이 했죠.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방희망 : 그럼 안무가로서 작업을 할 때는 어떤 식으로 진행을 하나요?
장수미 : 오디션을 진행할 정도로 크게 작업했던 적은 아직 없고요, 컬렉티브에서 일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서로 작업을 주는 정도였습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작업이 있는데 이 작업에서는 무브먼트를 하기 보다는 무브먼트를 대하는 방법을 중요시하는 무용수와 작업하고 싶기 때문에 오픈 오디션을 보고 싶지는 않고요, 공연도 보고 워크샵 등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사람을 먼저 알고 커뮤니케이션도 좀 잘 되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장광열 : 유럽의 여러 댄스 마켓, 플랫폼에 델리게이트로 참가해서 보면 참가자 리스트에 무용수들도 적지 않습니다. 안무가들도 많구요. 왜 그런가 했더니 무용수들도 안무가의 스타일이 궁금하고, 새로운 경향의 작품이 뭐가 있는지 보러 오는 것 같아요. 또 요새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전 세계적으로 레지던시, 콜라보레이션이 많아지고 이런 쪽에 지원이 많이 되다보니 안무가 입장에서는 쇼케이스 작품을 보면서 댄서를 픽업하는 경우도 있고요. 결국 안무가, 무용수 양쪽에서 정보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방희망 : 요즘도 유럽에서는 무용수 오디션이 많은가요?
허성임 : 사실 유럽도 불경기가 너무 심해서 오디션들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나마 현대무용에 대한 지원이 많았던 곳이 벨기에라고 생각을 합니다. 피핑톰 같은 컴퍼니 등 그 많은 컴퍼니들이 컴퍼니 당 1년에 15억에서 20억씩 받아갔으니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볼 수 있죠. 작은 프로젝트들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벨기에에서 선포를 한 거죠. 2016년부터 컴퍼니에 대한 지원금을 없애겠다, 도저히 나라에 돈이 없어 예술 쪽으로 지원이 안 된다고 말이에요. 네덜란드는 이미 시작됐고요. 벨기에도 큰 일 난 상태지요. 그래서 오디션을 볼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장광열 : 다슬 님은 안무가로서 곧 새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들었는데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고 무용수를 어떻게 충원할 계획인가요?
정다슬 : 우크라이나에 레지던시가 있어서 지원을 했는데 운이 좋게 뽑혔어요. 사실 요즘 레지던시가 많은데 지원해주는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교통비나 연습 공간을 대여해주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원한 곳은 교통비는 물론 무용수까지 전체적으로 다 지원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쪽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는 것 까지요. 그래서 그쪽에서 무용수들 CV를 받아서 저에게 동영상이랑 보내주었습니다. 파트별로 지원한 무용수들을 제가 고를 수 있어요. 제작비도 대 주는데 규모가 엄청나게 큰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허성임 : 지원할 때 어떤 서류들을 제출했었나요?
정다슬 : 제가 작업했던 영상들, 사진도 작업해둔 게 있었고요.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계획서, CV랑 제출했어요.
장광열: 지원해준 곳은 페스티벌인가요? 아님 극장인가요?
정다슬: 페스티벌이에요. 내년 4월에 공연을 할 예정이라 1월에 들어가서 곧 작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8명에서 10명 정도 계획했는데 아직 확실히 컨펌이 되지 않아서요. 25분 정도로요. 다른 레지던시도 지원을 해봤는데 우크라이나처럼 확실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할 수 있게 서포트 해주는 경우는 드무니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저작권 관련해서 이야기는 안 해봤는데 저한테 권한이 많이 있다면 독일에서도 공연하고, 한국에서도 하고 싶어요.
