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브뤼셀로 떠나는 직행열차.
처음 밟아보는 네덜란드인데 수도 암스테르담 땅에 엎드려 키스도 못하고 우왕좌왕 허둥대다 타야 할 열차는 놓치고 시간만 때우다 스키폴공항에서 벨기에 브뤼셀로 향하는 완행같은 직행열차에 오르자마자 트렁크 짐짝처럼 객실에 꼿꼿이 앉았다. 거의 12시간 비행 끝에 열차를 또 타니 피곤이 몰려왔지만 쉽게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오래전 아비뇽으로 향하던 TGV에서 70L되는 대형 배낭을 통째로 도난 당한 적이 있어서 유럽 자체는 경계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두어 차례 시도 끝에 성사된 이번 유럽 3개국 협력즉흥공연 투어는 색다른 기대와 함께 시작되었다. 일반적인 공연은 준비사항이 많고 체크할 일도 많은데 이건 뭐 천국 아닌가. 즉흥공연은 준비하면 준비할수록 망가지기 때문이다. 다만 풀타임으로 뛰어다닐 체력만 쌓고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이번 즉흥공연 투어를 위해서 필자는 미리 한여름에 태백 한달살기를 실행하며 그 근처 산들을 도장깨기 하듯 섭렵하면서 체력을 비축해놨다.
벨기에는 유럽에서도 현대무용이 강한 나라이다. 빔 반데키부스, 안나 테라사 드키어메커, 쟝 파브르 등등 거장들은 다 여기서 활동했다. 어떠한 풍경에서 이렇게 색다른 예술가가 나왔는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기후일까. 아니면 지리적 영향?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근데 그것이 궁금하다. 이런 연유로 벨기에에 무의식적 동경이 있었나 보다. 아주 오래전 유럽 연수 중에 P.A.R.T.S.에 안나 테레사 드키어메커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최종 4차 프리토킹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바로 베를린으로 떠났기에 이 곳에서의 도시 풍경은 공항과 기차, 그리고 트램에서 본 스치는 풍경이 내 머리 속 기억창고에 저장된 전부였다. 그래도 전체적인 도시 풍경은 다소 딱딱하고 건조하다고 느꼈다. 이번 즉흥투어로 다시 방문했을 때도 비슷할 거라 느꼈는데 가장 번화한 센트럴로 오니 사뭇 또 다른 풍경을 안겨주었다. 역시 중심지인 그랑플라스는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분위기가 고풍스러워 좀 좋았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대학 졸업식을 시청 앞에서 진행하는 진귀한 풍경에 문화쇼크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처럼 한두 시간에 후딱 끝내는 것 하고는 판이하게 달라서 의아했다. 무슨 축제 분위기였다. 유럽은 성당이나 플라스 그리고 시청같은 건물이 그 위용과 건축양식의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눈이 행복해지는데 전통적 포맷은 유지하면서 현대적으로 짓는 건물은 왠지 모르게 차갑고 드라이하다. 파리와 달리 이 곳 브뤼셀은 중심지에 중요 명소만 옛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고 그 외에는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크기의 용도 제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관성 없는 우리나라 풍경하고는 다르다. 하지만 건조한 느낌이다. 북유럽에 가까운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이틀을 잠 못 자고 도착한 당일, 이 곳 브뤼셀에서 첫 즉흥공연에 임해야 해서 몰골이 말이 아닌 상태를 감추지 못하고 플라스 광장에서 첫 즉흥공연의 서막을 올리는 무용퍼포머들이 다 모였다. 그러고보니 좀 드라마틱하다. 서울과 제주 국제즉흥춤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프로듀서 장광열 선생, 제주살이를 시작한 남정호 선생, 즉흥에 진심인 김원 선생과 필자를 스키폴 공항에서 픽업한 임스테르담의 이미리 선생. 그리고 우리가 이 곳 브뤼셀에 도착하기 전, 뒤셀도르프에서 기차로 미리 와있던 김윤정 선생 그리고 여기의 호스트이자 협업댄서로 Sandie Brischler와 그의 동행인 Charlotte Pauwelyn. 광장에 다 모이니 무슨 어벤져스 즉흥팀들 같았다. 브뤼셀을 기반으로 즉흥퍼포먼스와 미술, 비주얼퍼포먼스 활동을 하는 샌디가 근처에 있는 자신의 작업공간 Vorte Creativ 스튜디오로 우리를 인도했다. 기다랗고 천고가 꽤 높은 매력적인 스튜디오.
