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발레하는 휴머노이드 영상을 보았다. 약간의 감탄과 함께 불쾌감과 깊은 불안이 올라왔다. 언젠가 이들의 움직임에서 정동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비인간 담론은 2000년대 이후 동시대 예술이 다룬 논의 중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주제 중 하나다. 신유물론, 포스트휴먼이란 이름 아래에서 논의되는 이 담론은 서구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으로서 비인간 타자를 예술의 주체로 격상했다. 무용도 동물, 로봇, 곰팡이를 무대에 올려 이 흐름에 호응하지만, 여전히 인간 신체가 장르의 핵심이기에 다른 예술과는 다른 미묘한 불안이 감지된다. 비인간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하기에는 매년 개선되는 로봇 기술이 불러일으키는 서늘한 대체의 공포를 뿌리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불안한 동행에 대해 비인간을 주제로 한 두 작업,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어린이+ 전시〈권병준: 내 마음속에 너는〉(2026.6.11.-2027.5.16.,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과 다미앵 잘레(Damien Jalet)와 코헤이 나와(名和晃平)의 〈플래닛(방랑자)(Planet(wanderer))〉(2026.6.24.-26., GS아트센터)은 비인간을 포용하고, 덧붙임으로써 서로 다른 공존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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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어린이+ 전시 〈권병준: 내 마음속에 너는〉 전시 전경,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제공 ⓒ홍철기 |
권병준은 그간 우리 사회의 주변인을 닮은 ‘낯선’ 로봇을 만들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인간을 닮지 않은 로봇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 그리고 포용의 감각을 이야기한다. 전시 속 로봇들은 자연물을 닮았지만, 이를 이루는 천과 와이어, 은박 같은 재료가 지시 대상(referent)을 초과하는 뚜렷한 존재감을 지닌다. 전시의 신작 세 점은 모터 대신 형상기억합금 와이어와 스프링으로 구동된다. 온도에 따라 변형되는 이 소재는 산업적이고 정교한 모터와 달리 제어하기 어려운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황금빛 꽃〉(2026)과 〈황금빛 꽃잎〉(2026)은 천장의 형상기억합금 와이어 장치에 늘어뜨린 약 3m 길이의 천이 와이어의 수축과 이완에 따라 개화와 폐화를 왕복한다. 작품 아래를 거니는 관객은 몸에 서서히 휘감기는 천에서 촉각적인 포옹의 감각을 경험한다. 〈비결정적 유영〉은 천장에 매달린 은박 술(fringe)로 만든 해파리 모양의 로봇 여섯 대로 이루어진다. 여섯 로봇은 천장과 그들을 잇는 와이어가 상하 운동을 하면서 부유한다. 이들의 움직임은 정교하게 제어되지 않는 ‘비결정적’ 추락과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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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준 〈황금빛 꽃〉 & 〈황금빛 꽃잎〉,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제공 ⓒ홍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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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준 〈비결정적 유영〉,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제공 ⓒ홍철기 |
매일 정해진 시간에 10분 남짓한 ‘기계적 연극’ 혹은 ‘공연’이 이루어진다. 이들의 움직임은 모터 구동 로봇 ‘아해’가 등장하는 〈잠재태에서 현실태로_여섯으로 피어나고〉(2024-2026)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1) 형상기억합금의 움직임은 천과 술로 증폭됨에도 미약하여 전경으로 나오지 못하고 배경에 머무른다. 관객의 시선을 즉각적으로 끌고 오는 바닥 철판을 때리는 아해의 탭댄스와 대비되는 초라함, 혹은 나약함이다. 이 나약한 움직임에 전시의 감동이 있다. 형상기억합금은 소수점 단위로 각도와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모터와 달리 정교하지 않은 비선형적 움직임을 만든다. 기계적 정밀성과 동일성 대신 차이와 불규칙, 우연을 담은 이 움직임은 천과 은박으로 전이된다. 가냘프고 통제하기 어려운 이 물질들은 공기의 흐름이나 관객의 발걸음 같은 공간의 작은 변화에도 반응해 움직임의 분산(variance)을 증폭한다. 정교하게 제어되지 않는 불규칙과 차이, 우연은 자연 움직임의 원리이며, 그 일부로서 로봇이 감추고 있는 속성이기도 하다. 기계적 균일성에서 이탈하기에 〈황금빛 꽃〉의 포옹은 매번 다른 감각으로 다가오며, 〈비결정적 유영〉은 그림자와 반사광으로 파도처럼 일렁이는 이미지를 벽 위에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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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준 〈잠재태에서 현실태로_여섯으로 피어나고〉,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제공 ⓒ홍철기 |
휴머노이드는 자신이 모방하는 인간 움직임을 기계적 정확성과 힘으로 초과하고자 한다. 로봇의 모방은 능가로, 능가는 곧 대체로 이어진다. 권병준의 이전 작업이 효율을 거부한 서툰 모방으로 이 경로에서 이탈했다면, 이번 작업은 움직임의 원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모방 논리, 즉 ‘기계적 생동성’으로부터 벗어나 비인간 존재의 일부로서 자신을 드러낸다.2) 아이러니하게도 로봇이 인간이 산업적 효율 혹은 기능적 숙련을 추구하면서 망각한 움직임의 원리를 상기시킨 것이다.
