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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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19년 7월 8일(월) 오후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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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카페 에이프릴(서울 연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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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김채현ㆍ김혜라ㆍ이단비ㆍ김인아
지난 6월에 있은 제9회 대한민국발레축제를 주제로 〈춤웹진〉은 방담을 진행하여, 그 결과를 게재한다. 대한민국발레축제는 많은 단체들이 참가하는 큰 행사로 우리나라의 발레를 1년마다 한 번씩 결산, 점검 혹은 새로 선보이는 자리로서 중요하기 때문에 개별 비평가의 비평으로 소화하기보다는 집단 진단을 도출해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 판단되었다. 지난해 춤웹진은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를 방담 리뷰를 시도했었고 얼마간 긍정적인 반응이 따랐다. 이번에도 사전에 방담 취지를 공유하고 내정된 사람들이 각자 최대한 공연을 관람하였다.(편집자)
내년 10회를 앞둔 대한민국발레축제
- 이번 팸플릿을 보면 예술의전당의 오페라극장에서 초청공연, CJ토월극장에서 공동주최공연·기획공연·공동기획공연, 자유소극장에서 공모공연, 신세계스퀘어 야외무대에서 야외공연을 선보였다. 대부분 기존의 작품을 재연하는 경우가 많았고 신작은 자유소극장에서의 공모공연에 집중되어 있다. 김용걸댄스씨어터와 프로젝트 클라우드 나인의 작품을 제외한 신진안무가들의 소품, 4개 작품이 신작에 해당된다.
- 발레를 그동안 많이 보지 않다가 오랜만에 마음먹고 본 것 같다. 발레축제의 경과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전 발레축제와의 비교는 조금 힘들다. 올해 발레축제는 신작이 많지 않으나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발레축제를 찾은 관객들이 많았던 점도 흥미로웠다.
허용순 프로젝트 〈Imperfectly Perfect〉 ⓒ김경진/Universal Ballet |
- 이번에 기억되는 작품으로 허용순 프로젝트의 〈Imperfectly Perfect〉를 꼽고 싶다. 간결하게 구성된 시각적 작품구도,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방식, 주제 전달력, 출연진의 기량 등 인상적인 지점이 많았다. 작품의 핵심으로 짚어지는 것은 ‘관계성’에 대한 생각을 공감하기 쉽게 이야기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관계성’이라는 이런 개념을 시각적인 현상으로 드러내 안무로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타인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층위를 두어서 안무가의 생각이 형식적·구조적으로 잘 펼쳐졌다. 작품의 함축적인 틀 안에 우울, 고독 등의 정서가 정제되어 있고 어찌보면 이 전형적인 감정과 정서가 관객들에게 꽤나 잘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컨템퍼러리하면서도 전형성과 보편성이라는 클래식한 면모를 갖추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허용순 안무가는 현대인의 불완전한 자아의 고민지점을 짚어 관객과 현실적인 교감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유회웅 리버티홀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도 재밌게 관람했다. 이런 방식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선 재미가 있으니 좋았다. 발레리노의 무대 밖 삶의 이면, 발레리노로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들을 활자로 말로 춤으로 섞어 공감하기 쉽게 보여주었다. 발레리노라는 특별한 존재이전에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를 솔직히 드러내면서도 유쾌하고 위트 있게 구성된 작품이다. 작품은 소극장 규모에도 적절했다.
광주시립발레단 〈라 실피드〉 하이라이트는 갈라 공연으로 일부만 보여주었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없잖아 있었지만 발레단의 색깔을 작품에 녹여내면서 예년에 비해 높아진 기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예술감독의 역량이 작용하지 않았나 추정해 본다. 그리고 발레축제에 지역발레단이 함께 참여하고 작품을 선보이는 것도 의미 있었다.
광주시립발레단 〈라 실피드〉 하이라이트 ⓒBAKi |
- 발레축제는 내년의 10회를 앞두고 있다. 축제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작품만 올렸던 예년에 비해 취미발레 클래스가 신설되는 등 부대행사가 점차 풍성해지고 있다. 올해 가장 눈여겨보았던 것은 신세계스퀘어 야외무대에 오른 공연이었다. ‘라인댄스’와 ‘발레메이트’는 취미발레를 하는 아마추어 춤꾼들의 무대였다. 이런 대형 행사에서 취미발레를 하는 사람들이 오를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됐다는 점은 우리나라 발레가 단순히 보는 발레에 그치지 않음을 말해준다. 이제 한 차원 더 발전하여 취미로 하는 사람들도 대등하게 이 축제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이 좋게 보였다. 전체적으로 작품도 예전보다 좋아졌다.
