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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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22년 2월 7일(월) 오후 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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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세미나실(서울 명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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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회
- 김혜라_〈춤웹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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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김이경 김예림 홍혜전 김현진
김혜라: 〈춤웹진〉은 2021년에 3회에 걸쳐 ‘춤 전공 청소년을 위한 기획연재’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청소년들이 열심히 춤을 추었지만 막상 대학에 진학해서는 방황하는 현실을 보면서 장래 세대 청소년들이 경쟁 사회에 내몰리지 않고 자신의 꿈을 실현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선배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입니다. 청소년들이나 대학 초년생에게 어떤 가이드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내가 다시 청소년 시기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할지, 해야 할지’ 20대 전후의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게재했지요. 그렇게 3회를 진행한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는 청소년기부터 춤을 익히고 장년기에 이르도록 춤계에서 활동해온 체험담이 그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좌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선 참석하신 분들의 자기소개를 간략히 부탁드리며, 이어 자신의 성장 경험을 토대로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지요.
김현진 |
김현진: 춤계에 몸담은 지 40년이 다 되어갑니다. 초등학교 때 발레로 무용을 시작해서 큰 키로 인해 현대무용으로 전향한 후 예고, 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했습니다. 동문 단체 격인 현대무용단체에서 무용수로 활동하기도 했고, 그 후 독립하여 소위 ‘독립안무가’로 활동하며, 10년 이상 예술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등에서 강의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스스로 정체됐다는 생각에 영국 유학을 택했고, 거기서 다시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한국과는 또 다른 교육환경을 접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귀국 후 춤 잡지 등에 저의 유학생활과 춤 활동이 담긴 춤 에세이를 약 5년간 기고하기도 했고,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예술강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 메니저로도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춤계의 다양한 현상에 관심을 가지며,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홍혜전 |
홍혜전: 전 현대무용을 전공했어요. 어렸을 때 무대에서 춤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졌었죠. 무용수보단 안무가에 훨씬 더 관심을 갖고 학교생활을 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세종대를 졸업하고 동문단체인 ‘툇마루무용단’과 ‘홍댄스컴퍼니’로 후배들과 같이 활동했어요. 그사이 예고와 대학 강사를 하면서 전공생들을 가르쳤고, 그러던 중 무대에서의 작품활동도 중요하지만 춤을 알리기 위해 관련 텍스트를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연구법을 집중적으로 공부해 논문을 통해 춤의 효과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전공자 양성도 중요하지만 춤과 춤의 효과를 알리기 위해서는 예술의 생활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전 연령픙을 대상으로 예술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현재는 대학에 재직하며 문화예술교육과 충북지역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 운영기관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예림 |
김예림: 춤계에 발디딘 지 오래됐습니다. 7살, 무용연구소에서 무용을 시작했고 한국무용을 전공하다가 예술중·고등학교, 대학 때까지 발레를 전공, 창작에 관심을 두며 졸업하고 현대무용을 했어요. 대학 동문 단체에서 17년 정도 무용수와 안무가 생활을 했고 그중 한 10년 정도 무용단 대표를 했었어요. 그 사이에 무용기획이나 실기 교육 쪽도 경험했고 무용평론가로 등단했죠. 이제는 무용단 생활한 것과 평론가로서 활동한 기간이 비슷해진 것 같아요. 지금은 무용가들을 응원하는 자리에 있고, 여러 지면에 글을 기고하며 무용을 많이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 현대무용, 발레, 세 장르를 전공했기에 선생님들과 선·후배들이 많이 있는 게 좋고, 비평에 도움이 됩니다.
김이경 |
김이경: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를 시작, 예고와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습니다. 일반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양한 커리큘럼에 목말라 영국의 라반센터에 진학했어요. 귀국 후 예술경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문사 1기로 졸업했고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육대학원에서 박사도 했어요. 결국 석사만 3개 박사학위 한 개를 딴 이 모든 과정이 저의 진로를 찾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청소년기에는 입시교육에 맞춰 앞만 보고 달렸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몰랐어요. 저같이 방황하는 영혼이 어딘가 있을 것 같고요. 예고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학생들과 함께 했고 대학에서도 20년 가까이 강의했지요. 현재는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사무국장으로 일합니다.
