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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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22년 6월 17일 오전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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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서울남산국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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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회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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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장승헌 복미경 최민호
ⓒ춤웹진 |
김영희(전통춤이론가, 본회 회원): 코로나19 방역이 완화되면서 공연 전반이 열리고, 전통춤 공연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전통춤 현장을 주제로 네 번째 좌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간 여러 문제들을 짚었고, 이번에는 좀 집중해서 전통춤 공연의 기획 내지는 전통춤 공연 현황을 주제로 이야기해볼가 합니다. 참석하신 분들 소개와 함께 근황을 말씀해주시지요.
장승헌(공연 기획자): 공연기획자 장승헌입니다. 저는 MCT 기획 시절에 ‘봄날. 우리 춤 속으로’ ‘산조예찬’등을 기획했고, ‘춘천공연예술축제’에서 예술감독으로, 국립국악원 ‘수요춤전’ 초창기에 객원 예술감독으로 프로그래밍 했습니다. 나름대로 브랜드 공연 기획들이었고요. 10여년 전부터 크고 작은 전통춤 공연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컨템퍼러리 댄스에 관심이 더 있었습니다. 1987년에 국립극장에서 근무할 때 자료실에서 국립극장과 한국일보 공동 주최로 연 ‘한국 명무전’을 발견하면서, 국립극장이 창작뿐 아니라 전통도 수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아름아름 전통춤 명인들을 알게 되었고요. 이 분들 중에서 1998년 ‘서울세계무용축제’ 1회 때 명인들의 공연을 진옥섭 선생이 연출, 제가 기획했어요. 그리고 1999년에 ‘춤의 고을, 고성사람들’을 기획했고요. 이전에 조동화 선생님이 『춤』지 발행인으로 계실 때는 전통춤 리뷰를 다루지 않았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격세지감이 듭니다. 전통춤 시장이 확장되고 코우스, 남산국악당, 돈화문국악당 등 국악 전용 극장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전통춤 공연들이 편성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복미경(복미경무용단 대표): 안녕하세요. 전통춤을 추고 있는 복미경입니다. 저는 국립국악원 무용단 출신이고, 국립남도국악원과 국립민속국악원의 안무자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제자들과 함께 복미경무용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별도로 무용단을 결성하진 않았는데, 제자들이 떠나지 않고 계속 모여 20년 동안 많은 레퍼토리를 함께 연습하며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복미경무용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무용단 활동은 주로 레퍼토리 공연과 전통춤을 소재로 한 창작 등으로 이루어지고, 저 개인적으로도 정재, 민속, 또 이러한 전통춤을 기반으로 한 창작 작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최민호(서울남산국악당 기획실장): 저는 국악 전용극장에서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 돈화문국악당에서 5년 정도 일했고, 올해 1월부터 남산국악당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돈화문국악당에서는 음악 공연 중심이었어요. 춤 프로그램을 잘 하지 않았던 이유는 춤이 그 공간과 맞지 않고, 춤을 대표 사업으로 하기엔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돈화문국악당에서 소규모 기악 공연을 한다면, 남산국악당에서는 무용, 연희, 음악극처럼 규모가 있는 공연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차에 남산국악당에 오게 된 거죠. 그런데 춤 프로그램을 하려다 보니 좀 막막합니다. 전통춤 레퍼토리가 많지만, 하나의 묶음 공연으로 시리즈를 만들어 어필할 길을 못 찾겠더라고요.
김영희: 장승헌 선생님이 〈춤〉지 예를 드시면서, 이전에는 전통춤에 큰 관심도 없었고 리뷰 대상도 아니었지만, 이제는 전통춤 공연이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셨어요. 복미경 선생님은 20대부터 현장에서 쭉 겪으셨을텐데, 공연자로서 체감하시나요?
복미경: 네. 전통춤꾼들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창작 작품을 해야만 이슈가 되었어요. 또 전통춤은 기초를 다지는 데에만 10여년이 걸리고 다양한 전통 레퍼토리를 경험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연습 이외에 활발하게 활동하지도 않았고요. 물론 제도적으로 그전보다 안정되긴 했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전통춤을 이끌어주신 분들 덕에 지금에나마 전통춤을 이전보다 쉽게 배우고 이어나갈 수 있는 길이 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복미경 복미경무용단 대표 ⓒ춤웹진 |
김영희: 근래 한국춤에서 창작춤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않으니까 전통춤이 오히려 그 자리를 넓혀가는 게 아닌가 해요. 모든 공연 장르는 상대적으로 역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어떤 게 잘 되면 상대적으로 되지 않는 게 있는 거죠. 창작춤 관객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니까 전통춤에 집중하는 흐름이 있지 않나 싶어요.