커다란 양탄자를 길게 늘려붙여 춤출 공간을 만들고 서로 몸을 풀면서 서로를 탐색한다. 몸 푸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의 움직임에 대한 질감을 상상할 수 있다. 어떻게 조화를 만들어 갈지 모종의 무의식적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는 줄 모른다. 물론 의도하는 계획은 없다. 즉흥은 의도가 들어가는 순간 처참히 깨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변화무쌍 변화에 순응, 혹은 역행을 즐기면서 유희하면 그 뿐이다.
정도의 차이일 수 있지만 개인이든 집단(조직)이든 수행하고 퍼포먼스의 성격에 따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나 시간과 공간을 오거나이즈하는 관념(혹은 개념)이 좀 다른 것 같다. 그것은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위한 절차이든 실제 퍼포먼스 안의 진행되는 내용의 접점을 살펴보면 엇비슷하게 유추할 수 있다.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에 대한 다양성에 흥미를 유발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대부분은 시간과 공간을 대하는 방식이 원칙과 배려로 인한 작더라도 자기희생에 익숙하다. 하지만 여기 유럽피언은 의외로 느슨하다. 서로의 사정에 따라 가변이 쉽게 일어난다. 여지없이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관념은 쉽게 무너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이라든지 참여자의 변동이라든지가 그 예이다. 오히려 산업화 이전의 한국사람들의 성향과 같다. 자연스러운 것에 더 익숙해져 있다고나 할까. 아닌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활패턴이 그렇게 된 것 같다. 예상했던 뮤지션들의 구성은 현장에서 흥미롭게도 뒤바뀌어 있었다. 색스폰 대신 더블베이스와 바순이라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악기 구성으로, 하지만 이런 급변은 신선한 만남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첫 즉흥공연이었다. 붉은색 양탄자 위에서 펼쳐진 즉흥 향연.
드디어 다시 돌아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참 많은 일이 일어난 하루였다.
암스테르담의 수로가 아름답다고 하여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 길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지만 아침햇살을 쫓아가다 보니 수로를 만났고 다리 위에서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저 멀리 시선의 끝점에 성당이 눈에 걸려 운치가 풍미를 더해 주었다. 암스테르담이 어떤 도시인가. 세계의 젊은이가 다 모이는 곳이다. 일탈의 자유가 보장되니 주말이면 음악과 춤이 연기처럼 타오르는 곳이다. 토욜 밤 젊음을 불태우는 환락의 소음이 멀어져 가는 만큼 일욜 아침의 성당의 종소리는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좁은 골목 사이로 파란 하늘이 먹구름을 떠받치고 있는 곳을 들어서니 포크와 나이프 소리가 무성극처럼 들려온다. 마침 멤버들과 브런치를 하기로 했는데 눈여겨 봐두었다. 아침부터 내부는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몇 미터 더 걸어 나오니 골목 모퉁이에 모던한 인테리어의 팬케익 브런치집이 있다. 아침부터 줄서서 먹는 곳이라니…. . 오호라! 여기도 핫플이군!
멤버들과 그나마 회전률이 빠를 것 같은 팬케익집에서 줄을 섰다. 40분을 기다렸다. 그 동안 강한 바람과 함께 소나기가 오더니 모두를 좀비가 되어 홀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을 뚫어지라 바라본다. “이것들아! 그만 쳐먹고 빨랑 나오시지~! 안 그러면 창문 깨고 난동을 부릴거야~!” 거의 이런 기세다. 어느덧 비에 젖은 새앙쥐가 된 일행들은 자리가 생기자 앉자마자 주문완료. 기다림 끝에 메이플시럽과 함께 나온 팬케익이 종로 빈대떡처럼 아담한 사이즈로 나올 줄이야. 넓적하고 얇은 판은 덧치 팬케익이라고 주문해야 했었다고… .기다린 시간이 허탈해지며 동공이 풀린다.
암튼 오늘 첫 일정은 교외 스튜디오에서 월욜 화욜 공연팀과 합동 연습을 하는 자리이다. Utrecht 라는 도시에서.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연습이 연습이 아니라, 또다른 공연처럼 흘러갔다. 거의 완벽한 퍼포먼스가 이루어졌다. 연습실 주인장 Wilbert는 씨어터적인 요소와 오브제를 다루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은연중 키가 큰 Iris는 은근 필자와 앙상블이 뛰어났다. 한국에도 초청받은 적 있는 Dorit과 Maria는 에너지와 순발력 있는 변화에 빠르고 표현력이 다양했다. 암스테르담의 이틀간의 즉흥공연이 기대되는 연습게임. 이 자체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흐뭇한 하루였다.
드디어 암스테르담에서 출정의 깃발을 올렸다.
