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2021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방담
긴급 감사 여론 자초한 역대 최악 이벤트
  • 일    시
    2021년 11월 23일 밤
  • 장    소
    비대면 화상 회의
  • 참석자
    김채현 서정록 김혜라 김인아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를 주제로 방담을 진행하겠습니다. 춤계의 중요한 행사를 대상으로 방담을 2년 연속 진행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올해 SPAF의 일정(10월 7일 ~ 11월 7일)이 나오고부터 문제가 심각하다는 여론이 춤계에서 들리기 시작했고, 실제 올해 SPAF의 홈페이지 소개 내용이나 공연작들의 면면을 봐도 그러한 여론이 무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춤웹진〉 편집위 내부 의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21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팸플릿 표지




스스로 문제를 키워온 대형 행사

-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홈페이지 들어가 보니 말 그대로 볼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 〈춤웹진〉이 방담을 통해 지적한 여러 사항들이 전혀 시정되지 않았습니다. 〈춤웹진〉의 방담을 쫓아서 모두 시정해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요. 그렇더라도 〈춤웹진〉이 지적한 바를 경청했더라면, 올해 이 정도로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참 뜨악한 마음입니다. 길게 거론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문제점이 강하게 드러난 거 같아요. 홈페이지에서도, 프로그램에서도 눈 둘 곳이 없어요.

- 저로서 가장 먼저 주시한 것은 선정 경위입니다. 작년에는 선정 경위, 그러니까 참가단체 공모 결과가 공고되었고 올해도 공고되었지만, 공모 결과 공지 내용이 참 허술합니다. 팸플릿에서도 선정 경위는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체 홈페이지에서 공지사항도 몇 안 됩니다. 올해 행사가 뻔하게 아이디어 없이 진행된다는 걸 일찌감치 감지할 수 있습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자체 홈페이지에서는 보도자료도 올해 것은 보이질 않아요. 포털 검색창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2021’을 입력해보면 언론 보도 기사가 몇 되지도 않습니다. 홈페이지는 팸플릿처럼 행사 기본 내용을 소개하는 구실 말고 흥미를 끄는 바도 없었습니다.

- 예산을 작년에 비추어 짐작해본다면 아마 무려 9억원 안팎인 행사의 내용이 그 정도이고 춤 부문에서의 실제 결과도 부실하여 한 마디로 기가 찰 일입니다.

- 어느 일간지가 올해 행사를 진단한 기사는 행사가 거의 끝날 때쯤에 보도되었고, 인터넷 언론들에서도 더러 올해 행사를 보도하였습니다만, 어느 인터넷 언론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 2021이 성대하게 끝났다”라는 기사를 냈더군요. 성대하게 끝났던가요? 춤 분야 측면에서는 전혀 동감하기 어려운 기사 아닌 기사였습니다. 홈페이지에도 우선 볼거리가 없었는데, 그래도 올해 행사를 두어 편 관람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작년에 〈춤웹진〉에서 선정 경위를 따지면서 재연작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바 있지요.

- 저는 한 단체 공연만 보았습니다. 재연작인데, 이전에 여러 차례 올려졌어도 놓친 것이라 보았습니다.

- 춤과 연극 분야 통털어 20개 남짓 되는 작품 가운데 춤 작품은 행위예술가 얀 마루시치의 것까지 무용작품이라고 한다면 한 여남은 개쯤 됩니다. 그 모두 재연작입니다. 신작은 얀 마루시치가 연출하고 국내인들이 출연하고 연출 협력한 〈돌과 판지〉 하나예요. 해외 초청작은 얀 마루시치 것뿐인 줄로 아는데, 그이의 연출작이 셋이나 있어요.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마치 얀 마루시치 특집판인 것처럼 비치더군요. 그이가 그 만큼 중요한지, 아니면 발상이 참신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의도가 작용한 것인지, 이래저래 과도해 보였습니다.

- 올해 행사를 왜 이런 식으로 기획했는지, 심사를 어떻게 했으며, 제대로 심사를 했는지 갖가지 의문이 계속 꼬리를 물고 떠오릅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그 주관처가 2015년 11월 예술경영지원센터로 이관되었습니다. 올해가 여섯 번 째란 말이죠. 이후 존재감이 약화돼 왔는데, 올해는 최악이라 하겠습니다. 적어도 춤 부문에서는 그렇습니다.