장승헌: 전통춤이라는 게 과연 어디까지인지 영역의 문제도 있고,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춤이 추어지는데, 비평가나 기자의 관심이 가닿지 않았던 거죠. 1950년대에 권번 문화가 없어졌지만, 요즘에 권번춤이 대세를 이루고 있잖아요. 지역의 문화재들이 생겨나면서 전국에서 대회가 열리고, 꾸준히 확장되고 있어요. 어르신들이 즐기는 트로트가 다시 활기를 띠는 것과 유사한 흐름이 아닐까 해요.
김영희: 전통춤에 대한 관심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확대되면서 전통춤 영역이 안정된 거죠. 전통춤 공연이 춤계 공연의 1/3이 될거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아마 더 될 겁니다. 그래서 집중해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관에서 기획하는 전통춤 공연이 있고, 공모를 통해 선정하는 공연도 있고, 개인이 주최해서 자기 주제 의식을 가지고 하는 전통춤 공연도 있습니다. 우선 기관에서 하는 전통춤 상설 공연 이야기를 해봤으면 합니다. 국립국악원에서 ‘수요춤전’, 이전에 ‘화요상설’, 한국문화의집 KOUS에서 ‘팔일’, ‘지무’, ‘팔무전’, 그리고 전주의 무형유산원에서 ‘이수자뎐’이나 부산의 ‘영남춤축제’도 있습니다.
장승헌: 한국문화재재단이 생기면서 양성옥 선생님 제자들과 상설 공연단을 꾸리려고 시도했다가 재학생 위주여서 안 되었고, 연주 위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다가 진옥섭 씨가 예술감독으로 가면서 ‘팔무전’이 시작되었죠. 이어서 ‘팔일’, ‘지무’까지 하게 됐고요. 한국문화재재단에 두 개 극장과 한국의집이 있잖아요. 한국의집 상설 공연은 식사하면서 보는 공연으로 관광객을 위한 상품이었죠. 그리고 예전에 국립무용단에서 상설 공연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국립국악원에 ‘토요명품공연’이 상설화되면서 국악과 춤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엮여 가무악이 된 거죠. 또 국립국악원에 풍류사랑방이 생기면서 2015년부터 ‘수요춤전’이 열렸죠.
장승헌 공연기획자 ⓒ춤웹진 |
김영희: ‘토요명품공연’은 내외국인한테 굉장히 스탠다드한 공연이죠. 기관에서 하는 전통춤 공연들이 활성화되었지요? 남산국악당도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니 공공의 성격이 있지 않습니까.
최민호: 공연장 기획자의 입장에서 항상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동 또는 재미를 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전통춤만 갖고 시도하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국악은 공연하기 편해요. 2명만 있어도 무대를 채울 수 있죠. 반면 춤은 한 번 하려면 무대, 조명, 세트 등 많은 인원과 예산이 투입됩니다. 어쨌든 기관은 예산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기에 고민하게 되는 거죠. 같은 예산이어도 음악과 연희 공연으로 공연장을 채울 수 있지만, 춤은 횟수도 줄고 관객 동원도 쉽지 않아요.
장승헌: 연희 공연도 무용하고 예산이 비슷하지 않나요?
최민호: 연희는 하나의 레퍼토리를 만들어서 들어오니까 그 팀만 부르면 됩니다. 그러나 춤은 따로 오잖아요. 그리고 개런티를 드려야 하는데, 계산해보면 하기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극장에서 차선책으로 찾은 건, 다른 사업을 통해 지원받아서 공연을 올릴 때 편안하게 활용할 수 있게끔 도와드리고 있어요. 사실 예산이 많으면 기획 사업을 하고 극장 브랜드가 쌓이는 것인데, 지금은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정도입니다.
장승헌: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춤이 선정되었다 해도 지방에서 이 공연을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우수 레퍼토리여도 무용은 어렵다는 거죠. 일반 관객을 모으기 힘들고 예산이 많이 드니까요. 기획자부터 이러한 인식을 바꿔야 해요. 진옥섭 씨가 그런 케이스잖아요.
최민호: 제가 외부에서 기획하면 맞춰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만, 공적 기관에서는 양심상 예술가들에게 드려야 하는 최소한의 비용이 있습니다.
최민호 서울남산국악당 기획실장 ⓒ춤웹진 |
김영희: 지방 국악원에서 열리는 전통춤 상설 공연은 어때요?
