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계소식
저자_함수경
경험예술로서 생활과 삶에 밀착한 춤 이야기
『철학을 쓰고 교육을 입고 예술을 신고 춤추다』는 경험 예술로의 춤을 누구나 친근하게 느끼고 즐기면서 예술 자체가 삶에 녹아 있음을 알려주는 춤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교육철학의 실천이란 관점에서 생활 속 무용교육의 사례를 들어 쉽게 전해줄 뿐 아니라 2장과 3장에서는 프래그머티즘 미학과 예술교육으로서의 무용에 관한 깊이 있는 이론을 제시하며 논리적 체계를 제공한다.
이 책은 그동안 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찰나의 예술로 공유하기 어려웠던 일상에서의 춤을 자연스럽게 미적 경험과 교육철학의 실천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면서 춤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고, 자신의 삶을 예술적 경험을 통해 바라보며 잊고 있었던 몸의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나아가 춤이 커뮤니티 댄스 과정에서 공동체 커뮤니케이션의 통합된 상호작용으로 지적경험을 공유하는 즐거움이 된다는 사실도 인식하게 한다.
행복을 이끄는 춤
춤으로 표현하는 세계는 눈으로만 보는 세상과는 달리 피부로 보는 방법과 귀로 들을 수 있는 그림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소리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춤은 감각적 경험과 사고가 통합된 경험예술로 인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으로 나아가게 하는 좌표가 된다.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 자체가 개인주의적으로 파편화된 오늘날, 이러한 좌표를 통한 마음의 길은 몸의 언어로 함께 누리고 공감한다는 점에서 행복을 이끄는 정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삶의 예술로 내 안의 길을 찾는 춤의 본질과 존재 조건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관심과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시도했던 무용교육의 실천에 대한 현장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경험했던 무대공연 그리고 교육현장의 모습을 전문가뿐 아니라 비전문가와 나누며 삶에 무용이 어떠한 의미로 작용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지금의 작업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나의 경험이 무용인지 아닌지 또는 예술인가 아닌가에 대한 우려 섞인 마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용의 섣부른 규정이나 판단 또는 예술의 개념적 정의나 분류 보다는 우리 삶에서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몸에서 비롯되는 미적 경험에 대한 탐구와 사고에 대한 관심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춤이 생생한 예술로 즐거움과 능동적인 감동으로 삶의 예술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누구든 춤으로 내안에 길을 찾을 수 있을 때 춤의 본질과 존재 조건은 무엇인지 질문해본다.
저자 함수경
신라대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미국 Mills College에서 논문 「Long Journey」로 석사학위(M.F.A)를 취득했으며, 경성대학교에서 논문 「프래그머티즘 미학에 근거한 커뮤니티 댄스의 예술교육적 의의」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교육이라는 철학적 맥락에서 몸으로 느끼고 알 수 있도록 커뮤니티 댄스를 통한 예술작업(work of art)을 실천한다. 현재 부산문화재단 감만창의문화촌 입주단체 잉스문화예술교육연구소 대표로 신라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문화예술교육 활동과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 밥북 ● 204쪽, 1만6천원 ● 02)6925-0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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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 춤의 새로운 이해』
저자_제인 데스몬드 외
편역_김수인 김현정
□ 책의 개요
본 편역서는 12편의 논문으로 구성되며, 주제에 따라 I, II, III부로 분류되어 있다. 여기 선정된 논문들은 춤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들을 문화연구의 관점으로 새롭게 이해하는 접근법을 보여준다. 무용학의 역사를 돌아볼 때, 1980년대 이후 나타난 문화연구의 관심사들은 전통적으로 무용 현상의 내부에 집중하던 학계 경향을 무용 현상 외부의 사회·문화·정치·경제 등의 영역으로 확대시키는데 기여하였다.
I부의 논문들은 무용 내적인 개념과 용어들이 더 큰 역사적·사회적 맥락 안에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러한 무용 내적 개념과 용어들이 그것을 발전시킨 주체들, 특히 서양 백인 엘리트의 관점을 은연중에 반영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II부의 논문들은 춤추기라는 현상이 다양한 지리적·문화적 경계를 넘나들 때 관여하는 복잡한 이해관계들을 탐색한다. 여기서 인종,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 등의 정체성 요소들이 정치적으로 작용하면서 암묵적 위계질서를 춤 현상 속에 형성하는 동시에 반영한다.
III부의 논문들은 전통적으로 타자로 인식되었던 동성애, 유색인종, 여성, 대중들의 춤을 다루면서, 그러한 위계에서 발생하는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이용되고 있는지를 논의한다.