- 100% 재연작이고, 이전에 거의 다 본 것이어서, 저 역시 관심을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최근에 본 작품이 이번에 재연작으로 다시 올려졌는데, 몇 달 사이에 얼마나 변화가 있겠는지 의문이 든 탓도 있었어요. 이 축제 자체가 이제는 정체성도 없고 기획 의도는 있는지 없는지 더욱 보잘 것 없어져버렸어요. 어느 면에서나 관심을 갖고 흥미 있게 지켜볼 만한 행사는 아니었습니다.


기대할 것마저 퇴색시키는 재연작 일색 선정

-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재연작 일색이 문제를 많이 안고 있다는 건 작년에 분명히 지적되었습니다. 물론, 재공연작과 초연작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설은 없어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만, 납득할 만한 정도의 초연작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 선정작을 뽑는 단계에서 공지된 초청작 공모 공고문 유의사항을 보면 초청작, 즉 선정작 지급액을 상이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애초에 초연을 장려할 의지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 공연을 했는지에 따라 초청료가 차등 지급될 뿐입니다. 올해 6월 이전에 공연했으면 최대 2천 5백만 원까지 받을 수 있고 올해 서울공연예술제 전후에 공연하면 최대 5백만 원까지 받을 수 있어요. 초청료 지급액 기준을 보면 처음부터 재연작을 선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 이런 규정은 공연 단체들에게 “일단 공연했던 것을 신청하고 본다”는 심리를 조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일단 신청하고 본다’는 심리가 통할 수 있는 풍토가 문제일 텐데, 이러고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방향성 있게 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지요. 공연예술계가 문제라기보다는 바로 이렇게 주관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자체가 문제인 겁니다. 왜 그런 인식을 조장하느냐는 것이지요.

-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 공모 규정에 재연작과 초연작의 비율을 정해두지 않은 것은 허점으로 보입니다. 재연작만 뽑을 정도로 초연작이 없었는지, 즉 전부 재연만 하겠다고 신청한 건지 의문은 있습니다. 이럴 경우 문제점은 또 드러납니다. 춤계에서나 공연예술계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인식하는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신작의 산실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는 현상 말입니다. 이런 경우에 상식적으로 보아도, 초연작보다 재연작이 뽑힐 확률이 높다는 것도 문제이지요. 그래서 재연작과 초연작의 비율을 정해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재연작도 무턱대고 뽑을 것이 아니라 재연할 시에 작품 완성도를 높일 방안이 무엇인지 묻고 이를 실행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할 겁니다. 그렇게 손질하지 않은 채 공모 규정을 이대로 방치해두면,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서울국제‘재’공연예술제가 되어버릴 겁니다. 해외작에 대해서는 물론 이런 방침을 적용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에 올해 참가작 심사 총평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7월 넷째 주에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는데, 8월 12일에 공모 결과가 나왔어요. 심사위원은 네 명입니다. 선정 기준을 보면 작품의 완성도, 축제 부합성, 실현 가능성입니다.

- 심사총평을 보면 “축제가 국제적 환경에 대응하며 향후 국제교류 기반 조성에 집중하는 만큼 작품의 기본적인 완성도를 더해 국제적 안무에 따를 작품의 철학적 깊이, 양식적 실험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실연적 가치를 주된 기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 또 “예술융합의 실험이 담긴 작품이 아닐지라도 예술적 완성도가 높고 동시대적 담론을 끌어내는 작품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신작의 경우 “사전준비 과정과 꾸준한 단계를 밟아 왔는가를 중요하게 봤다”고 하는데, 무용 쪽은 해당 신작이 사실상 없었지요? 재연작 일색인 공모 결과를 감싸려는 취지가 이 총평에서 강하게 감지됩니다.

- 신작이라고 완성도가 왜 없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 총평에 모든 것을 다 담을 필요도, 그럴 수도 없지만, 심사 총평이 아주 상식적인 내용으로 채워져서 어디에나 갖다 붙여도 될 법한 뻔한 총평이고 맥 빠진 총평 아닐까요?