허성임 : 저 때는 주로 외국에 있는 컴퍼니에 들어가고 싶어 했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나가서도 개인 작업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쪽으로 길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장광열 : 그래도 아직까지는 컴퍼니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봐야지요. 우리나라 무용수들의 해외무대 진출은 사실 클래식 발레 쪽에서 먼저 문을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제 발레 콩쿠르에 입상하는 무용수들이 많아지면서 해외에 나가 자리를 잡는 경우가 생기고 우리도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죠. 이후 예전 춤의 변방이었던 우리나라가 컨템포러리 댄스에서도 한국 무용수들의 특별한 재능이 인정을 받게 됐고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을 유럽에 가서 공연하는 기회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지요. 이제는 해외공연 자체보다는 어느 극장에서 공연하느냐, 어느 관객 앞에서 하느냐가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무용극장연합회(EDN)를 통한 Kore-A-Moves 프로젝트의 경우 3년에 한번씩 한달 여 동안 유럽의 댄스 하우스를 중심으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즈음 한국 춤계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흐름 하나가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공연하는 것입니다. 홈-커밍이지요. 이것이 가능한 것은 공공 페스티벌과 LIG홀 등에서 기획공연이나 레지던시를 통한 지원이 늘어난 것도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또 외국에서 만든 작품을 국내에서 공연을 하고자 하는 해외 거주 무용가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작품의 국제 유통이란 측면에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수미 님 허성임 님 두 분도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분들이고요. 작년 SPAF의 <필리아>나 이번 <튜닝>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허성임 : 저로서는 한국이 가장 두렵습니다. 한국이 가장 예민하고, 가장 빨리 말이 퍼져나가고요. 그래서 한국에서 공연할 때 제일 긴장하고,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요즘 공연계의 흐름이 제 생각으로는 춤, 연극, 음악으로 분류되기보다 퍼포먼스 형식으로 바뀌는 게 아닌가. 제가 하는 작업들도 춤 공연이라기보다 퍼포먼스이고 이런 작품들을 소개하고 한국 무용의 범위를 조금이라도 넓힐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인이라는 것이 저희들처럼 오랜 기간 밖에서 활동해 온 사람들에겐 큰 힘이 되고 있고요. 여권을 바꾸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장수미 : 사실 제가 해외에 나가서 새로운 것에 관심이 생기면서, 어떤 방향의 작업을 하고 싶은지 찾고자 노력을 많이 했고, 지금은 그것을 찾아가는 단계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나가서 공부를 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서 쌓고 한국에 전하고 싶다는 단순하고 명료한 목표가 있었는데 지금은 유럽이든 여기든 같은 시장으로 보고 작품을 한번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연결해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와서 작업하고 협업하고 그러는 방향을 3년 전부터 찾기 시작했는데, 사실 성임이랑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이 “아 우리는 정말 한국인이구나”였습니다. 그런 것들이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필리아> 할 때도 느꼈지만 외국 친구들과 할 때와는 또 다른,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생겼구요.
스파프 같은 경우는 정말 좋은 기회였달까요. 사실 저는 10년 이상 한국과 컨택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저를 아시는 분도 없었고, 또 공연을 해도 누가 와서 봐주셔야 계속 진행이 가능한데 그런 면에서 페스티벌은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평가도 받고 저희도 그것을 캐치할 수 있으니 참 좋았습니다.
방희망: 잠깐 이번에 공연한 <튜닝> 얘기를 해 볼까요. LIG홀 강남 측에서 제공한 사진을 보면 지난 11월 독일에서의 초연에서는 기타리스트 토마스 예커가 무대에 등장한 것 같은데 이번 공연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장수미: 아, 그것은 저희가 여름에 부산에 와서 레지던시를 하면서 오픈 스튜디오를 했거든요. 그때 찍은 거에요.
허성임: 독일에서 초연하기 전전날 기타리스트는 무대에 올라가지 않는 것으로 컨셉트를 바꿨지요. 저희는 화려한 조명이나 의상, 세트 없이 가장 미니멀하게 여성의 몸으로 남성 락커들의 얘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것에 관심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몸에 집중하려면 기타리스트를 무대에서 빼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 거에요.
참, 이번 공연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구글에서 검색하면 장수미의 <튜닝>이라고만 나온다고 많이 질문을 했어요. 같이 만든 작품이 맞는데 아무래도 수미 언니가 LIG 협력 아티스트로 되어 있어 그런지 공동작업이라는 부분이 빠진 채 나와서 좀 속상했어요.
