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공동체의 춤 신명천지 마당굿 12
숨은 예인 찾아 한마당
채희완_춤비평가

김광숙의 춤
- 꽃처럼 붉은 춤


김광숙의 ‘꽃처럼 붉은 춤’은 70년 전 서정주 시인의 초기작 ‘문둥이’의 한 대목에서 따온 말이다. 서정주 시인은 그때 생명파였다.

해와 하늘빛이 /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운 눈보다 더 붉은 눈빛으로 세상 사람을 그린다. 그 눈빛으로 감돌아든다. 그것에 몸을 얹어 춤이 된다. 김광숙의 춤은 그러하다. 가지런히 떠받든 두 손망울은 없는 사람을 어루만지는 ‘눈물의 봄언덕’을 지나, 보리피리 불며 / 인간사 그리워 / 방랑 (한하운, ‘보리피리’ 중에서) 하는 문둥병자의 탄식과 인고와 그리움과 절대고독을, 가나안의 예수처럼 부둥켜안는, 절대 사랑의 춤이다. 품에 꼭 안기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네의 춤은 그네의 스승 박금슬 선생의 춤내림과 맞닿아 있다.



 



박금슬 선생은 아니나 다를까, 그의 명무 「번뇌」에서 문둥춤을 제재로 삼았다. 안으로 잠겨 몸 굽힘마다 오체투지였다. 밖으로 열려 디딤새 하나에도 포복절도였다.

내향, 외향이 마냥 하나인 것이었다. 그 스승의 피내림이 김광숙에게 와서 사랑으로, 그리움으로, 풀피리 언덕으로 곰삭았다. 쩔었다. 썩히어서 그 품에 꼭 안기운다.

맞잡아, 녹의청상 그네도 보는 이에게 폭 안기운다. 그러기에 못된 천형의 살을 푸는 살풀이 원형도 가서 수리목 놓아 하늘과 내통하는 수건춤으로 나돌아가고, 그리고 거기에다, 밭매다가도 그것을 꺼내 땀을 닦는 체액저린 생활용구춤으로 되돌아온다.

어려 김세화, 박애리 선생에게서 새 춤을 교육받고, 최선, 은방초 선생에게로, 이윽고 예기조합의 춤 스승 정인형 선생, 기생춤의 정소산 선생에 이어 박금슬 선생에 이르러 영육 안팎으로 온전한 태가 잡혔다. 옛태를 고웁게 갈무리해온 그네의 춤집은 접시춤 대신 소고춤으로 태깔을 갖추었다. 살풀이춤, 태평무만 섬김을 받고 뚝배기춤은 업신여김을 당하는 전통춤 세계에서 젖몽우리처럼 오므리고 있다가 이제야 망울 펼쳐 활갯짓 지릿한 꽃울음의 춤을 추는 수줍고 오래된 첫 춤판을 전주에서 넘어와 부산의 춤뜨락에서 펼치오니.


통영오광대 김홍종의 예술-삶
- 잔잔한 통영 앞바다에 내려찍히는 검붉은 놀 같아


그는 중고교 시절 저녁 으스름 놀이 타는 하늘 아래 나지막한 산자락에 올라 바다를 향해 〉펫을 불었다. 마지막 해가 지고 어둠이 주위를 온통 휩싸기까지 하염없었다. 때론 혼자서 익힌 하모니카로 밤그늘을 타고 앉았다. 부는 악기로는 못다루는 악기가 없고 동서양과 고금, 클라식, 세미클라식, 째즈, 포크송의 곡조를 가리지 않고 가지고 노닐었다. 그는 오늘 부산의 이 자그마한 한 마당에서 그 한 모서리를 보이고 들려준다. 그는 충무시 합창단 지휘도 하였고, ‘한마음실내악단’을 창단도 하였다. 이러한 음악활동으로 한국음악협회 충무지부장을 맡았고, 통영국제음악회를 추진하기도 하면서, 현재 음협 통영지부 고문으로 있다.



 



그는 대학을 마치고 얼마 안 있어 전국사진촬영대회에서 문공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로부터 한국사진작가협회에 들었고 90년대에는 ‘K영상문화’를 개설하여 비디오작업을 통해 유 무형 향토민속문화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그가 제작한 영상물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6호 통영오광대의 어제와 오늘>, <제 21호 승전무의 어제와 오늘>, <충무시 관광> 등이 있고, 2002년에는 <통영오광대의 발자취>는 제1회 개인 사진전을 열기도 하였다. 현재 그는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으로 있다.

