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공동체의 춤 신명천지 마당굿 5
마당극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
연출이야기
채희완_춤비평가

어둔 동굴 속, ‘노래’가 한줄기 빛이었다,
무애가무행을 행할 때까지


한밤 중에 목말라 두 손으로 떠마신 달디단 물,
신새벽 깨어나니 해골 바가지에 썩어 문드러진 물,
심하게 토해내고 격렬한 몸반응으로 크게 깨치니,
물은 같은 물인데 마음 먹기 달린 것인가.

당나라 유학길을 접고 의상대사와 헤어져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 44살 원효스님의 오도송입니다.
“마음이 일어남에 온갖 것이 생겨나고
마음이 없어지니 토감(썩은 물)과 고분(고운 물)이 둘이 아니다.
삼계가 오직 한 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인식이니,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구하랴.

이리해서 마당극 제목을 “신새벽(원효),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라고 정하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배움의 길을 떠나시는 불혹 나이 원효스님의 뒷모습을 그려봅니다.



 



1996년 5월 17일 경주 분황사 앞 황룡사지 야외무대에서 〈원효문예대제전〉이란 큰 마당판으로 스님을 처음 뵈었고, 이듬해 5월 5~6일 경주역 앞마당을 비롯한 경주 길거리에서 스님의 탈을 앞세우고 뵈었습니다. 1996년 10월 2~13일 서울 두레마당에서도 뵈었고, 몇 해 지나 부산 영도 다리밑 태양극장에서도 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20여년 지난 오늘 6월 27일, 부산 극단 자갈치의 〈신명천지 소극장〉에서 찾아뵙니다. 마당굿운동 50년을 기념하는 자리입니다. 출연하는 이들은 부산 극단 자갈치 사람들이 중심이고, 처음 같이 하던 서울의 놀이패 한두레는 뒷일 쪽으로 응원합니다.

 





 



내용은 고즈녁한 경주 교외 산골 산사에 사는 7살 선재가 자신이 사는 절집으로 소풍오는 날에 사고친 것으로 별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 소풍 행사의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예정된 ‘스님과의 무애가무’는 이번에도 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원효스님의 행적을 뒤쭟으려는 우리는 천 3백년 전 천촌만락을 누비며 거리에서 저자에서 떨거지병신춤으로 없이 사는 이들에게 부처님을 만나게 한 ‘무애가무행’을 행하는 것이 마당극하는 목표입니다. 원효스님과 같이하는 마당극은 그래서 머지않아 2탄, 3탄을 준비해야한다고 다짐하는 것이지요.

 





 



다음은 27년 전 서울두레마당에서 올릴 때 쓴 연출이야기입니다. 당시 마음의 떨림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원효스님을 어떻게 뵈옵나 싶었는데, 돌아가신지 꼭 1317년 만에 뵈옵는다.
어떻게 이렇게 뵈옵나...
원효스님은 거대하시다
한국 불교 사상계뿐아니라, 이 땅의 창조적 사상가로서 으뜸이시다.
일심(一心) 화쟁(和諍), 회통(會通),무애(無碍)
아 감히 어찌 접근하랴.
원효스님의 말씀과 행적을 더듬더듬, 더듬어 가면서
우리는 어둔 밤길을 홀로 걸어가시는, 번민하는 당대지성인의 뒷모습을 보았다.
우리는 대덕 고승으로서의 원효스님임을 아예 먼저 포기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몸을 낮추시고 떨거지 광대길을 너울.
춤추며 가시는 춤꾼의 뒷모습을 아련히 그려 보았다.
민중속으로, 없이 사는 사람과 더불어, 스스로 민중으로 살아가는 초라한 뒷모습에서
우리는 광대의 길, 오늘 이땅의 진정한 예술가상을 그려 보았다.
무애가무행ㅡ바닥의 것이 거룩함을 일깨우는 다함없는 구도의 길,
작품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서툰 발길로 신새벽에 떠나는 배움의 길이었다.
용맹정진을 다하였는가. 스스로 부끄럽다.
고즈넉한 어느 산골의 절집과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내세울 것 없는 이야기를 구태여 애써 찾아본다.
나를 보내신 님을 찾아,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면 다시 또 떠나겠다는
어린 선재의 마음 씀씀이를 넌지시 짚어 본다.
그땐 선재야, 우리들하고 같이 떠나자...
우리는 등장인물마다, 같이 자리한 관중마다 모두가 원효임을 깨달아 보려 하였다.
풀릴 길 없이 깜깜한 동굴 속에서 우리는 최태현 선생의 신심 깊은 '노래' 를 부르며
작품구성의 가느다란 빛을 찾았다.
오로지 그 덕분이다.
이번 공연은 신새벽 배움의 길을 찾아나선 그' 첫 발걸음일 뿐,
이제는 혼적도, 자취도 없는 원효스님의 무애가무행을
어설픈 몸으로나마 일상생활에서 제대로 수행해낼 그 날은 언제이련가.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2024. 7.
사진제공_채희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