김혜라 |
30년이 지나도록 변함없는 입시제도, 성인기까지도 방황의 연속
김혜라: 저희가 이 자리에서 청소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한들 입시공화국에 사는 아이들이 선배들의 조언을 귀 기울일 여유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 자리 참석자들은 모두 청소년기 춤을 전공했고 이후 예고와 대학에 재직한 경험이 있으시니 입시제도의 전반적인 문제부터 짚어보지요.
김이경: 지금 다시 과거를 돌아보면 누군가 청소년기와 대학 때 가이드를 해줬으면 헤매지 않았을 것 같아요. 현재 예고나 일반 고교에서 무용 전공하는 학생들과 대학에 있는 제자들을 봐도 예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어요. 무용하면 무조건 춤을 춰야 하고 훌륭한 무용수가 되어야 하고, 그런데 직업으로 들어갈 무용단이 사실상 없는 편이에요. 본인들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요. 그리고 요즘은 대학 지원을 여섯 군데까지 할 수 있어 서울 4년제 학교에 갈 확률이 높아졌지만 실상 특화된 무용과가 거의 없어요. 입시를 보는 방법도 동일하니 학생이 잘하는 동작으로 작품 한 개를 만들어 6개 학교 시험을 치르는 거예요. 입시에서는 공부는 거의 참작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무용을 전공하는 아이들이 대학 가기 전에 죽어라(?) 콩쿠르하고 작품만 하는 거예요. 이런 악순환 구조에서 유명한 콩쿠르에서 1등 한 사람이 우상화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모두 노력하고요. 아이들이 막상 어렵게 대학을 갔을 때라도 학교가 다양한 것을 제공하면 좋은데, 대학이 전문적이지도 특화되어 있지도 않아요. 혹여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가이드라인이나 도와줄 멘토들이 드물어요.
홍혜전: 무용을 전공하는 많은 고교생들이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학령인구 감소로 벚꽃 피는 순서대로 지방부터 폐교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오늘날, 한예종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은 서류만 제출하면 입학할 수 있다는 말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기도 해요. 이러한 소문으로 보면 지역은 물론 수도권 대학에서도 정원미달 현상을 직면하게 되었죠. 이렇게 상황이 지속된다면 많은 학생들이 한예종만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어쩌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거예요. 무용학과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에요.
김현진: 제가 2008년에 예원중과 예고를 동시에 강의를 나갔었어요. 그러다 2009년도에 영국에 유학 갔는데 강사를 그만둘 당시에 전임 선생님께서 학생이 줄고 있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리고 입시 지원자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남은 학생들마저도 중간에 이탈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학생이 3/1이 줄었다고 해요. 그래서 정말 위기라 느꼈어요. 아무리 대한민국이 입시 공화국이라고 하지만 예술교육이 이런 상태로는 유지가 될 수 없겠다 판단이 들었죠. 이미 그때부터 두려웠는데 그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홍혜전: 이상적인 얘기라 하겠지만, 예를 들어 무용교육을 전공하기 위해서는 모 교수가 계시는 모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식의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학 무용학과마다 각각의 특성이 절실한 시점인데 아직까지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죠.
