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이지현: 오늘 좌담은 2013 창작산실 우수작품전에 참여하신 무용가 두 분을 모시고 현장에서의 생생한 얘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공모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공연을 마치고나서 소회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예효승: 창작산실에 참여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지인을 만나러 공연장에 갔다가 창작산실 현대무용부문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고, 사업의 우수 결과물은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레퍼토리화 할 것이라는 점이 결정적인 참여 동기가 됐습니다.
이번 창작산실 현대무용부문의 사업과정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총 48개 팀이 지원했고 그 중 16개 팀을 1차 서류면접으로 뽑았습니다. 다시 이어진 면접으로 8개 팀을 선택해 1천만원씩을 지원받아 15분 가량의 쇼케이스를 진행했습니다. 세 번에 걸쳐 있었던 쇼케이스는 마치 경연을 치르는 듯한 분위기어서 불편함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창작을 하는데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쇼케이스를 할 때마다 일반인과 전문인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음향, 영상, 연극 분야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분들은 무용공연을 많이 관람하지 않았거나 춤에 대한 사전지식은 좀 부족했다고 봅니다. 무용공연은 종합예술인데 전문가들은 해당 분야에 관해서만 피드백이 있었을 뿐, 전체적인 것에 대한 반응은 좀 아쉬웠습니다.
이지현: 처음 쇼케이스는 제가 심사차 참석을 했는데, 그 후에도 두 번이 더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예효승: 그렇습니다. 할 때마다 좀더 업그레이드된 작품을 만들어 갔습니다. 쇼케이스를 통해 작품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나 단점이라면 한 시간여 작품을 해야하는 상황이 됐을 때 쇼케이스는 15분이었기 때문에 다소 짧게 느껴졌습니다. 전반적으로는 공연 전 시연을 한다는 점은 좋은 과정이 되었습니다.
이원국: 발레부문은 올해로 세 번째 창작산실사업이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때에는 안무로 참여하지는 못했고, 2012년 두 번째 사업 때 김길용씨 작품
창작산실사업은 지원금 제도 자체가 훌륭해서 지원을 결심했습니다. 쇼케이스 때 2천만원, 본공연 때 9천만원을 지원받았습니다. 이번 창작산실의 최종 공연팀은 조윤라발레단, 이원국발레단, 문영철발레뽀에마, LEE발레단 등 총 4개팀 이었습니다. 이원국발레단의 <스코틀랜드의 꽃>은 레퍼토리화를 목표로 지속적으로 보완해 무대에 올릴 예정입니다. 이번 작품에 대해 일반 관객들의 호응도 높았고, 준비 기간은 짧았지만 잘 해낸 듯합니다.
현대무용의 경우에는 창작산실에서 나온 좋은 작품들을 국립현대무용단이 레퍼토리로 만들겠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했는데 발레부문에서는 그런 계획은 듣지 못했습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일 경우 향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이어서 지원하는 것인지, 이대로 마무리되는 것인지 공연 후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창작산실 사업이 무용가들에게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합니다. 많은 지원금은 안무가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작품에 대한 사후지원 역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효승: 현대무용의 지원금은 총 5천2백만원 이었습니다.
이종호: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은 창작산실 사업 첫 회였기 때문에 발레 부문보다 지원금이 많지 않았습니다. 올해 참가자들은 첫 회에 참가한 무용가라는 점에서 나름 상징성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현대무용과 한국무용 부문의 지원금은 향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효승: 우수작이 국립현대무용단 레퍼토리가 될 것이라는 것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최종 우수작을 뽑는 것은 너무 경연으로 흐른다는 판단으로 그렇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레퍼토리 공연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극장을 섭외해서 이번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알아보고 있으나 지원금이 없이 재공연은 사실상 부담이 많이 되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쎄드라베 무용단에서는 한 작품을 160회 가량 무대에 올리는데 처음과 160회째 공연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창작산실에서 나온 작품도 지속적으로 여러 번 공연해서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기회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공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지현: 현대무용은 창작산실 사업에서 나온 좋은 작품을 레퍼토리화하거나 국제교류로 확장하려는 포부가 있었는데 발레의 경우 어떠한가요?