기획 마인드와 전략의 부재가 일상화된 대형 행사

- 정확히 말해, 기획 의도가 아예 없었다고 봅니다. 작년에는 코로나 사태 첫해였으니까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시정하기에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라고 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작년에 비해 달라진 게 없고 악화되었을 뿐입니다.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여, 일례로 하다 못해 댄스필름을 소개한다든가 해외에서 솔로를 초빙하는 식으로, 특별하게 소통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었을 텐데도, 올해는 이런 최소한의 노력마저 찾아볼 수 없는 행사에 머물러서 최악의 축제였다고 봅니다. 있는 재원을 나눠 갖기나 하는 식이고, 경영 마인드도 예술에 대한 실효성 있는 투자도 없었다고 봅니다. 국고를 탕진하는 행사라는 지적이 나올 법합니다.

-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이 행사를 진행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여서, 한 마디로 무개념의 공연예술제입니다. 이런 축제는 가고 싶지도 않고 이미 봤던 작품이기도 해서 설령 티켓을 제공해준다고 해도 보고 싶지 않아요. 작년에 힘들었을 때도 공모 광고가 4월에 나온 것 같은데 올해는 작년에 그런 사태를 겪고서도 심지어 올해 공지를 보니까 6월에 공모 광고, 7월 2일까지 공모 마감했더라구요. 그렇게 늦어진 이유도 들은 바 없고요. 그리고 축제를 10월에 했으니... 홈페이지를 보면 11월 13일에 한국연극평론가협회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합평회를 열었더군요. 무용 쪽은 합평회도 없었었어요. 주관처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 정말 안타깝다고 여겨지는 게 예술경영지원센터로 이관되기 전, 적어도 2015년까지는 어떤 타이틀을 내걸고 그에 맞게 해외 공연작들을 선별 초청했고, 그 공통분모 내에서 주제를 가려 뽑아서 잘 기획했다는 느낌을 가졌어요. 다원예술 부문도 포함해서 다소 임팩트있게 제시했다고 기억합니다. 대중의 호기심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는 이전 기획력을 모두 상실한 그런 느낌이 들었고, 웬만한 관심도 못 받는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원래 이런 축제가 아니었는데, 불과 5년 만에 사정이 매우 악화되었습니다.

- 이 행사를 두고 성명서를 발표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습니다. 〈춤웹진〉에서 이미 작년에 그 문제를 세세하게 지적을 했습니다만, 지적된 문제점이 더러 해소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었어요.

- 언론 보도에 의하면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서울공연예술제를 맡은 실무 담당자가 3명인데, 이 축제뿐 아니라 서울아트마켓(PAMS)도 함께 맡고 있어서 힘에 부친다는 식의 기사를 봤어요. 그래서 내부적으로 기획을 기대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지 않나 생각해요.

- 기획은 실무 인력이 하는 게 아니지요. 예술감독이나 프로듀서 등 브레인 역할자가 하는 것 아닙니까. 만약 실무 인력 부족이 문제라면 단기적으로 인력을 뽑으면 됩니다. 보통 축제들을 보면 해당 행사 전담으로 한두 사람이 1년 동안 진행하고, 덧붙여 단기간에 추가로 뽑아서 진행하잖아요. 그렇게 하면 될 텐데, 제대로 해보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아예 미약했다고 봅니다. 작년에 그 집행예산이 9억이 넘었고 올해도 그 수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거액의 예산을 들어서 하는 행사를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 끝내버리니 성명서를 발표해야 한다는 춤계 여론이 나올 만도 하지요.

- 물론 연극과 합쳐 있지만, 아무튼 여기 9억이 넘는 규모는 다른 행사에 비해서 굉장히 큰 액수입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대해 직무유기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재연작으로 나온 작품들이 오히려 참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선정되었으니까 올해 공연을 했을 텐데, 기획이 전혀 안 된 초라한 행사에서 오히려 참가단체들도 기대와 달리 피해자가 되질 않았나 싶더군요.

- 올해 춤 부문에서는 참가한 단체들도 오해받는 딱한 면이 있긴 합니다. 참가단체에 귀책 사유는 없지만 주관 측이 일을 엉망으로 했기 때문에 참가단체도 덩달아 피해를 입은 셈이지요. 물론 참가단체들의 작품 수준이 어떠한가는 별도로 이야기하라면 하겠지만 이런 판국에 참가단체 작품까지 평하고 싶지도 않아요. 결국 올해 행사가 이런 식으로 진행된 탓에 참가 작품들의 작품성을 논하기가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작년에도 그런 상황이 연출되긴 했어도, 올해는 역대 최악입니다.

