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계소식

신간안내
몸으로 상상하기 - 즉흥춤 작은 교본
2017.12.1
 
남정호 지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발행 | 비매품
 

 
서문_ 빨간 구두의 신화

당신은 왜 춤을 추고 싶나요? - Why do you want to dance?
당신은 왜 살고 싶나요? - Why do you want to live?

1948년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를 각색하여 만든 동명의 영화에 나온 대사다. 질문을 하는 이는 러시아 발레 뤼스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를 모델로 삼은 듯한 프로듀서, 그의 질문에 반문 한 이는 신인 발레리나를 연기한 1940년대 영국 최고의 발레리나 모이라 샤라(Moira Shearer). 무용을 위하여 인생-목숨을 걸겠다는 그녀는 혼신의 노력 끝에 스타가 되고 달리는 기차에 투신하여 삶을 마무리할 때까지 빨간 구두를 벗지 못한다.

그런데 ‘이 예쁜 빨간 구두를 왜 다른 이들은 신지 않은 걸까’라는 질문을 해보자. ‘너무 예뻐서 두렵다’라는 대답이 들린다. 하기야 보통 사람들은 구두 하나에 자기의 인생을 걸지 않는다. 빨간 구두를 신으려면 허영에 가까운 무모한 용기가 필요하기에 이 구두는 순진하여 겁을 모르는 이들에게 가장 유혹적인 힘을 발휘할 수밖에.

오랫동안 우리 문화권 내에서 ‘분홍신’으로 왜곡되어 불렸던 빨간 구두는 ‘춤의 메타포’다.

춤은 빨간 구두처럼 그 사람의 혼을 사로잡아 버린다.
나는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있지만 벗을 수는 없다.
일단 빨간 구두를 신으면 나의 주인은 빨간 구두가 된다.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보이지 않는 춤의 힘이 나를 이끌었기에 춤바람이 나서 체면을 구기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용가 마사 그라함(Martha Graham),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그리고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 마저 연로한 나이에도 이 춤바람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무대 위 젊은 무용수들의 자리를 빼앗기도 했다.

자아가 없어진 설명할 수 없는 무아의 경지에서 얻는 놀랍고도 짜릿한 자유로운 세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안데르센은 춤의 마력을 감지하고 그것을 경고하려 이 동화를 썼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후로도 춤은 여전히 미궁 속에서 반짝거리며 많은 이들을 홀려내었고 춤의 역사를 진행시켰다. 무용사에 등장한 대부분의 무용가들이 이 춤바람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현명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한 말, ‘춤은 철학자의 이상이며 예술이고 궁극적으로는 유일한 신앙이다’ 또한 그 뒤를 이은 들뢰즈(GilDeleuze)가 ‘춤은 웃음처럼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전환시키고 고통을 기쁨으로 전환 시킨다’라고 말한 것을 잘 엿들어 새겨보면 오랜 기간 동안 맹목적으로 가졌던 빨간 구두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다.

빨간 구두 콤플렉스를 벗어나게 하여 모든 이들이 춤의 맛을 알고 즐기고 행복해지는 경지에 이르는데 있어서 즉흥 춤은 압도적으로 위력이 있는 분야이다.

이제 즉흥을 통하여 춤추는 당신은 더 이상 빨간 구두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엿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최근에는 춤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좀 고되기도 하지만 요청을 해오면 나의 생각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거절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 5년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최 한 예술 강사를 대상으로 한 여러 형태의 교사연수와 10차에 걸쳐 진행한 하자작업장학교의 마스터클라스를 하면서 이 믿음은 구체화되었다.

교원연수에서는 교사들로 하여금 그동안 교육현장에서 잊고 있었던 본인의 예술가로서의 가치를 끄집어내어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우선 목표였다. 어떤 교사들은 목이 마르니 물을 달라고 했으나 나는 그들에게 스스로 샘을 파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젊은 무용교사였던 나의 지나간 시절을 돌이켜 봤을 때, 지금까지 나를 지탱시켜 준 대부분의 것은 수많은 달콤한 정보들보다는 나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어준 ‘생각의 전환들’이었기 때문이다. 꽤 많은 수업과 연수를 받아 왔지만 그런 깨달음의 순간은 언제나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 할 때가 아니라 교사 스스로 노련한 ‘안내자’가 되어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유도 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즉흥 춤은 자신의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나’를 만나는 작업이기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이 놀라운 자기 탐험을 계속하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즉흥에서 나오는 움직임은 우리가 뭐라 설명하기 힘든 세계인 ‘영혼의 고향’으로 우리를 데리고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흥 춤은 몸이 가는대로 마음대로 추는 춤이 아니라 매 순간의 공간, 시간, 움직임 그리고 파트너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실시간 구성(Realtime Composition)이다. 따라서 자신의 이성으로 주체적 선택(choice)을 하고 상황에 교섭(negotiation)하는 이 춤을 만나면 자기 스스로를 진지하게 탐구함과 동시에 함께하는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지성적 태도를 서서히 갖추게 된다. 혹자는 즉흥 춤을 ‘막춤’과 연결하려 하지만 막춤은 막말(욕)처럼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이성적 주체성을 포기한 채, 아무렇게나 던지는 몸짓이다. 아마 실컷 욕을 해대고 나면 울분이 풀리듯이 막춤을 추면 속이 후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존재의 고귀함을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그 방법 외에도 수많은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즉흥지도자, 교사를 안내자(Guide)라고 부르는 관점에 동의한다. 안내자는 모든 움직임 활동에 직접 몸으로 함께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참여자는 안내자를 필요로 하지만 안내자 또한 참여자가 필요하다. 안내자 역할을 하다보면 안내자로서보다는 오히려 참여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안내자는 가장 좋은 참여자인 것이다.
프랑스인 교육학자 니콜라스 앙드리(Nicholas Andry)는 1740년에 벌써 ‘선생의 책임(Responsibility of teachers)’에 대하여 ‘Orthopedic-정형법-똑바로 세운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모두가 알아볼 수 있도록 나무가 넘어지지 않게 설치된 버팀 목 같은 그림도 함께 그려놓았다. 아이들을 비뚤어지지 않도록 바로 잡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이미 비뚤어진 아이들을 바로 잡는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나무에 직접 손을 대어 교정하기 보다는 버팀목이라는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나무가 서서히 자발적으로 곧은 형태를 찾아 가게 된다는 인간에 대한 오래 된 믿음이 있는 교육관이다.

