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서울세계무용축제 &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축제성’에 대한 원론적 고민 필요





방희망: 안녕하세요. 귀한 시간 내어 자리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춤웹진〉은 작년에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서울세계무용축제에 관한 방담회를 가졌습니다. 이번에는 축제 현장을 지켜 본 전문가, 독립기획자이신 조성주 선생님과 춤비평가 김예림 선생님, 그리고 <춤웹진>의 김인아 기자님과 함께 기탄없는 의견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요즘은 축제의 주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모토를 정한다면 그 부분에 맞게 프로그래밍을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스파프)는 올해의 주요 작품들이 ‘음악’을 주요 매체로 채택하고 있었던 점에서 ‘무대를 노래하라!’라는 주제를 내걸었습니다. 반면 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시댄스)는 다양성 자체를 내세우다보니 주제를 하나로 아우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굳이 정리하자면 ‘낯선 것과 친해지기’라는 것이 시댄스의 컨셉트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올해 스파프와 시댄스에서 주제를 충족시키는 공연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조성주: 시댄스는 이전부터도 몸과 춤에 대해 동시대성에 기반한 문화인류학적 관찰과 공유를 시도해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축제 프로그램을 통해 상당히 다양한 다른 문화권의 현대춤들을 감상하게 되지요. 낯선 것에 친해지자는 제안은 신선한 지적 자극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세계 도처에서 이루어지는 ‘나름의 현대성’을 일정한 관점에서 정리해주는 친절함은 좀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시댄스에서 발견하는 아쉬움이라면 낯설다는 것은 경험하게 해주는데 어떻게 친해질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데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차칫하면 의도파악조차 어려운 산만한 다양성에서 그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저로서는 시댄스가 축제의 주제를 천명하는가의 여부 보다는 관객들로 하여금 낯선 춤들의 매력에 다가가도록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우선하기는 합니다.

김예림: 스파프는 매년 주제를 내걸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Sense the Essence', 재작년에는 ’초현실주의‘였어요. 처음부터 타이틀을 가지고 기획한다기보다 해외 초청작들을 선택하면서 그 공통점들 안에서 주제를 뽑아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해의 주제가 어느 정도 무대에 드러나고 있지요. 이렇게 매년 다른 주제를 내걸고 있지만 스파프의 고유성, 다원적인 부분을 포함한다든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 등 이런 부분의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어쨌든 스파프는 그해의 작품들을 총칭하는 큰 타이틀이라고 생각하고 주제를 내는 것 같습니다.
 시댄스는 많은 나라에서 다수의 작품이 초청되는데다 힙합의진화, 후즈넥스트, 아시아&아프리카댄스익스체인지 등 축제 안에 작은 타이틀도 여러 가지 입니다. 따라서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주제를 잡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서울에서 열리는 춤축제라는 것 자체가 고유성이 있기 때문에 타이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김인아: 스파프의 ‘무대를 노래하라!’라는 주제는 해외 초청작에서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개막초청작인 피핑톰의 <아 루에>라든지, 몽펠리에국립안무센터의 <실화에 따르면>, 로시오 몰리나의 <보스케 아르도나>는 음악을 주요소로 삼은 작품들이었지요. 그러나 국내 초청작에서는 음악이 주요 매체였다고 보기 힘들고, 주제와 뚜렷한 연계성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앞서 말씀해주셨듯이 시댄스의 경우 다양성을 중시하고 있어 굳이 타이틀을 만들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8월 말에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도 올해 축제의 주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제일 처음으로 나왔었어요. 이에 이종호 예술감독은 “축제의 슬로건을 만들지 않았다”면서 “슬로건대로 축제를 맞추려는 것도 무리가 있고, 주제에 따르다보면 다양성이 없어져 재미를 반감시킬 여지가 크다”고 밝히셨어요.

방희망: 조성주 선생님께서 시댄스가 관객을 잘 모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두 축제의 기간이 겹치기 때문에 관객의 선택이 분산되는 것도 있겠고, 대학로를 중점으로 열리는 스파프와 달리 시댄스는 공연장이 흩어져있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일부러 찾아가서 봐야하는 부담감이 드는 것도 원인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작년 시댄스의 개막초청작이었던 마기 마랭의 <징슈필>이 서울에서 뿐만 아니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도 올려져 호평을 받았었는데, 올해는 지역 연계 공연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올해 시댄스 초반의 3개 작품이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올랐고 그 이후 공연은 강동아트센터와 서강대메리홀, 남산골한옥마을로 분산되었지요. 물론 강동이나 서강대 지역에 가까운 분들에게는 공연관람의 기회가 확대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이런 점들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으신지요.

