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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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19년 12월 5일(목) 오후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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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민족미학연구소 사무실(부산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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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회
- 채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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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김경미 · 김옥련 · 김평수 · 송성아 · 정신혜
채희완(사회,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오늘 이 자리엔 먼저 오신 순서대로 정신혜선생, 송성아선생, 김경미선생, 김평수선생이 둘러 앉았습니다. 다들 평소 잘 아는 사이이니 따로 인사 소개는 하지 않고, 바로 들어가서 오늘 사회는 제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모이신 분들은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중에서도 현역들입니다. 춤꾼, 안무가, 춤기획자, 춤행정가, 춤비평가로 여러 방면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부풀고 기대했던 부산 춤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특히 40대 초중반에서 50대까지 선봉에서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오늘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춤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라고 했는데 그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도 한 번 음미하시면서 평소보다 훨씬 더 편하게 올해 자기 자신이나 또는 자신이 소속된 단체의 춤관련 근 현황을 말씀하시고, 보람차고 의미 있었던 일과 미흡했던 점을 비춰보면서 춤 한 해를 돌이켜 보고 앞을 내다보는 겁니다. 부산 춤의 문제점이라든가,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는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고, 일단 올 한해 활동한 내역을 중심으로 말문을 열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파릇파릇하게 일을 해오셨습니다만, 아마도 그래도 누구보다 싱그럽다고 할 젊은 분부터 시작해볼까요?.
김평수(부산민예총 청년분과위원장): 부산에서 활동하는 춤꾼 김평수입니다. 2019년에는 굉장히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한해였습니다. 먼저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행사와 관련해서 신작 〈필 때까지〉를 안무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사의 메인 공연을 김경미선생님과 공동안무를 했고, 김옥련선생님 무용단과 협업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거리예술제와 〈춤추는 남자들〉이란 전통춤판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술교육과 관련하여, 〈영화의 전당〉 기관 협력사업으로 영‧유아 교육사업을 했고, 이외에도 중학생들, 특수아동들, 전공자들의 춤교육을 했습니다.
채희완: 참 많은 활동을 벌인, 누구보다도 가장 앞서서 활동했다고 평가받는 김평수 선생의 활동내용인데요, 그 중에서도 더욱 세차게 몰고 갔으면 했던 작업이라면 무엇일까요?
김평수: 이번에 해외 3개국 투어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개인적으로 다녀온 케이스였고 외연을 확대시키고 싶었던 일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제 회의가 있었는데, 내년에는 저희 전통춤판 선배님들과 문화예술 교류차원에서 오사카, 교토, 도쿄 등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체결을 하고 왔습니다. 이외에도 현재 저는 부산민예총 청년예술위원회 대표로 있습니다. 이 단체는 2018년 3월에 시작되어서 현재 70여명의 부산 청년예술가들이 모여 있습니다. 음악, 연극, 미술, 춤, 그리고 조명과 기획 같은 스텝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외연의 확장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내년부터는 내적 성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채희완: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를 삼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토요예술집회인데요. 부산민예총 춤 분과위원회와 청년분과위의 줄기찬 예술의지와 돌파력은 대단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고, 부산 춤역사에 한 에포크를 찍어놓고 있는 바이지요. 부산 춤계의 기성, 중진, 신진 가릴 것 없이 거의 한번 이상 다녀가지 않은 경우가 없을 정도이고 거기에 풍물, 전통예술, 음악연주, 시낭송, 촌극, 그림퍼포먼스 등 인접 예술장르도 거침없이 동행했었지요.
김평수: 올해까지는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부산 초량역 소녀상에서 〈한반도 평화기원 예술행동〉을 진행하였습니다. 매회 5팀에서 7팀 정도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예술적 언어를 통해 해원과 상생을 위한 예술행동을 선보여 주었습니다. 올 한해 이를 갈무리 하는 예술제가 이달 28일 하오 3시 초량 정발장군 동상 앞에서 ‘상흔의 거리, 상생의 거리’라는 주제로 진행이 됩니다. 함께 참여 해주시는 예술가로는 (사)부산민예총 풍물굿 위원회, 민들레의 김용우 선생님, 시낭송에 이청산 한국 민예총 이사장님, 그림퍼포먼스 곽영화 작가님, 한국 춤꾼 이연정씨, 아이씨 밴드, 한국춤꾼 하연화 선생님, 현대춤꾼 방영미 선생님, 한국 춤꾼 유은주 선생님 등이 참가하여 마지막 예술행동을 매듭지어 주십니다.