- 그래서 감사원에서 감사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책임 있는 정부라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책임을 느낀다면, 문화체육관광부 자체 감사가 아니라 가능하다면 감사원 감사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별 감사를 고려해야 합니다. 역대 최악에다 긴급 감사 대상입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혁신적 마인드로 적폐 청산해야

- 작년에는 코로나 사태 첫해라는 사정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그래도 양해해서 봤습니다. 작년에는 국내작을 랜선 송출했는데, 올해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랜선 공연을 안 한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작년에 유료 랜선 공연 관객 동원율이 저조했고, 그 정도 동원율이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어요. 그전에 예술경영지원센터 측에서 관련 보도자료를 과장되게 냈었고 해서 굳이 그 점에 관해 지적을 했었지요. 올해 또 그런 결과가 두려워서 랜선 송출 등을 단념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시기에 랜선 송출이나 유튜브나 네이버 관람 등은 어쨌든 필요한 장치란 말이죠. 이건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걸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고 아니면 왜 피했는지 묻고 싶은 마음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적극적으로 선용해도 성에 차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 이런 점들은 이번 행사의 경영 기법과 연관지어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주관하면서 노출한 문제점의 하나로서 프레스 티켓 관행을 아예 무시한다는 점이 들어집니다. 프레스 티켓 관행을 무시할 만한 근거로서 혹시 소위 김영란법을 내세울지 모르겠습니다. 김영란 법이라 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금지 행위의 하나로서 ‘공공기관이 생산ㆍ공급ㆍ관리하는 재화 및 용역을 특정 개인ㆍ단체ㆍ법인에게 법령에서 정하는 가격 또는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서 벗어나 매각ㆍ교환ㆍ사용ㆍ수익ㆍ점유하도록 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언론사도 그러한 단체나 법인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법에서 ‘공직자 등은 직무와 관련하여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제1항에서 정한 금액 이하의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에 저촉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할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더라도 김영란법에서 프레스 티켓 관행을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 〈춤웹진〉에서 예술경영지원센터에 올해뿐만 아니라 프레스 티켓에 대해 지난해에도 문의한 바 있는데, 30% 할인 제도를 활용할 것을 권고받았을 뿐 속시원한 답을 들은 바 없다고 합니다. 평론가가 직무를 수행하려면 입장권을 확보해야 할 것이고, 그 입장권은 공공과 민간 차원을 막론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 국제적인 관행으로 확립되어 통용되고 있는 줄로 압니다. 공연 활동도 공공적이고, 비평 활동도 공공적입니다. 국내에서는 이를 프레스 티켓이라 부르고, 해외에서도 공연장엘 가면 ‘프레스’(PRESS)라는 별도의 창구가 있어 그때그때 현장에서 평론가의 요청에 응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한국인들도 해외에서 많이들 경험하는 바이지요.

- 과거에는 프레스 티켓이라는 제도 자체를 잘 몰랐을 텐데, 90년대를 전후하여 해외에서 프레스 티켓 관행을 많이들 경험하고 왔어요. 그 당시는 해외에 나가면 프레스 티켓을 별 부담 없이 제공해주니까 한국인 같은 경우에 조금 낯설은 기분마저 들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 한국은 중진국 정도로서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다르죠. 그래서 이제는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길게 말하지 않아도 티켓을 제공받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해외에서 그것이 하나의 관행으로 완전히 실행되고 있다는 걸 터득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해외에서 공공의 차원에서 언론, 비평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티켓을 제공하는 프레스 티켓 관행은 불문율 아닙니까.

- 그러나 한국에서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비롯하여 아직 정착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국내 공연 행사장의 티켓 박스에는 대개 예매, 초청, 현장 판매 세 가지 푯말은 붙어있어요. 그런데 ‘프레스’라는 푯말은 아예 볼 수가 없어요. 해외에서는 ‘프레스’라는 푯말 창구에 가서 이야기하면 별로 따지지도 않고 서로가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면서 편의를 보장해줍니다.

- 공연 관계자, 글 쓰는 비평가나 기자가 티켓을 제공받고, 공연을 보기 위한 일종의 통행증 같은 게 프레스 티켓이잖아요. 프레스 티켓이 없는 상황을 비슷한 맥락으로 비유해보면 청와대 취재 기자가 청와대 취재하러 갈 때 청와대에 입장료 내고, 물론 청와대 입장료는 없습니다만, 들어가야 하는 식이란 말이죠.