조성주: 축제 담당자들께서 많이 고심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시댄스만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보기 힘들고, 대중성과의 균형 문제, 공연장의 현명한 선택 문제, 프로그램의 수량 대비 관리 효율성 문제 등 축제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딜레마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예산의 문제가 있겠죠. 어찌됐든 축제는 상당 부분 지원금에 의존해야 합니다. 질적 향상을 위해 숫자를 줄여 보다 효과적으로 개선하려는 의도가 있다 할지라도 축제의 규모가 작아지면 공적자금을 쓸 때 계량화된 판단 근거들과 부딪히곤 하는 것이죠. 국내 문화예술 관련 정책과 지원사업에서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큰 축제들의 질적 개선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정 정도 이상의 규모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매해 축제를 마련하다 보면 힘이 분산되기 때문에 홍보라든지, 타깃별로 특별한 프로그래밍을 한다든지 관객들을 지속적으로 유인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활동이나 기타 프로그램을 새삼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이 된다는 거죠.
 사실 시댄스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가 무엇일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축제의 일반적인 문제에 더하여 무용이 워낙 대중성이 약한 장르이기 때문에 그 딜레마는 더욱 클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티켓 판매에서라도 상환될 수 있다면 지원금에 의존하는 부분을 줄일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공연장을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지역에 나누어 분포시키는 것도 여러 지역의 다양한 관객들을 찾아가 만나겠다는 의지로도 짐작됩니다만, 그밖에도 대관료나 극장의 협력 문제 등을 고려한 결과일 듯합니다. 게다가 무용을 할 만한 공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보니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절한 공연장을 찾다보면 공연장의 분산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예술의전당을 통째로 장기간 빌리는 것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이런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선택이라 한다면 지원금이 줄더라도 축제 규모를 줄여서 특정 방향에 몰입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축제 프로그램의 간격을 최대한 긴 기간으로 넓혀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더 많은 공을 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다소 무리한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방희망
: 먼저 두 축제의 개막초청작부터 이야기를 풀어보았으면 합니다. 스파프는 피핑톰의 <아 루에>, 시댄스는 스페인 국립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발레단의 <이미지들>이었는데요.