장광열: 두 분은 정말 축복 받은 경우입니다. 작업을 위한 공간, 제작비, 항공료 등을 고국에서 지원받은 케이스지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김형민님의 경우는 독일에서 펀딩을 받아서 작품 초연을 유럽에서 하고 한국에 가져와 유통시킨 경우이지요. 외국에서 활동하는 안무가들이 국내의 문화예술위원회 등에 많이 지원신청을 하는데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분의 경우는 아마 예술성을 인정받아 어려운 가운데서도 좋은 기회를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안무가들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이니까 불만일 수도 있으나 저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안무가들에게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수미: 사실 <필리아>의 경우 저희가 좋은 케이스로 말씀드릴 수 있는데, 독일에서 초연을 했는데 작업을 해서 무대에 올리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처음부터 무엇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준비를 하고 레지던시를 찾고, 서로가 바쁘니까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들고 그렇게 완성된 거예요.
방희망 : 두 분이 어떻게 같이 작업을 하시게 된 것인가요?
허성임: 사실 한국에서 춤찾사를 같이 하면서 아는 사이였는데 언니는 독일에 있고, 저는 벨기에에 있어서 못 만나다가 우연히 벨기에 극장에서 만났습니다. 그 때 작업 한번 같이 하자 얘기를 했고, 컴퍼니에 있으면서는 그 일정을 따라가야 하니까 2010년부터 시간 날 때 가끔씩, 일주일씩 만나서 조금씩 발전시켜 나간 거에요.
방희망: <필리아> 같은 경우는 국내 SPAF에 지원했을 때 이미 작품이 어느정도 만들어진 상황이었네요. 그럼 작품이 나올 때까지 경비는 어떻게 충당했나요?
장수미: 레지던시를 통해서 어느 정도 진행 시켰었습니다.
허성임: 저희 자비도 많이 들였고요. 인건비는 생각도 못하고 교통비 대는 정도로요.
장광열: 이 부분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심사에서 떨어지는 친구들을 보면, 돈을 받아서 그 다음에 작업을 하겠다는 거거든요.
장수미: 프리랜서로 작업을 할 때 사실 제작비를 마련하기가 정말 어려워서 여러 가지 방법을 찾는데 거기에 너무 얽매여서 작업을 시작 못하면 힘든 점이 많습니다. 스트레스도 많고 부담감도 크고, 제작비를 받았다고 해도 충분하지 않고요. 그래서 어디에 얽매이지 말고 일단 시작하자 했어요. 독일에서 <필리아> 작업하면서 레지던시 잡을 때도 거기 디렉터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는 이런 저런 아이디어가 있다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냥 여기 와서 2주일 하세요, 하고나서 봅시다, 이렇게 말이지요. 글로 봐서는 모르는 무용이니까요. 가서 하다보니까 기회가 생기더군요. 프라이부르크에 가면서 제작으로 넘어갈 때도 어느 정도 내용이 나와 있으니까 수월하게 진행되었고요.
장광열: 다슬 님은 국내 춤계와도 어떤 연결고리를 찾을 생각을 했나요?
정다슬: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학 졸업 후 바로 간 거라 국내에서의 경험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사실 이번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지원하려고 했는데 간발의 차이로 우크라이나 레지던시가 돼서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이다 보니까 한국에 저를 소개하고 싶은 것은 사실입니다.
장광열: 외국의 단체들도 한국에 와서 공연하겠다고 많이 지원하는 편입니다. 외국의 마켓이나 플랫폼에 가도 예전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게 한국에서 레지던시를 하고 싶다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고요. 한국 무용수들이 뛰어난 것을 아니까 한국에 와서 출연자 오디션을 하겠다고 하는 안무가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일이 해외에 오디션을 보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으면 우리나라에서 오디션을 봐서 해외 안무가나 컴퍼니와 작업할 기회를 얻는 겁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무용가들이 국내에 와서 작품을 보여주고 같이 하는 것은 프로페셔널한 작업의 경험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무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아시겠지만 사실 국내 국공립 단체나 개인 무용단들의 경우 외부로 그 문호를 개방하지 않는 편입니다. 외국의 많은 단체들은 여러 안무가와 작업을 많이 하는데 국내에는 다양한 안무가와 작업하는 단체가 거의 없지요. 어떤 단체에 속하면 소속 안무가의 작품에만 출연해야 하는 경향이 크지요.