- 한국에서 그것은 아직까지 관행으로는 정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혹시 국내 연극계, 민간 연극 단체에서는 이 관행을 얼마큼 실행하고 있는지 잘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서울국제공연예술제처럼 적어도 공공 기금으로 진행하는 행사에서는 ‘프레스’라는 푯말을 붙인 창구를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고 봅니다.

-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공연 시작 약 2주 전, 축제 개막 전에 프레스 티켓에 대해서 문의했더니 제공이 어렵다고 답변을 받았어요. 그래서 특정 매체에만 제한을 두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른 매체의 다른 분들한테서도 춤 분야 프레스 티켓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그다음에 받았는지 확인은 못 했습니다만, 문제가 예사롭지 않다는 감을 받았습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측이 처음에는 알아보겠다고 했던 것 같고 결국 “어렵다”는 답을 하면서 “최대 30%로 할인해서 티켓을 구매할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이 방법에 대해서도 피드백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공연예술인이라면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때 30% 할인받을 수 있고, 굳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측으로부터 별도로 통보받을 필요도 없던 내용이었죠. 그 다음에 추가로 요청했더라면 티켓을 더 확보할 수 있었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국내에서 프레스 티켓 개념이 없다고 보면 정확할 겁니다. 경영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세워진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하물며 21세기에 국제적 기준 관행에도 못 미치는 마인드로 선도하기는커녕 제대로 지원이나 할 수 있겠는지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김영란법을 민감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김영란법으로 국제적인 건전한 관행이 무시된다면 오히려 해외 언론에서는 해외 토픽감이 아닐까 합니다.

- 초대권과 프레스 티켓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은 기사나 비평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민간 축전도 아니고 공공에서 기금을 갖고 하는 건데도... 정말 프레스 티켓 무개념은 해외를 다녀 봐도 접하기 어려운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15년 전 미국에 갔는데 제가 정식 비평가도 아니었지만 어느 잡지사 의뢰로 현장 글을 써야 했기에 티켓을 사서 보기도 했지만 점차 용기를 내서 사정을 말하면 티켓이 없지 않은 이상 제공 받았습니다. 또 다른 해에는 앨빈에일리스쿨을 취재를 갔었어요. 그때는 제대로 된 제 명함도 없었어요. 그곳을 홍보하고 투어하는 데 온갖 곳을 다니면서 친절하게 얘기했고 심지어 마지막 앨빈에일리 투 무용단, 젊은 친구들의 공연까지 볼 수 있게 편의를 제공해줬어요. 성의있게 대한 때문에 깊은 인상을 받았지요. 유럽에선 당연히 모든 축제에 가기 전에 이메일 보내면, 티켓팅 해주는 건 당연한 거고요. 공연을 거부당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미리 메일로 통보만 하면 어떻게든 티켓을 마련해주죠. 그걸 악용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 어쨌든 기록하려고 마음먹고 간 사람들이잖아요. 그다음에 글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먼 미래를 봤을 때 서로 같이 공생하고 지원하는 차원으로 봐야 하는데 한 치 앞도 못 보는 마인드이지요.

-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전혀 격에 맞지 않게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떠맡고 있다고 봅니다. 주관처를 바꾼다고 해서 정말 좋은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으나, 이제부터 혁신적 마인드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주관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일환으로서 우선 초청작 공모 규정에서 재연작의 비중을 제한하는 규정, 해외 초청작의 비중을 보장하는 내규부터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춤 분야를 책임감 있게 맡을 적임자가 있어야 할 것은 물론입니다. 올해 춤과 연극 분야를 통털어 얀 마루시치의 연출을 빼고 나면 해외 초청작이 전무했지요? 이러고도 서울‘국제’공연예술제라고 열렸으니 낯간지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에 대한 공식 해명도 없었던 줄로 압니다.

- 문제는 심각합니다. 다각도로 다시 생각해 보자면, 정작 행사를 주관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대한 관심과 책임 의식이 전혀 없어 보이는 게 문제라 봅니다. 그만한 관심과 책임의식이 있었다면 올해 행사가 이 정도로 최악은 안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주관처를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강조되는 겁니다. 촛불 정부 들어 생겨난 새로운 적폐라 하겠습니다. 촛불 정부는 책임지고 이런 류의 적폐를 속히 청산해야 합니다.

 

2021.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