김예림: 피핑톰의 <아 루에>는 스파프의 개막작다운 작품이었습니다. 피핑톰이 한국 관객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단체이고, 대중적으로도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김설진이라는 무용수가 조안무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기대를 모았지요. 김설진을 보기 위한 일반 관객들도 많았지만 무용관객 입장에서도 피핑톰의 최근작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물론 최신작을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지만요. 작품의 수준, 관객 호응도 등 여러 면에서 호평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봅니다.
 시댄스의 경우 프로그램북의 인사말에 현대무용 공연으로 축제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관객들이 낯설어한다고 나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고집스럽게 컨템포러리 성향의 작품을 개막작으로 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플라멩코 무용단의 내한공연이 많았기 때문에 그다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개막작은 아니었던 거죠. 물론 질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시댄스의 개막작으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방희망
: 마찬가지로 플라멩코 작품이 현대무용 축제의 개막작으로 적합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다섯 장면 가운데 남장 여자같은 강인한 여자 무용수들을 내세워 전개한 첫 장면 이외 나머지는 고전적인 플라멩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춤이었습니다. <이미지들>이라고 제목을 붙이긴 했지만 첫 번째 장면 이후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비슷한 것들이 반복되어 나타났어요.
 피핑톰과 스페인 국립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발레단 작품의 공통점은 노래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초청하여 무대 위에 현장감을 살렸다는 점인데, 그만큼 개막작에 신경쓰고 많은 공을 들였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김인아: 피핑톰의 <아 루에>가 스파프의 개막작으로 적합했다는 말씀에 동의하면서 작품에 대한 인상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피핑톰이 무용과 음악, 연극을 결합한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초기부터 꾸준히 전개해왔듯이 이 작품에서도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 위에 놓인 듯한 기묘한 감성을 읽을 수 있었어요.
 ‘모든 것은 빌린 것’이라는 뜻을 가진 <아 루에>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 기억, 현재, 그 너머의 무언가까지도 어디에서부턴가 빌린 것처럼 끊임없이 부유하는 듯 했습니다. 연극적 요소가 두드러졌기 때문에 인물에 성격을 부여하고 인과관계를 따져볼 법하지만, 모든 장면은 파편처럼 흩어지다가도 어느샌가 뭉뚱그려져 내러티브를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장면이 거듭될수록 그들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그 해답을 푸는 출구는 점차 묘연해지고 그저 작품이 주는 몽환적인 인상과 초현실적인 시공간에 빨려들게 되지요.
 주요 캐릭터인 집사로 등장한 김설진의 움직임은 믿을 수 없이 유연하고 재빨랐습니다. 신체의 한계를 벗어난 듯 관절을 꺾은 채 흐느적거리는 그의 몸놀림이 공연 전체를 관통하며 한 명의 무용수가 작품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확인시켜주었죠. 피핑톰만의 독특한 예술적 미감을 올해 스파프에서 재차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무척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김예림: 피핑톰의 <아 루에>에서 군중으로 나오는 10명 정도의 엑스트라들은 수개월 전부터 한국에서 섭외하여 참여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등 피핑톰 측에서 굉장히 디테일하게 요구해왔고, 실제로 엑스트라 역에 다양한 사람들이 지원했어요. 어떻게 보면 위험한 시도였을 수 있었지만 일반인의 출연 자체도 흥미롭게 보게 되더군요. 문화예술위원회의 직원에서부터 무용평론가, 연기전공생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는데, 연습과정에서부터 무대 위에서 여러 장면을 소화해내는 것까지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형식의 관객참여인 셈이죠.
 플라멩코는 어느 정도 안정성이 보장된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관객들이 플라멩코의 라이브 연주와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최근 들어 여러 곳에서 플라멩코 공연이 열렸기 때문에 수요 입장에서 더욱 절실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방희망
: 우연의 일치인지 이번에 스파프에서도 플라멩코 공연으로 로시오 몰리나의 <보스케 아르도나>가 있었던 것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김예림: 스파프에서의 플라멩코는 컨템포러리적 해석을 한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이 정말 좋았다기 보다는 새로운 해석을 가미한 플라멩코라는 점에 의미가 있어요. 전통적인 연주들도 들어갔지만 악기의 변화도 있었고 의상에서부터 여러 가지 형식들에 참신한 해석이 들어갔습니다. 한국춤에서 극무용을 보면 그다지 컨템포러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만 현대적으로 풀어낸 한국 창작춤에서는 동시대성을 발견할 수 있지요. 이번 작품을 그렇게 견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성주: 논의 중에 김을 빼는 것 같은 발언입니다만, 축제 안의 공연을 보다가 스스로의 눈을 의심해보곤 합니다. 흥미롭다, 평범하다 등의 기준이 객관적인 것인가 생각하게 되거든요. 아무래도 무용을 많이 본 분들은 예술적으로 새로운 각성을 안겨주는 작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훈련된 관객, 전문가들의 입장이고 기준이지요. 일반인들이 무용 축제를 통해 춤을 본다고 할 때 그들이 선택하는 작품은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돌려보아야 합니다. 관객의 눈높이와 수요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이런 점들이 빠르게 확인됩니다. 그러나 무대에서 이뤄지는 공연예술, 특히 대중성에서 밀려있는 무용의 경우 확인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죠. 지속적으로 축제를 이어가려한다면 일반 관객들이 춤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공을 들여 조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 어떤 판단도 쉽게 내릴 수 없는 상태이지요. 예컨대 플라멩코에 대해서 대중적 관심이 어느 정도이고 그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인데, 공연 수요 대비 공급이 과잉인지 아닌지 심지어 개막작으로 초청하길 잘했는지 못했는지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는 거죠.
 프로그램을 만들고 막연히 결과를 기다리는 입장이 되지 말아야할 것 같아요. 상당한 시간과 자금을 할애해서라도 구체적 수요를 앞서서 파악해나가는 일에 좀 더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시장에서 춤예술의 생존과도 직결된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기획자와 전문가들의 눈높이 안에 머물러있는 ‘가상현실’을 교정할 수 있도록 정확한 데이터 파악이 요구됩니다..