복미경: 지방 국악원에는 전통춤 상설 공연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아요. 국립부산국악원의 경우 각 분야별로 공모되는 ‘수요공감’이라는 상설 공연에서 전통춤 공연이 열리기도 합니다. 남원의 국립민속국악원은 제가 재직했을 당시에 소극장이 생기면서 무용 상설공연을 기획했었는데, 현재는 판소리 위주의 상설 공연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진도 국립남도국악원의 경우는 상설공연을 종합 공연으로만 운영하고 있고, 때때로 무용단 중심의 기획 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해마다 부산국악원에서 ‘영남춤축제’라는 여름 축제는 창작도 있지만 전통이 활성화되면서 작년부터는 라이브 연주를 제공하는 전통춤판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부산지역 뿐만 아니라 타지역 사람들에게도 공모의 문을 열어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역 반응이 좋고, 앞으로 점점 발전되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승헌: ‘영남춤축제’ 1회를 준비할 때 담당자에게 춤의 유산을 엮어서 하자고 제안하고, 가이드했어요. 2회 때부터는 유사하게 하더라고요. 그리고 정신혜 씨가 부산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이 되면서 ‘영남춤축제’ 때 ‘영남춤 100인전’을 열었어요.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축제를 처음에 설계할 때 회의에 참석하면서 애정을 품고 있었죠. ‘부산국제무용제’가 해운대 바닷가 앞에 열리듯이, ‘영남춤축제’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국악원이다 보니 음악이 먼저인 거예요. 또 매년 춤 축제를 열면, 소재가 고갈될 수 있으니 음악과 격년제로 할 것을 제안했죠. 경북, 경남권 사람, 영남 출신인데 서울에 활동하는 사람은 모두 출연할 수 있는 것인지, 100인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 문제가 있잖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정체성이 달라지고, 공모를 시작하더니 창작춤까지 포함하고 교육과 워크숍도 하더라고요. 예산이 줄었는지, 초기에 제가 제안했던 모습과 달리 점점 색이 변한 듯해요.
김영희: 진도에서 안무자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이 있을 거예요. 전통춤 공연 기획은 어떤가요?
복미경: 진도는 전통음악과 춤의 뿌리가 깊은 고장입니다. 지역 사람들의 문화 수준도 매우 높지요. 그러나 그에 비해 공연을 보러올 분들이 한정됩니다. 지역 인구가 적어 어려움이 있어요. 하지만 타지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남도국악원만의 향토적 특색이 드러나는 브랜드작품들과 레퍼토리들을 제공하며 이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무용단은 정기공연과 기획공연을 통해 전통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영희: 지방 국악원에도 상설 공연은 있긴 하죠?
복미경: 네. 현재 진도에서는 토요상설공연 ‘국악이 좋다’가 열리고 있고, 남원에서는 판소리 위주의 상설 공연 ‘이야기 보따리’와 야외 상설 공연 ‘광한루원’이 열리고 있습니다. 또한 부산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수요공감’이 열리고 있구요. 모두가 종합상설공연이네요.
장승헌: 그런데 지역의 전통춤 공연에서 지역 특성에 문제있다고 봅니다. 부산에 ‘영남춤축제’가 있다고 하는데, 제가 감히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이매방 선생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매방 선생님이 목포 권번에서 춤을 시작해서 6.25 때 부산으로 피난 가셔서 이매방무용연구소를 차리셨고, 몇 년 후 상경하셨습니다. 사모님인 김명자 선생님이 학원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운영하셨고요. 그러다 보니 모두 호남춤을 추고 있고, 어느 순간 소극장 공모에 선정된 작품을 보면 품앗이 공연처럼 호남 장단에 〈승무〉 〈살풀이춤〉을 춥니다. 영남춤이라고 하면 〈진주교방굿거리〉와 〈검무〉, 〈동래학춤〉 이 대표적인데, 주류는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예요. ‘영남춤축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한 3회까지 봤는데, 다 호남춤을 추고 있더군요. 서울에서 열리는 ‘수요춤전’ 역시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가 빠지질 않아요. 또 국립국악원을 보면, 종묘제례악의 일무를 완성하기 위해서 무용단이 생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근래에 특히 춤이 소외되는 느낌입니다.