어제 비바람 맞으며 브런치 팬케익을 30~40분 기다린 덕에 감기가 단단히 걸렸다. 어제 저녁에 초대한 케이티 덕선생의 즉흥제안으로 오전에 몸을 풀 겸, 기꺼이 선생의 워크숍에 응했다. 잊고 있었던 가장 근원적인 몸의 움직임과 시선이 흐르는, 그 시선이 접촉하는 기억의 흐름이 그의 모티베이션으로 몸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 같았다.
오후에 극장으로 공간을 점검하고 여유롭게 일행들과 수다를 떨며 공연을 준비한다. 이런 시간들이 감사하다. 내 생애의 후회 없는 선택은 예술가로서의 길이다. 케이티 선생 모습을 함께하고 있는 멤버들에게도 발견할 수 있다. 그래 춤을 추는 동안 살아 있음을. 그것이 나의 일상이라는 점이 감사하다.
암스테르담의 고풍스런 Splendor 극장에서의 첫 공연은 당연히 성황리에 끝냈다. 여기는 즉흥무용가뿐만 아니라, 즉흥 연주가들도 프로임을 느낄 수 있다. 음악이 춤을 추게 한다. 서로가 반응하고 교감하고 이질적으로 흩어졌다 다시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변주를 과감하게 들어낸다. 관객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즉흥적 유도에 피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참여하여 즐긴다. 어제 연습게임에서 탐색전을 펼친 K-4인방 무용가들도 제대로 실력을 보여줬다. 슬슬 물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 후, 오늘의 참여자들과 간단한 알콜로 담소를 나누고 내일 암스테르담의 막공을 위하여 밤공기를 가르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그 자체로 아름답고 황홀한 야경에 마음이 뒤숭숭해지기까지 한다. 암스테르담은 자유분방함이 넘쳐 나서 곳곳에 아슬아슬함이 있지만 그 경계선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길을 지날 때마다 갑자기 날아들어오는 마리화나 냄새라던지 길거리에서 밤새 젊은이들이 발산한 에너지로 호텔에서 새벽잠을 설치기도 하고 어제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없어진 홍등가를 지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질서해 보이는 듯한 풍경 속에서도 서로 선을 지키는 질서가 있음을 느낀다. 그러니 이러한 이색적인 풍경이 유지되는 것 같다. 특히 아침마다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는 밤새 타락한 영생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듯하다.
암스테르담 마지막 일정.
자전거가 사람 수보다 많고, 하루 평균 25개의 공연이 열리는 유럽에서 가장 힙한 도시, 암스테르담. 바닷가에 둑을 쌓아 땅을 매립해서 그 위에 도시를 지었기에 이 곳엔 유독 수로가 많다. 수로는 나무가지 심볼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자동차도로는 일방통행길이 많아서 뺑뺑 돌아 가는 경우가 많아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자전거이다. 이 도시를 짧은 시간에 빨리 훑어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배를 타고 수로를 따라 유유자적하는 방법이다.
오전에 고흐박물관을 방문하려 했으나 워낙 일찍 입장 예매가 마감되어 붕 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수로여행을 택했다. 길을 걷다가도 장식이 화려한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역시나 배를 타고 둘러봐도 고건물들의 장식들이 눈에 띄었다. 이 말은 곧 이 도시가 얼마나 융성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이다. 돈이 많은 도시는 장식이 화려하고 건물들이 입체적이다. 그 만큼 사람의 손이 많이 가고 돈이 들어갔다는 반증이 아닐까. 제국주의 초기 네덜란드는 조선술과 항해술이 발달되어 전세계를 휘젓고 다녔으니 한때의 위상을 이 도시에서도 알아 볼 수 있다.
오늘 마지막 즉흥공연은 두 번 다시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퍼포머들의 순간 집중력과 기치, 앙상블을 이끌어 내어 통쾌한 퍼포먼스가 되었다. 관객의 반응을 보면 그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새롭게 조인한 도리이와 마리아는 네덜란드에서 알아주는 즉흥 천재이다. 그들이 쏟아내는 에너지와 한국팀의 운영 기교가 공연을 리드하며 주거니받거니 하며 예상하지 못한 주옥같은 장면을 연출해 내었다. 뮤지션들이 즉흥연주를 처음 참여한 사람들이라 행여하는 염려가 있었으나, 그들의 실력을 미리 간파한 현지 코디네이터 미리 쌤의 촉이 적중했다. 절제와 변화에서 음악도 한 몫 해냈다.
이제 마지막 여정이 몽펠리에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번 여정은 정말 환타스틱 그 자체이다. 5개의 서로 다른 극장과 2개의 엑스트라 스튜디오에서 서로 다른 무용수와 뮤지션이 매번 달라지면서 새로운 양질의 퍼포먼스를 구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잊을 수 없는 경험과 추억을 남기고 있다. 유종의 미를 위하여 앞으로 전진~!!