김예림: 앞선 의견에 공감하면서 현재 제가 피부로 느끼는 무용관객의 층이 유독 넓다는 점을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용이 낯설어 처음 보는 관객, 겨울에 <호두까기인형>을 보는 것이 좋고 컨템포러리 댄스는 어려워하는 관객에서부터 매우 극단적이고 난해한 현대무용을 좋아하는 관객에 이르기까지 무용 관객이 적은 수 안에서도 흩어져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축제들이 경쟁력을 갖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관객 스펙트럼을 넓히지 말고 오히려 대상을 분명하게 잡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스파프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봅니다. 외국에 나가야 볼 수 있었던 유명한 페스티벌에서 화제가 됐던 작품들을 불러오고, 조금 어렵더라도 다원적인 성격들이 섞여있는 작품들로 장르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때문이죠. 높은 조기 예매율, 고정관객 생성, 인터넷 상의 많은 피드백에서 스파프에 대한 기대치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축제의 성격이 분명해졌다는 것으로 연결지을 수 있어요. 색깔이 분명한 몇몇 축제들이 있죠. 페스티벌 봄도 한때 고정관객층이 형성되었고요. 시댄스는 사실 무용관계자들의 관심을 받아왔었지요. 최근에는 대중성도 고려해야 하고, 시민참여도 포함해야 하는 등 그 범위를 확대하다보니 그 에너지가 분산된 느낌이 들어요. 오히려 취향을 집약시키면 조금 더 경쟁력을 갖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방희망
: 해외 초청작 가운데 인상 깊게 보셨던 작품들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예림: 스파프는 무용작품의 수를 점차 줄여가고 있습니다. 올해 3개의 해외단체를 초청했는데 스파프라 하면 무용관객이 이들을 인지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홍보를 한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한편으로 너무 적은 수의 작품을 초청했기 때문에 축제답게 조금 더 많은 해외 춤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시댄스는 많은 해외단체들을 초청하다보니 관객의 입장에서 이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중에서 어떤 단체는 몇 번 내한한 바 있어 이미 낯설지 않은, 파악이 어느 정도 가능했던 단체였어요. 개인적으로 축제기획에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예산과 안목이라고 보는데, 안목의 측면에서 시댄스의 프로그래밍은 너무 많은 관객층을 충족시키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성주: 이번 시댄스 프로그램 중 제가 접한 작품들은 간판급 공연들은 아니었을 겁니다. 세 작품 정도를 말씀드리자면, 우선 남아공의 빈센트 만쭈이 무용단 <스콰타>는 당장이라도 돌이킬 수 없이 분출되어 버릴 것 같은 리듬과 강력한 파워를 드러내면서 ‘아프리카성’을 절감하게 했습니다. 만쭈이는 전통춤에 기반한 댄서가 아닌 잡식성 움직임 포식자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자연적 움직임과 여러 스타일의 현대적 춤사위들이 혼합되어 녹아있는 그의 피아노줄 같은 인대와 근육들은 절제와 변칙적 탄력을 오가면서 다소 고전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터키의 지야 아야지 <데르비시>는 현대적 어법으로 재창작되어 있지만 이슬람교 수피즘의 종교적 수행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이었습니다. 1시간 동안 거의 끊이지않고 빠르게 회전하며 무대를 누비는 댄서의 판타지적 고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간과 체력에 있어서 임계점을 넘어서는 듯한 그의 움직임은 일반 관객들로 하여금 처음엔 그저 신기해하다가 마침내는 신비로움을 느끼게 했던 것 같습니다. 터키와 수피즘 관련한 강연도 준비되었었는데 챙겨볼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스웨덴은 워낙에 어린이 공연이 무척 발달한 나라입니다.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국제적인 어린이공연축제도 있구요. 어린이 관객 대상 공연은 소박한 무대 기술과 20분~40분 가량의 짧은 러닝타임들이 일반적인데 늘 느끼는 것은 ‘현명한 예술’이라는 생각입니다. 스웨덴 제브라 무용단의 <깡통-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미취학 어린이 수준에서도 공감하면서 따라갈 수 있는 내러티브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반원형이 무대 배경막 역할을 겸하는 설치물에는 컬러풀한 수술들이 길게 늘어져 채워져 있는데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한정된 –하지만 미스테리한- 세상을 그려주기에 충분한 공간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참으로 적당한 세상에 깡통 하나가 들어오면서 모든 조화는 깨져나가기 시작합니다. 단순하지만 정성스러운 안무로 두 인물의 갈등이 표현되지만 엔딩은 결국 조화로운 세계 속에 안착하게 되는 것이죠. 공연 직후 댄서들은 관객들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간단한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했는데 전체적인 시간이 짧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듯합니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시댄스의 작품들은 예술성과는 별개로 타겟 관객층이 지나치게 넓게 분포하는 듯하다는 짐작입니다. 단순히 공연장간 거리는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닐 듯합니다. 문제는 관객층을 몇 개의 가상의 그룹으로 나누었을 때 그들간에는 공감대가 생겨나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이런 경우 모든 관객들에게 문화적 구심점이 되는 축제로 어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시댄스가 세계문화축제인지, 혹은 전문무용축제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죠.
 만약 문화축제적인 경향이 더 크다고 한다면 더더욱 축제성이 살아나야 할 것입니다. 춤 작품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대상 문화권 전체가 가지는 매력에 대해 현장에서 즐길 수 있도록 다른 컨텐츠와 결합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와 반대로 현대춤의 국제적 조류를 가늠하고 소개하기 위한 축제라면 분야 내 사람들끼리의 정보교환, 국제교류 쪽이 보다 강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대중성을 보완하기에는 더 큰 어려움이 따르겠지만요. 결국 축제가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다 입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희망
: 인터넷을 서치하다가 제브라 무용단의 공연을 본 관객의 글을 보았습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만큼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을 찾았는데 40분 러닝타임이라고 명시했던 것과 달리 20분만에 끝나버려서 불만이었다는 내용이었어요. 시댄스가 세계무용축제로서 그만큼의 함량을 갖춘 작품을 초청한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았는데요. 전문가 입장에서 작품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성주: 기본적으로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무용작품이 국내에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작품의 소개가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수준있는 어린이 작품에 대한 현장 반응은 항상 좋습니다. 관객 불만은 공연장으로 오고간 시간에 비해 너무 짤막한 공연길이 때문에 생겨난 것일텐데요, 작품이 아무리 좋았다 할지라도 제대로 서비스를 받지 못한 느낌이 들면 불만이 생길 수 있지요. 이는 작품성 자체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작품의 길이를 문제 삼기보다 축제 안에 어린이용 공연이 여러 편이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겠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라면 심플하면서도 흥미로운 메시지와 이미지가 담겨있는 20분 길이의 작품이 적당하다고 봅니다. 다만 작품 자체의 길이와 완성도보다는 기획 구성이 아쉬웠어요. 어린이와 가족을 타겟 관객으로 여긴다면 그들의 관심을 끌고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몇 개의 작품이 더 있거나 체험 프로그램이 부수적으로 있어야 했겠습니다. 단순히 한두개의 작품만으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으로서 부족한 부분이 있죠. 이럴 때가 바로 다양성이라는 말이 단점처럼 지적될 수도 있는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연장이 여러 군데로 나뉘어 있다 할지라도 소주제별로 충실히 기획되어 있다면 더욱 좋은 프로그래밍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한 공연장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소주제의 프로그램들을 계속 감상하면 그걸로 축제를 즐기는 것이 될 테니까요.