김영희: 전통춤이 지역성을 무시하는 문제를 지적하신 거죠. 자기 지역성을 가지면서 수용하면 되는데, 전통춤꾼들이 지역성을 잃으면서 무조건 문화재 종목이라고 배우는 건 문제입니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춤웹진 |
장승헌: 맞습니다. 로컬리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같이 작은 나라에 팔도검무가 있듯이 다양하잖아요. 현존하는 11개의 탈춤이 오광대놀이, 야류로 불리기도 하고, 정체성이 통폐합되는 느낌을 받아요. 서울에서 춤을 무대화, 양식화를 하다 보니까 그런 건지 연출자에 의해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어요.
김영희: 전통춤은 다양성이 자산인데, 그 다양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연구해야죠. 기관에서 하는 상설 공연, 공모를 통해서 하는 공연이 점점 많아지고 안정화되는 것 같아요. 그럼 기관에서 하는 전통춤 공연과 개인이 하는 전통춤 공연의 장단점은 무엇일가요?
장승헌: 기관에서 하는 공연들은 우선 예산과 훈련된 무용수, 그리고 안정된 공간이 확보되어 있죠. 홍보도 대대적으로 할 수 있고요. 그런 만큼 책임이 막중하죠.
김영희: 동감입니다. 개인이 주최해서 하는 공연과 기관에서 주최하는 공연은 질이 다르죠. 구체적으로 보면 기관에서 하는 공모 공연들은 주로 갈라식으로 쭉 늘어놓는다면, 개인이 하는 전통춤 공연은 다양한 컨셉을 설정해서 하기도 합니다. 그 차이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복미경: 전통 춤꾼들은 여러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잖아요. 하나의 레퍼토리를 있는 그대로 무대에 올리기도 하지만, 이 하나의 춤을 어떻게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할지 늘 고민합니다. 절대 같은 공연을 기획하지 않아요. 같은 재료를 가지고 늘 어떻게 기획할지 고민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가발전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소극장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유는 소극장이 실험하기에 적합한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관객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끊임없이 실험하다 보면 전통을 소재로 한 창작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극장에서 공연하면 관객들이 거의 지인 위주로 구성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겁니다. 반면 기관에서 주최하는 공연은 다양한 사람들이 보러 오기 때문에 이름을 알릴 기회가 생기는거죠. 저는 다행히 20대 때 장승헌 선생님의 기획전에 뽑혀서 〈태평무〉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게 되고, 이를 계기로 마니아층이 생기게 되었어요. 기관에서 하는 공모 공연은 관객 입장에서도 다양한 춤을 볼 수 있고, 출연진 입장에서도 홍보 기회가 있다는 장점이 있네요.
장승헌: 무용가들은 기관에서 기획한 공연에서 라이브 음악을 제공해주고 개런티를 받는 것만으로 수혜를 입었다고 생합니다. 공간과 스태프도 제공되고요.
최민호: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공공이나 기관에서 관객 개발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발된 관객이 민간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작업에 찾아갈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아직 기관에서 관객 친화적 프로그램과 기획을 조밀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희: 기획 면에서 관객이나 대중성을 고려해야지요.
최민호: 극장의 화두는 관객 개발입니다. 특히 전통 분야에서 어떻게 관객 개발을 할지 고민하게 되는데, 극장에 오는 것뿐 아니라 이 관객이 다른 전통 공연을 찾아가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
장승헌: 한옥마을 구경하다가 남산국악당에 공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겠죠.
최민호: 그렇게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만, 관객 개발 면에서 생각할 때, 티켓을 구매하지 않는 관객은 그다지 의미가 크지 않더군요. 왜냐하면 이미 다른 행사에서 비용을 투자해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극장에서는 체험형 기획보다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장승헌: 언젠가부터 국악은 무료로 관람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린 것 같습니다. 국공립 단체들은 유료화를 권장하면서 관객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또 PD 시스템이 생겨나면서 공연체계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듯합니다. 그리고 전통춤 공연이 1/3 이상 차지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시장이 있고, 문화센터나 각 구청, 평생교육원에서 일반인 대상 수업이 확산되면서 전통춤 마니아들이 생겨났고요.
김영희: 화제를 바꿔서 복미경 선생님은 전통춤을 공연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공연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있잖아요.
