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전통춤의 시절인 듯하다. 한국춤의 방황일 수도. 춤이 동작을 선택하고 조직하고 재분배한 뒤 그 우연한 움직임에 형식과 의미를 입히면, 그것은 또 익숙한 듯 낯설게 정립되어 그렇게 작품이 되고 전통춤이 되면서 제도화된다. 그것이 바로 방황에서 비롯된, 그 스스로마저 전복하는 춤이다. 하여 춤은 그것이 (신)전통춤이든 창작이든 다시 형식화될 때까지 그 전복적 사고의 기능을 잃지 않는다. 이는 춤이 하나의 권력으로서의 담론이자 그에 대한 전복적 사유임을 말하는 것이다.
대구, 중견 두 사람의 전통춤판이 있었다. 이준민의 〈이준민의 춤 2025〉와 김현태의 〈同舞〉. 특이점은 대구에서 발생한 장유경류, 안무 등의 작품이 이들 무대에 무게감 있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전통춤 무대를 주목하는 이유다.
새로운 류와 전통춤 형식의 작품을 보자. 이런 종류의 창조는 장유경에게서 김현태와 이준민으로 이어지는 춤 속에, 또는 춤적인 것에 대한 믿음으로 무리 없이 스며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장유경류, 혹은 (신전통) 안무라는 춤의 정당성 여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믿는 춤의 토대가 그 춤을 이어받아 추는 이들에게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다시, 전통춤에 있어서 누구의 류(안무)를 춘다는 것은 일종의 조절된 반란이다. 불안과 충만함이 동시에 있는. 예컨대 〈선살풀이〉(장유경류)와 〈시나위〉(장유경 안무)를 추는 안무자와 그의 춤을 받아 추는 이들은 춤을 통해 서로의 존재 속에 존재가, 춤 안에 또 다르게 춤이 있음을 말하지만, 그 모든 존재들과 춤추는 몸들은 여전히 다른 깊이와 다른 위치의 춤(몸)이다.
말하자면 장유경류(안무)를 추는 이들의 몸(춤)은 제각기 하나의 세계이자 그 각각의 세계들은 여전히 보편적 세계의 조영이다. 춤(몸)을 받아추는 이들은 제 춤(몸)속에서 장유경과는 다른 춤을 확인하거나 또는 그 춤(장유경류) 속에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안무자의 춤(존재), 즉 장유경의 안무(춤)를 이반하지 않는다.
춤추는 이가 그 춤을 만든 사람의 자아와 맺으며 내놓는 이 춤의 관계. 김현태와 이준민이 춤을 추는 것은 제 춤을 바로 어떤 경지로 형식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 춤(형식)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춤꾼은 자기 이야기를 춤 속에 끌어넣음으로써 자기 재능을 확인하고 자기 이야기를 춤에 엇걸어 놓음으로써 자기를 주장한다.
〈이준민의 춤 2025〉(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4월 11일)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주관한 ‘아츠스프링 대구 페스티벌’ 기획무대로 ‘다시, 춤의 마음으로 춤이 올 때’라는 부제를 달았다. 대구출신으로 서울로 유학(경희대)한 뒤 대구로 와 모교(경북예고)에서 무용부장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결혼과 출산을 하며 무대에서 춤추는 일은 잠시 배경으로 밀려났다고. 몸은 하나인데 그 쓰임이 다르다는 말을 빌려와야 할까. 하지만 그 모든 일상은 춤과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며 잠재상태로 서로 깊이 간여하였을 것이다. 결과 지금의 무대에 서 있는 것일 터.
프로그램은 〈시나위·혼자 추는 춤〉(장유경 안무)을 시작으로 〈한량무〉(안덕기 안무), 〈달구벌입춤〉(박지홍제 최희선류), 〈지게춤〉(권명화제 장유경 안무), 〈수건춤〉(백년욱류), 〈살풀이춤〉(김란류), 〈승무〉(한영숙제 정재만류), 〈진쇠춤-영신금무〉(화성재인청 이동안류 윤미라재구성) 까지 총 여덟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시나위·혼자 추는 춤〉, 〈달구벌 입춤〉, 〈살풀이춤〉을 이준민의 솔로로, 이준민과 봉정민, 문주신, 윤초아, 한비야의 군무로 〈진쇠춤-영신금무〉를 추었다.
첫 순서, 낮게 울리는 징소리가 오롯한 〈시나위·혼자 추는 춤〉(장유경 안무)이 눈에 확 들어왔다. 무대를 휘돌아 들어온 이준민이 팔을 들어 떨구고, 공기를 틀어쥐었다 놓는다. 팔을 모아 뿌리는 동작에 활기에 흥취가 실린다. 청승이 없는 감정의 절제가 동작의 정교함과 맞물리는 장유경 춤의 특색이 이준민이 가지고 있는 춤(몸) 기세와 잘 맞다.