권병준의 로봇은 ‘이방인’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면서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드러내 왔다. 〈황금빛 꽃〉과 이름을 공유하는 외팔 로봇 〈GF〉(2018)들이 그러했다. 이번 전시 속 로봇은 한 발 더 나가 낯선 비인간 존재, 로봇 그 자체로도 다가왔다. 전시가 내세우는 로봇과의 포옹은 단순한 감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포옹은 주체와 객체가 나뉘지 않는 상호적인 행위이며, 정밀하게 합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머금는 행위다. 공존 또한 마찬가지다. 권병준의 로봇은 기계가 오차 없이 반복한다는 환상을 벗어던지고, 물질로서 그 자신에 깃든 우연성과 차이를 드러내어 인간을 향했다. 인간 또한 스스로를 로봇화하는 효율성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 그 자체로 로봇을 향할 수 있겠다. 가장(假裝)을 버리고 차이와 우연을 머금은 채 함께 움직이는 것, 이것이 이 전시가 제시하는 공존의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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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앵 잘레×코헤이 나와 〈플래닛〉, GS아트센터 제공 @YOON6PHOTO |
〈플래닛〉(2021)는 대조적으로 비인간을 인간의 조건으로 덧붙인다. 〈베셀(VESSEL)〉(2016) 이래로 협업해 온 잘레와 나와의 두 번째 무대 작품으로, 댄스 필름 〈미스트(Mist)〉(2022), 쇼케이스 〈프리즘(Prism)〉과 함께 국내에 소개되었다. 작품은 『고사기(古事記)』 속 인간 세계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葦原中国)를 모티브로 한다. 신계 다카아마하라(高天原)와 명계 요미노쿠니(黄泉国)를 배경으로 한 전작 〈베셀〉에 이어, 그사이에 놓인 세계를 다룬 것이다. 무대는 검은 모래로 뒤덮인 낯설고 황량한 외계 행성의 표면 같고, 그 위에서 생명은 갈대(葦)처럼 방황하고 약동한다. 다만 『고사기』와 동일본 대지진을 엮은 신화적 세계관은 분명 흥미롭지만, 콘셉트를 넘어 무대 위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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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앵 잘레×코헤이 나와 〈플래닛〉, GS아트센터 제공 @YOON6PHOTO |
작품은 비인간과 인간이 만나며 생겨나는 움직임의 가능성을 탐색한다.3) 작품에는 다양한 물성의 비인간 요소가 동원된다. 바닥을 덮은 채 반짝이는 탄화규소(silicon carbide) 모래, 전분으로 만든 비뉴턴 유체, 무대에 낮게 깔리는 안개,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전분 슬라임까지 물질들은 공연 내내 무용수의 신체에 덧붙고 뒤섞인다. 물질을 신체에 부착하고 운동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작품의 가장 주요한 특징이다. 이는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외양으로 이끌어 작품을 조각 내지는 무대미술을 중심으로 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신체 표면이 물질로 덮여 ‘조각’적 외관을 이룬다는 시각적 양상 혹은 작가의 주장만으로 작품을 살아있는 조각(living sculpture)의 계보 위에 쉬이 올려놓을 수는 없다. 레베카 호른(Rebecca Horn), 백남준과 샬롯 무어만(Charlotte Moorman)의 살아있는 조각이 장치를 통해 신체 감각과 행위의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작품을 살아있는 조각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비인간의 ‘부착’을 넘어 신체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규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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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앵 잘레×코헤이 나와 〈플래닛〉, GS아트센터 제공 @YOON6PHOTO |
필자가 본 작품의 요점은 외관이 아니라 제작 과정에 있다. 두 작가는 초기 리서치에서 이어지는 재료와 무용 사이 관계를 탐구하는 워크숍으로부터 작품을 시작한다.4) 라텍스부터 얼음까지 다양한 물질과 무용수가 만나 실험과 적응의 과정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장면들을 구성한다. 작품의 안무는 신체가 물질에 대한 감각을 형성하고, 이에 적응하는 오랜 리서치의 결과물이다. 과정(process)이 의미 형성에 깊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작품은 개념적인 성격을 갖는다.