이러한 논문들의 모음집으로서 본 편역서는 외국 무용학계의 문화연구 관련 경향을 국내에 소개하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여기 포함된 논문들은 영미권 무용학계에서 주요 텍스트로 인정받는 연구들이다. 문화연구 관련 무용연구를 할 때 기초가 되는 논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무용학계의 경향을 살펴보면, 본 편역서의 논문들이 고려하는 포스트 이론적 관심사가 적용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여기에 본 편역서가 학문적인 자극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실기 위주의 교육을 받아왔던 학생들이 춤 현상을 인문·사회학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갖는데 기초가 될 것이다.
반대로, 문화이론에는 익숙하지만 무용에 대해서는 생소한 인문·사회학자들이 춤 현상을 학문적 관점으로 바라보는데도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논의들은 실제 춤 현장 관계자들과 참여자들이 감각적일 뿐 아니라 지적으로도 심도 있는 무용의 현장 작업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I부 ‘문화연구, 무용학의 새 지평을 열다’에서 4편의 논문은 기존 무용학의 성과와 한계점, 그리고 무용학이 문화연구와 결합될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1장 제인 데스몬드의 “차이를 체현하기”(1993)는 문화연구의 주요 쟁점들을 (예를 들면, 사회 권력, 정체성, 젠더,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차이, 전유, 타자, 상호텍스트성, 문화제국주의, 식민주의 등을) 구체적인 무용 사례들(왈츠, 탱고, 케이크 워크, 사교춤, 힙합 댄스, 라틴 댄스, 중국의 발레, 브라질의 컨템퍼러리 댄스 등)과 연관 지어 재검토하고, 사회 문화적 주요 텍스트로서 무용과 몸을 강조한다.
2장 데스몬드의 “미개척 분야”(2000)는 1990년대 미국의 무용학계가 문화연구의 도입으로 다양하게 발전해 왔음을 언급하면서, 그 가운데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영역들(무용인의 자서전, 무용 단체, 조직, 기관, 아카이브즈, 관객, 중간급 정도의 사람들middlebrow의 춤, 아마추어들의 춤 등)을 발굴해 탐구할 것을 주장한다. 또한 현지조사 및 참여관찰 방법론을 좀 더 활용할 것과 타 학문분야 전문가들과 학제적 연구를 수행할 것을 제안한다.
3장 신시아 노박의 “움직임을 문화로서 바라보기”(1988)는 1980년대 후반까지의 무용학이 움직임 그 자체만 보려는 관점을 가지고 단순하고 묘사적 접근법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움직임을 문화적 현실의 일부로써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한 예시로서 노박은 접촉즉흥의 복잡한 의미를 미국 문화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탐색한다. 구조화된 움직임 시스템으로서 접촉즉흥을 로큰롤, 트위스트, 디스코, 브레이크 댄싱, 프로레슬링, 에어로빅에 대비하면서 노박은 움직임의 특질을 사회적 실천들과 연결시켜 조명한다.
4장 수잔 리 포스터의 “안무와 안무자”(2009)는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안무와 안무자라는 단어의 역사적 용법을 조사하면서 이 개념들이 내포하는 기저의 이데올로기적 유산을 평가한다. 포스터는 안무의 개념이 암묵적으로 특권화하는 개인 저자에 의한 창조적 작업이라는 아이디어가 미국 대학의 학과와 교과과정 조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이론적인 개념과 실제 현장의 문제를 연결 지으면서 포스터는 지금 현재 우리의 무용 실천practice이 내포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유산을 인식하도록 독려한다.
II부 ‘월경越境하는 춤 –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정체성의 정치학’에서 4편의 논문은 국가, 민족, 인종, 문화 경계를 넘나드는 춤에 관여하는 문화연구의 쟁점을 구체적인 작품 사례에서 살펴본다.
5장 데스몬드의 “차이를 춤추기”(1991)는 루스 세인트 데니스의 「라다」(1906)가 인종, 오리엔탈리즘, 섹슈얼리티의 표시들을 백인 중산층 여성의 몸에 연결시키면서 타자의 범주들을 과장되게 보여주고 있고, 욕망의 응축과 이동의 장소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6장 로즈메리 로버츠의 “마오쩌둥 시대의 발레에서 젠더를 공연하기”(2008)는 「홍색낭자군」(1964)에 나타난 젠더 수행에 주목하여 발레란 장르와 문화대혁명 이데올로기와의 복합적 관계를 드러낸다. 「홍색낭자군」은 서양 부르주아 계급의 발레를 전유하면서 기존 발레의 내용과 남녀 움직임을 프롤레타리아적 젠더 평등에 적합하게 바꾸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발레 움직임 관습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어 젠더 위계질서를 영속시키는 모순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7장 야틴 린의 “유연한 대만을 안무하기”(2009)는 클라우드 게이트 댄스 씨어터의 예술감독 린 화이민의 작품들을 변화하는 대만의 정체성과 연관 지어 분석한다. 야틴 린에 따르면,「흰 뱀의 이야기」(1975)는 중국적인 것을 탐색하고 있으며, 「유산」(1978)은 대만의 문화적인 자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봄의 제전, 타이페이, 1984」(1984)는 타이페이가 국제도시화 되는 과정을 성찰하고 있고, 타이치에 영감을 받은 「문 워터」(1998)와 「행초」(2001)는 21세기 세계화 시대 대만을 위한 공간을 표시하고 있다.