유회웅 리버티홀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 ⓒ한필름 |
- 유회웅 리버티홀의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는 지난해 〈댄싱 발레리노〉 공연에 이현준, 유회웅, 윤전일, 김현웅 이렇게 네 명이 출연했는데 이현준의 경우 부상도 있는데다 유니버설발레단과 일정이 겹쳐 이번 무대에는 이영철이 올랐다. 지난해 처음 기획된 이 작품은 발레리나가 아닌 발레리노의 이야기를 조명하여 그것 자체로 신선했다. 올해 공연은 구성이 거의 비슷해서 두 번째 보는 입장에선 신선함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지난해 세 남자의 파 드 트루와(pas de trois)가 좋았다면 올해는 중년이 된 발레리노 김현웅이 후배에게 이어주는 파 드 되(Pas de deux)가 흥미로웠다. 은퇴 나이가 늦춰지고 있지 않나. 나이가 들어가는 무용수들의 몸, 기량, 표현력의 변화하는 것들이 어떠한지 평균나이 39세의 발레리노의 몸짓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Intermezzo〉는 지난해 김성한, 김용걸, 주재만이 안무자로 참여한 와이즈발레단의 기획공연 ‘PLAY’에 오른 세 작품 중 하나다. 주재만 안무의 이 작품은 초연 당시에도 좋았고 올해 조금 손을 보아 다시 무대에 올랐다. 민간발레단으로서 와이즈발레단이 단체의 위상을 올려놓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민간발레단은 재정 문제 때문에 대중적이고 재밌는 공연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거기서 벗어나 외부 안무가를 초청하여 작품성을 위해 기획, 투자했다. 작품 자체가 미니멀한 것도 좋았지만 무용수들의 내적 기량이 끌어올려진 점도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작품은 간주곡이라는 뜻의 인터메조 이미지를 잘 투영하고 있다. 음악에서 간주곡이라는 것은 건너가는 브릿지이고 이런 과정이 없으면 그 다음단계로도 넘어갈 수 없다. 인터메조가 왜 중요한지, 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몸짓과 음악으로 잘 표현하여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허용순 프로젝트의 〈Imperfectly Perfect〉는 시작부터 실수인 척하며 시작한다. 그것 자체가 완전함과 불완전함 사이를 내비쳤다. 인간이 움직이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불완전을 넘어 완전하다는 감동을 준 것 같다. 무대 세트는 다분히 직선적인데 반해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잭슨 폴락 그림처럼 뿌려지는 선형으로, 대조적인 미장센이 눈길을 끌었다. 후반부 탄츠테아터 방식으로 소리가 들어간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무용수들 기량이 좋아서 CJ토월극장이 꽉 차있는 느낌이었고 허용순 안무가의 역량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 허용순 안무가의 이전 작업과 비교하여 작품 구성이나 전개에 있어 이전 작품과 다른 면모를 이번 무대에 보여줬는지 의문이다. 허용순의 안무는 안정되어 있고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측면을 충분히 갖고 있다. 안무가 나름의 언어나 형식이 비슷하고 새롭지 않다면 보는 재미가 덜어진다.
와이즈발레단 〈Intermezzo〉 |
다양해지는 가운데 작품을 뒷받침할 기획 필요해
- 김용걸댄스씨어터의 〈Le Baiser〉는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바탕으로 한다. 음악 자체의 강렬함 때문에 ‘봄의 제전’은 안무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곡이다. 앙쥴랭 프렐조카주의 〈봄의 제전〉이 너무 충격적이고 강했던 터라 그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다른 측면으로 이번 〈Le Baiser〉는 젊은 친구들을 데리고 엑스터시가 느껴지는 안무를 선보였다. 작품 자체가 굉장히 농염하다. 어릴 적 첫 키스의 기억을 작품에 투영했다는데 어린 남학생이 첫 키스를 했을 때 느꼈을 성적 상상의 나래가 무대 위에 펼쳐지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소극장보다 CJ토월극장이 더 나았을 듯하고 조금 더 나이가 있는 무용수들이 출연했다면 더욱 감각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 김용걸댄스씨어터의 〈Le Baiser〉를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했는데 작품 규모에 비해 공간 자체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 그렇다. 21명이나 출연하는 〈Le Baiser〉에 자유소극장은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자유소극장은 무대 양쪽에 세 개씩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데 무용수들의 리프트 동작이 있을 때마다 부딪힐까 염려되기도 했다. 출연진 규모, 무용수들의 동선, 움직임 크기 등을 고려한다면 중극장 이상의 무대에서 마땅히 공연되어야 하는 작품이었다.
