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모든컴퍼니 〈모내기〉
생애 첫 안무 시작 젊은 예술가들의 ‘모심기’ 현장
김혜라_춤비평가

모든컴퍼니의 예술감독인 김모든이 기획한 신진안무가 발굴 육성 프로젝트 〈모내기〉(5.16.서강대메리홀) 공연현장을 찾았다. 품질 좋은 벼로 자라기 위해 필요한 ‘모내기’ 과정처럼, 김모든이 신진을 발굴하여 공연 기회를 마련한 장이다. 나로서는 안무가로 성장중인 자신의 작업이 아닌 신진들의 생애 첫 작품을 지원하려는 의도가 궁금한 부분이었다. 동문무용단이나 협회에서나 할만한 일이나 독립무용단이 자발적으로 후배들을 양성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한 점이 주목되었다. 비교적 굵직한 사업(공연예술창작산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경기예술 기초예술창작지원, 온라인미디어아트체인지업 등)에 선정되어 유망한 창작자로 입지를 다진 그가 안무가에서 프로듀서로 변화를 시도한 점이 말이다.

김모든은 펜싱과 클라이밍 같은 운동의 원리를 움직임과 접목해서 일상의 한계점에 도전하는 현대인의 자화상(〈Piste〉〈On the Rock〉)을 선보였다. 그는 스포츠의 물리적 특성을 춤으로 치환해 표현의 확장을 모색했고, 육제적으로 극한에 도달하는 서사로 치열한 삶의 단면을 환기하는 작업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댄스필름이나 장소특정형 작업을 하며 극장 밖으로 시선을 옮겼고, 국제교류와 미디어아트나 문화예술교육까지 컴퍼니의 지향점 답게 ‘모든’ 예술을 수용하며 융합하려는 정체성을 실천해 오고 있다. 〈모내기〉작업도 나의 성장만이 아니라 후배들과 함께 모험을 해보자는 시도이다.



 

김도현 〈바로〉 ⓒwavefilm/모든컴퍼니



〈모내기〉에 선정된 4명의 안무가는 김도현, 이예닮, 정나원, 윤희섭이다. 김도현의 〈바로〉는 스타킹을 이용해 4명의 무용수들이 연결된 관계를 드러낸다. 피부의 연장으로도 보이고, 얽히고 설킨 기억이나 감정의 여러 결을 흥미롭게 형상화했다. 반면 첫 장면에 아이를 업고 등장해 전체 장면의 실마리를 던지는 것 같으나, 끝내 어떤 상관관계 인지 알 수가 없었다. 관객과도 스타킹을 매개로 연결 고리를 맺어 소통하려 하나 단서가 막연해 전반적으로 모호한 전개였다.





이예닮 〈주름 속의 집〉 ⓒwavefilm/모든컴퍼니



이예닮의 〈주름 속의 집〉은 텅 빈 정사각형 프레임을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집과 온갖 감정으로 쌓인 몸이 또 하나의 집이라는 양가적인 시선으로 접근한다. 이를 안무가는 주름이라 말하며 물리적인 형태의 프레임 집과 몸의 역사로 기억하는 집 사이와 경계를 오가는 이중적인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오브제 활용이나 공간연출이 첫 작업이라 하기엔 상당히 능숙했다.





정나원 〈마포구 백범로 35〉 ⓒwavefilm/모든컴퍼니



정나원의 〈마포구 백범로 35〉는 서강대 메리홀의 현주소이다. 공연을 하는 메리홀 바닥 아래로 파고들어 탐색하는 수행성이 짙은 작업이다. 무용수는 과감하고 일관되게 시종일관 구르며 바닥을 온 몸으로 흡수한다. 몸의 부위와 지면이 만나 서로 발생하는 에너지가 고조되면 바닥이란 공간이 새롭게 인지되고 나아가 일상의 뿌리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지속적으로 바닥이란 존재적 기반을 깊숙하게 탐구하면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





윤희섭 〈동물원〉 ⓒwavefilm/모든컴퍼니



〈동물원〉은 안무경험이 있는 윤희섭의 작업이다. 무대는 동물원이 되고 동물인 무용수를 보는 행위와 보여지는 경계를 드러낸다. SNS로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요즈음의 세상이 어쩌면 거대한 동물원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의도는 의미심장하나 관객을 참여시키는 방식이 상투적인 면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모던한 모든 모험'사업에서 라임을 맞춘 컨셉이나 〈모내기〉 제목에서 풍기는 파릇한 생기로 공동의 삶을 공유하려는 시도자체는 발랄하다. 꿈만 있고 막연한 예비 안무가들에게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 의미가 있고, 김모든 자신도 예비 프로듀서로서 발을 디딘 설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첫 발을 딛는 모심기 현장인 만큼 수확의 기쁨을 맞보도록 정진하길 바란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새로 시작하는 도전은 과정 자체가 ‘모든’ 의미 있지 않는가! 예술가를 양성하는 것이 학교나 기관 외에도 가능하다는 단체의 취지와 행보를 지켜보자.