복미경: 저는 공연을 하기 위해 작품을 정하고 연습하기보단, 하고 싶은 작품들을 연습하다보니 공연까지 가게되는 경우가 대다수예요. 그렇게 하고 싶은 작품들로 구성된 공연을 기획해서 올리다보니 어떠한 규칙들이 생기더라구요. 그렇게 시리즈 공연들도 몇몇씩 자리잡게 되고, 지금의 복미경무용단은 궁중무용 시리즈 ‘무율’, 전통무용 시리즈 ‘참춤도약’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는 포스트극장 ‘전통과 창작의 만남’ 기획에서 복미경의 ‘참춤’ 레퍼토리 ‘EIGHT’을 선보였었는데, 이틀간 혼자서 8개의 독무를 발표했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작품들이 많아서 몇 가지로 추리지 못하고 다 선보이고자 했던 욕심이 오히려 특이한 기획 공연이 되었어요. 홀로 이틀간 8개의 작품을 선보이는 선례가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김영희: 그럼 공연 준비를 할 때 어려움이 있을 터인데요.
복미경: 저는 공연 준비를 할 때도 그 다음 공연의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많은 공연 일정이 쌓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용적인 문제도 심각하죠. 먹고 사는 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공연 하나에도 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여러 공연을 하게되면 비용이 배로 들게 되는거죠. 특히 라이브로 진행되는 전통무용은 비용이 더 드는 편이죠. 그래서 기관에서 섣불리 무용 쪽 기획하는 걸 어려워하실 거예요. 이해는 합니다.
최민호: 민간 무용단과 한 2년 정도 같이 작업한 적이 있어요. 창작춤의 경우 석 달을 연습해서 한 작품을 올리는데, 이틀 공연하고 끝나죠. 의상이나 무대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객석을 다 채워도 수입이 없어요. 음악은 어느 정도 연습하면, 새 작품을 한다고 해도 악보를 세 번만 보고 곧바로 연주하는 경우도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춤은 새로운 걸 만들 때마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합니다. 물론 전통춤은 레퍼토리를 구축하면, 공연 때 잠깐씩 꺼내면 되기에 시간이 많이 줄긴 하겠지만 노력이 요구되죠. 극장 입장에서 이에 대해 보상을 하면서 어떻게 좋은 작품을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더 주저하게 되는 것 같아요.
복미경: 음악 쟝르에 비해 무용 공연 기획이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에서 기회를 더 주어야 전통춤이 성장하게 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희: 전통춤 공연자들이 공모에 응할 때 무형문화재 종목과 비지정 종목에 있어 차별은 없을가요?
복미경: 국립기관 공모에 응할 때에는 아무래도 무형문화재 종목이 조금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이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가 따로 있으니까요. 그 외에 다양한 공모전에서는 어떠한 컨셉트가 확실하게 잡혀있거나 눈에 더 띄는 기획 공연들이 선정되는 확률이 높았던 것 같아요. 공모마다 원하는 모양새의 기획들이 다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이것이 차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영희: 그 외에 전통춤 공연에서 또 어떤 어려운 점이 있나요?
복미경: 재정적인 문제가 제일 크지요. 2020년 국립무형유산원 이수자전 공모에 ‘무율’이라는 공연이 선정되어 고종30년계사년 정재무도홀기를 재연했고, 2021년에는 자비로 ‘무율 II’ 공연을 기획하여 이왕직아악부 때의 성경린선생님 정재 노트에서 4가지 작품을 재연했어요. 한 번 공연할 때마다 6개월 이상 홀기 해석 이론공부를 필요로 하는데, 이 과정이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작업이고, 재연공연이다 보니 출연자만 무용 15명, 연주자 15명 정도로 구성되어 비용도 만만치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올해는 감사하게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어려운 점은 민속춤과 관련해서 현장에서는 라이브 음악에 맞추어 공연하지만, 연습할 때는 MR에 맞추어 무용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음악 훈련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최민호: 좋은 MR이면 모르겠지만, 무용가들이 극장에 가지고 온 음원을 들어보면 1970~80년대 녹음한 것들이에요. 음질이 좋지 않습니다.
복미경: 전통춤 특성 자체가 현장에서 생기는 순발력을 포함해야 멋이 나는데요.
김영희: 그래서 라이브 연주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죠.
장승헌: 특히 산조 같은 경우는 워낙 좋은 연주자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신무용기 안무자들은 가야금, 거문고 가락에 맞춰 산조춤을 만드셨죠. 산조 가락이 장단에 따라 변하는데, 산조춤은 10분 내외로 추다 보니 원래 산조 곡 한바탕을 그대로 연주할 수 없죠. 그래서 무용가들이 녹음한 테이프를 잘라서 하는데, 연주자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화가 나겠지요.
최민호: 몇 장단으로 잘라서 연주자한테 요구하면 연주자들은 불편할 수 밖에 없어요. 음악 원곡의 맥락이 끊어지거든요. 그래서 라이브를 잘하는 악사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죠.