옅은 살구색 치마저고리에 좁고 짧은 회색빛 저고리 고름. 마지막 휘몰아치는 장단을 가만히 서서 몸으로 받아내는 춤, 아득하다. 아름다운 것과 속악한 모든 상념을 춤으로, 장단을 기다리고 받아내는 춤은 점점 균질화되고 투명해진다. 치맛자락을 잡고 조용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서며 마무리 되는 춤. 마치 오래전부터 추어오던 춤처럼, 또는 기다려왔다는 듯 춤을 춘 〈시나위·혼자 추는 춤〉. 자신의 춤이야기로 춘 춤이 곧 이준민이 되는 작품이었다.
이준민 〈시나위·혼자 추는 춤〉, 〈달구벌 입춤〉 ⓒ옥상훈 |
이준민의 〈달구벌 입춤〉. 먹색치마에 하늘색 저고리에 주황색 고름. 길게 내려 입은 저고리, 긴 팔선으로 담담하게 추는 춤이 점잖다. 그런가하면 짓는 듯 아닌 듯 살짝 머금은 미소, 지긋이 눌렀다 떼어 올리는 발디딤과 지숫는 호흡에 한 손을 척! 들고 추는 춤에 묻어나는 당당한 자신감. 허리를 수건을 질끈 묶고 추는 경쾌함과 마지막 굿거리에서 춤표현의 미묘함. 일어나는 마음을 누르는 듯, 가만히 마무리하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얼마 전 ‘동무’무대에서 보았던 춤정서가 다르다. 그 사이 춤이 늘었다.
그리고 축하무대. 축하무대에 오른 출연진의 면면이 화려하다. 안덕기의 〈한량무〉(안덕기 안무). 앉아서 시작되는 춤은, 부채를 펼쳐 들고 추는 힘과 기교, 가락에 움직이는 강약조절 등 나무랄 데 없는 춤이었으나, 큰 흥취가 없었다.
안덕기 〈한량무〉 ⓒ옥상훈 |
김현태 〈지게춤〉 ⓒ옥상훈 |
김현태의 〈지게춤〉(권명화제 장유경안무) 지게를 지고 팔자걸음으로 걷는, 넉살좋게 추는 춤에서 너른 춤의 마음이 보였다. 새참을 머리에 이고 들어오는(이영재) 아낙의 춤이 더해지는 것으로 춤이 번졌다. 최화진의 〈수건춤〉(백년욱류), 톤 다운된, 마치 색이 바랜듯한 색동저고리에 붉은 치마, 흰색 수건을 들고 추는 춤. 기방춤의 흔적이 남아있는 춤의 구성과 형식으로 잠시 춤의 시간여행을 하였다. 차수정의 〈승무〉(한영숙제 정재만류) 북을 객석을 마주한 채 무대 가운데 배치. 객석쪽에 뒷모습을 보인채 두드리는 북가락, 힘있고 활달하게 추는 춤으로 상대적으로 마음을 내려놓듯, 착 가라앉는 멋이 덜하였다.
최화진 〈수건춤〉, 차수정 〈승무〉 ⓒ옥상훈 |
이준민의 〈살풀이춤〉(김란 류), 단정하지만 춤의 구성이 다소 단조로웠다. 흰색 치마저고리에, 좁고 짧은 저고리 고름에 소매 끝동에 옅은 쑥색의상. 청승이 걷혔다. 수건을 뿌리고 감는 춤동작이 눈에 띄지 않는 춤은 좁고 짧은 고름같이 정갈하나 담담하다 못해 심심하였다. 〈진쇠춤〉 가운데 선 이준민과 그의 주위로 네 명의 무용수(봉정민, 문주신, 윤초아, 한비야). 춤과 복식, 꽹과리를 두드리며 추는 춤은 흡사 제사를 집정하는 제사장같기도. 화려하지만 무게감 있게 춘 춤이었다.
이준민 〈살풀이춤〉 ⓒ옥상훈 |
이준민 〈진쇠춤〉 ⓒ옥상훈 |
자신에게 맞는 춤세계를 자신으로부터 끌어내려는 이에게 처지 같은 것은 없다. 어디에나 들어갈 수 있으며, 다만 자신을 조건에 맞추어야 한다. 춤(몸) 조건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열정을 다른 형식으로 바꾸는 방법의 문제만 남았다. 여기서 우리 한국전통춤이라는 특수한 감수성의 하나가 형성된다. 이준민은 이 감수성으로 전통춤을 추고 있는 듯하였다. 이 열정은 다시 개인무대를 올릴 때까지의 15년의 유예된 시간, 그 정체된 현실을 다시 끌어내는 데에 더 많이 이용되었으며 그것으로 닫힌 춤을 해방시킬 유력한 담론체를 형성해낸 듯하다. 지나온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로.
김현태의 춤 〈동무動舞〉(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 3월 25일)
동작을 하자마자 사라지는 대상이 춤의 영역 속에 들어오는, 그 사소한 움직임의 과정에 우리는 왜 관심을 가지게 될까. 현재 속에서 영원한 어떤 것을 다시 찾는 태도의 예로 전통춤을 들 수 있을까. 김현태가 경북예고 동문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통춤 여섯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김현태는 〈지게춤〉과 〈북춤〉을 솔로로 추었고, 마지막 무대는 군무로 〈선살풀이춤〉을 추었다. 그리고 동문들이 추는 〈처용무〉와 〈달구벌 입춤〉, 〈부채춤〉을 무대에 올렸다.