김용걸댄스씨어터 〈Le Baiser〉 |
- CJ토월극장에서 했던 작품들이 흥미로웠다. 보스톤발레단 〈Pas/Parts〉 하이라이트는 윌리엄 포사이드가 1999년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이번 축제에는 약 15분으로 축약되어 올려졌다. 한서혜, 채지영, 이소정 등 보스톤발레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무용수가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리드미컬하고 강렬한 음악이 청각을 자극하는 가운데 균형과 대칭이 강조되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의 움직임이 전개되었다. 상·하체, 팔·다리, 골반을 따로 또 같이 움직이게 하는 등 신체 각 부위의 움직임을 해체하여 다시 조합시키는 것으로 기존 발레의 전형성을 전복시키는 동작들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움직임 조합과 함께 굉장히 많은 턴이 있었다. 기하학 디자인의 대칭을 드러내는 한서혜, 채지영의 의상도 흥미로운 요소였다. 총 8명의 무용수가 출연했으나 한꺼번에 무대에 오르는 일 없이 2~3명 내지는 솔로가 등장하는 9개 장면으로 구성되어 빠르게 전환됐는데 적은 인원으로도 무대배치와 동선, 움직임에 따라 큰 무대를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이번 축제에서 가장 다른 모양새로 신선한 감각을 주는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Pas/Parts〉에 대해 의문점도 있다. 윌리엄 포사이드의 이전 작품이 더 나았다고 느꼈다. 전작들은 몸의 분절이나 움직임이 음악과 들어맞으며 정리가 되어있었는데 비해 이번 작품은 빠른 호흡으로 텐션이 강조된 아메리칸 스타일로 무용수들의 기량은 보이지만 작품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윌리엄 포사이드를 처음 본 관객들은 포사이드 특유의 특·장점을 느끼기 어려웠고 보스턴발레단과 우리나라 무용수들이 멋지다는 인상만을 가졌을 것이다.
- 쉽게 만날 수 없는 포사이드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15분 길이로 축소시킨 하이라이트를 선보인 것이 매우 아쉽다. 맥락이 보이지 않으니 작품이 흐려진다. 하이라이트 공연만으로 작품 자체를 즐기기엔 역부족이었다.
- 하이라이트로 구성하지 말아야 할 작품을 하이라이트로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움직임만 보려는 게 아니라 작품에 빠지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게 아닌가.
- 시중 말로 맛보기에 치우쳐 산만하다는 인상부터 강하게 주었다.
- 갑자기 축소시킨 것이 아닌가 싶었다. 원래 120분 공연을 예정했었는데 당일 공연장에서는 인터미션 없이 75분 관람으로 되어있었다. 같은 날 공연한 와이즈발레단은 작품 전체를 올린 것으로 보이고 보스턴발레단이나 광주시립발레단은 급조하여 짧게 공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윌리엄 포사이드 작품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고 다만 무용수의 개성과 기량이 잘 드러나게 구성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보스톤발레단 〈Pas/Parts〉 ⓒAngela Ster |
- 광주시립발레단도 마찬가지로 하이라이트로 편성되다보니 작품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는 어려웠다. 발레단 무용수들의 성장, 지역 발레단의 발전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쳤다.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라 실피드〉 전막을 이번 축제에서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기획공연의 경우, 평소 발레를 많이 보러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발레의 재미를 느끼도록 짧고 다양한 작품으로 구성된 것 같다.
- 여러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릴 때 작품의 성격을 고려해 공연의 색깔을 정돈하는 기획력이 필요하다. 컨템퍼러리 발레인 와이즈발레단의 〈Intermezzo〉와 보스톤발레단의 〈Pas/Parts〉이후 광주시립발레단의 발레블랑 〈라 실피드〉는 공연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예외처럼 보였다. 차라리 컨템퍼러리 발레로 세 개의 작품을 구성했다면 동시대 발레의 다양한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됐을 것이다.
- 상차림에 있어 부조화가 느껴진다. 장르를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세 작품의 조화는 고려될 필요가 있다.