이를 민속문화발굴의 든든한 채비로 삼아, 향토민속음악 <민간제례악> 발굴 발표(1982), <통영 사또놀음> 발굴 발표(1984), <이무기와 두레패놀이> 발굴 발표(1985), <두레패 횃불놀이> 발굴 발표(1986), <남해안 별신굿>, <오귀 새남굿> 발굴 발표(정묘연, 임필선, 박복률, 박복개, 유동주, 배중별 1978~1987) 등 소멸되어 사라져 가는 통영민속예술의 현장을 더할 수 없는 몸과 비디오로 부여잡고, 이들을 어둠에서 명징의 세계로 언어화, 역사화하였다. 1980년부터 1996년에 이르기까지 (사) 충무 무형문화재보존협회 상임이사의 직책은 이러한 남모르는 작업의 한 숨통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속문화에 대한 입문은 훨씬 이른 시기에 이미 행해졌다. 그는 1975년부터 <승전무>와 <통영오광대>의 음악과 춤을 (고) 김삼성, 유동주, 이기숙, 강영구, 강연호, 정순남 등에게서 사사받았다. 1986년 이수자가 되었고 1996년에는 통영오광대 전수교육 보조자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통영오광대 보존협회장과 한국탈춤단체 총연합회 사무총장 일을 맡고 있다. 밖에도 향토문화재보존위원, 향토축제 기획위원, 한국예총충무지부 부지부장 및 감사, 통영시와 경남지역 학교운영위원회 회장과 부회장 등의 직책은 하는 일 속에서 잠시 일손을 놓으면서 또한편 다시 일을 부채질하는 사랑방과 같은 직책이었다.

그는 크고 작은 향토축전의 총연출로서 큰 문예행사의 총사령탑이 된다. 굵직한 행사만 해도 86 아시안게임 향토축제, 88 서울 올림픽 향토축전을 치루었다. 1990년대에는 일본 사야마시 국제교류협회와 어울려 국제민속음악제를 차리면서 충무시 국제교류협회 창립 초대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큰일은 2004년부터 4년에 걸쳐 (재)한산대첩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산대첩의 웅장한 학익진을 드넓은 통영 한산 앞바다에 장쾌하게 펼쳐낸 일이다.  

1980년 이래 초등, 중등, 고등, 대학, 일반을 대상으로 한 향토 전통민속탈춤 전수학교를 조직하여 탈춤을 전수하는 일은 이미 일상사가 되었다. 특히 탈춤을 중심으로 1997년 <통영춤>을 창시하여 이를 통영 전 시민과 학교에 보급한 일은 외래의 몸짓과 춤이 번창하는 시기에 청소년과 시민에게 몸과 의식을 본연의 것으로 되돌이키게 하는 민족교육의 발판이 되었다. 그는 한국무용협회 통영지부 고문을 맡고 있다.  

여기에 일일이 다 옮겨 적기 어렵도록 그의 엄청난 활동상과 민속현장학의 성취는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수상(16회)을 비롯하여 그가 받은 11개의 표창과 공로패로는 이루 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트럼펫과 클라리넷, 그리고 하모니카를 불며 비디오 영상물을 만들고, 크고작은 축전의 앞일과 뒷일을 도맡으면서 공연마당에서 그리고 전수교육장에서 춤을 춘다. 이처럼 노래하고 춤추면서 비디오로도 놀고, 크고작은 판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연출 보는 일이 그의 할일이다. 우리는 노는 것을 직업 삼아 사는 이들의 처절한 장인 정신을 그에게서 본다. 60 평생을 그리 쉴 새 없이 노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언제 일손을 놓고 안식해 보겠는가.



 



그가 5,6년 전 진주 남강 가에서 추는 문둥춤을 보고 다음과 같이 적어보았다. “김홍종의 통영오광대 문둥춤은 근래 보기 드물게 이야기를 듬뿍 담아내고 있다. 그렇잖아도 개인 홀춤으로서 통영의 문둥춤은 다른 문둥춤과는 달리 그 배역 스스로 신세 한탄하는 대목이 재담으로 엮어져 있기도 하지만, 손짓과 발짓,자태의 다양한 몸짓, 정처없는 동작선 긋기, 그리고 소고놀림의 풍부한 모양새도 문둥춤의 숨은 이야기꽃이 만발하는데 그만이고, 그것이 또한 재미나다. 말없는 춤에 내장된 이야기성의 회복, 이 또한 우리춤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넌출넌출, 우쭐, 으쓱, 듬썩듬썩한 어깨짓의 다양함도 그만이 제공하는 묘미이다.”  