이원국: 난 작품의 상업성 측면을 많이 고민합니다. 아무래도 개인 발레단의 운영과 공연을 떼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작품이 관객을 만날 기회가 없다면 그 자체로 소용없는 것 아닌가요? 그런 면에서 창작산실 사업은 마땅한 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듯합니다. 앞으로 창작산실을 통해 창작발레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텐데 좋은 작품을 선정한다거나 사후지원을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것 같습니다. 민간 발레단은 자체적으로 재공연하기가 힘들므로 좋은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매해 새로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 레퍼토리화 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지현: 동의합니다. 이원국발레단은 노원구에서 상주단체로 있기 때문에 지역 관객을 자주 만나 왔고, 그런 경험으로 작품을 프로덕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능력이 생긴 것 같습니다. 창작산실 사업이 지금은 작품 생산의 측면만을 신경쓰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더 많은 관객이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유통의 지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원국: 창작산실은 아직 무용계 사람만 아는 사업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번 2회 공연하는 동안 노원구의 팬들과 일반관객이 많이 찾아와 주었는데 노원에서만 보다가 공연의 중심지인 대학로에서 공연하니 팬들이 뿌듯해하고 기뻐해주셨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무용에 관심을 갖도록 관객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관객개발은 개인적으로 제일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종호: 전반적으로 창작산실 사업의 그림을 보면 취지는 물론 좋은데 중장기적인 정부 정책으로 어떻게 끌고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각적으로 재검토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올해 처음 시행된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은 물론이고, 3년차에 접어든 발레도 그다지 뚜렷한 철학이나 비전에 입각해 시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첫 번째, 기존의 창작지원금 제도와의 차별성, 두 번째, 세 장르의 필요와 요구가 제각기 다르다는 점, 세 번째, 창작산실 사업의 관리를 누가 맡느냐는 점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창작산실 사업에 발레부문이 생겼을 때는 그 목적이 명확했습니다. 정책입안자나 시행기관은 별 생각 없이 돈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무용인들이 거는 기대는 분명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다른 장르에 비해 창작물, 즉 현대발레 작품의 질과 양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업을 통해 양질의 창작발레가 다수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 3년간의 성과는 미미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며 계속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무용발전사를 보면 클래식 발레 이후 현대무용으로 바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창작발레, 모던발레의 역할이 극도로 미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부분이 보완되어야 균형있는 창작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무용은 70년대 후반부터 배정혜, 김매자 등을 중심으로 창작이 활성화되기 시작해 80년대 이후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나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죽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업이 한국무용 부문의 창작 분위기를 되살려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국제무대를 겨냥한 창작무용의 정체성으로서의 ‘한국성’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면 사업 취지를 이의없이 설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문은 무엇보다도 한국무용의 고유성이나 강점을 끌어낼 수 있는 창작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무용은 기존의 지원금 제도와 어떻게 차별을 둘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현대무용은 발레나 한국무용과 달리 창작 분위기가 매우 활발하고 성과도 좋은 편입니다. 지금까지의 각종 창작지원금에서도 현대무용 작가들이 상당 부분 혜택을 입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삼 창작산실이라는 제도를 통해 또다시 지원을 한다면 다른 지원제도와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창작산실 현대무용 부문의 관리자인 국립현대무용단은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안애순 예술감독 자신이 창작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안무가들의 고민과 요구를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돈만 나누어주고 끝나는 기존 지원제도와 다른 차원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엿보였습니다.
이지현: ‘창작산실이 생겨 기쁘다’라는 생각은 이제 졸업하고 이 사업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창작자 입장에서 지원금 외의 무엇을 더 배려받아야 하는지 실질적인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창작’이라는 것이 돈만 있으면 잘 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예효승: 다른 지원제도에 비해 지원금이 많아서 라이브, 영상, 타 장르(연극, 댄스스포츠 등)와 함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어 흥분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만들어낸 작품을 유통하는 데에는 문제가 생기더군요. 지원액이 많은 만큼 무대장치 등 투여한 것이 많다 보니 작품이 덩치가 커져서 이 작품을 살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공연 후 세트보관에 비용문제가 있어 바로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었지요. 물론 새로 만들면 되겠지만...