김예림: 과거의 시댄스는 힘있는 작품들이 중심을 잡고 있고, 그 사이에 우리가 흔히 접하지 못했던 중동이나 아프리카 공연들이 소개되어 굉장히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굵직한 유명 무용단들의 작품도 보이지 않기 시작하고 소주제들이 많아지면서 포커스가 분산되고 있어요. 집중할 수 있는 중심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김인아
: 제가 중점적으로 보았던 스파프의 경우 작년에 비해 올해 한 개 단체가 줄어들어 3개 해외 단체가 초청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단체가 두 개 작품을 무대에 올렸죠. 크리스티앙 리조가 이끄는 몽펠리에국립안무센터가 <사키난>과 <실화에 따르면>을 연이어 공연하면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두 개 작품을 연결지어 관람하는 동안 감상자 스스로 생각해볼 지점을 풍성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죠. 나아가 하루에 그치지 않고 작품별로 이틀씩 공연되어 관객들이 관람할 기회를 넓혀주었던 점도 좋았습니다. 예년에 비해 해외초청 단체의 수는 줄었지만 예술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초청해 이를 확대 편성한 것이었는데, 적은 수더라도 좋은 작품을 관객이 충분히 공감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한 것은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남성 독무로 이뤄진 <사키난>은 화려한 기교를 엿볼 수 없었지만 몸의 무게중심을 바꿔가며 둔중하고 차분하게 움직임을 전개시킨 작품이었습니다. 나무 널빤지, 화분, 의자, 책더미 등 다양한 오브제에 무용수의 사유를 깊이 투영시키고 있었는데, 무대 요소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진중하지만 담백하게 엮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화에 따르면>은 8명의 남자 무용수, 2명의 드러머가 내뿜는 에너지로 가득찬 작품이었어요. 전반부의 묵직한 움직임을 점차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세밀하게 확장시키는 구성이 매력적이었죠. 이스탄불의 전통 남성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움직임은 지금까지 프랑스 현대무용에서 보지 못했던 새롭고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드럼 비트와 무용수들의 움직임 조화가 완벽히 들어맞을 때 관객의 호응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지요.




김예림
: 몽펠리에국립안무센터의 두 가지 공연에서는 예술 다방면의 관객들이 많이 보였어요. 프랑스의 국립안무센터 가운데 가장 강력한 몽펠리에의 예술감독이 올해 바뀌었다, 과연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을 겁니다. 국내 무용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죠. 스파프가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게다가 안무가 크리스티앙 리조가 시각예술분야 출신이기 때문에 다른 장르 예술가들이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을 관객 분위기에서 읽을 수 있었어요.
 두 작품이 연장선상에 있었지만 크리스티앙 리조 스스로 연작은 아니라고 합니다. 물론 <실화에 따르면>이 나온 것은 <사키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죠. 현재 프랑스 현대무용의 흐름을 두 작품만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몽펠리에의 작품에서 어느 정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안무가 스스로 프랑스의 현대무용은 부르조아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사키난>에서 한 시간 동안 독무를 책임진 케렘 켈러백은 터키 출신인데, 이방인으로서의 그의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안무가의 이야기도 끄집어낼 수 있었다고 하죠. 게다가 켈러백이 조안무로 참여했던 <실화에 따르면>에서는 더욱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요. 그가 말하는 프랑스 현대무용의 비전은 다른 문화권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와 유럽에서 나올 수 있는 춤은 거의 다 나왔다고 보는 거죠. 타문화를 수용한 작품이 이번에 소개되면서 프랑스 현대무용의 새로운 흐름을 예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방희망
: 국내초청작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스파프가 매해 진행하고 있는 솔로이스트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김예림: 솔로이스트를 계속 살리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안애순 예술감독이 취임하면서 만든 기획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 만든 ‘라이징스타’ 같은 프로그램은 없어졌지만 인기가 높았던 솔로이스트는 스파프로 들어와 열리고 있지요. 지난해 남성무용수 4명을 캐스팅하여 호평을 이끌었고, 그 바통을 이어받아 올해는 여성무용수 3명을 초청했어요.
 그러나 올해 솔로이스트는 급조된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김주원-김설진의 조합은 두 사람 모두 자기 활동이 많은 무용가들인데다 특히 김설진은 개막작인 피핑톰 공연을 맡고 있었죠. 짧은 시간안에 두 사람의 장점을 끄집어내지 못하고 끝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라는 큰 무대에 대한 성의가 보이지 않았어요. 장윤나-이선태도 사실 이선태가 안무가로서의 역량을 검증받지 못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조합이었지요. 미성숙한 두 사람이 만나다보니 과정이나 시도에 그쳤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 나왔습니다. 그나마 차진엽이 시각예술가 빠끼와 만나 선보인 작품이 결실을 맺어주는 듯하지만, 그 부분도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빠끼의 시각작품을 배경으로 차진엽이 춤을 춘 것인데 두 사람간의 내밀한 소통이 있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그간 차진엽이 보여주었던 것의 반복으로 보였습니다. 굉장히 많은 작품을 하고 있는 차진엽이 자신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러웠어요.




