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계소식

신간안내_ 뮤지컬 사회학
압축 성장 한국 뮤지컬계 속살 까칠한 기자가 까칠하게 탐구
2014.6.1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중앙선데이 2014-05-25 보도



2010년 10월 28일. ‘조승우 뮤지컬 출연료 회당 1800만원’이란 중앙일보 기사가 뜨자 뮤지컬계는 발칵 뒤집혔다. 그동안 쉬쉬하며 뜬소문만 무성하던 스타의 개런티 문제를 떡 하니 까발리니 업계로선 뜨악했지만 뮤지컬 팬들로선 가려운 곳을 콕 찍어 긁어주는 속 시원한 기사였다.

『뮤지컬 사회학』은 문제의 기사를 쓴 최민우 기자가 지난 8년 동안 바라본 한국 뮤지컬 바닥을 딱 그 기사처럼 성역 없이 파헤친 책이다. 걸작 뮤지컬을 텍스트 삼아 작품 비평과 창작진을 소개한 책은 많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무대에 머물지 않는다. 현장을 발로 뛰며 특유의 ‘까칠한’ 영혼으로 짚어낸 한국 뮤지컬판의 현실적 문제들을 터놓고 얘기해보자 제안한다. 제목 그대로 뮤지컬 현상을 통해 바라본 한국인론, 한국사회론이다.

한국 뮤지컬계는 워낙 독특하다. 본고장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는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와 조용히 유지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매년 신작 150편을 쏟아내며 20%씩 성장 중이다. 해외에서 신작이 나오면 가장 발 빠르게 들여오지만, 성공한 창작 뮤지컬은 거의 없다. 영화와 드라마, 대중음악이 90년대 킬러콘텐트를 탄생시키며 우리 색깔을 내기 시작했지만 뮤지컬은 아직 멀었단 얘기다.

그뿐 아니다. 한국은 다른 문화콘텐트에 비해 뮤지컬 티켓의 체감가격이 월등히 비싸다. 유독 한국에서만 남자 주인공이 네댓 명이고, 20·30대 여성 관객이 80%에 이른다. 전 세계에서 대박난 ‘라이온킹’은 한국에서만 망했고, 원산지에서 그저 그랬던 ‘지킬 앤 하이드’는 또 한국에서만 대박이 났다. 왜일까.

이런 의문들에 그간 답을 찾지 않았던 것은 뮤지컬을 텍스트로만 바라볼 뿐 관객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관객에게 시선을 돌린 이유는 명확하다. 아무리 훌륭한 텍스트라도 관객의 정서와 생활 패턴을 무시한 채 공연된다면 외면받게 된다. 뮤지컬은 영화처럼 수백 개 극장에서 불특정다수를 향해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곳의 공연장에서 예측가능한 집단을 타겟 삼은 특별한 대중문화이기 때문이다.

‘지킬 앤 하이드’의 성공요인을 강남 좌파 인기와 현세주의에서 찾고, 명품 뮤지컬 ‘미스 사이공’ 2010시즌의 실패 원인을 ‘강북 문화시설’ 충무아트홀의 품격에서 찾는 것은 ‘뮤지컬 사회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아가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충무아트홀이 유럽 뮤지컬이라는 틈새시장을 개척해 정체성과 업계 영향력까지 확보했다는 분석도 무릎을 치게 한다.

이 책의 백미는 마지막 장, 조승우와 김준수의 개런티 차이로 본 뮤지컬 팬덤의 민낯이다. 두 스타의 팬층은 뮤지컬 매니어와 아이돌 ‘빠순이’로 극명히 갈린다. 그들의 관람 패턴의 차이가 개런티를 결정하는 것은 차라리 합리적이다. 그럼 왜 많은 아이돌 중 유독 김준수만 전석 매진을 보장받는가. 엔터테인먼트 절대강자 SM으로부터 박해받는 김준수 일병 구하기가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이다. 배타성과 세력화로 정치판처럼 변질된 대한민국 팬덤의 현주소다.

하지만 현재 한국 뮤지컬계를 지탱하는 힘이 팬덤임을 부인할 순 없다. 지난 연말 공연된 ‘디셈버’는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이 무관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강력한 팬덤만 유치하면 대박이 보장되는 현실에 토를 달려면 누구든 신상털기를 당할 각오부터 다져야 한다.

그러나 특정인의 팬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관행은 장기적으로 뮤지컬 산업의 지속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팬덤의 호주머니를 터는 단세포적 호객행위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시장이 아니라도 압축성장으로 기형화된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우리는 질리도록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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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