채희완: 개인 춤 창작 작업과도 관련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보셔요.
김평수: 2019년에는 다양한 춤판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특히, 부마 40주년기념행사와 관련하여 〈전국 마당극 축전〉, 〈부마항쟁 상황재현 시민 한마당〉에 초청이 되어 〈필 때까지〉라는 작품을 안무, 출연하였습니다. 작품 〈필 때까지〉는 부마민주 항쟁을 모티브로 한 거리예술 형태의 작품으로 과거 유신정권 시절 민중에 대한 압제와 탄압을 행위예술적 형태로 이미지화한 ‘기억의 파편’과 민주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염원하던 그 시대 청년들의 투쟁적인 삶을 담아낸 ‘하얀 저항’,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결의의 메시지를 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 총 3개의 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거 유신정권 속에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끊임없이 항거하였던 그 시절 청년들의 이미지를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움직임들에 우리나라의 풍물을 가미하여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번 〈필 때까지〉를 통해 춤꾼들과 긴밀하게 협업하는 방법과, 그리고 청년 예술가로서 사회에 어떠한 역할을 해야 되는지, 그 방향성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 또 예술이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 독백이나 자위적인 춤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춤을 추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새 작품 〈필 때까지〉는 한 시간짜리, 프로시니엄 극장 버전으로 재구성, 발전시켜서 극장에서 실현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2020년 내년에는 다시 저의 솔로 개인 춤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오광대놀이를 모티브로 해서, 광대 정신을 몇 개의 에피소드가 병렬적으로 엮어지는 옴니버스 스타일로 펼쳐내 보려고 합니다. 때문에 오광대에 대해 리서치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김평수 〈필 때까지〉 |
채희완: 오광대라고 하면, 지금 경남 지역의 탈춤의 한 유형으로 되어 있는 것을 일컫는가 봅니다. 오광대에서 광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뽑아서 나의 춤판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광대정신이라면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요?
김평수: 네, 각 과장 마다 일정한 서사가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비틀어서 원용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문둥춤〉을 현대 청년예술가의 관점에서 사회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합니다.
채희완: 재미있는 발상이군요. 김경미 선생은 부산 민예총 춤분과 일을 맡으면서 김평수 선생과 많은 부분 함께 작업을 해온 듯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있었던 활동을 말씀해 주시지요.
김경미(부산민예총 춤분과위원장): 부산민예총 춤분과위원회 위원장 김경미입니다. 제가 직을 맡고 있어 개인적 활동보다는 단체활동을 중심으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우선 춤위원회에서는 문화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금정산생명문화축전과 거리예술제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상반기에 있었던 금정산생명문화축전은 민예총의 간판급 행사로, 춤 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올해는 금정산생명문화축전 〈춤추는 금어, 생(生)·동(動)〉을 성지곡 수원지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생명의 소멸과 탄생, 회귀’에 관한 이미지와 금어설화에 ‘금어(金魚)’의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서정적이거나 역동적인 춤을 통해서 살아 숨 쉬는, 소중한 생명의 생(生)과 생동감 넘치는 동(動)으로 풀어 나가고자 했습니다. 춤위원회의 춤꾼들이 각자의 춤과 어울리는 악사와 협업하면서 성지곡의 각 거점에서 생명이란 주제로 솔로나 군무를 추는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김경미 〈춤추는 금어, 생(生)·동(動)〉 |
하반기에는 거리예술제 〈물결 따라 흐르는 인연〉이 공모사업에 선정되어서, 부산시민의 젖줄기인 회동수원지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수영강변 (APEC 나루공원)에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물줄기의 흐름에 따라 회동수원지에선 생명의 태동, 수영강변에선 흩어짐과 만남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성장과정을 신명난장굿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부산소녀상 앞에서 ‘한반도 평화예술행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좀전에 김평수 선생님이 얘기하신 바대로 2017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3시에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중요하고 의미있는 행사입니다.
이외 부·마항쟁 4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민주공원에서 했었던 ‘상황재현극’을 춤위원회, 국악위원회, 청년위원회가 협업하여 광복동 거리에서 공연했습니다. 또한 세월호 5주기 행사, 각종 시국집회, 민족미학연구소 주최의 〈일본군위안부 해원상생한마당〉에서도 연출파트를 맡았습니다.