8장 재클린 셰 머피의 “아카이브 (안에서) 움직이기”(2009)는 아메리칸 인디언 씨어터 국립 박물관(NMAI)의 라이브 무용 공연이 서구(성경, 아카이브, 현대무용)와 미국 원주민 문화(토착 언어, 구슬세공, 원주민 무용)를 뒤얽히게 만드는 지점임을 인식하고 그 문화적 의미를 탐색한다. NMAI에 포함된 라이브 무용 공연이 관습적 지식 보관 체계로서의 아카이브를 해체한다고 머피는 주장한다. 관람객은 감상하기에 편리하도록 포장된 유물들을 단지 사물화된 대상으로, 지식 수집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관계 맺기를 요구당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시공간적 특수성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글쓰기 방식은 독자가 실제로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간접경험을 제공하고, 무용 지식을 둘러싼 실행관습이 내포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추상적 문제가 바로 지금 여기 나의 문제와 연관됨을 역설한다.
III부 ‘춤추는 몸과 타자 – 섹슈얼리티, 인종, 그리고 권력 담론’에서 4편의 논문은 전통적으로 타자로 인식되었던 동성애, 유색인종, 대중춤, 여성을 다루면서, 이들의 춤추기를 둘러싼 권력 담론에 대해 이야기 한다.
9장 램지 버트의 “즐거움 속에 용해되기”(2001)는 게이 안무가들에 의한 포스트모던 댄스에 집중하면서, 표준적 백인 이성애 섹슈얼리티의 이데올로기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해체한다. 버트에 따르면, 퀴어 남성의 춤추는 몸을 바라보는 것은 관객들의 숨겨진 두려움과 욕망을 드러내기 때문에 칸트가 미학적 판단을 위해 선결조건이라고 말한 무관심성과 객관성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여기에 인종과 젠더의 요소를 더하면서, 버트는 표준적 이성애적 담론이 권력으로 작용하는 지점의 복잡함을 논의한다.
10장 “아프리칸 댄스의 이원적 통일성으로서의 관능성과 섹슈얼리티”(2003)에서 카리아무 웰쉬 아산테는 아프리카 여성의 관능성과 섹슈얼리티를 해석하는 과정에 작동하는 권력의 담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프리칸 댄스 속 여성을 섹슈얼리티와만 연결시키는 서양의 관점을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웰쉬 아산테는 반anti-아프리카적이고 성차별적인 서구유럽의 시각이 춤추는 아프리카 여성을 “성적sexual”이고 “이국적”인 이미지로 굳히는데 기여하였다고 주장한다.
11장 토마스 F. 드프란츠의 “가시화된 검은 비트”(2004)는 일반적으로 이론가들에 의해 무시되어온 흑인 표현 문화의 한 갈래인 힙합을 다루면서, 권력 관계의 불평등, 자기 인식, 운동감각적 재미에 대해 춤추는 흑인 신체를 부각시킨다. 드프란츠는 힙합에 대한 리터러시literacy 없이 외부인의 시점으로 그 춤을 바라보면 내부적 소통적 가치는 사라지고 오락성과 상업성만 남는다고 말한다. 그는 흑인 사회 무용으로서 힙합이 가지고 있는 수행적 제스처와 영성, 정치적 내용을 조명한다.
12장 “안무 저작권의 인종정치학”(2009)에서 안시아 크라우트는 안무 저작권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 기저에서 작동하는 인종정치학의 권력 담론을 탐구한다. 블랙 바텀이라는 대중춤과 「키스 미, 케이트」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사례를 통해, 저작권법이라는 일견 중립적이고 객관적일 것 같은 영역이 어떻게 특권계층의 권력과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를 드러낸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춤추기의 영역이 단순히 물리적 움직임이나 좁은 의미의 미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 담론이 작동하는 문화 연구의 영역임을 확인할 수 있다.