- 오하드 나하린 안무의 유니버설발레단 〈마이너스 7〉은 관객과 함께하는 것에 의미를 둔 공연이었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전편이 아니라 축소되어 올려졌고 축제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대중을 염두에 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안무적 평가보다는 축제답게 대중과 함께 즐겨보자는 취지로 보면 될 듯하다. 좋은 기량을 갖춘 유니버설발레단원들이 몸으로 에너지를 고조시켜 관객에게까지 전달하는 매력 넘치는 시간이 있다. 즉흥에 대처하는 관객들의 참여를 지켜보는 것도 흐뭇한 일이었다.
유니버설발레단 〈마이너스 7〉 ⓒ김경민/Universal Ballet |
국립발레단에 치우친 오페라극장 공연
- 이번 축제의 중심은 대중이었다. 현대무용축제의 경우 주로 무용관계자들이 찾는데 반해 발레축제에서는 전반적으로 대중화된 면모가 확인되었다. 올해 발레축제에는 국립/민간단체, 지역단체, 중견/신진 안무가가 참여했고 국내 안무가들의 창작춤에서 그 역량을 재확인할 수 있었으며 해외안무가들의 맛보기 작품들이 편성되었다. 주로 재연작이었으나 신작도 구성됐다. 그리고 국립발레단의 〈마타하리〉〈지젤〉을 통해 확인된 높은 기량도 눈에 띄었다. 지난 9년간 발레축제는 참여단체의 탄탄한 기량은 물론 관객 확보 등 여러 면에서 노력을 기울여 균형을 잡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축제에서 볼 수 없는 균형감,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면모가 고무적이었다.
- 발레를 전공하는 꿈나무들, 함께 한 학부모들을 비롯해 유독 일반 관객이 많았던 것 같다. 관객의 대중화 이면은 한편으로 실험적인 작품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소극장 공연 창작품은 작품성을 고려했다기보다 대중들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
- 보통 발레라면 〈백조의 호수〉 외 클래식발레만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발레축제가 다양한 발레작품을 보여주는 기회는 되는 것 같다. 일반 관객들이 자기 돈을 지불하고 컨템퍼러리 발레를 선택해 관람하기란 쉽지 않다. 축제를 통해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작품들을 접해볼 수 있다. 〈마타 하리〉나 〈지젤〉 같은 경우는 발레를 보지 않던 사람도 티켓을 살 수 있는 공연이다. 이를 계기로 같은 기간에 열리는 축제 프로그램이 일반 관객에게 호기심을 갖게끔 만들어주는 듯하다. 이것이 발레축제의 또 하나의 의미이지 않을까.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Phaethon film/Korean National Ballet |
국립발레단 〈지젤〉 ⓒBAKi/Korean National Ballet |
-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초청공연 〈마타 하리〉, 〈지젤〉은 모두 국립발레단 작품으로 고전발레 버전이다. 대작 발레를 제작할 수 있는 단체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이런 데에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국립발레단이 두 작품을 올릴 필요가 있었는가? 두 단체가 작품들을 공연했다면 어떠했을까? 국내에서 대작 발레를 할 수 있는 단체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뿐인가?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 유니버설발레단은 공동기획공연으로 두 작품을 선보였다. 국립발레단이 오페라극장에서 두 작품을 올린 것은 불균형스럽다는 인상을 주었다.
- 국립발레단의 〈마타 하리〉는 지난해와 비교해보았을 때 올해 지휘자가 바뀌었고 무용수들이 음악에 대한 흡수력이 좋아졌다.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10번, 5번을 1막, 2막에 넣고 음악 흐름대로 안무를 짠 작품이다. 작년에는 음악과 움직임이 조화가 다소 부족했는데 올해는 잘 맞춰졌고 나중에 알고 보니 올해 지휘자가 바뀌었다고 하더라.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작품에 캐릭터가 너무 많아 역할 관계도가 명확하지 않은 점은 문제다.
- 국립발레단의 경우 공연 라인업 계획이 연초에 모두 세팅되었다. 이번 〈마타 하리〉와 〈지젤〉은 원래 국립발레단 6월 공연 계획에 있는 작품이었고 같은 시기 개최되는 발레축제에 초청공연이라는 타이틀로 프로그램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 때문에 축제를 위해 공연이 기획됐다고 보긴 어렵다. 올해 축제는 3억원의 예산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녹록치 않은 재정 상태에서 국립발레단의 공연은 일종의 협력 개념으로 참여했다는 생각이다.