방희망
: 저도 이번 솔로이스트의 무용수-안무가가 성급한 조합으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작년 솔로이스트 때에도 대극장에 솔로 무대를 세운다는 것이 버거워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올해 또다시 대극장에 투입시키면서 그 부분에 대한 간과가 계속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김인아: 지난해 <춤웹진> 방담에서도 지적된 부분이었죠. 대극장의 규모를 솔로이스트 혼자 소화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굳이 큰 공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올해에는 독무로 무대를 채우지 않고 안무자가 찬조 출연을 한다던지, 단체 퍼포먼스가 짤막하게 들어가는 등 작년보다 유연한 구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시각예술을 후면에 배치한 차진엽-빠끼의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에서 극장규모와 작품 간의 부조화가 여전히 느껴졌어요.
 솔로이스트에 대한 또 다른 의견으로 공연시간을 20,30분으로 설정해놓고 그에 맞춰 작품을 채우게끔 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하며 짧은 시간이더라도 작품의 분량을 안무가 스스로 정해 예술성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기획을 재조정해야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덧붙여지는 부분이 전반적으로 주제의식을 흐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인데 이 같은 지적은 올해에도 유효해 보입니다.




김예림
: 솔로이스트 프로그램은 안무자보다도 솔로로서 무대를 감당할 수 있는 솔로이스트를 캐스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역량있는 무용수가 흥미로운 안무자를 만나면서 의외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죠.
 작년 솔로이스트에서는 소극장에서 선보인 최문석-콴 부이 뇩의 공동작품 〈Going Below〉이 호평을 받았어요. 일년 전부터 호흡을 맞춰왔고 쇼케이스를 거친 후 솔로이스트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내공을 쌓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죠. 특히 대극장을 감당하기 위해선 오랜 준비기간을 필요로 하기 마련인데, 과연 올해 세 팀이 파트너들과 얼마동안 준비하여 작품을 완성했는지 의문입니다. 짧은 만남으로 어떤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에요. 앞서 최문석의 공연과 비교해 본다면 더욱 명료해질 겁니다. 다만 올해 기획에서 홍보효과는 많이 누렸을 것 같아요. 댄싱9으로 유명했던 현대무용가와 전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의 만남이랄지, 화려한 캐스팅이 티켓판매에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이런 기획일수록 오래전부터 공을 들인 작업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조성주
: 스파프와 시댄스가 다른 경향을 보이는 것 중 하나가 대중성에 대한 태도입니다. 시댄스는 유명예술인과 그렇지 않은 예술인들 이분화하는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고 대중적인 기획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인 듯 느껴집니다. 양측을 다 이해할 수 있지만 각자의 방향으로 지나치게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지나치게 순수지향으로 흐르는 것도, 혹은 지나치게 대중성에 편승하려는 것도 모두 위험하다는 것이죠.
 말씀하신대로 대중적인 기획에는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충분한 투여가 반드시 따라야합니다. 스타 플레이어, 유명세, 혹은 대중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작업에는 더더욱 내공이 필요해요. 그저 만들어놓고 숟가락만 슬쩍 얹을 수는 없습니다. 예술가도 단기적으로 이미지를 소모시킨 것이고, 주최 측도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 채 혹평을 받게 됩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하지 못한 성급한 기획은 무조건 좋지 못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늘 갖고 있어요.
 주최 측은 축제성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저 유명 프로그램이나 예술인 때문에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죠.