제 개인적 활동으로는 동래민속관 정기공연과 영남춤 100인전, 부산무대예술제, 동래별전 등에 전통춤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김경미 〈소고춤〉 |
채희완: 개인발표회나, 기획 행사에 개인단위로 참가할 때, 기존에 추었던 전통춤 말고, 전통에 바탕을 두더라도 조금은 새로운 방향에서 창작 공연한 것이라면 어떤 내용의 것이지요?
김경미: 6월달에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희생당한 원혼들을 해원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괭이 바다 진혼제〉에서 〈초혼무〉를 추었고, 11월에 제18차 재일동포 유적지 답사 및 교류 방문사업에서는 〈푸너리〉, 그리고 여러 추모공연에서 〈진혼무〉 〈살풀이〉 〈넋... 푸리〉 등 억울하게 희생당한 원혼들의 해원과 상생을 기원하는 춤을 추다보니 대다수 전통에 기초하여 창작한 작품으로 지전이나 항아리 등 오브제를 활용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시국에 관련한 〈시국통감〉과 같은 작품은 말뚝이춤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든 작품으로 춤으로써 부조리한 사회를 알려내고 비판하고 고발하는 등 사회적 발언을 하려했던 작품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소녀상 앞에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하오 3시에 열리는 “한반도 평화예술행동”, 세월호 5주기, 부·마항쟁 40주년 문화제 등에서의 춤들은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춤의 현실발언, 예술의 사회적 역할 등을 강조한 춤입니다.
채희완: 김평수 선생이나 김경미 선생은 민간단위의 민예총 활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척관계는 전혀 아니지만, 정신혜 선생은 또 다른 공공기관과 학교에 계시니까 거기에서의 춤 활동, 그리고 또 그런 자리에서 떠나서 개인 춤꾼으로서 활동한 것들을 두루두루 말씀해 주시지요.
정신혜(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신라대 교수로 현재 국립부산국악원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정신혜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고 춤추는 부산춤꾼이라는 점이 저의 자랑이고 긍지입니다. 부산에서 학교를 마치고 독립춤꾼으로 활동을 하면서 1997년 10월 첫 개인공연을 했고, 정신혜무용단을 만들었습니다. 2017년 봄에 정신혜무용단 20주년 기념공연 〈획:기적〉을 KB아트홀에서 5일간 무대에 올렸지요. 저를 포함한 무용단 21명의 릴레이 공연으로 진행했습니다. 안무가로서 저의 활동을 뒤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라대학교에 재직한 것은 어느새 13년이 되었고 지난해 2018년 7월에 국립부산국악원 예술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현재 대학은 휴직상태입니다.
올 한해 저의 활동을 소개하기 전에 이런 말씀을 드린 까닭은 올해의 활동이 저의 지난 춤의 시간과 깊은 관련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상반기에는 조선통신사를 주제로 한 신작 〈춤.조선통신사 - 유마도를 그리다〉를 발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즈음 이후 한일관계가 극히 나빠져 안타깝습니다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러한 예술작품을 통해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가져봅니다. 여름에는 3회를 맞이한 〈영남춤 축제, 영남춤 100인전〉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동래학춤과 연지동 연지못을 모티브로 한 한류 상설공연 〈천생연분 시즌 2 - 붉은 머리 학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이것은 외국인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두 달간 매일 공연하였습니다. 현재는 〈영남춤 진경화(眞景畵)〉(12월 12일-13일)란 작품을 막바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춤은 영남 전통춤을 현대인들의 시각적, 청각적 미감에 맞도록 연출, 안무한 작품입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여러 공연을 가졌는데, 올 한해 저의 가장 큰 아쉬움은 제가 직접 무대에서 춤을 추지 못한 것입니다. 늘 춤추지만, 예술감독으로서 누군가를 위한 무대를 만드는 작업만 해야 했던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또 다른 아쉬움은 제가 2017년에 부산브랜드컨텐츠에 선정되어 만든 창작 작품 〈턴 투워드 부산〉을 영화의 전당에서 2년간 연속 공연했었습니다만 올해는 부득이 하지 못하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 문제였습니다만 저 스스로 감당하기에 시간적으로 또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참 많이 아쉽습니다.