- 예산상의 애로가 있다고 해서 모든 사항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어느 단체가 계획하고 있는 것이 발레축제와 결합하였을 때 서로 상생하는 경우가 있고, 서로 저해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기존에 계획된 것이라 한다면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갈라 공연과 국립발레단의 두 작품일 텐데 그것이 발레축제에 관계해 어느 정도 상생 작용을 했는지를 판단해야 할 것 같고, 이처럼 부정적 의견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 내년 10회를 맞는 발레축제에서 기획 시 반영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예산만의 문제로 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국립발레단이 공교롭게도 〈마타 하리〉 아닌 다른 작품을 했다면 또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었을지 모른다.
- 11월에 올려질 신작 창작발레 〈호이랑〉이 이번 축제에서 공연됐다면 어땠을까 싶다.
- 지난 5월에 여수와 울산에서 먼저 공연된 신작이므로 6월 축제에서 선보였다면 시기적으로도, 서울 초연의 기회로도 좋았을 것 같다. 서울공연과 6개월여 공백 기간을 가진 것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 안무가의 내한일정이나 지휘·연주단과의 스케줄 같은 일정 문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스페셜 갈라_ Tatyana Ten & Kazbek Akhmedyarov 〈Love Fear Loss〉 ⓒ박상윤 |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스페셜 갈라_ 정형일 Ballet Creative 〈The Seventh Position〉 ⓒ박상윤 |
작품 형식에 대한 고민이 얕은 공모 공연작들
- 다시 공모 공연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 윤전일 Dance Emotion, 프로젝트 클라우드 나인, 김용걸댄스씨어터, 신현지 B Project, 유회웅 리버티홀 등 총 여섯 단체가 참여했다. 프로젝트 클라우드 나인, 김용걸댄스씨어터의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네 작품이 신작이었다. 젠더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네 개 신작의 안무자가 모두 남성이다. 국내 발레 안무가 여성에 편중되어 있지 않은지, 단정한다기보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면 이번 네 사람의 30대 남성 안무자의 신작 공연은 하나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겠다. 신작 4편과 프로젝트 클라우드 나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조금 더 성숙할 필요가 있겠다. 컨템퍼러리 혹은 모던 발레라고 할 때 그것이 요구하는 안무자의 자기의식에 따른 형식의 전개, 창출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고 창작되었다는 판단이다. 앞으로 발레 안무자로 나설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자기 자신의 발레 언어와 형식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왜 추구하는가에 대해 자의식을 갖고 안무 작업에 임해야할 것이다. 네 작품에서 형식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았다.
- 현대무용 안무가에 비해 자의식에 따른 발레 창작의 역량이 약하다. 발레라는 틀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거의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다수가 집중하는 시스템이기에 어떤 다양한 방향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롤모델을 찾을 여유가 없지 않나 싶다. 더불어 창작적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필요성을 진지하게 교육받으며 성장하기 않았기에 현장에 나와서야 안무와 창작에 대한 고민의 빈약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정도도 예전에 비해 많이 자유로워진 편이라고 본다.
- 안무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심연까지 깊이 파고들어 창작되어야 하는데 단순히 주제와 피상적인 움직임만으로 결과물이 나와 안타깝게 생각한다. 현대무용 안무자들은 자신을 꺼내놓는 훈련이 대체로 잘 되어있어 스스로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데 반해 발레 창작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 프로젝트 클라우드 나인의 경우 같이 작업했던 안무가들이어서 무브먼트가 매우 비슷하다.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 〈Into the Silence〉 ⓒ옥상훈 |
- 이번 공모 공연의 공모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궁금해진다.
- 지난번 창작산실 때 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안무가의 작품이 이번 축제에도 오른다는 것을 알고 국내에 이렇게 발레 창작자가 없나 생각했다. 동작은 안무의 한 부분인데 그것을 안무라고 보는, 안무 개념 자체를 상실한 경우가 적지 않다. 역량이 부족한 안무자 개인을 탓한다기보다 발레계의 구조적 문제로 넓게 바라본다면, 어렸을 때부터 기량을 중심으로 훈련하고 드라마발레를 하면서 아무래도 만들어진 캐릭터에 자기를 맞춰 연기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고 또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현대무용 창작자들이 자의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안무에 대한 필요성을 매우 깊이 느끼는 것과 대조적이다. 발레 창작은 이미 만들어진 형태 위에서 동작의 변형과 나열의 수준을 벗어나야 한다. 이제야 발레 창작자들이 조금씩 발레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생각을 열어가고 있다. 이 단계에서 자의식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그리고 발레단에서 창작의 기회를 주는 등 안무가 육성을 시도하고 있는데 단순히 기회 제공에 그칠 것이 아니라 창작의 필요성과 동기부여, 안무에 대한 기초 개념을 가지도록 나아갔으면 한다.