김이경: 한예종이 교육부 소속이 아니라 문체부 소속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교과에서 자유로움이 있었고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예술인을 만들어 냈어요. 그러나 취업에 있어서 한계점이 드러납니다. 결국 그 다음 문제에서는 여전히 반복되는 거예요. 홍혜전님 말씀처럼 학교가 특성화를 갖춰야 합니다. 교수진 중 비평 쪽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면, 무용비평가를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두어서 글쓰기를 보고, 무용기획 쪽으로 유명한 학교가 있다면 기획서 작성하는 걸 보는 거죠. 한예종 무용이론과에선 약간의 실기에다 인문 이론 소양과 영어 시험을 보잖아요. 그런 식으로 대학에서 전문인을 길러내기 위한 범주가 나뉘면, 고등학교 때 입시를 준비하면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춤을 기본으로 하되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견하면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나라가 행정적으로 무용수를 지원해준다거나 트레이닝시키는 건 최상위입니다만, 훌륭한 안무가라든지 그외 춤을 중심으로 형성될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건 교육과 연관된 문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혜라: 일정 학교를 제외하고, 비슷한 패턴의 트레이닝을 익히면 대학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트레이닝만 하는 거예요. 중요한 시기에 자의식(自意識)을 갖출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은 저희가 30여년 전 고등학교를 다닐 때와 비교해서 변한 게 없다는 점에서 한탄스럽기도 합니다. 사람이 갖는 꿈의 최종 목적지가 대학만이 아닐 텐데요. 그래서 너무 맹목적으로 대학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계 다다른 대학교육 체계, 지각 변동은 불가피
홍혜전: 충북지역만 해도 예술 계열 학과 폐과로 인해 청년예술가나 젊은 예술강사의 유입마저 힘겨운 실정이에요. 자연스럽게 예술 생태계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는 거죠. 이러다 보니 제가 대학에 있지만 예술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리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에 가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기까지 해요. 그렇다면 ‘대학 안 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들겠죠? 저는 연구소 문화가 일본처럼 활발해지길 바래요. 대학에 가지 않아도 예술을 배우고 작업할 수 있는 곳들이 있다면, 어쩌면 대학의 커리큘럼보다 그곳에서의 경험들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김현진: 우리나라에 좋은 안무가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바로 테크닉 수업 위주의 대학 커리큘럼 탓이 큽니다. 실기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던 저는 대학 입학 후 소위 ‘현실 자각 타임’이 온 적이 있습니다. 제가 꿈꿨던 대학 캠퍼스의 생활이란 책 몇 권 끼고 도서관도 다니면서 친구들과 지적인 토론도 하고 그야말로 그림에서 보던 캠퍼스의 낭만을 즐겨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도서관을 간 적이 있는데요, 그때 전 제가 도서관에서 무엇을 찾고 싶은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자료를 찾는 방법을 모르기도 했구요. 글쓰기도 좀 서툴러서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초점을 잡는 데 어려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한 예술가가 탄생하려면, 그 사람의 가치나 철학이 분명해야 하고 그걸 길러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개인의 역량과 노력으로 그 과정이 채워질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학교 교육이 한 예술가를 길러내는 토대는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 졸업 후 혹은 동문 예술단체에서 벗어난 이후 홀로서기를 시작한 개인 예술가들을 상상해보신다면 조금은 이해되실 거에요. 늘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받고 같은 선생님, 그리고 선후배와 동기들 사이에서 춤추던 제가 혼자서 뭘 좀 해보겠다고 나와보니 그간의 환경과 현실은 참 달랐어요. 무용수 섭외부터 공연기획과 공연제작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하고 그것들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데 정작 그걸 감당할 준비는 전혀 안 되어 있었어요. 