채희완: 순서상으로 보면, 김옥련 선생의 춤활동상을 정리해야 할 차례인데 오늘 조금 늦는다고 합니다. 송성아 선생은 지금은 춤 창작 현역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있지만, 2019년 부산의 춤 정황을 목격하고 많은 생각을 하셨을 텐데 지금 좌담에 참여하신 분들의 활동을 짚어보면서, 또 여기에 안 계신 분들의 활동도 목격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송성아(춤비평가): 춤 이론과 비평을 하는 송성아입니다. 제 주된 공부가 전통춤 구조론인 까닭에 전통춤에 주안점을 두고 공연을 보았고, 특히 국립부산국악원의 정기공연과 매년 있는 영남춤 축전을 빠짐없이 꼼꼼히 살폈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몇 가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특징적인 것으로 전통춤을 원형 그대로 올리기보다 창작 내지는 재구성한 작품이 다수를 차지했고, 이들 춤의 대다수가 기방계열의 춤에 토대를 두었습니다. 반면, 기생춤 편중 속에서 지역 색이 짙은 영남의 향토춤이나 민속춤 계열에 바탕을 둔 창작은 수적으로도 매우 적었을 뿐만 아니라,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도 열세를 보였습니다. 특히, 〈고성오광대〉나 〈통영오광대〉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인 〈말뚝이춤〉이나 〈문둥북춤〉이 이수자들에 의해 공연되기도 했지만, 영남의 지역적 특수성을 보여 주는 것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제3회 영남춤 축제의 기획공연으로 마련된 〈독립춤꾼 창작춤전〉은 신진작가들이 참여한 마당으로, 김현태의 〈민란〉, 박성아의 〈한 쌍의 나비, 두 마리의 용〉, 김라정의 〈영겁놀이〉, 박연정의 〈甲-갓〉 등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4편의 작품은 전통춤에 기초하여 창작한 것으로, 동작이나 무대 연출에서 새로움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핵심적 발언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주제의 모호성은 대학 졸업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채희완: 영남춤, 전통춤, 전통춤의 새로운 변모되는 양상으로서 창작춤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오늘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이른바 모던 댄스적 양식을 통해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예컨대 현대춤이나 발레나 재즈나 혹은 오늘날 대중춤의 하나로 뚜렷하게 자리 잡은 힙합과 같은 것에 토대를 둔 자기 표현도 있었다고 봅니다. 좁게 보았던 시야를 좀더 넓혀서 두루 이야기를 한다면, 물론 올해 영남춤, 전통춤, 전통춤의 변통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한국춤 ’이외의 춤을 포함하여 부산 지역 춤의 양상을 두루 살펴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 후에 부산춤들의 동향이랄까, 주류를 이루는 내용 내지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를 되짚어보는 게 순서이겠지요. 특히, 김평수 선생의 경우, 청년분과위원회 활동 속에서 개인적 발언이기보다는 사회적 발언에 가까운 것을 의도적으로, 매달 이벤트식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주창하고 싶은 바, 꼭 작품으로 는 덜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기획의 의도라든지, 마침내 발언하고 싶어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이런 얘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전통춤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고자 할 때의 문제입니다. 어떤 전통춤도 다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창작을 할 때에는 그 주제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이 점에서 어떤 메세지를 강렬하게 발언하고 싶어 하는지, 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앞서 정신혜 선생이 〈동래학춤〉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해서 일반인들이 공감하는 근‧현대 미감으로서 같이 맞아 떨어지는 작품을 의도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동래학춤〉이란 모티브를 새롭게 하는 또 다른 모티브는 무엇인가? 매 춤마다 주제나 주제적 소재(subject-matter)가 명확하게 똑똑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 번 짚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신혜: 제가 국립부산국악원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우리 무용단이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에 고민이 깊었습니다. 우선은 영남의 춤꾼들을 한데 모아 그들의 힘을 응집시켜 실추되고 있는 지역 춤계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영남지역의 춤 유산에 근거한 무대화 작업, 지역의 역사와 정서에 근거한 창작 작품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민속춤인 〈동래학춤〉을 모티브로 한 〈붉은 머리 학 이야기〉는 외국인이나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작품입니다. 한국춤과 한국음악에 낯선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국립부산국악원이 위치한 ‘연지동 연지못’이라는 지역적 소재를 기초하여 작가가 드라마를 쓴 것입니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소재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끌고 나가면서 왜 부산사람들이 〈동래학춤〉을 좋아하고 사랑할까라는 근원적 물음에서 출발해 보았어요. 그래서 인간과 학의 사랑과 이별을 판타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대중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영남춤 100인전〉의 경우, 100인이 춤을 펼쳐내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결과가 있었습니다. 기획 단계에서 참여하실 분들을 모아 설명회를 갖는 자리에서 많은 분들이 꼭 영남 지역춤을 추어야 하는가를 물어 왔습니다. 그에 대해 춤 레퍼토리를 영남춤으로 제한하지 않고 영남지역에 춤 기반을 두고 활동하시는 분들을 모시는 축제라고 입장을 정리했었죠. 그런데 워낙 많은 분들이 참가하다 보니 춤 종목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정리된 내용을 보니 전국적으로 다양한 춤들이 무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지역춤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춤 분야에서 활발한 춤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긍정적 인식 이면에 지역춤의 위기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남춤 100인전〉이 남긴 숙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채희완: 이 이야기와 견주어 볼 수 있는 것이 청년예술가로서 사회적 현실문제를 춤과 연결시키는 노력이라고 할 것입니다.