〈플래닛〉은 물질에서 식물, 동물, 인간으로 이어지는 진화 서사를 통해 이 실험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은 생명의 가능성을 배태한 깊은 암전으로 시작한다. 뒤이어 무용수들의 낮게 깔린 움직임이 지표에서 분리되어 나온 물질로서의 상태를 상징한다. 곧 작품의 상징적인 갈대 장면이 등장한다. 무용수들은 비뉴턴 유체 웅덩이에 발이 묶인 갈대처럼 휘청인다. 충격에 단단해지는 비뉴턴 유체의 물성이 움직임의 조건이 되고, 움직임이 다시 유체의 물성을 결정하는 루프가 생긴다는 점에서 작품의 의미를 가장 충실하게 구현했으며, 물질이 신체의 확장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살아있는 조각’의 계보로 작품을 한 걸음 끌어당긴다. 작품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이다. 식물은 곧 땅을 기는 동물이 된다. 이어 무용수들이 모래 위를 나란히 걸으면서 인간됨을 알리고, 작품의 서사는 환경에 적응하고, 투쟁하는 인간의 방랑기로 전환된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모습을 시각화”하고 싶었다는 안무가의 말처럼 공연에서 무용수의 몸은 반복해서 지면으로 당겨지고, 다시 돌아온다.5) 이 과정에서 바닥에 깔린 검고 반짝이는 탄화규소 모래와 천장에서 내려오는 슬라임이 몸을 뒤덮는다. 신체에 물질이 부착되고 누적되면서 신체는 물질에 의한 잠식과 회복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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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앵 잘레×코헤이 나와 〈플래닛〉, GS아트센터 제공 @YOON6PHOTO |
잘레와 나와는 무용수에게 기존의 습관을 내려놓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6) 하지만 갈대 장면을 비롯한 몇몇 특징적인 장면을 제외하면,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기존의 무용 문법을 어떻게 재조직했는지 불분명했다. 이는 무용수들의 몸에 새겨진, 혹은 잘레 자신이 가진 관습과 움직임의 어휘가 물질과의 마찰에서 적응 대신 흡수로 이끌어 움직임을 평준화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 물질이 움직임의 조건으로 작용했을지라도, 움직임의 문법과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으며, 비인간의 개입은 결국 인간 움직임 안으로 회수되어 작품은 여전히 인간 중심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한계가 있다.
두 작업이 말하는 공존의 방법론은 다르다. 권병준의 공존이 모방을 넘어 서로의 본질을 포용하는 것이라면, 다미앵 잘레와 코헤이 나와의 공존은 비인간을 인간의 조건으로 덧붙여 새로운 양태를 모색하는 것이다. 후자에서 비인간은 인간 움직임을 규정하려 하지만 결국 움직임의 주체가 인간으로 돌아오기에,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난다는 측면에서 권병준의 전시가 더 전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작품은 인간과 비인간의 대립 대신 서로 다른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으며, 해결을 향한 실마리와 영감을 건넨다. 〈권병준: 내 마음속에 너는〉처럼 인간과 비인간이 그 자체로서 방향 없이 포용할 때 그리고〈플래닛〉에서처럼 비인간이 인간에 스며들어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 더 나은 공존의 방식을 상상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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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재태에서 현실태로_여섯으로 피어나고〉는 지난 2024년 SPAF 〈새들의 날에〉(2024.10.11.~13., 플랫폼엘) 첫 번째 이야기 – 13인의 아해의 불안〉 에서 선보인 2족 로봇 ‘아해’가 등장한다.
2) 미술사학자 김남시는 생명체를 모방하는 기계의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기계적 생동성’으로 규정한다. 김남시, 「이미테이션 게임으로서의 로보틱 아트」, 『기초조형학연구』 26:5 (2025): 65-76.
3) 두 작가는 이 접점을 각기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왔다. 코헤이 나와가 사람과 동물 등의 대상을 3D 스캔한 데이터를 변형해 재현한 입체작업 〈트랜스(Trans)〉(2012-) 등에서 이를 존재론적 측면에서 다루었다면, 다미앵 잘레는 무대를 34도 기울인 〈스키드(Skid)〉(2017) 등에서 인간 움직임과 결부하여 실험해왔다.
4) 문지윤, 『GS ARTS CENTER EDITION 02』, 혀영균 엮음 (GS 문화재단: 2026), 32, 38.
5) 노정연, 「 슬라임·전분 뒤집어 쓴 무용수들…중력 거스르는 ‘살아 움직이는 조각들’」, 『경향신문』 2026년 6월 24일자, https://www.khan.co.kr/article/202606241650001 (2026.07.24. 확인)
6) 문지윤, 앞의 글, 30.
박주성
퍼포먼스부터 정치적 이미지까지 동시대 예술과 시각문화를 연구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를 졸업하고 서울문화재단 RC프로젝트에서 무용 부문 비평가로 활동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