여독이 쌓일 걸까.
연속되는 공연을 치르러 계속 장소를 이동하다 보니, 쉽게 지쳐 나가 떨어진다. 그래도 몽펠리에의 중심지를 왔다갔다 하면 많은 위안을 받는다. 파리, 아비뇽만큼 낯설지 않은 이 도시는 어쩌면 가장 힐링되는 곳 중에 하나다. 특히 특화된 댄스페스티벌이 있는 도시인 만큼 관객 수준이 은근히 높다. 프랑스는 정말이지 예술의 나라다. 길거리부터 지나가는 트램까지. 예술이라 적혀 있다. 문화가 곧 삶의 전부인 나라. 콧대가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즉흥이란 무엇일까.
저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즉흥이란 메소드가 공연으로서의 기능으로 펼쳐질 때, 우리는 쉽게 함정에 빠진다. 완벽해야한다는 강박관념. 특히, 예술가는 쉽게 그 덫에 빠진다. 그럼으로써 본질을 상실해 버리는 우를 범한다. 계획과 과도한 의도는 독배를 마시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이 순간 접하는 모든 것과의 선택된 만남만이 신선한 공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쉽지 않다.
오랫동안 이 곳 몽펠리에에서 무용가로 활동해 온 남영호 선생이 10년 전부터 코레디시(Coree d’ici)축제를 주최하고 있고 그 프로그램 일환으로 연계하여 이틀간 하루는 한국 뮤지션과, 다음날은 프랑스 뮤지션간의 콜라보가 있다. 첫 공연은 반은 좋았고 반은 힘겨웠다. 여기서는 무용수들의 합류가 이루어지지 않아 4인의 한국무용가들이 뺑뺑이를 돌았기 때문이다. 긴 여정으로 체력이 소진된 터라 어쩔 수 없었다. 즉흥은 기본이 체력전이다. 초집중력과 예상치 않은 근육을 쓸 때가 많기 때문이다.
피날레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공간이 주는 힘은 무한하다. 어제 마지막 공연은 10세기에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고건물 Salle Pétrarque에서 머리가 하얗게 힛끝거리는 관록있는 뮤지션들과의 콜라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음악으로 판을 깔아주었다. 우리들은 그에 응답하였다. 급하지도 않고 늘어지지도 않게 날실과 홀실을 짜듯이 그 사이로 베틀 북이 스무스하게 지나가며 연결고리가 필요한 타이밍에 걸려 들듯 움직여졌다. 장면 하나하나가 타당성을 가지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관객은 집중했고 풀어지는 타이밍에는 반응을 하며 긴장과 릴랙스를 자유로이 가졌다. 때론 그들이 퍼포먼스의 주체자가 된 듯 우리들을 리드한다. 이렇게 우리는 뒤섞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처음 함께 한 한국무용가들은 자신의 색채를 배제하지 않고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오늘로써 그들의 존재가 커보인다. 오롯이 춤을 추고 있을 때 아름다운 빛으로 관객의 시선을 강탈해가며 마음을 어루만지고 머리를 쓰담고 어깨를 툭툭 토닥이며 함께 카페에 앉아 인생 이야기를 나누듯이, 부풀어 오른 카푸치노 거품처럼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해진다.
순간 생겼다 사라지는 포말처럼 우리의 생이 비록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해도 이번 유럽 3개국 즉흥투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화석처럼 다시금 소환될 것 같다. 빛바랜 유물이 된 이 공간 Salle Pétrarque 어딘가에 영원하리라.
몽펠리에는 이번이 세번째 방문이다. 8년전 쯤 온 기억이 있는데 그때 웬만한 곳은 다 걸어서 가봤기에 별 김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발 가는 대로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몇몇 주요 플레이스에서 발을 멈추면서, 아하, 여기가 이렇게 연결이 되었네… 하며 도시 한바퀴를 거의 다 돌게 된다. 퍼즐을 맞추듯이 옛 추억들이 스몰스몰 아지랭이 피어나듯 올라온다. 그래도 골목 구석구석 첨 보는 옛 성당이나 문화재 비스무리한 건물을 보면 반갑기도 하다.
다시 돌아오마. 잘 있어, 몽펠리에~!!!
박호빈
안무가. 댄스컴퍼니 조박, 댄스씨어터 까두로 거듭 나면서 나름 체계적인 제작시스템을 구축하였으나 운영난으로 2여년 휴식기 끝에 결국 폐업, 전문무용수와 안무가의 권익보호와 복지개선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새로운 공연예술미학과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제로포인트모션(Zero Point Motion)-영점운동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