심지어 전문가들과 만나서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몰라 오해도 생기고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그래서 테크닉 수업을 넘어 춤 전반을 둘러싼 많은 것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학생들이 대비하도록 무용 교육이 그 몫을 맡아줘야 해요.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는 입시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테크닉 수업에 집중하고 있지요. 저는 이것이 무용계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봅니다. 당장은 직업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더라도 건강한 예술가를 키워낼 수 있는, 스스로 바르게 두 발을 땅을 딛고 설 당당한 독립된 존재로서의 예술가를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우리 모두 자각해야 훌륭한 예술가도 배출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예림: 지금 무용계는 지각 변동을 앞둔 전조 징후들이 발생되는 것 같아요. 역사적, 사회적 배경으로 보자면, 1960년대 이전에 개인 무용 연구소를 중심으로 무용이 발전했고 1963년에 이화여대 무용과를 시작으로 전국에 52개까지 무용과가 신설되면서 대학 중심으로 발전하는 시대를 맞았죠. 전국에서 사실상 일관된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했는데, 이제 그에 따른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물론 인구가 줄어서 폐과하거나 평가 점수가 낮아서 무용과가 축소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학 무용교육의 한계가 드러나는 중이라 봅니다. 한예종은 연구소/아카데미성격과 대학시스템 두 가지의 장점이 있는 특별한 경우라고 봐요. 그 밖에 특화되지 않은 대학은 도태 단계에 와 있습니다. 개중에는 생존을 위해 실용무용과로 전환하거나 다원적 결합을 한다든지 여러 형태로 편입되고 있습니다. 사실 초창기에는 체육대학 안에 무용과가 있었으니 시작부터 커리큘럼에 문제가 있었죠. ‘좋은 무용수는 나오는데 왜 좋은 안무가가 안 나오는가?’를 생각을 해보면 대다수의 한국 학생들이 창작 욕구보다 몸을 움직이는 기능이 즐거워서 무용을 시작하고, 교육도 기능적인 면을 중심으로 해왔다는 점에 가장 큰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 대학 무용과의 위기는 (과거 연구소 중심에서 대학중심으로 옮겨가듯) 그 다음 시대로 가는 지각 변동의 서막이고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홍혜전: 저는 일반인 대상 수업을 주로 하는데, 그 수업을 통해 춤이 인간의 삶에 원동력과 의미를 준다는 걸 배우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예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왜 대학진학만을 목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쳤을까? 왜 학생들에게 춤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후회됩니다. 무조건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교육이 결국 학생을 위함이 아닌 그들을 가르치는 나를 위한 교육을 한 것이 아니었던가라고 자책도 해요. 그래서 뼈저리게 후회하면서 다시 설계를 하지요. 춤이 좋아 시작한 아이들인데 춤을 즐기지 못하고, 그들에게 대학 진학 교육만 제공하다가 대학에 보낸 것 같아 후회가 되는 거죠. 입시 제도의 개선 외에는 청소년들이 자유로워질 방안을 생각하기가 현실적으로도 쉽진 않군요.
김이경: 입시가 바뀔 수 없다면 적어도 스스로 대학에서 자기한테 맞는 걸 찾을 수 있어야 해요.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파킨슨환자나 치매환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통해 강사를 양성하고 있어요. 춤추는 것 외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와 여러 기능이 있지만 이런 것을 대학에서 접할 수가 없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무용과에 인턴십 제도가 없는 것에 아쉬웠어요.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부족했죠. 한편으론 옛날만큼 학생들이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결국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지 고민하다 졸업생의 60% 이상은 필라테스를 하죠. 전 결국 현실이 팍팍하다 해도 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김혜라: 지금 중요한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 탓만 할 수 없어요. ‘너희 현실은 이렇지만 춤에는 다양한 길이 있어’라는 걸 선생님들이 알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부모보다 선생님들 말에 상당히 순응적이에요. 홍혜전님이 엘리트 입시 교육의 답습을 후회하시듯 청소년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열린 마음으로 지도하는 것이 차선책으로 떠오릅니다.