정다슬: 저도 말씀하신 그러한 이유 때문에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긴 하지만 많은 안무가들과 작업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스타일을 접하게 되니까 제가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가 더 뚜렷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니 제가 어떤 스타일인지도 알겠고 이제 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방희망: 지금 만들어 놓은 작품, 예를 들어 <튜닝>이나 <필리아>를 어떻게 유통시켜야 할지 생각해본 적은 있었나요?
허성임: 독일도 마찬가지지만 벨기에에는 극장이 많이 있고, 또 벨기에 같은 경우 젊은 안무가들에게 지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벨기에에 젊은 안무가들이 정말 많습니다. 길거리를 가다가 커피숍을 보면 다 무용수일 정도로 무용수도 정말 많고, 본인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안무가들도 정말 많습니다. 제 친구가 자기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거기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거든요. 사실 저는 무용단에 너무 오래있었기 때문에 이제 막 올라오는 친구들과 경쟁하기 힘든 점도 있습니다. 그것이 저의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많은 페스티벌 정보를 검색하기도 하고, 개인 프로그래머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하는데 프로그래머들이 이런 메일을 너무 많이 받다보니까 메일을 안 열어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라고 하더라구요.
장광열: 사실 제일 좋은 것은 무용 마켓이나 플랫폼 등의 쇼케이스를 통해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게는 300명 내외의 무용 관련 델리게이트들이 보게 되니까요. 세계에서 제일 큰 공연예술마켓인 APAP의 경우 무용 쇼케이스만도 4일 동안에 걸쳐 200개가 넘게 마련되는데 이 경우는 대부분 무용 에이전시에 의뢰를 합니다. 일단 보여주는 게 중요한데 페스티벌이나 극장의 감독들은 비디오보다는 직접 실연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수미: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팔기 위해서 쏟는 에너지가 많고 일하는데 비해 결과적으로는 기회를 얻기가 힘듭니다. 새 작업을 하는데 쏟아야 할 에너지가 분산되기도 하고요. 저희가 작은 단체다 보니까 구조적으로 매니저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페스티벌이나 공개적으로 저희가 지원 할 수 있는 곳에 지원은 하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에 너무 매달리지 않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허성임: 저 같은 경우는 새 작업을 하는 것도 중요한데 정말 열과 성의를 다해서 만든 작품을 한 번, 두 번만 공연한다는 것은 정말 아까운 것 같습니다. 사실 재공연을 하면서 작품이 좀 더 완성도를 갖게 됩니다. 한국에서 만든 작품이 한국 안무가의 이름으로 유통될 수 있도록 하는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제 친구 중에 1년에 12개 작품을 제작하는 친구가 있어요. 이러면 한 달에 한 작품을 만든다는 건데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1년에 한 작품을 하게 되더라도 좀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한번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좀 연계해서 장기간 여러 번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장수미: 벨기에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매니지먼트 자체가 체계적으로 잘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독일은 무용 매니저가 몇몇의 소수 무용가들만을 담당합니다, 그 수도 매우 적구요. 독일 내에서 내부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마켓에 보다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것 같긴 한데 구체적인 부분은 모르겠지만요. 작품이 잘 팔리기 위해서는 조직적으로 매니지먼트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광열: 유통을 시키려면 적극적으로 상품을 선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국내에도 매니저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외국에서는 사실 1명의 매니저가 보통 4~5개의 단체를 매니지먼트 하고 있습니다. 한 단체만 가지고서는 운영이 안 되니까요. 국내 안무가들의 경우 외국의 매니저에게 공연 유치를 의뢰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데 공연이 성사되면 지불하는 fee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지출된다고 하더군요. .
허성임: 사실 일본이나 타이완 안무가들이 많이 알려진 것에 비해 한국 안무가들은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많진 않지만 멋지게 작업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작품을 외국으로 진출시키는 마케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좀 더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광열: 일본이나 타이완의 경우 양적 질적으로 우리보다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거기는 소수의 단체에게 집중적, 지속적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제무대에서의 네임 밸류가 높아지는 측면이 있어요. 우리는 거의 비슷한 규모로 지원을 하고 있지요.
방희망: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안무가들이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국내에 있나요?