□ 편역자의 말
춤추는 문화연구를 통해 나를 돌아보기-김수인
여기에 실린 여러 저자들이 그러하듯이, 내가 김현정 선생님과 함께 이 책을 기획하게 된 동기도 매우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문화연구와 관련된 예술 사회학, 무용 사회학, 무용 인류학의 과목을 강의하면서 적절한 교재를 만들고자 함이 바로 그것이다. 나의 학생들은 아직까지 무용을 문화로서 보다는 순수예술로서 바라보는데 익숙했고, 관점의 전환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한 학기가 빠듯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춤과 문화연구의 교집합에서 창출될 수 있는 연구의 영역들을 예시한다. 이론적인 논의부터 구체적인 적용까지 아우르고 있어, 춤과 문화연구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와 실제적인 응용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내가 번역을 맡은 부분은 3, 4, 8, 9, 10, 11, 12장이다. 이 중 포스터, 머피, 크라우트의 글은 『세계무용화 하기Worlding Dance』라는 한 책에서 선정되었기 때문에, 세 글 모두 세계무용World Dance이라는 용어와 범주에 대한 성찰을 둘러싼 논의를 언급한다. 이 단어는 발레와 현대무용이 대표하는 예술무용에 속하지 않는 다른 문화권의 춤을 지칭한다. 이 단어에 대한 논의가 내게 주는 시사점은 단순하지 않다. 나는 발레 전공자로서 세계무용이라는 범주의 춤들을 거리가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 하나 있지만, 한국의 무용학자로서 내 문화권의 춤이 세계무용으로 분류되는 직접 관련되는 입장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세계무용이라는 단어가 제 1세계에서 작동하는 방식과 우리나라에서 작동하는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책의 글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단순히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이 아니라, 실제 생활 밀접형 문제의 차원이다.
번역을 하면서 한 가지 고심했던 부분은 영어권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이 한국어권 독자들에게도 흥미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나의 학생들을 돌이켜보면 젠더와 섹슈얼리티,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높았으나, 인종이나 식민주의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아마도 인종적 차별에 대한 경험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종에 대한 민감성은 케케묵은 과거의 유물이 아님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유학 시절 함께 공부하고 한 집에 살았던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동료들은 여전히 분노하고 때로는 방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그리고 그곳에서 소수 인종이었던 나에게 인종은 현재 이곳의 절실한 문제였다. 다문화 시대를 맞은 우리나라 무용학에서도 인종 정치학에 대한 인식 및 연구가 좀 더 증가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문화 관련 춤 현장에 대한 묘사나 설명을 넘어선 문화연구 관점의 후속 연구가 기대된다.
미국 원주민 박물관에 대한 논의는 식민지 역사를 겪은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하게 한다. 식민지화의 피지배 문화 입장에서의 우리의 시각은 어떠한가? 서양 문화와의 뒤섞임 속에서 전통과의 관계, 그 다양한 역학은 우리의 경우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상기시킨다. 한편, 아카이브에 대한 논의는 기록과 수집이라는 전통적 시각과 무엇을 왜 어떻게 기록하고 수집하는가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시각의 차이를 인식하게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예술관련 자료원들이 행하고 있는 구술사 프로젝트들을 위시한 비전통적 형태의 기록 및 수집 방식의 의미와 의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안무 저작권에 관한 논의는 특히 요즘 대중가요의 안무가 저작권 관련 법적 케이스들을 만들어 내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아직까지는 안무 저작권의 치밀하지 못함이나 환경이 열악함을 주로 논의하고 있지만, 거기에 내포된 정치학적 함의를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이 책으로 인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번 『춤추는 여성』(2012)을 번역할 때도 번역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고단한 (그러나 즐거웠다고 이야기하는) 작업이었다. 번역될 글들을 선정할 때 고려 요소 중 하나는 내가 잘 알고 있고, 강의에서도 실제로 사용한 글이다. 그러나 번역의 작업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였다. 당연하게 알고 있는 단어들도 문맥에 따라서 사전을 여러 번 뒤적이며 최적의 번역 표현을 찾으려고 애썼다. 번역과 외래어의 관계도 치열한 고민의 대상이었다. 될 수 있는 한 한국어로 바꿔 쓰려고 노력했지만, 외래어가 가지는 번역되지 않는 특수한 의미가 더 적절할 경우도 많았다. 이것이 번역에 대한 강박증에서 자유로워진 것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언어 식민주의에 나도 모르게 물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또한 몇몇 글들은 다른 문화권의 춤들을 논의하면서 영어 외의 외국어 단어들을 동원하기 때문에 번역의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특수 언어적 정보가 간직되어야 하며, 어느 정도까지 번역 중에 손실loss in translation을 허용할 것인가, 이 두 가지 문제가 번역 과정 중 끊임없이 협상과 타협을 일어나게 했다. 마지막으로 애초에 하나의 책이 아닌 여러 저자의 글을 편집하겠다고 나선 나의 무모함을 생각하니 지금도 아찔하다. 여러 모로 구멍투성이인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독려해주신 김현정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학제간 연구 속에서 춤을 재조명하기 - 김현정
2013년 대전으로 오기 전까지 여러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무용이론 과목들을 강의하면서 교재로 사용했던 것들 일부를 본 편역서에 포함시켰다. 이 논문들은 영미권 무용학계 및 인문사회학계에서 주요 참고문헌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는 학제간 연구 속에서 몸과 춤을 탐구하고자 하는 국내 연구자들에게도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본 편역서는 문화연구란 무엇이며, 문화연구가 춤의 새로운 이해를 어떻게 제공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제공한다. 본인은 1, 2, 5, 6, 7장을 번역했다.