김예림: 고등학교 교육이 바뀌려면 대학이 바뀌어야 해요. 예를 들면 콩쿠르 작품들이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참가자가 바뀌려면 상을 주는 심사기준이 바뀌어야 합니다. 중국화된 한국무용을 비난할 게 아니라 상을 주지 않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인과관계는 최근 변화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한때 콩쿠르에서 서커스 묘기 같은 작품들이 상을 받았었는데, 국제콩쿠르가 생기고, 해외 심사위원들이 참여하면서 작품성을 따지니 참가작들이 바뀌어가고 있잖아요.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커리큘럼이 다양해지고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면 입시 제도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칠 거예요. 위에서부터 바뀌는 게 맞아요. 예고에서 ‘춤은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이야’라고 설명해도 결국 스포츠처럼 입시를 보기 때문에 아이들은 정서적인 면을 닫고 몸 기능에만 집중하게 되죠. 대학의 생존을 위해서도 특화된 교육과정으로 다양한 졸업생을 배출해야 합니다. 물론 현재 그런 노력을 하는 대학들도 있으니, 100% 암담하다고 볼 수는 없어요. 많은 학교가 취업 지도 차원에서라도 여러 직업군의 외부 특강을 여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이경: 지금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모색하는 단계이기는 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근래 와선 코로나 때문에 춤계 현장이 많이 바뀌고 있잖아요.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는 4학년 학생과 전문무용수가 컨설팅을 받을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자기가 잘하는 쪽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요즘에는 각 학교에서도 졸업 후 취업할 수 있게 노력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 그 효과가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단계는 아닌 거죠. 앞으로 더 확산되어야 합니다.
홍혜전: 맞습니다. 대학보단 전문무용수지원센터나 각 지역 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사후교육이 현장성 기반의 학생들에게 웬만큼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는 국회 세미나 ‘예술대학 살리기’ 연속 토론회가 네 차례 진행되었어요. 예술대학의 위기와 실패는 오래 전부터 학생 당사자 및 예술 현장에서 제기되어 왔지만, 기존의 고등교육 및 대학 패러다임 내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술대학의 위기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였어요. 인구 감소, 부실 교육, 경영평가, 지역 소멸화에 따른 예술대학의 위기 타개책으로 구조조정 대두되었고, 예술대학의 부실한 교육환경과 질적으로 낮은 경쟁력, 현장과 유리된 교육과정 등이 짚어졌었어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대학의 커리큘럼이 제자리라는 거죠. 장르중심적 수업과 커리큘럼의 통섭력 부재, 현장 연계성 수업의 부재 등도 짚어졌어요. 예술대학생 네트워크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대다수의 예술대 학생들이 졸업 후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길 희망하며, 정규화된 과정 내에서 진로 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나, 학교는 엘리트주의적인 예술현장만 강조하며 학생들의 진로를 고려하지 않는 커리큘럼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거죠. 이와 관련해서 우선 문체부가 예술대학 발전방향 모색을 위한 관계자 의견 수렴 회의를 진행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변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 대학 교육혁신원에서는 무용학과가 변화하려면 커리큘럼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더군요. 그 의견 수렴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고무적이었습니다.
김현진: 어릴 때부터 춤에 입문해 무용계에서 배우고 성장했던 방식 그대로를 똑같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다 보니, 문득 답답함을 느끼게 돼 혼자 워크숍도 찾아 듣게 되고 배낭 메고 외국에도 나가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면 비아시아권, 특히 유럽지역의 아티스트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요, 거기서 만났던 친구들에게 받은 첫인상은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만났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뚜렷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무엇이 저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져서 그곳에서 만났던 친구들에게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중 프랑스에서 온 한 아티스트는 자신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노동법, 철학을 배웠고, 글쓰기를 훈련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권리를 잘 이해하면서 그 사회에서 이탈하지 않고 한 예술가이자 구성원으로 균형을 잡고 살고 있는 듯 보였어요. 이탈리아 친구도 마찬가지였어요. 읽기, 토론 그리고 글쓰기가 기반인 철학, 인문교육을 받았다고 했어요. 그 친구는 유독 자신의 작업을 통찰력 있게 접근하고 발표도 논리적으로 잘했거든요. 저는 30대 후반 유학을 가서야 들었을 법한 철학자들의 이름이나 담론들인데, 그들은 이미 그것을 대학교육 이전에 다 매스터한 상태였으니, 저와는 시작점부터 달랐던 셈이죠.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에서 온 친구가 말하기를, 학교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교육을 남녀 구분없이 가르친다고 했어요. 전기 기술 및 공구 다루는 법, 우리나라에선 남학생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는 과목을 배워서 생활 전반에 활용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그 친구는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어요. 유럽의 기초교육뿐만 아니라 영국 대학에서의 무용학부 커리큘럼도 인상 깊었습니다. 대학원 과정을 하면서 잠시 무용 전공 학부 수업을 청강한 적이 있었는데요, 학부의 커리큘럼이 무용실기와 이론이 균형있게 배치되어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특히 무용수업 전반이 인문학적 사고를 할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어서, 무용을 예술사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학이나 정치학적 시각으로도 접근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한국의 3개 전공(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의 실기교육에 집중되었던 학부 수업과는 확연히 다른 지점이었습니다.