〈모내기〉는 예비예술인 발굴육성 2년차 사업(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다. '모던한 모든 모험'의 일환으로 사실 공연 자체보다 이를 수행해 온 과정에 관심이 더욱 갔다, 작년(김모든, 김판선, 김재덕, 임진호)에 이어 올해도 움직임 워크숍(이준욱, 장혜림, 김호연, 이정인,〈너나 춤춰〉)으로 안무 메소드를 나눴다. 주변의 동료 안무가, 기획자, 독립프로듀서와 연계시켜 협력한 점도 4명의 창작자들에겐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6월에는 젊은 기획자들(신재윤, 김혜연, 이보휘,〈너와 나의 모든 담론〉)과 강연도 앞두고 있고, 11월에는 신인무용수 최초공연(〈잠재력〉)을 앞두고 지금부터 트레이닝도 하고 있다. 일련의 모든 사업을 댄스필름으로 제작해서(〈지속하는 모험〉)아카이빙도 할 예정이라니 숨가쁜 일정이다. 다만 첫 술에 배부르진 않지만 공연이 의도만큼 충족되었는 지와 기존의 넘쳐나는 기획들과 차별점을 어떻게 둘 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더불어 지속가능성(지원에 미선정 될 경우)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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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인터뷰_ 모든컴퍼니 김모든


김혜라: 안무가에서 프로듀서로 변신을 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궁금하다.
김모든: 저의 경우 해마다 지원사업 신청서를 직접 작성하는 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작과정 전체를 이해하게 된 것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민간 무용단체의 역할이 공연 이외에도 후배세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이 어디까지 인지 고민중이었다. 저 역시 동문단체를 거쳐 기본기를 배우고 난 후에는 외부로 나와 무용수와 안무가로서 도전하며 기회를 얻고 깨닫는 시간을 반복해왔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무용 예술현장을 지키는 한 명의 일원으로서 선순환 될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일 지, 작은 변화를 위한 시작을 전하고 싶었다.

예비 창작자들의 첫 무대를 열어 준 것이 의미가 있어 보인다. 본인의 첫 경험, 첫 무대에 대한 아쉬움들이 투영된 것인가?
맞다. 저의 경우 2006년 졸업 작품 이후 이듬해 첫 단편 안무작을 발표했다, 2009년 소극장 무대로 들어오기까지 거리, 복합문화 공간, 스튜디오 등을 전전하면서 다양한 실험들을 경험했다. 따라서 첫 진입을 시작하는 신진 안무가들이 자신이 좋아서 하는 무용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인식개선과 방향을 선배로서 제안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단순히 지원사업에 선정되어서 한 건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한다면 지향하는 바가 있는가?
저희 단체는 한 해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서 여러 지원사업들을 상세히 살펴보고 결정을 한다. 해마다 사업 명칭과 성격이 조금씩 바뀌는 지원시장 안에서 다양한 유형의 지원서 작성을 한다, 저희가 지키는 원칙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 주제에 대해 알고 있거나 사전 준비가 되어 있는 내용에만 집중한다. 이번 예비예술인지원사업은 무용수와 안무가로서 현장에서의 경험들을 복기하면서 사업의 대상인 예비예술인들이 진입하기 전에 느끼는 고충들을 저와 주변 동료들의 경험 사례들을 근거로 단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하게 되었다.
올해로 2년을 맞이하게 되면서 오디션과 움직임워크숍, 강연 프로그램 등의 전체 지원자 수가 3배가 넘게 늘어나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졸업 이후에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 자신의 직업적 꿈을 금세 포기하는 사례를 수 차례 보게 되지만, 그럼에도 예상보다 독립적인 예술가로서 도전을 원하는 수요도 여전히 많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현재로선 지원금을 못 받더라도 규모를 축소해서라도 자체적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지금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용계의 새로운 흐름과 선례로 이어가고 싶다.

첫 무대를 올린 창작자들은 어떤 소감을 하던가?
이번 〈모내기〉(모든 모험은 내가 스스로 기회를 만든다)의 신진 안무가 4명 중 3명은 데뷔작 무대였다. 이들 모두 공연후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본인의 작품을 더 잘 만들고 싶은 마음과 함께 실제 많은 관객을 만나보니 책임감이 느껴졌다고 한다. 또한 첫 공연을 올린 상기된 표정으로 창피함과 설레는 감정이 교차하며, 벌써 다음 작품을 준비할 계획을 내비쳤다.
이번 공연을 위해 팀마다 200만원의 제작지원금을 지원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습실, 작곡비, 출연료 등 각 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감사 인사도 받았다. 이외에도 각자가 상상했던 무대를 실험할 수 있도록 제작진의 연습 참관과 멘토링 과정이 이들에게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김모든 프로듀싱만의 차별점은?
각 프로그램의 타이틀과 콘셉트 등 전체를 기획한 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지원사업의 구조적인 현실을 감안할 때, 사업 선정 이후에 운영을 대행할 기획 실무자를 섭외하게 된다. 이 경우 참여도와 이해도에서 실무자와의 이견들을 종종 겪어 왔다. 아무래도 사업전체를 파악해야 하는 점에서 저는 현직 안무가로 무용수로 활동한 점과 전체적인 현장의 운영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기획자와 차별점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저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역량을 갖춘 많은 독립무용단들이 각자만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선순환 되는 미래를 함께 그려야 한다고 믿는다.

김혜라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 <춤웹진>편집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2024. 6.
사진제공_wavefilm, 모든컴퍼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