좋은 선생이 좋은 학생을 만들지만 좋은 학생이 좋은 선생을 만들기도 한다. 그럼 좋은 학생이란?

여기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배움의 원칙을 참고로 하고 싶다. 우선, 자기와 안내자를 신뢰(trust)하고, 자신과 안내자의 말과 행동에 집중(concentrate)하고, 스스로 노력(effort)하는 자이다. 이 세 가지를 다 투여하여야 비로소 지혜(wisdom)라는 보물을 얻게 된다고 한다. 나는 이 지혜를 창의력(creativity)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자신의창의력을 끄집어내고 싶다면, 또는 당신의 학생에게 창의력을 유도 하려면 이 세 가지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할 것이다.

즉흥 수업의 시작에는 수강생들이 각자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왜냐하면 만남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감동을 낳고 감동은 영혼을 흔든다. 이런 영혼을 갖기 위해서는 춤을 추는 것 이상 좋은 것이 없다.

20여 년 동안 현장에서 즉흥을 가르치면서 나는 세계 각지의 즉흥 전문가들을 만났다.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가서, 때로는 그들을 나의 교육 현장에 초대하여 그들의 수업을 청강하며 즉흥의 정체를 파헤치려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였다.

Simon Forti, David Gorden, Viola Farber, Jean Gaudin, Ray Chang, Katie Duck, Pooh key, Kurt Koegel, Jackie Taffanel, Dylan Newcom, Emmamuel Grivet, Yann L’heureux, Linda Rabin, Dominique Merci, Yanif Mintzer, Michael Schmacher, Nina Martin, Andrew Wass, Claire Filmon, Lily Kiara, Gary Hoffman Soto, Sylvain Meret, Dorit Weinthal, Justin Morrison, Kay Patrou, Andrea Schlehwein, Kei Takei, Tanaka Min, kasai Akira, Ko Murobushi, Yamada Setuko 등이 그들이다.

여기의 내용들은 30여년에 걸쳐 이들과 함께한 과제들을 곱씹어 소화시켜 나의 숨결을 붙인 것들이다. 최대한으로 노력할 것이지만 이 책에 여태까지 내가 알아 낸 모든 것이 총망라되는 것은 불가능 하다. 만약 그대가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지도자라면 이 자료가 그대의 보완작업에 동반자가 되는 영광을 갖게 되길 바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이 책은 ‘지도’였으면 좋겠다. 나는 땅이 그려진 지도를 줄 수 있지만 그 땅을 줄 수는 없다. 그 땅은 스스로 찾아야한다. 물론 가기 전에 지도를 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변수에 대하여도 열려 있어야한다. 그리하여 어쩌면 그대는 이 지도보다 더 멋지고 상세한 지도를 후대에게 남겨 줄 수도 있을 것이니.

산만했던 강의노트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KCP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 덕분에 정리된 작은 교본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작업에 참여 한 이지은, 손영민, 조희경 그리고 윤상은에게 감사한다.
 
“춤추는 일은 오래전에 우리가 상실한 우리 몸의 참다운 집을 찾는 것이다.”
- 〈일상의 모험〉 서동욱



책 구성

서문
빨간 구두의 신화

1장. 우선 몸을 열자!
숨 – 호흡
아기로 돌아가기
파트너와 함께 – Body Tuning
다 함께 손잡고 춤추는 왈츠
몸 풀이 나누기

2장. 지금, 몸으로 상상하기 –Main Exercise
걷는다.
악수한다.
혼자 춤추기
함께 춤추기
공간에 대하여
시간성에 대하여 –Timing
감각훈련
일상의 재발견
오브제와 함께
피드백(feedback)

3장. 접촉즉흥(Contact Improvisation)

4장. 공연의 경험 –Showing

5장. 즉흥 잼(Improvisation Jam)

별첨
별첨1. 즉흥 춤에 대한 흥미로운 정의들
별첨2. 무용교수법 〈댄스 페다고지(Dance Pedagogy)〉 수강후기
별첨3. 무용교수법 〈댄스 페다고지(Dance Pedagogy)〉 교육지침서
2017.12.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