홍혜전: 지금 얘기하는 내용은 ‘예술대학 살리기’에서도 학생들이 원하는 커리큘럼이었어요. 현재 예술대학은 기능만을 중심으로 하는 워크숍 1, 2, 3, 이런 식의 커리큘럼을 고수하고 있다는 거죠. 현대 사회에서 예술의 활용 범위가 넓어진만큼 다양한 관점에서의 인문학적 교육에서부터 이를 적용한 현장경험 수업에 이르기까지의 커리큘럼을 원하고 있어요.
청소년들이여! 대학을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으로 생각하길
김현진: 저는 대학 입학 후 살이 10kg 가까이 불었어요. 인생의 중요한 목표를 이뤘다 여겼기 때문에 그 다음의 계획은 딱히 없었어요. 그간 제게 당근과 채찍을 주시던 집안 식구들과 선생님들이 대학 합격 이후 제게 손을 뗀 순간 저도 해방감을 느끼고 학교 앞 맛난 것들로 보상하며 대학 시절을 무의미하게 보냈어요. 그때 인생이 재미없어지더라고요. 입시 때는 잠자는 시간 빼고 춤추며 움직였는데, 물리적으로 연습하는 시간이 줄어들기도 했고, 어떤 지침과 목표도 없다 보니 방황하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김예림: 고교 때까지 대입을 목표로 하고, 그 이후 삶을 설계해 본 적이 없는 것이 문제이고, 그건 학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예요. 고3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를 하는 이유는 대학 합격을 마지막 결실로 보기 때문입니다. 대학 측 얘기를 들어보면 예술고 출신이 중도 포기가 많다고 해요. 부상도 많고 심적으로 지쳐있는 거죠. 대학이라는 목표만 보고 에너지를 번-아웃했기 때문에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계획을 짜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겁니다. 대학 진학 이후 삶의 설계가 필요해요.
그리고 대학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최근에 한 포럼에서 대학졸업을 앞둔 학생이 “졸업하고 무용가로 활동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다”라고 물으니 전문가 답변이 “꼭 무용수나 안무가가 아니어도 무용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올바른 조언일까요? 지금 무용 실력이 우수하지 않다고 해서 의상, 음악을 공부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잠재력을 어른의 눈으로 재단해서는 안 돼요.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도록 안내하고 정보를 주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어느 분야든 경쟁이 있고 성공은 어려운 것 아니겠어요? 저는 수 없이 안무작을 관람했는데 극장 대관신청서도 작성할 줄 모르는 무용가도 봤어요. 큰 단체 소속이거나 축제 같은 무대에만 서 왔기 때문에 실제로 무대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극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그렇게 활동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아니면 독립무용가로서 하나씩 경험하면서 시스템을 파악해야 하는데, 기본이 덜 되어 있으면 쉬운 길도 어렵게 가게 돼요. 대학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 같지만, 배워야 할 것들은 많고 졸업 이후 교육단계가 없기에 길잡이 안내라도 해주기를 바랍니다.
- 〈춤웹진〉 다음 호에 좌담의 후반부(제각각의 개성을 지지하도록 안목을 넓히세요)가 이어집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