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김만리 타이헨(態変) 〈브레인〉
장애예술이라고? 아니 아방가르드다!
박성혜_춤비평가

우리는 언제까지 장애라는 제한된 범주에서 장애예술을 바라봐야 하는가? 그들의 제한적인 조건을 감내하고 일종의 아웃사이더처럼 특정하게 규정하면서 그들의 작업을 별도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처음부터 다른 영역으로 가름해 놓고 선 밖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모두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재일교포 김만리가 이끄는 타이헨의 작업 〈브레인〉(5.15~17)은 이런 모든 것들을 다시 점검하게 한다.

김만리는 1953년 생으로 올해로 73세이다. 3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시선과 자신의 몸에 기인한 상황들에 주목한다. 그녀는 비장애 중심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장애인들과 공연을 시작한다. 이에 앞서 그녀의 인생사를 함부로 언급하기에 조심스럽다는 점과 긴 시간을 단지 한 줄로 언급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여성,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겹겹의 비주류라는 사회적 통념과 엄혹한 현실 속에서 그녀는 세상에 대한 본질을 스스로 각성하고 제안한다. 그것은 비장애인 중심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요, 세상이 지칭하는 문화 자체도 국가와 민족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비장애 중심 문화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세계관과 미의식에 대한 강력한 의문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공연된 〈브레인〉은 비장애인들이 주도했던 기존의 예술관에 대한 점검을 요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인간의 신체에 근거한 미의식을 흔들고 있다. 또한 장애예술 자체를 비주류 예술로 규정함으로써 고착시키면서 이를 다시 일방적 소비의 대상으로 치환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은 또 다른 수탈의 시선이며 제한된 미의식의 강건함을 드러낼 뿐이기에 말이다.



극단 타이헨 〈브레인〉 ⓒ모두예술극장



〈브레인〉의 작품 의도를 단순하게 직역하자면 ‘머리 보다 몸’으로 인간의 인식과 의지에 의해 신체를 통제한다는 관념보다는 뇌에 의해 관리되지 못하는 신체라는 일종의 즉물적이고도 유물론적 접근이다. 그래서 작품에서는 장애가 있는 신체를 그대로 드러낸다. 무용수들은 모두 신체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스판덱스 성질의 원색 유니타드(unitard)를 입고 있으며 움직임의 보조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공연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움직임을 위한 보조 도구라기보다는 표현적인 의미이며 예술적 은유, 혹은 상징체로만 사용된다.



극단 타이헨 〈브레인〉 ⓒ모두예술극장



작품의 첫 장면은 등장한 무용수들이 바닥을 아주 느리게 기거나 구르는 동작이다. 중력을 거스리며 자신의 몸을 밀고 뒤집는 모습은 움직이는 인간이기에 가능한 동작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그들의 신체적 한계는 보이지 않고 그저 그들의 몸만 보인다. 그들의 근육, 호흡, 에너지만 감지되기에 어떤 장애가 있는지를 파악하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신체가 우선적으로 다가온다. 그렇기때문에 다수가 출연하는 장면에서는 서로의 몸과 몸이 겹쳐지거나 모여있기에 응집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애가 삭제되고 움직이는 인간의 신체가 부각되는 순간이다. 그들의 장애는 팔이 짧거나 다리가 없는 시각적 형태로만 인지될 뿐이다.

김만리가 이끄는 단체 타이한의 작업에서 중력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기거나 구르는 움직임은 중력에 대한 반응이자 대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직립보행에 대한 또 다른 변칙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기준에서 직립보행은 비장애인을 우선시한 행동 지침이자 규정이다. 여기에서 벗어난 인간은 비주류이거나 문제가 있다고 상정하지만 김만리의 작업에서 구르는 동작을 수행하는 신체는 동일한 중력의 조건에 놓여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구르는 행위는 목격하는 순간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해체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극단 타이헨 〈브레인〉 ⓒ모두예술극장