이원국: 이원국발레단은 공연 때 사용한 장치를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듭니다. 원래는 한 작품을 만들 때 5억 정도 예산이 들지만 기존 작품들에서 사용했던 세트, 의상을 적극적으로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재공연할 때를 염두에 두고 제작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창작 발레로 발레단이 운영되기 때문에 창작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창작산실을 통해 우리 발레단에 필요한 좋은 레퍼토리를 갖게 되었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공연하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외국에서 창작발레 작품을 들여오기만 했지 정작 한국에서 창작을 유도하지 못했습니다. 창작산실 사업을 왜 만들었는지, 그 필요성은 무엇인지 되짚어봐야 합니다. 일회성의 지원제도로는 너무 약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현재의 지원금은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입니다. 현대무용은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레퍼토리화하겠다고 했는데 발레도 창작산실을 통해 국립발레단에서 레퍼토리로 정착시켜 주기를 바랍니다. 발레계의 창작 의욕을 무너뜨리지 말고 공연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지현: 사실 이원국발레단은 자체적으로 레퍼토리화 작업과 공연을 할 수 있는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는 무용단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에 참여한 대다수의 무용가들은 프로젝트 성격의 그룹으로 봐야 합니다. 무용단 없는 프로젝트는 단발성 공연으로 끝나기 마련이지요.
이종호: 지적한데로 작품의 유통 문제가 심각합니다. 정부에서 춤 작품 유통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사업으로 연계하면 간단합니다. 한문연은 로또기금으로 전국 여러 지역에 찾아가는 공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원제도를 시행한 첫 해에는 무용을 포함한 여러 장르가 골고루 배분됐는데, 이듬해부터는 해당 지역의 문예회관에서 선택한 작품만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역 문예회관에서 누가 현대무용을 원하겠습니까? 뮤지컬 등 대중적인 장르를 선호할 뿐입니다. 때문에 장르 편식을 조장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상업적인 작품들만 내려보내려면 뭣하러 로또 사업을 하나요? 상업성 강한 작품들은 정부가 지원해주지 않아도 잘하는데… 약간의 의무화를 도입해서라도 지역 주민들이 여러 장르를 골고루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창작산실은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한문연과 협력해서 양질의 작품들을 지역 문예회관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유통시킬 때 더욱 강력한 명분을 갖게 됩니다.
이지현: 사업운영을 관리하는 주체가 장르마다 다르고 소통이 없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입니다. 사업추진의 맥락이나 정보의 공유없이 사업이 진행되다보니 통일된 일관성이 결여되고 작은 시행착오들이 반복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번이 3개의 장르가 진행하는 첫 해여서 그랬을 것이지만 앞으로는 통합적 구도 속에서 시행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업 전체에 대한 사후 평가작업 역시 중요합니다.
예효승: 공연 후 평가 역시 오로지 <춤웹진>에서 받아봤습니다. 어떠한 내용이었든 아주 반가운 피드백이었습니다. 나의 경우는 무용단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연습실 문제, 무용수 등 모든 일을 다 챙겨야 했습니다. 공동으로 의논하고 해결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사업주체가 프로덕션 과정에서 돌봐주었으면 합니다.