김예림
: 올해의 솔로이스트는 지난해와 비교해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스파프의 국내작 가운데 긍정적인 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때 어딘가에서 검증받은 작품을 단순히 무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신작이나 공동제작으로서 작품을 기획하려는 시도가 있었죠. 예효승이 안무한 BluePoet의 〈N(own)ow〉가 국내초청작 가운데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벨기에 무용수들과 했던 초연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이번 공연에서 보여주었던 한국 무용수들의 표현력이 더 좋았고 주제전달을 분명히 이끌어냈습니다. 한국 무용수들은 배우같은 매력도 가지고 있으면서 뛰어난 신체성도 갖추고 있었죠. 예효승이 지속적으로 여러 번 공연하면서 발전시킨 결과가 이제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 작품을 연속성을 가진 작업으로 지속, 발전시켜 보이려는 것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작년 솔로이스트에서 발표된 이정윤의 <판-Push/Pull>은 이번에 풀타임 작품으로 기획되면서 재연일지라도 확장된 모습을 보였죠. 또 크리틱스 초이스에서 안무가로 움트기 시작한 이동원이 한 시간을 책임지며 기대 이상으로 완성도 있는 작품 <기억의 양수>를 보여주었어요. 그리고 스파프 안에 들어있는 서울댄스컬렉션에서는 대중성과 상관없이 젊은 안무가들에게 마음껏 낯선 작품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거기서 나온 고블린파티의 <아이고>가 4년 만에 스파프 무대에 다시 올라 발전된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김예림
: 실제로 서울댄스컬렉션은 매년 9개 작품을 선정했으나 올해 12개 작품으로 확대 편성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해외 페스티벌 관계자들이 많이 참석한 자리인 만큼 많은 한국 무용가들을 소개하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베스트로 선정된 3개 작품은 해외 페스티벌에서 초청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국내의 젊은 안무자들에게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죠. 물론 국내 안무작에 대해서도 해외 초청작만큼이나 홍보에 공을 들이고, 티켓 판매율을 높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시댄스의 국내작 가운데 김윤정의 신작 <심판>이 올라 반가웠습니다. 이 작품이 ‘힙합의 진화’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다소 낯설었고, 기대한 만큼 김윤정의 컬러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만 신작을 기획한 점이 매우 긍정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젊은 안무가들의 몇몇 작품들, 이재영의 <이퀼리브리엄>과 전혁진의 <동행> 등은 이미 여러 번 공연된 작품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신작이 아니라면 많은 관객이 보지 못했던 작품을 올리거나, 새롭게 보일 수 있도록 발전시킨 재연작을 국내초청작으로 꾸몄다면 좋았을 법 했습니다.




김인아
: 두 축제 무대에 오른 안무가 권령은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댄스에서는 <나를 위한 기술>을, 스파프에서는 〈Homo Knitiens : 망 뜨는 사람〉을 선보였어요. 안무가는 지난해 요코하마 댄스컬렉션에서 <나를 위한 기술>로 프랑스대사관 상과 부상으로 6개월간 프랑스 국립안무센터에서 연수 기회를 받았고, 프랑스에서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망 뜨는 사람>을 창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관객은 국제 컴피티션에서 상을 받게 된 작품, 그 결과로 만들게 된 작품을 두 축제를 통해 우연이지만 한꺼번에 볼 수 있게 된 셈이죠.
 국내 초연작으로 스파프에서 선보인 <망 뜨는 사람>은 신체와 옷에 함의된 사회적 관계망에 주목한 작품입니다. 나와 타자, 개인과 사회, 자연과 문명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옷을 등장시키고 있어요. 덩그러니 전라로 앉아있던 안무가가 갖가지 텍스쳐의 옷감으로 몸을 감싸 나아갑니다. 입고 벗는 동작의 반복, 느릿하고 진중한 움직임으로 안무가는 타인, 사회, 문화와 촘촘히 관계를 구축해가는 것이죠. 그의 밀도 있는 사유가 몸과 움직임, 옷이라는 매개체로 형상화되었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낯선 이를 만나 알아가는 것처럼 새롭고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궁금했던 레지던시의 결과물을 스파프에서 처음으로 소개해 준 점도 즐거웠고요.