장광열: 국내에 주소를 두고 있으면 기본적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서울문화재단 등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하는 정기 공모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또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경우 여러분들이 외국의 레지던시나 극장에서 작업 의뢰를 받았다면, 그 쪽에서 우리 국제교류재단 측에 지원을 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하는 ‘센터 스테이지 코리아’도 좋아요. 그건 외국에 있는 극장에서 공연을 하면 외국 파트너가 신청을 하되, 두 군데 이상 극장에서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요. 그것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장수미: 저는 작품제작단계에서부터 공동 제작에 의해 여러 파트너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가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레 공연 기회가 많아지니까요. 사실 저희가 자국의 지원을 받으면 일단은 큰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지원금이 많든 적든 그걸 떠나서 그쪽에서는 한국에서 지원을 받았단 사실만으로도 일단 주의를 기울이니까 엄청난 힘이 돼요. <튜닝>도 한국의 지원이 있어서 그쪽에서도 유리하게 작용된 경우이거든요.
또한 중요한 것은 구조적 차이를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국내는 지원제도가 일 년 단위로 나뉘어져 있는데 연도가 바뀌면서 끝나지만 외국 같은 경우 극장의 시즌이 보통 9월부터 시작되면서 코 프로덕션이나 지원 파트너를 찾을 때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다보니 국내 지원제도 기간에 맞추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유동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방희망: 좋은 제안인 것 같습니다. 국제교류의 경우 분기별로 지원하는 방식을 보다 더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다슬: 요즘에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안무가가 많은데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작품을 만들 때 레지던시나 지원금을 찾을 때 수많은 웹사이트를 다 들어가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정보라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방희망: 여러분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안무가들을 찾는 것도 하나의 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안무가들을 초청하면 새 작품을 초연하는 셈이 되니까요.
장수미: 그렇게 무용수로서 안무가와 작업하는 경우는 많지 않나요? 오히려 한국의 무용수들을 데리고 안무를 하는 방식도 좋을 것 같아요.
장광열: 그렇게 안무가로서 어필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간이 꽤 흘렀네요. 못 나눈 이야기들이 있다면 하도록 하지요.
방희망: 전 레지던시를 거치면서 협력한 아티스트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어 변화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튜닝>을 보면서 아날로그 감수성,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시키는 여성의 연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자극을 느꼈습니다. 사실 여성의 몸을 거친 락, 이라는 면에서 작품설명에 언급되었던 커트 코베인의 경우 곧잘 같이 언급되고 논란도 많았던 그의 아내 코트니 러브도 떠오르면서 여성이 락을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구요. 그리고 너무 많은 영상을 넣거나 부대 효과를 넣는 요즘 공연들에 비해 무대에 세워진 딱 두 사람의 몸, 이런 데서 아까 말씀드렸듯 오히려 요즘 더 보기 드문 아날로그 느낌이었어요.
장수미: 레지던시를 하면서는 나라 별로 환경과 문화와 국민성의 영향을 받습니다. 무용은 대본이 있어 하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서 리서치를 하면서 알게 모르게 받는 영향들이 크거든요. 그래서 레지던시를 여러 군데서 할 경우에 그 나라, 도시의 습성, 거기서 나오는 소재들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필리아> 때도 그랬습니다. <튜닝>의 경우에는 특히 한국에서 할 때가 가장 좋았어요. 부산에서 했었는데 활동적이고 자유롭고 터프한 도시였어요. 거칠기도 하고 인간적이기도 하구요. 또 한국의 락 콘서트장에서 보고 받은 영감들이 작업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작업을 할 때 비교를 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 같거든요. 비교해보고 거기서 어떤 작업 상을 찾아가느냐. 보통은 오픈을 잘 안하지만 오픈 스튜디오를 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 가는데 많은 영향을 받는데 한국에서는 정말 칼날 같은 평을 받았던 것이 다음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지요.
허성임: 저희가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남성 락커들의 이야기였는데 그것을 어떻게 여성의 몸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였어요. 화려한 세트나 영상, 조명, 음향 없이 최대한 미니멀 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왜 락커 하면 남성을 떠올릴까 이런 것을 작은 여성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오로지 하나의 기타와 하나의 앰프 그리고 두 여성의 몸으로 어떻게 거대한 콘서트에 있는 듯한 효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콘서트에 대한 공연을 하고 싶었지만 콘서트를 재현 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구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콘서트의 바이브레이션을 몸으로 갖고 올 것인가를 연구하면서 작품을 풀어 나갔습니다. 한마디로 거창한 폼에서 가장 심플한 폼으로 쪼개고 쪼개는 작업이었어요.