김평수: 제가 요즘 무용학과 출신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젊은 ‘청년들이 다해 먹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청년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잘 되어 있는데,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영남춤 100인전〉과 얼마 전 있었던 부산시립무용단 안무자 선정을 위한 공연을 청년 기획가로서, 또 연출가로서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서 드는 생각은, 〈영남춤 100인전〉은 지역 춤꾼들에게 춤출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반면, 시립무용단의 경우, 지역에 대한 고려 없이 타 지역에서 활동한 안무자를 선정해서 공연의 기회를 부여했습니다. 안무자 선정에서 제외될 만큼 부산에서 활동하는 안무자가 없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춤으로써 올해는 제가 4‧3제주 항쟁부터 시작했습니다. 이어 세월호와 부마항쟁이 있었고, 매달 하는 소녀상 예술행동이 있었고, 故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 추모공연 등이 있었습니다. 저는 예술 저항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데요, 제가 안무한 〈반성문〉이란 작품을 포함한 대다수가 저항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사회의 문제들과 아픔을 현장에 가서 직접 체험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전달하는 것이 올해 저의 목표였습니다. 올해는 이것을 실행한 한 해로 제게는 의미 있는 한 해였습니다. 춤은 삶의 현장에서 아픔을 어루만지고, 해원하고, 상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까 독립청년예술가의 작품 메시지 부재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경험과 노력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리고 대중의 이해를 위해 작품을 쉽게 혹은 친절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품성과 친절함 사이에서 한 쪽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다양한 고민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채희완: 김옥련 선생이 도착하였군요. 여기 오신 분들이 각기 올해 자신의 춤 활동내역을 밝혀보고 있는 중입니다.
김옥련(김옥련발레단 단장): 저는 작년부터 을숙도문화회관 상주단체로 선정되어 활동중인 김옥련입니다. 공연장 상주단체로 선정되면, 필수 프로그램과 선택 프로그램을 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초연작품을 하나 해야 하고, 레파토리 공연을 2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내 또는 국외 교류 공연을 해야 합니다. 또 공공기관 제휴 공연이나 단원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소화해야 합니다. 적어도 6개 사업은 해야 하기 때문에 한 해가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현재 12월 29-30일 마지막 공연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단체는 5년 전부터 서울에 있는 STP발레협동조합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 서울시티발레단, 이광국발레단, 와이즈발레단, 서발레단, 김옥련발레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울지역 외의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저희 단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STP는 민간인 발레단체 모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서울 지역 5개 단체에서 시작되었고, 2년 전부터 저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합동 공연을 고민하던 중 수도권을 벗어나 타 지역에서 공연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때마침 수원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수원국제발레축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며 함께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 관객이 2만명 가량 오기 때문에 대단히 보람찬 활동입니다.
채희완: 그 많은 인원이 어떻게 다 수용이 되는가요?
김옥련: 저희가 공연과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여기에 청소년 발레단, 동호회를 중심으로 한 아마추어 발레단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참가자가 많습니다. 이들을 각기 다른 공간에서 공연을 하고, 또 축전 자체를 시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깜짝 공연을 거리에서 3일간 합니다. 예를 들어, 행단보도에 초록불이 왔을 때, 댄서들이 짝 나가서 30초 가량의 짧은 공연을 하고, 빨간불이 들어오면 사라집니다.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하는데, 매일 다른 갈라 공연으로 구성됩니다.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클래식에서 컨템퍼러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매우 유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레 제1음악당이 우천 시에도 공연을 할 수 있는 야외극장입니다. 700석 가량의 규모이며, 객석 위쪽으로 낮은 비탈이 있어 더 많은 관객이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가족 단위로 야유회를 오듯 음식을 챙겨 와서 먹으며 공연을 보는 관객이 많습니다.