직접 수소문해서 LIG아트홀 부산과 공연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극장대관과 기술지원까지는 얘기가 됐지만 공연료 없이 공연 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모다페, 스파프, 시댄스 같은 축제도 알아보고 있지만 내년까지는 시간도 많이 남았고 미리 얘기 된 게 아니기 때문에 그 때까지 이 작품을 할 수 있는 상태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지현: 창작산실 사업이 다음 년도 축제와 연계될 수 있도록 공연시점을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
이종호: 하반기에 발표된 작품이라면 상반기에 열리는 모다페에, 상반기에 발표된 작품은 하반기의 스파프나 시댄스로 연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창작산실 사업주체와 축제들이 미리 협의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물론 축제들이 동의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국내유통은 한문연, 국제유통은 서울공연예술마켓(팜스) 및 축제들과 연계하면 길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밖에도 여러 경로로 국제무대에 진출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예효승: 작품을 여러 번 공연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번 사업에서 현대무용 작품은 1회 공연에 그쳐야 했는데 아쉬웠습니다. 무대 셋업 하루, 공연 하루로 무용단마다 6일간 이틀씩 한 것입니다. 이런 공연은 최소 몇일동안 공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만한 지원금의 창작산실 공연이라면 기존의 지원사업과 다른, 차별화된 모습이 필요합니다.
이종호: 일종의 서포팅 케어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예효승: 그렇습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창작 과정에 도움이 되라고 공연, 전시회, 콘서트 공연의 관람료 등 문화활동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창작자가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도록 지원금의 5%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지원제도와 달리 창작을 자극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또한 안무비, 무용수 급여, 스튜디오 비용도 책정되어 있었습니다. 창작작업에 대해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지금 공연장을 알아보는 것도 무용수들이 이 작품을 잊기 전에 공연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에이전시와 계약되어 있고 투어가 잡혀 있습니다.
이지현: 발레는 이 사업을 통해 원래보다 더 나은 공연을 할 수 있었는지요?
이원국: 아르코예술극장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노원까지 오기 힘든 관객 많은데 대한민국 최고의 무용공연장에서 공연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이원국발레단의 15명 단원 이외에 40-50명 외부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창작산실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기회 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지현: 앞서 나온 이야기처럼 한국 발레는 역사적으로 창작에 있어서 미약한 발전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작산실 사업이 발레를 제대로 자극하고 견인하려면 그런 것들을 논의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무용은 어떠했나요?
예효승: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경쟁으로 긴장되는 면도 있었지만 무용단에 소속해 있으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안무해온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40분, 나중에는 1시간으로 공연시간이 확대되었는데 창작의 압박이 심하고 내실을 기해야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이원국: 개인적으로 창작산실은 무용수들에게 많은 원동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스코틀랜드의 꽃>에 출연한 무용수들이 같은 사업에 선정된 이상만, 조윤라 선생의 발레 공연에도 모두 출연했습니다. 창작산실을 통해 프리랜서 무용수라는 개념이 정착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라는 개념만 있었을 뿐, 자리를 잡지 못했던 실정에서 보면 분명히 변화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번에 우리에게 좋은 발레무용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국공립 단체에 소속돼 있지 않으면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무용수들, 더 이상 학교에 얽매여 있지 않고 여러 무대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 무용수들이 그들입니다. 자금이 투입되다보니 프리랜서 개념이 활성화된 것이지요. 민간에서의 활동을 통해서도 무용수들이 숨을 쉴 수 있게 됐다고 봅니다.
이지현: 그 얘기는 흥미롭네요.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무용수의 겹치기 출연에 우려의 시선도 있었습니다. 능력있는 무용수는 한정적이고 공연의 수준은 높여야 하니 출연진에 대해 고심했을 것입니다.
이종호: 국내의 발레무용수 인력풀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매우 풍부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직업무용수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하니 창작산실 사업을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창작산실 공연이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통될 수 있다면 안무가는 물론 무용수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원국: 뮤지컬로 갔다가 공연의 기회가 많아지니 무용으로 되돌아온 발레무용수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효승: 처음으로 무용수들에게 매달 월급이라는 것을 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공연 끝나면 한꺼번에 지급되는 방식이었는데…
이지현: 지원금이 풍부해진다는 것은 공연예술을 구성하는 댄서들의 복지, 권익의 문제도 해소시킬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안무자들이 좋은 작품의 창작을 위해 고민하고 자극을 받는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그 보상이 큰 것은 아닙니다. 창작자가 만들어 내는 예술적 가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해의 사업을 통해 그것을 어떻게 잘 보호하고 육성할 수 있는 지를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이 사업은 예술가가 창작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관객이 잘 향유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 내주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