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34년을 이어온 젊은안무자창작공연(대한무용협회)은 현재 활발하게 창작하는 예술가들이 신인시절 거쳐간 경연이다. 현장 예술가들도 다른 경연에 비해 비교적 실력으로 부딪혀 볼만한 행사라는 의견이다. 이를테면 교수의 입김? 같은 인맥과 학맥을 돌파할 수 있는 도전해보고 싶은 경연이란 말이다. 외형적으로도 다양한 구성원(세대, 장르)이 심의하고 작년부터 해외 감독(Seattle International Dance Festival)을 영입해 해외진출까지 견인하려 한다. 더불어 2차 공연준비금(300백) 증액에도 힘쓰고 있다. 올해는 서울과 지역을 포함해 1차 경선에 59팀이 지원했고, 최종 12팀이 공연(4.23~30,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 올랐다. 공식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최선의 역량을 보이려는 신진들이 춤계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최근 두드러진 창작경향으로 한국춤 특유의 장르적 규율 내지는 패턴을 넘어서려는 열린 창작 방식이 여기에서도 확인되었다. 현대춤 전공과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이기에 컨템퍼러리댄스로 통칭해도 무방한 한국춤 전공자들의 시도는 긍정적이다. 동작 사이 언뜻 베어나는 발디딤이나 호흡이 무대 지층의 기운을 모으기도 들추기도 하며 함축과 복선의 감각으로써 얼마나 매력적인지. 반면 여전히 피지컬을 기반으로 움직임을 디자인하는 것에만 몰입해 관객의 이해에는 불친절한 작업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참여자들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자아 정체성을 찾으려는 작업(강진비 〈BE Myself〉, 김세연 〈남아 있는 것들〉)으로, 사회 비판적인 시선(이규성 〈100조의 호수〉, 박주환 〈무언의 삼각형〉)으로, 억압된 본능이나 충동 같은 비가시성 감각을 움직임으로 치환하려는 시도(김도현 〈틈〉, 강현욱 〈BEAU〉)로 그리고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을 미학적으로(양승관 〈홍시〉, 최민욱 〈구원〉)탐색했다. 흥미로운 형식적 접근으로 전통 놀이를 모티브(김지연 〈Instangram〉) 삼거나, 드라마성이 강조된 시도(이규성) 그리고 젠더의 경계 선에 있는 다중적인 움직임 표현이나(강현욱), 왜곡된 신체성이 강조된 작업(김재권 〈생각조정자들〉)이 인상적이었다. 그 무엇보다 최민욱의 〈구원〉은 첫 안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상념, 실존, 구원의 빛
최민욱의 〈구원〉(30일)은 안무자의 의도보다 풍성한 해석과 중의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업이다. 속단일지는 모르나 최민욱은 춤을 춰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어 보인다. 텅 빈 자신(정서, 현실)이 투영된 고무 대야에서 펼쳐지는 상념의 시간이자 사건이 절망적이나 구원의 또다른 이면으로 다가온다. 여성무용수(권미정)와의 듀엣이 냉소적이나 밀도 있는 움직임으로 어떤 관계일지 궁금하게 한다. 죽은 연인과의 시간을 되짚어보는지, 뜻밖의 선물이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온 것인지 말이다. 그럼에도 서로 맞닿으려는 처연한 몸짓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생을 존속시켰던 관계로 해석된다. 다시 대야는 비워지고(여자는 사라지고) 옆면에서 조명이 비춰지며 최민욱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난다. 감각적이고 미학적인 장면으로 몸이 소멸되는 인상을 받았고, 개인적으로는 상처뿐인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 아닐지 생각하게 했다(팸플릿 내용은 희망적이나). 세상에 무자비하게 팽개쳐진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이자 구원의 손길을 희망하는 갈급한 심정이 전달되었다. 간소한 장치인 대야, 조명 한 컷과 젖은 수건만으로도 복합적인 정서를 적요하게 표현했다.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가 아닌 자신만의 춤언어로 몰입도 있게 잘 만들었다. 퍼포머로서도 안무가로서도 잠재력이 있어 보인다.