채희완: 수원에서 하는 공연이지요? 부산에서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요?(웃음)
김옥련: 예술인들 간에 마음이 합쳐져야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내년쯤 STP발레협동조합 공연을 부산에서 하고자 합니다.
채희완: 밝은 전망은 듣기에 좋습니다. 아까 상주단체에 들어가서, 발표를 6가지 이상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올해 발표한 작품의 기획 의도나 내용, 또는 형식의 주안점은 무엇이었는지요?
김옥련: 올해 사업의 타이틀은 ‘FIVE H PROJECT’였습니다. 이때까지 발레단 공연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를 생각해 보았을 때, 휴머니티, 하모니, 해피니스, 지역적 유산인 헤리티지, 유머 등이었습니다. 이 각각을 공연했고, 이것을 묶어 ‘FIVE H PROJECT’라고 한 것입니다.
저희들이 첫 번째로 한 4월 공연은 국제협업교류사업으로 진행된 것으로, 일본의 ‘세아미’극단과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올해 이 단체는 부산시립극단과 〈물의 정거장〉이란 작품을 함께 만들기도 했는데, 기획단계에서 저희가 연락을 해서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을숙도 문화회관은 부산 외곽에 위치해서 시민들의 접근성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극장 앞마당에는 비엔날레에 참여한 여러 우수한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잘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협업을 했습니다. 이것이 하모니에 해당합니다.
5월에는 저희들이 항상 하는 가족단위 관객을 위한 발레 공연을 했습니다. 18년째 지속해 오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김옥련 발레단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입니다. 〈호두까기 인형〉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입니다. 여기에 버금가는 창작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해서 대략 50-70분가량의 길이의 12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중 〈장미의 정원〉이란 작품을 5년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장미의 정원〉을 동화로 개작한 것입니다. 거인의 정원을 정원답게 만든 것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때문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해피니스입니다.
10월에 저희들이 한 것은 〈율무신 찾기〉라는 작품입니다. 옛 이야기에 따르면, 다대포를 지키는 지역 신을 율무신이라고 합니다. 정발 장군이나 송상현 부사와는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데, 제가 작년에 을숙도문화회관 상주단체로 들어가면서 이 인물을 중심으로 작품을 해보고 싶었고, 그 결과물로 내 놓은 작품이 〈율무신 찾기〉입니다. 헤리티지에 해당하는 이 작업을 할 때, 김평수 선생님이 참여하여 안무를 하기도 했습니다.
채희완: 어린이 발레 창작과 공연환경을 활용한 창작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간결하게 정리해보면 좋겠습니다.
김옥련: 가족, 어린이,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 소외계층, 세대 간의 갈등 등 21세기 소비문화가 만들어낸 사회적 풍토가 개인의 문화적 취향에 반영되어 복합적이고 직관성을 띈 작품을 선택하는 관객들로부터 충분한 만족을 얻어 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기존의 발레에 대한 선입감과 고정관념을 모든 작품에서 반감시키고 융합의 시대에 맞게 새로움을 위한 융합을 시도한 형식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졌기에 관객들의 만족도와 호응도가 높은 편입니다. 예술인이 작품을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관객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장황하게 얘기한 듯하군요.
채희완: 아까 ‘FIVE H’이라고 했는데, 그러한 다섯 가지 주제가 구체적으로 발레로서 어떻게 작품에 반영되었고, 성과와 문제점이 무엇인지 짚어내가며 요약할 순 없을까요? 말하자면, 자신의 이야기가 작품의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성취되었는지, 또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정리해서 말씀해 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요구하는 까닭은, 부산지역 춤의 동향을 이야기할 때에는 여러 관계적 요건들, 환경들을 고려하면서 이야기하여 마땅하겠지만, 결국에는 작품자체이기 때문에 그것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오늘 모이신 분들의 2019년 작품내용은, 어쩌면 올해 부산지역 춤 동향을 구체적으로 담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이신 분들의 창조작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논급해 주시길 강조하는 것입니다.
