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계소식
「세기의 안무가」
장인주 지음 | 이콘출판 | 292쪽 | 20,000원
문의: 031-955-7979
피나 바우슈, 모리스 베자르, 매튜 본, 나초 두아토...
이름만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거장들의 무대를
눈앞에 옮겨놓은 듯한 생생하고 매혹적인 기록!
오랜 시간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한 무용가는 아마 강수진, 김주원 같은 발레무용가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입에서 ‘발레리나’가 아닌 ‘댄서’들이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시작한 작은 불씨는 <댄싱 9>에 이르러 대폭발하며 ‘갓설진(김설진)’ ‘갓수진(최수진)’이라는 스타를 만들어냈다. 이후 무용은 빠르고 깊숙이 대중 속으로 들어왔다. 무대 위 무용수들의 깎은 듯한 몸선, 팽팽한 근육의 텐션, 화려한 테크닉에 열광하며 현대무용·모던발레·컨템퍼러리 댄스라 불리는 틀을 벗어난 무용 공연에도 선뜻 지갑을 연다. 이 책은 다섯 살 때 한국무용을 시작해,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발레의 기원을 찾아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10년을 공부한 저자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한 ‘세기의 안무가’ 30인에 대한 소개와 작품 리뷰를 담은 것으로 국내 무용 골수팬, 신흥팬 모두에게 아주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기의 안무가’ 30인을 소개한다고 하면, 그들의 인생을 시대순으로 나열한 전기를 생각하겠지만, 이 책은 안무가 30인의 60여 편에 달하는 작품에 대해 공연을 관람한 시점에서 쓴 글을 그대로 살려 당시 무대의 느낌뿐만 아니라 국내외 무용계의 시류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1994년부터 『월간 객석』에 보낸 리뷰를 포함해 파리 유학 시절 전설 같은 안무가들의 작품을 보고 쓴 글부터, 귀국 후 프리뷰 형식으로 내한공연을 앞둔 안무가를 소개한 글까지 20년에 걸쳐 ‘무대’라는 형언할 수 없는 공간을 분석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표현해온 저자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가 파리에서 유학한 1989년부터 1999년은 프랑스 춤이 르네상스를 맞은 시기였다.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한 피나 바우슈, 윌리엄 포사이스도 파리에서 신작을 발표했고, 최첨단의 실험 무대도 어김없이 파리에서 첫선을 보였다. 예술의 한가운데에서 ‘누벨 당스Nouvelle Danse’의 진수를 온몸으로 체득한 것을 바탕으로 풀어낸 값진 기록들—지금은 세상을 떠난 피나 바우슈, 모리스 베자르, 롤랑 프티 등 무용계의 큰 별들이 생전에 직접 안무한 작품들에 대한 감상과 서면,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예술세계, 작품세계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또 한국인으로 리스 에 당스리Ris et Danceries 바로크 무용단원으로 활동한 저자는 안무가의 의도와 무용수들의 몸짓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예술가의 마음으로 바라본 날카로우면서도 너그러운 시각이 큰 차별점이며, 안무 동작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일품이다. 눈앞에 무대가 펼쳐지는 듯한 서술로 책을 덮고 나면 무용에 푹 빠졌다 나온 기분이 들며, 공연을 화보로 만나볼 수 있어 직접 본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30인의 안무가 성姓을 ABC순으로 나열한 이 책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두 거장 피나 바우슈와 모리스 베자르가 처음을 장식한다. 이르지 킬리안, 롤랑 프티, 마츠 에크 등 모던발레의 거장들과 장-클로드 갈로타, 마기 마랭, 앙즐랭 프렐조카주 등 누벨 당스를 대표하는 안무가들이 그 뒤를 잇는다. 이름만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안무가들부터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신흥 안무가들까지 이제 그들의 작품세계에 빠져들 시간이다.
안무가들의 말⋅말⋅말
안무는 시간입니다. 난 칠십 년 가까이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_모리스 베자르
마릴린 먼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으면 나도 그녀처럼 아름다워질 겁니다. 내 작품은 바보 같고 단순합니다. _제롬 벨
무엇을 정해놓고 안무를 하진 않아요. 줄거리는 관심 없어요. 그저 움직일 뿐이죠. _보리스 샤르마츠
음악이 곧 춤입니다. _안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안무는 재미죠. _필립 드쿠플레
몸이 말을 해야 합니다. _장-클로드 갈로타
춤은 몸을 정의하는 이상적인 수단입니다. _에두아르 록
클래식을 현대적으로 만들기 위해 안무를 하죠. _장-크리스토프 마이요
형태를 바꾸는 것에 대해 집중합니다. _호세 몽탈보
텍스트를 분석하면서 안무에 들어갑니다. _조제프 나주
추상적인 게 싫어요. 현실을 환상적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_롤랑 프티
이 세상의 모든 소재를 춤으로 만듭니다. _앙즐랭 프렐조카주
아름다움엔 관심 없어요.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어떤 동작이 주제에 적합한지만 몰두합니다. _피에르 리갈
테크닉은 잊어야 해요. 완벽한 동작도 중요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동작도 꼭 존재해야 합니다. _로익 투제
책 속에서