부산에서 오픈 스튜디오를 할 때 저희가 특별히 요청했어요. 음악하시는 분들, 연극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다른 눈이 있으시니까요. 오픈 스튜디오를 프라이부르크에서도 했고, 베를린에서도 했었는데 그럼 예술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이 많이 오셔요. 저희가 걸러 듣기도 하지만 그런 분들의 의견이 정말 흥미롭고 신선해서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오히려 저희가 너무 아티스트라고 경직될 수 있으니까 자꾸 오픈해서 중간 검진해서 바꿔나가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처음엔 무조건 즉흥을 많이 해요. 처음부터 이런 드라마 트루기가 있으니 이런 형태로 하면 어떨까 틀을 만들지 않고 무조건 즉흥을 하는 동안 거르고 찾아나가다가, 오픈 스튜디오를 한 번 하면 완전히 뒤바뀌거든요. 물론 재밌는 재료들이 정말 많고 아깝지만, 과감히 잘라내는 것도 필요해요.
장광열: 미국 쪽에서는 방금 말씀하신 부분을 ‘쇼잉’이라고 하는데 아무나 부르지 않고 작품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할 수 있는 전문가, 안무가, 비평가 등을 불러 의견을 수렴합니다. 그런데 몇 가지 룰이 있어요. 한 달 전, 2주전, 1주일 전, 기간 별로 다른데 쇼잉에 초대된 사람들은 안무가가 상처를 받건 말건 무조건 자기가 느끼는 대로 얘기를 하는 거에요. 나중에 발표된 작품을 봤을 때 안무가가 그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더라도 절대 화내지 않는 것이 일종의 룰이에요. 안무가가 진짜 자기 작품을 상품으로 내놓기 전에 점검하는 거지요. 요새는 워크 프로세스(Work Process) 공연이라고 아예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공연으로, 입장료 반만 받고 내놓기도 합니다.
이렇게 관객 반응을 보고 성공할 작품인지 냉정하게 평가를 거쳐 다시 수정하면서 이것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활용하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런 태도는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거라고 볼 수 있지요. 쇼잉을하려면 적어도 한 달 전에 이미 안무가 끝나 있어야 하니 안무가로서도 굉장히 스트레스일 수 있지만 그만큼 작품을 완성도 있게 하겠다는 의지로 보아야지요.
장수미: 쇼잉을 할 적에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되거든요. 저는 사실 초연까지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봐요.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해야 할 때가 있구요. 안무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서 버릴 건 버리고 킵할 건 킵하고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게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허성임: 예를 들면 드라마 트루기와의 갈등이 있다는 것도 제가 많이 듣거든요. 드라마 트루기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드라마 트루기가 질문을 하는 것이 안무가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한번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이것이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더 오픈을 했으면 좋겠어요.
장광열: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장수미: 저는 12월 24일에 돌아갑니다. 하늘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을 예정입니다. 들어가서는 당분간은 작업과 좀 떨어질 생각입니다. 10일 정도 에디오피아에 다녀올 예정이구요. 여행을 하면서 2016년에 할 작업을 준비하기 전에 휴식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정다슬: 저는 이제 막 들어왔으니 한국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다음 작업 준비를 할 예정입니다. 1월 달에 우크라이나 가면 바로 작업 시작하고, 티칭도 해야 해서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재공연해야 하는 작품도 있고 글도 더 열심히 쓸 예정입니다.
허성임: 저로서는 이번이 터닝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이전 목표는 원하는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성취가 되었고, 이 다음 단계로는 제 작업하는데 더 포커스를 맞추고 싶습니다. 니드 컴퍼니와도 객원으로만 활동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저는 콜라보레이션이 재미있어요. 굳이 무용하는 분들이 아니라도 음악하시는 분이나 연극하시는 분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쪽으로 계획 중이에요.
장광열: 여러분들께서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다진 인맥과 경험들이 국내 춤계와도 소통될 수 있도록 더 많은 활동 기대합니다. 오늘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