이 가운데 3편의 논문은 제인 데스몬드의 논문이다. 그녀의 논문이 1991, 1993, 2000년도에 각각 출간되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그녀는 무용학의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을 일찍이 주장했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무용전공 출신으로써 현재 인류학, 여성학, 미국학American studies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음은 국내 무용연구자들도 타 학문 분야와 교류하고 인문사회학계로 자신의 진로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문화연구는 우리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겨져 왔던 영역들이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구축된 것임을 드러낸다. 주류/비주류, 중심/주변의 구분에 작동하는 권력을 드러내고 소외된 영역을 재검토한다. 이는 국내 무용학계에서도 소외된 영역이 무엇인지, 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났는지에 대한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국내 무용학계는 주류 무용가와 예술작품 연구, 연대기적 나열과 시기 구분, 춤의 미학적 특성 분석 경향을 지닌다. 현지조사와 참여관찰이란 방법론은 주로 민속춤 영역에 적용되고 있다. 과학적인 객관성이 중시되어 질적 연구의 학문적 가치와 중요성이 폄하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들은 과연 무엇인지, 한국에서 무용이 예술로 자리 잡기까지, 무용학이란 독립된 학과와 학문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맥락을 살펴보는 일은 의미 있을 것이다.
문화연구는 무용학의 영역과 방법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최근 인문학과 예술의 만남을 주제로 한 특강들, 대학원 문화연구 협동과정, 공연학, 예술학 협동과정의 증가는 무용학이 학계에서 고립된 것이 아니라 학계의 중심에서 몸과 무용의 중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로즈메리 로버츠의 중국 발레에 대한 연구는 한국적 발레를 재검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서양에 기원을 둔 발레가 한국의 문화, 정서, 움직임과 결합되어 ‘한국적 발레’란 혼성된 장르로 재창출될 때 관여하는 이론적 쟁점을 탐구하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야틴 린의 대만의 컨템퍼러리 댄스에 대한 논의는 아시아인으로서 자문화의 춤, 특히 아시아의 컨템퍼러리 댄스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국내 대학교 무용학과 교과과정은 컨템퍼러리 댄스를 주로 서양의 사례에 초점을 두어 ‘서양무용사’ 분야에서 다루고 있다.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에 대한 연구 또는 교과목이 소홀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시대 서양 무용인들과 작품에 대한 연구가 동시대 한국 무용인들과 작품에 대한 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서양/동양, 중심/주변, 우월/열등의 이분법이 관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문화연구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국내 무용인들의 사고방식과 무용학계의 현실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 편역서를 기획하고, 논문 목록을 선정하고, 번역하고, 책으로 출간되기까지 약 2년이 걸렸다. 여러 곳에 실린 논문들을 한 곳에 모아 편역서로 출간하는 것은 책 한권을 번역하는 것보다 몇 배의 수고와 노력을 필요로 했다. 또한 번역은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 독자들을 동시에 고려한 두 문화권의 매개자란 책임감을 요구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원문의 취지와 뜻을 최대한 살리는 범위 내에서 직역과 의역을 병행했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예리한 지적과 조언을 해 주신 김수인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 편역자 소개
김수인: 이화여자대학교와 동대학원 무용과에서 석사를 마친 후 Temple University에서 Ph.D.in Dance를 취득하였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 다
김현정: 이화여자대학교와 동대학원 무용과를 졸업한 뒤, UC Riverside에서 Ph.D.in Dance History and Theory를 취득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무용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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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 397쪽, 2만원 ● 대표전화 02)760-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