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2026 대한민국발레축제
울림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지영_춤연구가

2011년 6월, 대한민국발레축제가 처음 막을 올렸을 때 무용계가 건 기대는 예사롭지 않았다. 국립과 유니버설로 양분돼 있던 관객 경험이 여러 단체로 넓어지고, 한자리에서 다양한 발레를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출범의 목적은 ‘발레 대중화를 통한 관객 저변 확대’였고, 이 점에서 축제는 적지 않은 공로를 쌓았다. 그렇게 위상의 상승, 정착, 확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15년 동안, 발레축제는 한국 발레의 성취와 결핍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무대이자 그 결핍을 공론화하는 토론의 장이었다. 축제는 그 비판을 외면하지 않았다. 2021년 오페라와의 공동주최에서 발레 단독 개최로 전환하며 예산을 늘렸고, 이듬해 조직위가 부산에서 연 포럼은 공공발레단 창단 의제를 공론화했으며, 최근에는 무대를 춘천 등지로 넓혀 갔다. 그러나 내내 변하지 않은 화두가 있었다. 세계적 기량을 길러낸 이 나라가 어째서 그 기량을 담을 창작과 그것을 이끌 시스템은 키워내지 못하는가.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2026년 제16회 축제의 기획공연 두 편과 공모공연 여섯 편을 통해, 그 오래된 물음이 올해 어디까지 답해졌는지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기획공연, 무엇을 위한 기획인가

기획공연은 축제가 스스로 지향하는 바를 기획의 형태로 내보이는 자리다. 그런 점에서 이번 두 편의 기획공연, 〈정구호의 TALE OF TALES〉와 〈발레아리랑〉은 제16회의 자기 선언이라 할 만했다. 성과는 무용수의 새로운 발견에 있었다. 은퇴와 출산을 거쳐 돌아온 무용수나 소속 컴퍼니와는 다른 면모를 드러낸 무용수 등, 새로운 맥락의 캐스팅은 의미 있었다. 협업의 폭 또한 성과로 꼽을 만했다. 정구호의 연출, 미디어아트 그룹 무토(MUTO)의 참여, 그리고 아크람 칸(Akram Khan) 무용단 출신 안무가 김성훈의 합류는 정통 발레 무대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시도다.







〈정구호의 TALE OF TALES〉, 대한민국발레축제 제공 ⓒ양동민



그러나 그 협업은 동시에 한계가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정구호의 TALE OF TALES〉에서는 〈묵향〉과 〈일무〉 등에서 강렬했던 정구호의 미감이 일부만 비쳤고, 안무의 방향성은 오리무중이었다. 여러 장면이 원작에 머무는 사이, 모던한 움직임은 여섯 개의 장을 연결하는 기능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현대무용가가 이만한 기량의 무용수들과 발레를 안무할 때 기대한 것은 새로운 결의 미학이다. 나초 두아토(Nacho Duato)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보여주었듯 익숙한 신체 언어를 어디까지 확장했는가가 관건이었으나, 이번 무대는 그 실험적 도약이 부족했다.

〈발레아리랑〉을 보며 든 의문은 보다 근본적이다. 내밀한 절망의 1부와 집단적 한풀이의 2부는 분위기는 물론, 출연진도 ‘아리랑’을 읽는 결도 달라 두 작업을 사후에 이어 붙인 결과론적 분업처럼 느껴졌다. 무토 박훈규의 음악적 스코어가 먼저 윤곽을 그렸을지언정, 서로 다른 세 세계는 하나의 그림으로 포개지지 못했다.







〈발레아리랑〉, 대한민국발레축제 제공, 대한민국발레축제 제공 ⓒ김재우



많은 자원을 끌어들이고도 막이 내린 뒤 손에 남는 것은 독특한 의상과 약간의 시각 효과 쪽이었다. 드라마도, 무용 고유의 스펙터클도, 기교의 인상도 좀처럼 남지 않는다면, 그 무대는 무용이 중심에 선 작품이라기보다 무용을 소재로 삼은 일회적 협업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는 물음은 지속성이다. 한 번 소비되고 사라지는 퍼포먼스와, 해를 거듭하며 다듬어져 쌓이는 레퍼토리는 다르다. 그 결과가 다시 올리기 어려운 일회성에 그친다면, 그 기획과 지원은 끝내 무엇을 향한 것이었나.


공모공연, 회전문과 등용문 사이

공모 프로그램은 새로운 안무가를 발굴하겠다는 축제의 가장 또렷한 약속이다. 그런데 16년의 명단을 펼치면 등용문보다는 회전문의 풍경이 먼저 눈에 든다. 올해 여섯 편도 프로젝트 클라우드 나인이 일곱 번째, 신현지 B Project가 다섯 번째, 아함아트프로젝트가 네 번째, 무브먼트 momm이 두 번째로 문을 통과한 팀이고, 처음 얼굴을 보인 것은 녹색달과 부산 아이디 발레단 둘이었다. 물론 거듭 선발되는 것 자체가 흠은 아니다. 같은 문을 다시 여는 일이 답습이 아니라 갱신이라면, 회전문은 곧 등용문이 된다. 그래서 여섯 편을 동일한 네 가지 잣대, ‘안무가가 자기만의 신체언어를 지녔는가’, ‘시간을 다루는 구성에 곡선과 여운이 있는가’, ‘무용수의 기량과 무대 위 존재감이 어떠한가’, ‘주제와 개념이 감각과 맞물리는가’ 위에 올려, 나란히 세워 보려 했다.