왜곡된 인식과 신체의 부정교합
김재권의 〈생각 조종자들〉(4.27)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김재권은 기존의 춤스타일과는 다른 움직임으로 신체표현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그는 디지털 시대 편향된 정보로 조작된 현실에 살아 가는 오늘의 현실을 몸으로 진단한다. 사고의 전환을 목표로 다각면에서 테이블을 중심으로 공간의 시점을 비틀고 신체 부위를 이질적으로 접합해 낯섦을 의도한다. 예를 들면 여성 몸통과 남성의 팔, 몸통 정면과 얼굴 측면, 여성 하체와 남성 상체가 부정교합 된다. 기괴한 여성 마네킹 상체와 남성(박현규) 퍼포머 몸통 연결은 왜곡된 인식이 가동된 몸의 현존이다. 초반부터 관람하기 불편할 정도로 마치 사이코 패스가 여성(고시아)의 신체를 조종하고 압력을 가하는 것 같다. 안무가는 여성을 수동적이고 조정 당하는 존재로 다시 말해 필터링 된 알고리즘 정보에 살아가는 우리로 상정한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의 사유가 가능한 세상인지 안무가는 작품을 통해 질문한다. 격하게 표현하면 착취당한 지각으로 주조된 신체의 형상에서 불길한 미래를 예측하게 했다.
김재권 〈생각 조종자들〉 ⓒ대한무용협회 |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이규성과 박주환의 작품은 주제의식이 선명하다. 젊은 청년들은 자신의 현주소인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지 고민한다. 이규성의 〈100조의 호수〉(23일)는 발레 ‘백조의 호수’ 음악을 대놓고 차용한다. 짧은 20분에 ‘100조의 호수’라는 장난스럽지만 돈에 허우적대는 학들의 드라마로 꾸렸다. 구음으로 시작한 소리와 허튼춤을 추다 그림자 놀이와 극성을 삽입하여 전개한다. 100조가 떠 있을 호수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 상황을 제시하며 자신이 따라가야 할 길인지 되묻는다. 보기에 따라 유치하게 볼 요소도 있으나 나로서는 뻔하지만 음악과 이야기의 흡착력이나 한국춤 사위와 마임동작 연결도 자연스러워 재미있었다. 때로는 심각한 문제도 적절한 풍자나 동화적으로 묘사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박주환의 〈무언의 삼각형〉(27일)도 삶의 목표를 향해 경쟁하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사각 구조물 오브제를 활용하며 은유한다. 계단식 체계로 오르락 내리락 동료를 떨쳐내며 높은 곳으로 향하려는 전개이다. 경쟁구도 매커니즘 설정은 선명하나 궁극적으로 안무자가 어필하려는 협력과 상생의 가치가 무대에 좀 더 할애되었으면 좋았겠다.
이규성 〈100조의 호수〉 ⓒ대한무용협회 |
박주환 〈무언의 삼각형〉 ⓒ대한무용협회 |
형식과 내용의 조화가 안무의 정석
양승관은 상대적으로 다른 참가자에 비해 안무 경험도 많고 어느정도 창작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홍시〉(30일) 제목같이 홍시가 나약한 인간이 도착해야 할 종착점으로 설정한다. 말랑말랑 하지만 딴딴하고 떫은 땡감이었던 시간을 지나와야 홍시가 되는 자연발생적인 경로에 삶의 경로를 투영한다. 적절한 상징적 장치와 훌륭한 기량까지 부족함이 없어 보이나 전작들과는 달리 충동, 돌봄, 수용의 행위가 겉도는 인상이다. 여러모로 안무적 형식으로는 부족함이 없으나 작품내용이 엉기성기 얽혀서일까, 너무 많은 의미를 밀어 넣는 것이 때론 독이 될 수 있다.