- 작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서 매체 내지는 형식 자체가 기존에 발레에서 흔히 익혔던 것을 습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그치고 만다. 그러니 관객들과의 대화가 단편적이고 저차원에서 맴돈다. 다음에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 의문스럽다. 일부는 여러 차례 본 안무자들로 열심히 하고 있다.
이번 공모 과정에서 축제를 꾸리는 조직위는 안무자들과 한번이라도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발레계에서 안무자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한다. 그렇다면 공모 과정을 어떻게 해야 육성하는 데까지 이를 것인지를 조직위가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다. 앞으로 그 고민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공모 절차에서 무엇을 더 추구할 것인지를 숙고해주길 바란다. 사실 전체적인 무대 짜임새, 공연시간을 봤을 때 공모 공연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지원금을 많이 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조직위도 공모 공연을 통해 저비용 고효율을 노렸을 텐데 실제 작품성을 봤을 때는 저비용 저효율밖에 안 되었다.
윤전일 Dance Emotion 〈The One〉 ⓒ옥상훈 |
프로젝트 클라우드 나인 〈더 플랫폼 7〉 ⓒ강희갑 |
- 발레축제 홍보자료에서는 이번 공모공연에 대해 남성 안무가들의 약진을 내걸었으나 그 결과는 암울한 창작발레계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었다. 언급된 대로 안무에 대한 개념이나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자신의 감정을 호소하거나 내지는 감성을 표출하려는 저차원의 작품에 그쳐 매우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미흡한 안무 역량을 가리거나 포장하기 위해 라이브 연주로 공연장을 메운다던지 대중에게 친숙한 피아졸라의 음악, 뉴에이지 음악에 기댄 듯 보였다.
- 약진이 아니라 연약 지반을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창작산실도 그렇고 장르마다 지분을 주는 방식으로 춤계 창작이 이어지고 있는데, 미흡한 창작발레를 언제까지 인내하고 봐야 할지 고민이다.
- 안무가 자신이 스스로 솔직하게 내어놓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이제까지 자신을 내어놓거나 용기를 내는 발레 안무가들이 많지 않았고 그런 점을 요구하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컨템퍼러리와 혼합된 지금, 발레 안무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곤 하는데 더는 늦추지 말아야 한다.
신현지 B Project 〈콘체르토〉 ⓒBAKi |
- 대한민국발레축제는 고전발레와 현대발레가 섞이는 장이다. 현대발레와 함께 감으로써 고전발레 일변도의 생각에서 탈피해 발레의 폭에 대한 인식, 안무 개념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전발레 창작의 경우 움직임 틀 내에서 스토리텔링을 엮는 방식에서는 자의식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작품, 안무, 테크닉에 대한 자의식 없이는 컨템퍼러리 혹은 모던, 현대발레를 만들어낼 수 없다. 창작을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쉽게 생각하지 않았던 안무가들은 오늘 방담에서도 대개 호평이 나왔다. 고전발레 일변도의 일차원적인 편식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올해 발레축제는 9회를 맞았다. 전체 행사 구성을 보면 조직위에서 이런 고민을 깊이 하지 않은 듯하다. 한편으로 일반 관객과 함께 하는 발레축제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 기획방식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작품 선정에서 균형이 맞지 않고 안정감이 떨어진다. 발레축제에 대해 긍정적이다가도 부정적으로 논의하게 되는 이유다. 이런 난맥상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위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물론 뒷받침할 수 있는 예산상의 문제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것을 앞세우기보다 발레축제의 방향, 전체 기획의 방향을 대대적으로 점검할 때이다.
- 발레축제의 대중화를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모공연의 작품성과 선정 방식을 재삼 지적, 강조하고 싶다. 소극장이 가진 특성을 살린 작품, 소극장에서 요구되는 실험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 선정에 대해 조직위가 깊게 고민하고 다음 발레축제를 만들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