김옥련: H Project 중부산 갈매기 1탄 〈시인 김민부〉 초연 공연은 〈부산갈매기〉 라는 타이틀로 부산의 역사적 인물, 사건, 소재, 특성을 반영한 공연 콘텐츠이며 향후 시리즈로 지속적으로 제작할 계획입니다. 단명으로 요절한 천재 시인이며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자이고 현재까지도 방송되는 ‘자갈치 아지매’의 작가와 피디였던 부산의 시인 김민부의 이야기이며 Heritage 지역 문화예술 유산의 발굴과 포용으로 동향인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되는 작품입니다. 다음으로 Humor, 즐겁고 흥겨운 지역민 친화형 프로그램의 찾아가는 ‘렉처 퍼포먼스’는 저희들이 학교를 직접 찾아가 해설과 함께 하는 톡톡발레로 청소년들의 예술적 소양과 감성을 발동시키고 춤예술에 대한 흥미와 창조적 감흥을 일으켜 문화회관 인지도를 높이고자 만든 을숙도문화회관 기획 사업입니다. 교육청 공모 신청으로 선정된 초등학교 5개교를 방문하여 시행하였으며 문화공간과 발레 장르의 접근성 향상으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효과적으로 연계시켜 문화적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상주단체 페스티벌 〈BoomBoom붐붐 발레 갈라 퍼포먼스〉는 발레의 붐을 일으키자는 취지로 클래식 발레, 로맨틱 발레, 컨템퍼러리 발레, 마술 마임, 발레컬의 대표적인 작품을 한 무대에 펼쳐놓은 갈라 공연입니다.
상주단체로서 선택프로그램인 사하구, 서구, 강서구 등 서부산 지역민 대상의 퍼블릭 교육프로그램 꿀잼 “춤” 프로젝트 〈꿈돼지! 끼돼지! 몸짱돼지〉는 수요충족과 더불어 공연 홍보와 관람, 복합적 문화체험으로 연계가 되었습니다, 특히 교육프로그램은 접근성이 약한 공연장, 문화 소외 불모 열악 지역이라는 여건을 다소 극복하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FIVE H’와 관련해서 〈율무신 찾기〉는 헤리티지와 함께 휴머니티를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상주단체 간의 교류 사업에서는 유머를 강조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12월 공연이 〈부산갈매기〉입니다. 초연작으로 부산의 유산을 찾자는 의미에서 만든 작품입니다. 상주단체로서 저희가 한 작업 중에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교육 사업으로, 강서 지역의 국공립학교에 가서 42회의 강습회와 49회의 발레공연을 했습니다. 이로써 문화에 대한 저변을 확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융합의 시대에 고전적 틀에 박힌 양식의 옷을 벗어버리고 융합의 모양새로 무대를 꾸미는 예술의 성과도 큰 가능성을 부여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퓨전 음식에 길들여진 지금의 관객을 위해 퓨전의 언어들로 무대의 식탁을 꾸밀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산에서는 낭만발레, 클래식발레 레퍼토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주역 뿐 아니라 코다(군무진) 대부분을 수도권에서 공수해야지만 가능한 현실입니다. 물론 부산의 인적 자원의 부족이라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의 존속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단체도 있습니다.
채희완: 특히 발레인 경우, 음악에서 고전적 의미를 갖듯 춤에서도 고전적 의미를 갖지만, 이를테면 발레 양식이 가지고 있는 지나친 상층 세계 지향성만을 가지고서는 이 21세기 부산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미감이라든지, 미적 취향이라든지, 또는 여러 가지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나름대로의 인생관이나 세계관과 맞추기 위해서 유별난 노력이 ㅍ요구된다싶은 것이지요. 말하자면 조금 더 현실적 제재를 취해보려는 노력은 없었는지?
김옥련: 저희들이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그러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제가 올해 부산의 발레 공연을 보아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춤의 경우, 전통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가 많지만, 발레는 여전히 1800년대에 머물러 있고, 현대의 변화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무딘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빨리 문제를 의식한 것 같고,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고,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융합의 시대에 고전적 틀에 박힌 양식의 옷을 벗어버리고 융합의 모양새로 무대를 꾸미는 예술의 성과도 큰 가능성을 부여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퓨전 음식에 길들여진 지금의 관객을 위해 퓨전의 언어들로 무대의 식탁을 꾸밀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산에서는 낭만발레, 클래식발레 레퍼토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주역 뿐 아니라 코다(군무진) 대부분을 수도권에서 공수(?)해야 가능한 현실입니다. 물론 부산의 인적 자원의 부족이라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의 존속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단체도 있습니다.