규격화된 기준에서 벗어나기
김지연의 〈Instangram〉(25일)은 네모난 폰에 의지해 인스타그램에 소모되는 일상을 비유한다. 타인의 기준과 규격화 된 틀에서 소진되어 가는 내적 모습 보단 이 요물 같은 사각 사물의 정체와 구조를 물리적으로 탐색하려 한 점이 신선하다. 몸통의 형상이나 오브제를 이용해 평면성을 부각시킨 아이디어가 좋다. 안무자는 의식적 행위와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창적인 모습을 발현하는 해결점으로 칠교놀이를 제시한다. 바닥에 투사되는 조명 문양 위에서 놀이를 한다. 다만 전통 놀이의 유희적 요소를 창작소재로 활용해 보려는 시도는 가상하나, 칠교놀이가 각자의 고유한 속성을 드러내는 제재인지가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한국춤 동작을 동시대 언어로 변주하는 방식이나 이를 자신들의 현실과 접목해서 확장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이다.
김지연 〈Instangram〉 ⓒ대한무용협회 |
자기다움에 대한 순수한 탐색
강진비의 〈BE Myself〉(23일)는 자신의 상황을 꾸밈없이 드러내며 자아 정체성을 찾으려는 고백이다. 탯줄로부터 연결된 쌍둥이 자매(강진비,강은비)이나 서로 다른 인격체로 분리되어 성장하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안무자는 탯줄을 포승줄로도 해석하며 갈등 상황에 직면하나 이내 이를 넘어서 독립된 주체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내보였다. 작품은 단순한 형식이나 내적 공간을 미화하기 보단 가식 없이 표현했다. 김세연의 〈남아 있는 것들〉(25일)은 아마도 죽음과 이별 경험을 기반으로 안무한 듯하다. 죽음을 목도하며 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고민이 역력하다. 상실감에 침잠하다가 화장 후 남겨진 유골 가루를 입으로 받아 삼키며 죽음을 온전히 끌어안고 수용한다. 누구나 경험이 있는 이별의례로 촉촉한 정서를 나누게 했다. 이 둘의 작품은 꾸밈없이 자기다움을 오롯하게 전달해 안무적 우수성은 차치하고 그냥 순수해서 좋다. 진실된 자기 투영은 예술가가 갖춰야 할 소양이지 않는가.
강진비 〈BE Myself〉 ⓒ대한무용협회 |
놀라운 퍼포먼스 기량 그러나…
김도현의 〈틈〉(23일)과 강현욱의 〈BEAU〉(25일)에서 무용수들의 표현 능력은 정말 우수했다. 요즘 남성 무용수들의 신체 조건과 기량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나 타고난 재능인지 혹독한 훈련 결과인지 그저 놀랍다. 은폐된 혹은 무의식적 감각을 들춰내려 남성 무용수들은 피지컬(신체능력)을 갈아 넣고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러나 압도될 기량에 준하는 관객이 이해가 되는 내용 전달도 고민해야 한다. 막연하게 이해와 해석을 관객의 몫으로 던져 놓은 많은 작업이 컨템퍼러리인 양 무책임한 창작방식이 만연하다. 감각적인 세계를 일깨우는 내면적 필연성 내지는 그 세계를 통해 구축하려는 주제가 선명해야 노동을 능가하는 땀과 수고가 빛을 본다. 과잉된 감각은 서사의 결핍을 반증한다. 새로운 움직임을 구사하려는 강박보다 움직임의 자기서사와 당위성을 구축하길 바란다.
김도현 〈틈〉 ⓒ대한무용협회 |
강현욱 〈BEAU〉 ⓒ대한무용협회 |
젊은안무자창작공연이 실력만으로 선정되는 경연으로 지속되길 희망하며 이 글에 언급하지 못한 참여자를 비롯해 모두를 응원한다. 최우수상이자 문체부장관상 수상은 최민욱, 우수상은 박주환, 심사위원자상은 김재권이 받았다.
김혜라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 <춤웹진>편집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