혹자는 〈브레인〉에서 너무나도 여실히 드러나는 그들의 신체가 부담되거나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익숙한 신체가 아니기에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숨겨졌고 은폐되었던 그들의 신체를 불현듯 마주하는 순간 느끼는 감정은, 우리가 추하다고 관습적으로 여겨온 그 무엇이거나 출연자들의 힘겨움을 부담으로 느끼는 감각적 반응에 기인할 것이다. 그야말로 내동댕이처진 그들의 신체를 직립 인간의 높은 눈높이 시선에서 내려다보는 안쓰러움과 돌려버리고 싶은 시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혹자는 그들의 신체에서 드러나는 기괴함과 그로테스크함은 일본 부토의 유사함으로 혐의를 두기에 충분하지만, 그것보다는 작품에서 일괄적으로 흐르고 있는 추상성을 보다 주목해 보고 싶다. 작품은 앞서 언급한 ‘머리 보다 몸’이라는 주제만 감지될 뿐 처음부터 끝까지 추상적이다. 그저 장애가 드러나는 몸의 움직임만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이기에 가능한 다른 움직임과 형태로 인해 독창성이 발견되는 동시에 버릇처럼 기대되는 직립 인간들의 전형적 움직임에서 이탈되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통해 중심에서 이탈된 신체성이 드러나고 그동안 얼마나 그들을 중심에서 밀어내고 제외시켰으며 고착화를 시도했는지 상기하게 한다.



극단 타이헨 〈브레인〉 ⓒ모두예술극장



역설적이게도 이번 작품을 통해 그동안 비약을 꿈꾸었던 춤추는 인간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무모하고 자가당착적인지 확인했다. 발레를 봐도 그러하고 대부분의 무용수들이 보다 높고 완벽한 테크닉의 구현에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비장애 인간이라는 것이 겨우 서서 걷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부양을 꿈꾸면서 바닥을 기어다니거나 구르는 신체를 심히도 왜곡된 태도와 시선으로 견지해 왔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인〉에 출연한 장애가 있는 그들의 신체가 구현하는 추상성을 묵도하면서 그리고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미학적 발견을 통해 그동안 얼마나 우리가 거만한 존재로 군림했으며 구별하면서 서열화와 차별화를 시행한 모순덩어리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김만리가 제안한 신체성이 추상성과 결합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익숙한 비장애 신체의 기준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발견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만리가 제안한 추상성이 본연의 몸에 집중하게 하는 동시에 장애예술로 제한하기 보다는 최첨단의 전위예술, 아방가르드로 인지하게 된다. 그렇다. 김만리가 제안한 작업 〈브레인〉은 하위그룹의 반란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예술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란 측면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애의 신체이기에 구현 가능한 독특함을 드러내고 있는 새로운 미학적 제안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아방가르드이다.



극단 타이헨 〈브레인〉 ⓒ모두예술극장



공연장에서 김만리의 작업을 만난 관객들은 그들이 제시한 신체를 통해 다른 계급이 존재함을 선명하게 인지한다. 그것은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인터내셔널한 연대가 가능한 선명한 계급이며, 김만리가 제시한 신체론은 비장애 신체론과의 단순한 대립이 아닌 포용이고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경이롭다. 직립보행 인간이라는 수직의 고정되고 확고한 신체의 견해에서 벗어나 누워있는 신체가 제시하는 수평의 담론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서구적 담론에 기인하여 제한적 시선으로 세상을 견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춤추는 몸이란 걷고 뛰거나 돌며 날아오르는 경이로운 몸으로 스펙터클을 구현하는 것으로만 규정하는 것에 김만리의 작업은 그러므로 정면으로 대립된다.

그들의 군무는 일반적이지 않다. 정확한 박자를 맞추기 매우 힘들기에 자신의 근육활동과 감각에 맡기면서 자유롭게 춤춘다. 공연 후반부는 몇몇의 무용수는 일어서서 걷고 독무로 존재하지만(특히 김만리의 독무는 아우라가 상당하기에 매우 인상적이고 강렬하다) 장애가 있는 신체가 제안하는 다른 감각과 반응, 그리고 흔들림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만리의 움직임은 제식 훈련에 기인한 소위 말해 칼박의 군무가 보여주는 일치된 움직임과 대척점에 속한다. 정확한 박자와 일치감으로 대변되는 일반적 군무와 다른 그저 뭉쳐있는 덩어리인 동시에 유기적이면서도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더미일뿐이다. 이러한 물성은 자연스러운 동시에 독자적이며 우연성이 내재해 있다. 그들의 움직임은 장애가 아닌 변형된 형태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단체의 이름이 ‘모양이 변한’인 태변(態変)인 이유가 있다. 이렇게 타이헨은 자신들의 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기성의 몸에 저항하는 다른 몸으로 재탄생되었다.

박성혜
발레리나 출신으로 무용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현재 한예종 한국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원 공연예술통합과정과 한예종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문화예술관련 정책과 무용비평에 관심이 많아 여러 활동과 글쓰기를 병행하였다. 대표적으로 문체부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과 예술인복지위원회 공정예술생태소위원회 소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2026. 6.
사진제공_모두예술극장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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