복미경: 결국엔 춤꾼이나 연주자들에게 순발력이 없다면 서로 불편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MR에 맞춰 연습하다가 음악이 조금 달라지면, 훈련되지 않은 춤꾼은 적응하지 못해요.
김영희: 전통춤 교육의 문제이죠.
장승헌: 어려웠던 시절에는 연주자와 무용가들의 협업 작업이 되었어요. 요즘은 악사라고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국악원에서는 춤 반주하는 분들은 연주자라고 하잖아요. 발레 지휘자는 발레 무용수에 따라서 지휘하거든요. 그래서 발레 음악 지휘자가 필요한데, 전통춤은 지휘자도 없을뿐더러 춤을 속속들이 못보는 거죠. 코우스에서 하는 ‘팔일’에 가면 여덟 아홉 개 악기가 반주하는데, 반주자들이 개인기 자랑을 하면서 경쟁이 붙어요. 소리가 너무 세다 보니 춤이 죽는 거죠. 오히려 홀춤과 홀연주자로 단독 반주자가 함께 할 때 가장 아름다워요.
최민호: 맞습니다. 우리가 구상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어쨌든 음악과 춤이 이곳에서 포지셔닝하길 바라면서, 지금 말씀하신 공연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김영희: 그러한 경향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장승헌: 이매방 선생님 춤을 추고 있는 백경우 씨가 〈승무〉, 〈살풀이춤〉을 출 때 그런 반주 구성으로 하는데, 훨씬 좋더군요. 우리 춤은 음악이 끌고 가면 안 돼요. 춤추는 사람을 보면서 연주해야 하는데, 따라오라는 식으로 음악이 끌고 가다 보니 춤사위가 삐걱거리는 거죠. 또 젊은 춤꾼들은 장단을 놓치면 혼돈하기도 하죠.
김영희: 그래서 한국문화재재단이 주최하는 ‘팔일’의 반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승헌: 저도 늘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주최한 ‘무객’ 공연에 갔을 때 그 이야기를 했어요. 대학 재학생들이 생음악에 맞춰서 하는데, 덜덜 떨고 있으니 음악이 맞춰주면 안 되겠느냐고요.
김영희: 합을 미리 맞춰봐야 하는데, 현장에서 춤꾼과 반주자가 처음 만나 한두 번 맞추는 정도죠. 전통춤 발전을 위해선 악사분들과 충분한 연습이 필요해요.
장승헌: 양악 연주자들처럼 악사분들이 예우받아야 하는 지점에 도달한 것 같아요. 우리춤 입장에서는 무형문화재와 국악원의 사범이 생기고 있는데, 너무 도제식이어서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게 되죠. 전통춤 순서를 틀리면, 못 췄다고 생각하잖아요. 사실 선생님들이 개인의 몸에 맞게 찾아가도록 지도해야 해요.
최민호: 음악의 경우 엄격한 선생님 밑에서는 산조를 할 때 바꾸는 것에 제한을 두잖아요. 춤도 그렇지 않나요?
김영희: 네. 순서대로 추게 합니다만, 일정 수준을 넘으면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최민호: 구조적으로 풀어주지 못한다면, 젊은 춤꾼들에게 악사를 붙인다고 해도 즉흥성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김영희: 그러기 어렵죠. 한 단계씩 전통춤 특히 민속춤 교육의 방식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전통춤에 대한 생각이나 음악에 대한 교육 등을 차츰차츰 고쳐야지죠.
최민호: 선생님들이 더 풀어줘야 할 것 같아요.
김영희: 앞 좌담에서도 이 문제가 누누이 지적되었어요. 갈라 식으로 하는 전통춤 공연 기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승헌: 관객들은 전통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만, 어느 정도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나요. 지루한 〈승무〉는 첫 번째로 하고, 빠른 장단의 타악기춤이나 무속춤은 마지막에 하죠. 교과서처럼 하나의 틀이 되었는데, 전 이걸 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팔일’을 맡았을 때 리허설을 보고 의상 색깔이나 음악에 따라서 순서를 바꾸기도 했어요. 또 라이브로 하다 보면 흔들리는 사람, 그날 기운이 좋은 사람이 있잖아요. 그리고 전 ‘팔무전’이라고 꼭 여덟 개를 해야 할지 의문입니다. 6~7개 정도 하면 되는데, 8개의 작품을 하다 보니 2시간 정도 소요되죠.
김영희: 특히 2008년 즈음 초기 ‘팔무전’에서 홀춤이 경쟁적으로 길어졌어요. 최민호 실장님은 전통춤 기획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신가요?