채희완: 오히려 부산에서의 발레는 김옥련 선생의 줄기찬 작업이 있기에 유망한 분야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됩니다. 다만 문제를 캐내기 위해서라도 제가 좀 의도적으로, 듣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까지 이야기 할 필요가 있겠나 싶겠지만, 이야기하자면 그렇습니다. 가령 민예총 청년분과 위원회에서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날 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예술행동’이라고 하는 줄기찬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공연조건으로는 열악하기 짝이 없지만, 오히려 열악한 조건이 그 행사의 성격을 분명하게 해 주는 느낌입니다. 그것을 좋은 조건의, 좋은 무대에서 한다면, 오히려 기획적 의도를 제대로 살릴 수 없을 거라고까지 생각됩니다. 그런 면에서는 난항이 행위의 의도를 더욱더 강화한다고 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도 가서 제대로 보지 못해서 총괄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리고 그곳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춤’을 꼭 이런 무대에서 추어야 하는가란 의구심을 들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춤의 다양한 국면들을 예술 공동 행위 속에 같이 참여시킴으로써 통로를 활짝 열어놓고 공동의 마당을 구축하자는 의도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춤추는 사람들의 의식을 스스로 자기 점검해 보고 공유화하는 한 통로가 될 수 있을 터입니다. 이와 같은 좋은 의도들이 숨어있지만, ‘그런 춤’을 이런 자리에까지 끌어들여서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물음을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까 송성아 선생이 국립부산국악원의 〈영남춤 100인전〉에서 기방춤 계열이 우세를 보이며 이것이 문제점이라고 했는데, 이것과도 연결되는 듯합니다. 전통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있지만, 전통춤이나 신무용류에 해당하는 것이 현실적 메시지를 던지는 자리에 들어왔을 때 생기는 여러 부조화를 넘어, 원래 의도를 무화시키는 면이 있지는 않은가,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김평수: 이 자리는 기량이나 예술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의 참여를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행동이라는 자리에 예술가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술가들이 극장을 나와서 거리에서, 문제적 장소에서 춤을 춘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채희완: 그런 이야기하고는 문제점이 좀 다릅니다. 좋은 의도, 좋은 취지는 앞에서 이미 넉넉하게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자체 춤꾼끼리의 의식화 작업, 또 동지적 연관관계 속에서 함께 판을 벌이자는 예술행동은 충분히 좋지만, 조금 더 선명한 발언이라고 한다면, 발언 내용이 예술행동에 걸맞지 않는 것은 깨어가면서 발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춤이 여기에는 맞지 않지만, 나는 춥니다. 왜냐하면 ‘예술행동’과 뜻을 같이하기 때문입니다”는 것은 연대의 뜻으로는 푸근하고 넉넉하나 예술행동의 내용으론 마땅치 않습니다. 적어도 사전에 춤 내용에 대한 사전 조율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것입니다. 주제적 의미에서 관통하도록 이런 춤들은 따로 분리 배치함으로써 의도와 발언을 선명하게 해야 하는데, 마치 이도저도 아닌 혼탕으로 흐릿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방춤을 중심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영남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영남춤의 중심 영역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럴수록 영남춤의 중핵적인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기방춤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 영남춤의 중심이 될 만한데 그러한 춤이 성할수록 본연에 해당하는 영남춤의 맥이랄까, 그것이 흐려진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는 데에 그 춤의 역설적 중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아까 발레의 내용에서 ‘FIVE H’ 이런 주제도 1차적으로 좋지만, 계속 그런 것을 나의 예술 세계에서 중심적인 과제로 삼아야 하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해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갑자기 너무 고압적으로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만, 제 자신의 예술관을 내비친 것 같기도 하고….(웃음)
김옥련: 앞으로 공연을 많이 보러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보시지 않으셔서 제가 무슨 말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웃음) 24년간 민간발레단으로 대상층을 고려한 작품 선정과 홍보, 전통문화를 접목한 창작발레를 탄생시켜 부산지역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하였으며 다문화시대, 글로벌 시대에 맞는 무대 예술의 가치를 재생산하여 완성 시키는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지역 춤판에서 가장 열악한 분야인 발레를 다시 지켜 봐주시고 아껴주시기 바랍니다.
채희완: 이번 좌담 앞머리에서 ‘나의 이번 한 해에 활동은 이렇고, 단체의 활동의 여건은 이러저러 했다’고 말하는 것은 다음 이야기를 위한 것입니다. 이제 다음 이야기에서는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의 춤의 정신이나 지향성이 무엇인지 여기서 한번 점검해 보고, 오늘 이 자리에 있지 않은 부산 지역 춤꾼들의 작업 내용들, 아까 잠시 나왔던 시립무용단과 같은 공공기관의 춤 활동들도 거론되면 2019 부산춤의 전체상을 그릴 수 있겠지요.
* 이 기사는 〈춤웹진〉 3월호에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