방희망
: 장르를 구별짓지 않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한국무용을 어느 정도 양쪽 축제가 견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시댄스의 경우 작년에 ‘검무의 재발견’이라는 타이틀 하에 전국에 흩어져 있던 검무들을 모아 한자리에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반면, 올해는 연행집단 사이의 공연을 남산골한옥마을 국악당에서 이틀에 걸쳐 선보인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스파프의 경우엔 전통무용을 그대로 가져오진 못하지만 한국무용 출신 안무가나 무용수를 꾸준히 세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듯한데 그다지 뚜렷한 색깔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올해엔 작년 창작산실 우수작품인 이경옥무용단의 <심청>이 무대에 올랐어요. 한국무용을 축제에서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것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김예림: 글쎄요. 장르를 나누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창작작업에 있어 이제는 더 이상 장르구분이 의미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따지면 이런 무용축제에서 가장 소외되어있는 장르는 발레이지요. 발레 출신 안무가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잖아요. 장르의 구색을 맞추려하기 보다 작품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굳이 이 안에서 장르 분배나 할당을 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한국무용제전이나 발레축제 등 분야별로 특화된 축제들에서 발표된 좋은 작품을 스파프나 시댄스로 초청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성주: 춤의 원재료를 어디서 끌어오는가는 예술가 개인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결과물에 대해 관객은 충분히 감상하고 공유하면 되는 것이죠.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면 국내와 해외의 초청작품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 정도를 배려해야하지 않을까 싶고요. 결국 두 축제는 장르와 무관하게 좋은 작품을 선보이는 종합적인 발표의 장이라고 생각되네요.




방희망
: 마지막으로 두 축제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 있다면 첨언 부탁드립니다.

조성주: 시댄스에 대해서 안타까움과 공감을 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몸과 움직임에 대해 몰입하고 있는 주최 측의 고민이 엿보이기 때문에 공감을 갖게 되죠. 안타까운 지점은 그것에 대해 충분한 발언이나 감각적 설득이 부족하다는 점이에요. 물론 짧은 강연 등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현장에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에게 부대 프로그램을 연결시키는 부분은 사실 아쉽습니다. 낯선 춤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관객을 준비시키는 배려와 기획적 보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력한 자극들이 가득한 공연들과는 달리 한참의 시간을 두고 바라봐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춤과 몸의 정수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훨씬 더 많은 배려와 공이 들어가야 할 듯합니다. 시댄스가 그 부분을 반드시 점검해주기를 바래봅니다.
 관객과 작품을 잇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진지한 고민도 필요할 듯합니다. 많은 공을 들여 작품을 섬세하게 음미하는 방법을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 기획되고 이것이 관객에게 제대로 수용된다면 축제가 –아마도- 지향하고 있는 춤과 몸의 동시대적 다양성을 비로소 감지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서요. 명확히 변별되지않는, 혹은 각각의 의미 공유가 어려운 애매한 다양성만 있는 축제로 폄하된다면 너무나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김예림: 스파프가 제1회 서울공연예술제로 출범할 때 무용수로 참가하면서부터 지금까지, 15회째 지켜봐왔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스파프가 안정감을 갖게 된 데에는 공간의 확보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해요. 한국공연예술센터로 들어오면서 아르코와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꾸준히 열리게 되었고 이런 점이 해외 아티스트들에게도 어필해 내한하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연극과 무용의 균형을 맞추면서 예술인들을 아우른다는 장점은 계속 발휘될 것이고요. 다만 솔로이스트처럼 대중을 만족시키겠다는 초점을 매체에서 이슈가 된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에서 답을 찾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최근 관객들의 눈높이가 상당히 높아져서 지루하거나 난해한 작품들도 인내하고 관람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기획자들이 대중성에 대해 속단하거나 착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시댄스에도 공통 적용되는 문제일 겁니다.
 초기부터 지켜봐온 관객으로서 시댄스에도 분명히 전성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파프와 같은 시기에 열리기 때문에 관객이 분산되어 관람율이 낮아졌다고 볼 수만은 없어요. 냉정하게 보면 그만큼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거죠. 관객을 흥미를 끄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앞서 말씀드린 것과 동일한 답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축제를 기획하는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예산과 안목 가운데 안목의 부분이 거듭 강조되어야 할 겁니다. 행사의 성격, 작품의 선정에 있어서 분명한 입장과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리고 장소의 분산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한다면, 장소에 따라 공연들의 성격을 특화시킬 것을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해외초청작은 토월극장에서, 신진예술가들의 후즈넥스트는 메리홀에서 공연되는 것처럼 장소별로 일관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것이죠. 그런 특성마저 없다면 같은 프로그램일지라도 시기와 장소가 나뉘어져 있어 집중하기 힘들게 되죠. 최근에 조금 주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시댄스는 매년 기대를 하면서 프로그램북을 엽니다. 관객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하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오는 관객들의 흥미를 유지시키면서도 앞으로 올 새로운 관객 개발에 매진해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방희망: 시댄스와 스파프 모두 관객들의 기대치도 크고, 하반기를 풍성하게 꾸며주는 큰 무용축제입니다. 끝나면 아쉬움도 많아 여러 의견을 개진하게 됩니다만, 여전히 이 두 축제는 성장하며 역사를 쌓아나가고 있고 우리는 거기에 동참하며 발전을 지켜보고 있지요. 내년에는 더욱 수준 높은 작품들로 알찬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공연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해주신 세 분, 좌담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