최민호: 남산국악당에서 와서 렉쳐 강좌를 했어요. 춤에 관해 설명해주면서 시연도 하는 거죠. 일반인이 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파일럿 프로그램을 해본 거죠. 내용적인 부분에 있어서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김영희: 전통춤 종목에 대한 이해와 그 환경이나 역사 등 텍스트가 충분히 갖춰져 있어야 해요.
최민호: 춤추는 사람이 춤의 내용과 함께 본인의 생각을 해주길 바랐어요. 네이버에서 찾을 수 있는 지식을 관객들에게 줄 필요는 없지요. 저는 지극히 개인적이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전통춤을 추면서 느끼는 생각, 본인의 춤론을 이야기하는 거죠.
김영희: 좋은 기획 의도라고 생각해요. 춤이든 춤꾼 개인이든 더 깊이 있게 접근해야 합니다. 기획자들이 전통춤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장승헌: 우리는 대중성과 대중적 보급을 혼동합니다. 춤 장르는 대중화가 될 수 없어요. 우리는 자신이 춰야만 만족하는 민족이에요. 술 먹고 노래하다 마지막에 하는 게 춤이죠.
최민호: 맞습니다. 전통 음악을 이야기할 때도, 풍류 음악 하는 사람은 좋았다고 하지만 보는 사람은 지겹죠. 어쨌든 무대화해서 관객들이 볼 수 있게끔 하는 것은 저희 임무입니다. 공연장에서 관객 개발 프로그램 중 일 순위가 교육입니다.
장승헌: 그런데 렉쳐 퍼포먼스를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그것은 문화예술 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지잖아요. 언제까지 관객들을 가르쳐서 상향 조정을 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마니아층은 교육 차원의 공연을 왜 계속 봐야 하는지 물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재밌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문화센터,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국립극장 문화학교, 구청에서 전통춤을 열심히 배운 사람이 학원을 차리기도 합니다.
복미경: 지금은 전통춤 마니아층의 수준이 높아요. 이분들이 전통춤 공연의 관객이 되어주고 있고, 실제로 춤을 많이 배워서 춤을 잘 추는 분들도 계십니다. 예전에는 여가시간에 그저 운동 삼아 취미로 춤을 추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그 분들이 점차 전통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지금은 예술의 경지로 춤을 계속해서 배워나가고 계세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모셔 ‘아마추어 명무전’ 같은 기획을 해보면 어떨까요.
최민호: 생활예술 측면인데, 이미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하고 있어요. 우리는 예술가들의 둥지가 되어야 해요. 우리가 가진 미션 중 하나는 청년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에서 10년간 지원해주는 청년국악인 활성화 사업은 음악 중심입니다. 춤은 별로 없어요. 춤과 연희로 확대해서 젊은 예술가가 선정하고 싶어요. 국악은 산조와 현대 음악을 포용할 수 있는데, 춤은 전통과 창작을 넘나드는 게 부족해요.
장승헌: 춤 분야는 다섯 명, 네 명, 세 명이 두 작품씩 하거나 마지막에는 공동 안무를 하며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데, 춤이라는 장르가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아요. 대중화를 표방하지만, 시장 형성조차 되지 않았죠. 일반인들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 ‘스트릿 걸스 파이터’에서 추는 춤이나 비보잉을 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중적 보급 차원에서 공공기관에서 상설 공연을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려면 단체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기관에서는 노동조합 때문에 꺼리죠. 저는 기관에서 공연을 자주 하되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최민호: 남산국악당에 와서 느낀 점은 춤 관련 협회가 많다는 거예요. 3~4일간 10팀이 공연하기도 하고요.
김영희: 무용계에 문어발 식으로 협회나 단체가 많기는 많죠. 최민호 실장님이 말씀하신 음악과 춤이 긴밀하게 결합한 춤 공연이라든가 렉쳐 공연은 좋은 기획 같습니다. 이와 같은 공연들은 부분적으로 조금씩 시도되고 있는 것 같고, 이러한 공연들이 더 다양하게 펼쳐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복미경 선생님은 공연자 입장에서 요구하고 싶은 기획이 있나요?