신현지 B Project 〈HUMAN〉, 대한민국발레축제 제공 ⓒYOON6PHOTO



프로젝트 클라우드 나인 〈Drosselmeyer〉, 대한민국발레축제 제공 ⓒ국립정동극장



거듭 오른 팀은 노련했다. 신현지 B Project의 〈HUMAN〉은 무대를 다루는 손에 군더더기가 없었고, 프로젝트 클라우드 나인의 〈Drosselmeyer〉는 〈황폐한 땅〉에 〈호두까기인형〉을 덧입혀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전자는 인간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탐구한다는 문제의식에 비해, 무대 위에 제시된 신체가 다소 단일한 이상적 육체성에 머물렀다. 만약 작품이 말하는 ‘인간’을 신체의 다양성과 포용성으로까지 확장해 보였다면,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은 더욱 동시대적인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Drosselmeyer〉는 사회적 부조리와 책임 회피를 풍자하는 문제의식에 비해, 이를 구현하는 움직임은 마임과 연극적 제스처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작품이 제시한 개념을 춤 자체의 언어로 전환하는 데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다. 다른 두 팀도 비슷했다. 아함아트프로젝트의 〈Not Out〉은 라이브 노래와 내레이션으로 독창적인 색깔을 지닌 동시에 거듭된 무대로 다져진 저력이 무리 없이 끌어갔으나, 춤으로 남는 것은 없었다. 무브먼트 momm의 〈도깨비의 춤〉 또한 신체언어의 고유성은 약했다. 여러 도깨비의 특징을 직설적 제스처로 처리한 대목은 상상력보다 설명에 가까웠고, 남성 무용수의 파트는 발레 기교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



아함아트프로젝트 〈Not Out〉, 대한민국발레축제 제공 ⓒ김진아(rlajinaa)



무브먼트 momm 〈도깨비의 춤〉, 대한민국발레축제 제공 ⓒYOON6PHOTO



처음 얼굴을 보인 두 팀의 약진이 반가웠다. 부산 아이디 발레단의 〈Essential〉은 축제가 지역으로 넓어질 가능성을 한껏 보여주었다. 그러나 ‘불필요함을 덜어내고 움직임의 본질만을 남긴다’는 안무 의도에 비해, 무대는 단순화보다 동작의 과잉에 가까웠다. 움직임은 쉼 없이 쌓였고 무용수들은 그 밀도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작품이 겨눈 본질은 정제된 단순함보다 신체적 소진의 인상으로 남았다. 반면 녹색달의 〈도깨비 잔치〉는 네 기준을 고르게 충족한 드문 무대였다. 발레의 신체성과 한국춤의 호흡, 무속적 제스처는 억지 없이 스며들었고, 공동체의 흥이 차오르는 시간 설계도 설득력을 지녔다. 마지막의 솔로는 잔치가 끝난 뒤에도 계속될 것 같은 여운을 남겼다. 축제가 앞으로도 기존 출연진의 완성도를 확인하는 자리에 머문다면 회전문은 굳어질 것이다. 그러나 녹색달과 같은 새로운 이름이 꾸준히 등장한다면, 이 무대는 여전히 등용문으로 기능할 것이다.



부산 아이디 발레단 〈Essential〉, 대한민국발레축제 제공 ⓒYOON6PHOTO



녹색달 〈도깨비 잔치〉, 대한민국발레축제 제공 ⓒYOON6PHOTO



울림이 쌓이는 토양을 위하여

시야를 넓혔을 때, 올해의 수확은 흩어져 있던 것들을 한 무대에 이은 일이었다. 전석 매진으로 상경한 광주시립발레단의 무대처럼, 국공립과 민간, 서울과 지역, 기성 레퍼토리와 신진 창작이 한자리에 공존해 발레의 현재와 미래를 담아냈다. 무엇보다 자유소극장의 공모는 이루다, 최수진, 유회웅을 비롯한 오늘의 안무가들을 길러 온 발레계에 몇 안 되는 인큐베이터다.

본론에서 짚은 아쉬움의 상당 부분은 구조적인 문제에 가깝다. 한 작품이 레퍼토리로 익을 시간도, 다시 오를 무대도 넉넉히 주어지지 않는 구조. 축제 스스로도 이 한계를 알고 있다. 30분짜리 공모작을 한 시간 전막으로 키우는 구상, 지역과 다른 장르로 손을 뻗는 다음 걸음이 그 증거다. 그래서 제언은 두 가지다. 기획공연은 해마다 다듬어지는 레퍼토리로, 공모공연은 안전한 완성보다 거칠어도 자기 언어를 밀어붙이는 새 목소리를 지키는 쪽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울림은 거대한 자원이나 화려한 협업이 아니라, 자기 사고로 빚은 한 편의 춤에서 올 수 있다. 축제가 길러야 할 것은 그런 춤이 태어나는 토양이며, 올해의 새 얼굴들은 그 토양이 아직 살아 있음을 일러 주었다.

한지영
춤연구가. 서울예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무용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 무용전공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및 전북대학교에 출강중이다. 2025년 한국무용예술학회 우수논문상 및 한국춤비평가협회 춤비평논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발레 작품의 세계』와 『발레, 미술관에 가다』가 있다.
2026. 7.
사진제공_대한민국발레축제, 양동민, 김재우, YOON6PHOTO, 국립정동극장, 김진아(rlajinaa)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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