피나 바우슈의 작품을 보면서 안무 동작을 분석한다거나 해프닝의 내용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큰 의미가 없다. 그녀가 제안한 여행에 마음을 열고 동참하는 것이 가장 최상의 감상법일 것이다. 바우슈의 여행에는 애틋한 사랑도 있고, 끈적끈적한 애환도 있고, 무엇보다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이 있으니까. _피나 바우슈: 희망으로 실려온 리스본발 훈풍 p.22~23
아무 설명 없이 단지 ‘BEJART’라고만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오히려 프랑스인들이 크게 자부심을 느끼는 혁명 기념에 견줄 만한 그의 명성을 한눈에 알게 해주었으며, 마치 주소나 전화번호 없이 달랑 이름만 적혀 있는 어느 유명인사의 명함을 받아든 것처럼 가슴 설레게 했다. _모리스 베자르 : 혁명의 춤, 베자르 p.34~35
타 장르 예술의 장점을 가져온 매튜 본의 뛰어난 연출은 마임이 적절하게 섞인 연기와 곡예에 가까운 동작들로 더욱 돋보였다. 발레의 기본동작을 교묘하게 일상생활 속의 동작과 섞어 보기 드문 에너지를 폭발시켰는데, 라나와 뤼카의 이인무는 이 점에서 가히 모던발레의 한 레퍼토리로 꼽을 만큼 관능적이면서도 뛰어난 기술을 자랑했다. _매튜 본: 원작보다 더 흥미진진한 현대판 댄스뮤지컬 p.65~66
오 분쯤 지나자 무용수들은 입고 있던 운동복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어수선하게 지켜보고 있던 관객들은, 세 명의 무용수가 티셔츠 하나만을 남기고 속옷까지 모두 벗어던지자 깜짝 놀라 숨을 죽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른 비슷한 작품들에서 보아온 대로, 잠시 후면 다시 의상을 입으리라는 관객의 예상은 완전히 어긋났다. 그 상태 그대로 사십오 분 동안 거친 움직임이 이어졌다. 음악도 조명도 하나 없이 단지 무용수들의 가쁜 숨소리와 바닥을 튕기고 올라오는 소음들과 공중에 매달려 있는 공에서 나오는 빛만이 열기를 더해갔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육체가 뿜어내는 탄탄하고 과격한 테크닉은 압도적이었다. _보리스 샤르마츠: 단순한 호기심인가, 새로운 ‘예술’인가 p.82~83
한국 사람들이 유독 두아토의 작품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아토가 그려 보이는 스페인의 정서가 우리의 그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까. 작가정신이 투철한 두아토의 메시지가 발레 동작과 어우러져 이해하기가 보다 쉽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는 두아토의 춤의 언어가 갖는 유연한 세련미를 흠모하는 것일까. 한 가지 이유를 딱 꼬집어말할 수는 없지만 나초 두아토는 한국인이 뽑은 이 시대 최고의 모던발레 안무가임에 틀림없다. _나초 두아토: 바흐를 녹여낸 열정, 또 한번 우리를 매료시키다 p.114
누벨 당스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춤에 연극적 요소를 깊게 삽입한 ‘테아트르 당세Théâtre Danse’가 그 주된 양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피나 바우슈의 그것과는 다른 안무형식으로, 연극뿐 아니라 영상을 결합한 접근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마기 마랭이 있었다. _마기 마랭: 꿈꾸지 않아도 혁신을 낳는다 p.185~186
무대는 막이 열린 채 관객의 입장을 기다린다. 객석과 가까이, 투명하다고 느낄 정도로 하얀 조명 아래 영원한 잠에 빠져 있는 엔디미온이 보인다. 그리고 어느 사이 관객들 틈에 두 님프가 나타나 반대편 무대에 놓인 과녁을 향해 실제로 활을 쏜다. 활은 정확히 적중한다. 우리는 달의 여신 디아나의 성스러운 숲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 님프들의 군무와 디아나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플라텔의 차가운 듯 우아한 여신의 솔로는 1막의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를 압도한다. _존 뉴마이어: 간결한 구성, 조형미의 극치 p.213
작은 캡슐 안에서 자유자재로 펼쳐 보이는 신체의 리듬, 곡예하듯 유연한 몸놀림, 의자를 이용한 오브제와의 결합, 라이브로 정교하게 짜맞추어진 음향 그리고 그 안에 살아 있는 유머. 1미터도 안되는 높이로 낮아져버린 공간 속에서 미끄러지듯 반복되는 빠른 회전은 극의 절정을 이루었다. 로봇 카메라와의 사투 끝에 로봇의 붉은 눈을 입에 넣은 남자는 기계인간이 되어 끝까지 투쟁한다. 하지만, 결국 틈새 없이 줄어든 공간 사이에서 샌드위치맨이 되어 압사—프레스 당한다. _피에르 리갈: 사각의 캡슐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사투 p.239
작가 소개
지은이 장인주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후 프랑스 유학을 떠나 소르본 대학(파리4대학)에서 무용학 석사, 팡테옹 소르본 대학(파리1대학)에서 미학과 DEA 학위, 박사 학위Doctorat를 취득했다. 파리 국립 오페라발레학교 발레교수 자격증, 프랑스 발레교수 국가학위Diplome d’Etat를 취득했으며, 리스 에 당스리 바로크 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귀국 후 서울대·이화여대·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강의했고,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성남문화재단·국립현대무용단 이사이자 성균관대 겸임교수로 있다.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사람들
1. <댄싱 위드 더 스타> <댄싱 9>을 재밌고 보고, 막 무용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사람
2. 무용 공연을 즐겨봐왔지만, 마땅히 읽을 책을 찾지 못했던 사람
3. 무용평론, 문화평론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
4. 발레, 현대무용 등 취미로 무용을 배우고 있는 사람
5. 어떤 형태로든 무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