문둥춤은 병신춤이다. 제대로 춤출 수 없는 몸이 추는 병신춤은 막히고 비틀어진 몸이 풀려 정상의 몸이 될 때까지 추어야 하는 가이없는 육체해방의 기운이 서려 있다. 그것은 비틀리고 못살고 억울한 이의 애환과 고통이 마침내 신명을 불러 일으키는 눈물어린 웃음의 춤이자, 불구로써 병신된 비정상의 세상을 뒤엎는 문화전복의 춤이다. 그의 병신 문둥춤은 그러한 속내를 종아리 걷어 올려 깊이 패인 뼈대의 디딤으로 감추는 듯 드러낸다. 그 사람의 그 춤처럼 그의 문둥춤은 그의 삶의 역정과 소망이 아울러 담겨 있다. 잔잔한 통영 앞바다에 내려찍히는 검붉은 저녁놀처럼 바다 속들이 물들이면서 그의 몸짓은 그의 삶과 함께 통영과 통영사람의 미의식을 상징한다.



 



 

- 2010 숨은 예인 한마당의 초대글에서
(2010. 12. 17. 하오 7시, 부산 민주공원 소극장, (사)민족미학연구소 주최)

 


이동순 노래의 힘
- 한국대중가요 물길 속 숨어 반짝이는 별  


이동순 선생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문학사가이고, 시집, 평론집 등 40권을 펼쳐낸 중후한 한국문학자입니다. 아는 사람은 아는대로 노래를 밤새도록 3절까지 수백곡이나 부를 수 있는 불세출의 가객이자 아코디언 악사이고 방송가요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격조 높은 현역교수 예인입니다.  

노래는 그에게 기쁨이며, 사랑이며, 어머니의 음성이며, 사랑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인생의 반려자라고 거침없이 말합니다. 이동순 선생은 올해 초 500여 쪽의 방대한 분량의 가요사 책 『번지없는 주막』을 펴내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걸음마도 못하는 어린 막내아들이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가 그 자체 눈물이었지만, 엄청난 격려와 위안이기도 하였습니다.인생 패배감에 아주 종적을 감추고 싶었던 시절, 산촌 골방에서 웅크리고 불렀던 노래는 힘과 용기를 회복시켜주는 활력소가 되었음을 적고 있습니다.  

잘 부르든 잘 못 부르든 누구에게나 고통과 시련의 동굴에 처박힐 때마다 노래는 그 광막한 어둠에서 한 가닥 비춰오는 작은 구원의 불빛 같은 게 아닐까요? 특히 유행가라는 대중가요는 거기에 삶의 애환과 정한이 실리기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 가요는 참으로 굴곡과 사연도 많았던 한국현대사의 험난했던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문화적 산물이다. 하지만 우리 가요계의 현실은 여전히 휘청거리며 자신의 문화적 정신적 주소와 위상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우리 가요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커다란 기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요 제작 담당층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중략) (이 책은) 우리 가요가 여전히 ‘번지없는 주막’처럼 내팽개쳐져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가요의 잃어버린 문화적 번지를 회복시켜야겠다는 일관된 신념이 줄곧 반영되었다. 이 책의 타이틀을
 『번지없는 주막』으로 설정한 것도 바로 이런 취지와 배경 때문이다.”  


위의 글은
 『번지없는 주막』의 저자 후기에서 뽑은 대목입니다.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절절한 애정과 함께, 그것의 현주소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가요는 모두 과거의 가요에서 싹이 트고 줄기가 자랐으며, 열매 맺혀서 이룩된 귀한 성과들’임에도 ‘일부 젊은이들의 과거를 외면 부정하려는 시각’을 크게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로 작사자이자 가수인 반야월 선생의 품평과 기원대로 이 책은 ‘편견과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온 한국가요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가 되어 ‘찬연한 등불’로 빛날 것입니다. 이 책은 유행가 노랫말과 음조에 얽힌 시대성과 문학성과 음악성을 남달리 따뜻한 가슴과 날카로운 눈으로 분석함으로써 오로지 민중 선상에서 우리의 문학과 음악과 공연 영역을 넓힌 것입니다.  

오늘 「숨은 예인 한마당」은 ‘한국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동순의 가요사
 『번지없는 주막』이란 책을 노래로 옮겨낸, 실황현장 생노래판(라이브콘서트)이 될 것입니다. 노래와 더불어 살아온 세월, 이동순의 노래로 들어보는 한국 현대사 앞에서 우리는 당시를 떠올려보며 또 다시 설움에 젖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애상을 넘어 현실의식을 일깨울 것이고, 무릇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고 삶의 정리(情理)를 한층 북돋울 것입니다.  


그는 현역교수 악인(樂人)입니다. 요사이 말로 먹물 딴따라, 엔터테이너입니다. 공자도 나이 들어 각 나라를 찾아 돌며 모진 바람과 거친 숙식으로 고단하게 주류천하하면서 음악 품평하고 작곡하고, 지휘하고,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만능 뮤지션이었다지 않습니까? 이지적(理知的) 구름 속에서 이제 막 그 정에 우는 모습을 드러낸 악인 이동순은 그를 보고 듣는 이마다 뜨겁게 눈시울을 적시우게 하는, 청천 하늘에 반짝이는 별입니다.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2025. 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