복미경: 기획자분들에게 죄송합니다만, 팔무전 형식이 가장 쉬운 기획 아니에요? 너무 오랫동안 봤습니다. 그리고 이 기획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가 매번 하는 형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여러 춤꾼에게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공헌은 크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기획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근래 전통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창작 공모가 나오고 있잖아요. 컨템퍼러리 댄스와 같은 창작은 아니지만, 전통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윗대 선생님들이 만드셨던 춤이 전통춤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창작이었잖아요. 우리 역시 춤을 개발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혼자 생각하고 만들기엔 장벽이 많아요. 이미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제가 만들기도 죄송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공모를 통해 창작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점에 소설, 수필, 시 등 다양한 책이 있잖아요. 이렇듯 춤도 다양한 공연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통춤을 소재로 작품이라든가 규모를 키워서 팔무를 다 넣은 극이라든가 다양한 춤을 만들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합니다.
장승헌: 최근에 공연장이 PD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어요. 공공극장은 공채로 뽑은 사람이 책임 PD로 오니까 무용단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죠. 예술감독과 친해지기 전에 임기가 끝나거나 다른 파트로 가는 경우도 많아요. 그들이 책임감을 느낀다면 세대가 바뀌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예술감독보다는 책임 PD와 극장장의 입김이 더 세더라고요.
김영희: 예술감독은 계속 바뀌니까요.
장승헌: 특히 공무원들은 예술감독의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해요. 객원 안무가 정도로 생각합니다. 예술감독조차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죠. 시도립무용단은 임기가 2년인데, 1년 차에는 그전 예술감독이 벌여놓은 일을 하고, 나머지 1년은 단원들 눈치를 보죠. 그러다보면 이것도 저것도 안 돼요.
김영희: 전통춤 공연에서 컨셉을 잡고 하는 공연이 많이 필요해요. 복미경 선생님 시리즈 공연도 좋고요. 제가 기획한 ‘검무전’이나 ‘소고 놀음’, 장승헌 선생님이 기획한 ‘산조예찬’처럼요. 그러다 보면 공연을 보는 눈이 높아집니다.
최민호: 구성 요소, 소스는 이미 갖춰있고 기획자에게 그걸 어떻게 선택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엮을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장승헌: 요즘 한류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요. 이때를 활용하길 바랍니다. 노래, 영화도 되는데 춤이 안 될 이유가 없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에 춤이 필요하잖아요. 충분히 글로벌한 콘텐츠가 될 수 있어요. 뮤지컬은 이미 산업화되어서, 어쨌든 정부에서는 창작 뮤지컬에 지원금을 따로 주잖아요.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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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영화 쪽에서 부흥이 일어난 배경에는 인식 있는 지식인들이 영화계에 들어갔고 그래서 꽃을 피웠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워낙 대중적인 장르이기도 하지만요. 전통춤도 기획자나 감독들이 전통춤 유산의 활용 가능성을 더 고민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승헌: 지루하고 어려운 점도 있지만, 은연중에 전통춤을 하위 개념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무용가들도 나이 들면 전통춤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여튼 전통춤은 발레 클래식과 같고, 한국 창작춤은 컨템퍼러리댄스라고 생각해요. 클래식 발레는 전통춤의 영역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두 가지 부류가 되길 바랍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무용 등이 따로 있지 않고, 공통적으로 클래식이라 하잖아요. 우리나라 대학에서 삼분법으로 나누어 괜히 쓸데없이 장르 싸움을 하죠. 현재 진행중인 춤의 현상들을 반영해서 장르 구분에 대한 이해를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전통춤 공연 수준을 높이기 위해 좋은 기획자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최민호: 남산국악당에서는 국악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한국 전통춤을 주요 사업으로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어요. 그래서 규모 있는 연희, 춤, 콘서트를 열려고 합니다.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과 같이 컨템퍼러리한 창작춤을 하기엔 무대와 결이 맞지 않지만, 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창작춤이 있다고 하면 수용할 수 있죠. 국립국악원이 있으니 남산국악당에서 정재 공연을 할 필요는 없어요. 민속춤이나 신무용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가 중요해요. 춤을 너무 잘 춘다는 것에 감동할 수 있지만, 관객들이 왜 이 공연을 봐야 하는지 설득해야 해요. 이를 찾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프로그래밍하려 합니다. 그리고 공공 극장에 아티스트가 들어왔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을 다 기울이려 해요. 비용 문제로 우선 외부 파트너와 하는 사업이 많이 있을 거고, 이러한 사업들을 통해 이 공간이나 춤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
김영희: 네. 무용계 전체를 보시면서 전통춤 공연을 위한 역할을 찾고 계시군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오늘 전통춤 공연과 관련하여 공연 실연자와 공연 기획자, 기관에서 활동하시는 세 분을 모시고 여러 현황들을 짚어보고 문제점도 거론했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