김현태 〈처용무〉 ⓒ대구콘서트하우스, treeyaaa |
〈처용무〉는 최근 대구에서 활발하게 무대화되고 있는 춤이다. 다섯 명(김순주, 박성희, 편봉화, 임차영, 신명진)이 입은 복식(청,홍,황,흑,백)의 화려함과 활달한 춤의 구성, 사상과 철학을 시대적 실천으로 녹여낸 씩씩한 동작이 주는 장쾌한 매력이 있는 춤이다. 분명 같은 춤인데 볼 때마다 이상하게 달라보인다는 점 또한 매력이다. 같은 동작을 하고 있는데 각자의 춤이 달라보이는 것은 제각기 가지고 있는 춤태 때문일 터이나 다르게 달라보이는 것은 이 춤이 담고 있는 오래된 시간, 그 아득한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탄해야 할 순간, 뒤돌아보며 만나게 되는 얼굴들 때문일까. 화려한 복식과 탈에 가려진.
김현태 〈지게춤〉 ⓒ대구콘서트하우스, treeyaaa |
김현태의 〈지게춤〉, 해학에 얹은 능청스런 춤연기가 늘었다. 지게 작대기를 발로 툭툭 차올리며 걷다가 작대기에 걸쳐 지게를 세워놓고 농부가에 얹어 맨손으로 추는 춤. 다시 지게를 지고 걷는 다리를 한껏 벌려 팔자걸음으로 걷는 뒷태, 농사를 짓고, 휴식을 하는 모습들이 이어진다. 지게와 노동이라는 삶을 춤으로 구현하려는 방식의 오래전 창작춤을 다시 전통춤으로 창조, 추억이 전설의 형식을 띠게 된다. 그 이유는 삶으로 잇고 있는 뿌리가 찾아야 할 뿌리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춤의 가장 깊은 뿌리도 아마 거기 있을 것이다.
김백봉류 〈부채춤〉 ⓒ대구콘서트하우스, treeyaaa |

김현태 〈북춤〉 ⓒ대구콘서트하우스, treeyaaa |
〈부채춤〉(김백봉류) 군무. 김현태의 〈북춤〉(김백봉제 장유경 안무), 대놓고 북을 두드린다는 느낌. 톤다운된 분홍색 바지저고 쾌자 앞섶을 뒤로 묶었다. 연이어 연풍대를 돌아드니,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온다. 대구를 대표하는 중견 춤꾼으로 단단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듯, 춤에 자신감이 붙었다. 좀 더 남성적이었으면 더 좋겠다. 이준민의 〈달구벌 입춤〉, 보라색 저고리에 살구빛 치마를 입었다. 담담하게 춤을 시작하나, 표정이 다소 무겁다. 소고를 들고 추는 춤에서 문주신과 이혜인이 합류. 가라앉은 표정 때문에 점차 춤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 김현태의 〈선살풀이〉(장유경류), 김순주,윤경재,편봉화,이영재,장현진,임은서가 추는 군무. 장유경의 춤태, 기질 정서가 가장 잘 녹아있는, 형식과 구성이 활달하고 세련된 신전통춤으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이준민 〈달구벌 입춤〉 ⓒ대구콘서트하우스, treeyaaa |

김현태 〈선살풀이〉 ⓒ김현태 |
제 결을 따라 추는 춤만이 자기 춤(삶)을 짊어지는 것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추슬러 그 결을 따라 춘 김현태의 〈동무動舞〉는 지난 시간이 미래로 이어지는 춤(삶)으로 김현태와 온전히 하나(同舞)가 되는 무대였다. 그의 춤(삶)과 마음은 곧 대구춤의 발전이 될 것이다. 춤꾼이 자기를 비워버리고 자신의 위치를 염려하지 않는 곳에서, 커나가는 동문들의 키를 키우면, 그것이 곧 자신의 키가 된다는 말이다. 김현태가 있는 지금 그 자리가 춤꾼으로서 그의 실제적인 성장의 자리이며, 그것이 곧 대구춤의 성장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대구 장유경류의 전통춤은 창작과 전통작업을 거치며 수년간 무대를 통해 확인되었던 것처럼 새로운 춤의 창작, 전통춤 개념을 이해하는 데 그동안의 경험이 그 디딤돌이 되고, 그 구체성이 되었다. 노력과 통찰력을 통해 자신의 춤속에 후배와 제자들이 들어설 구도를 마련하는 안무자만이 그 비밀을 눈치채고 있는지도. 그렇게 완성된 춤은 대구 전통춤판에서 많은 이들의 춤(몸)으로 확대되는가 하면 때론 벽이 되기도 한다. 이 극복을 위한 작업이 지금 대구 전통춤판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대구, 방황하는 춤판을 단단히 붙들어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장유경의 정열이 필요하다. 신비화만 조심하면.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