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김관지 〈킬링 하이라키〉
사이버펑크 굿판
김혜라_춤비평가

사이키 조명이 번뜩이는 어두컴컴한 클럽에서 굿판이 벌어진다. 오랜 시간 다양한 공연을 접하다 보니 첫 장면만 보아도 대략적인 낌새를 직감하게 되는데, 이번 역시 그 예감이 어김없이 적중했다. 시간이 뒤엉킨 무대 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임을 첫눈에 알아챈 것이다. 바로 김관지의 〈킬링 하이라키〉(7.24~27., 세종S씨어터)로 매끈하게 정련된 기존 한국춤 문법을 거부하며 거칠기에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다. 미래와 현실이 교차하는 시공간으로 설정된 이곳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날것의 생명력이 넘실대고, 거친 말(욕)이 새어나오는 틈새에도 정상적인 삶의 이치를 갈구하는 바람이 자욱하다. 퍼포머들은 경기(驚氣)의 춤을 토해낸다는 인상이다. 마치 무언가에 얽매여 견딜 수 없는 상태를 펼쳐 보인다. 이를 통해 김관지는 과거의 굿판이 소환되어야만 하는 오늘의 부조리한 현실을 냉소하며 맞서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김관지 〈킬링 하이라키〉,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극장에 들어서면 객석만이 아니라 플로어에 착석하는 마당판 형식으로 관객이 무대 한복판 상황에 몰입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거리감을 확보한다. 마당판은 이미 이머시브(immersive)를 실천했던 공간으로, 현장의 에너지를 피부로 느끼며 공감하기에 적합하다. 이는 일방향적인 수용을 넘어 관객이 퍼포머가 되기도 하는 주체로 전환되는 장이 된다. 천장 중앙 원형의 사이키 조명과 원색적인 레이저 변주로 인한 입체적 구획은 공간의 성격을 SF적 디스토피아 분위기로 조성한다. 무속 신화 속 캐릭터를 장착한 무용수, 사이보그와 트레이닝복 차림의 무용수들이 맥락 없이 서성인다. 이에 동참하는 탈을 쓴 고수와 민첩하게 무대와 객석을 오가며 스피커로 음량을 조절하는 퍼포머도 종잡을 수 없이 층위를 이동한다. 여성 무용수 바디라인을 적나라하게 강조하는 피부색 의상과 일정 포즈는 퇴폐미를 조장하기도 한다. 장구, 거문고, 피리와 함께 서글픈 구음과 전자사운드의 상보적 어우름은 전통과 현대적 시간의 간극을 잇는다.







김관지 〈킬링 하이라키〉,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각자의 서사에 충실한 춤과 몸짓과 소리를 내지만, 무엇보다 비판과 응징의 메타포로 강렬하게 작동하는 대상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과거 샤머니즘 캐릭터가 오늘의 현실에 등장하며, 물론 미래에도 여전히 호출되어야 할 비판적 주체로 꼿꼿이 비춰진다. 잡귀를 소탕하는 무속의 장군을 연상시키는 무용수는 바닥을 향해 거침없이 채찍질을 가한다. 급작스러운 행동으로 현상황을 응징하려는 행위로 읽혀진다. 은박지로 머리를 덮은 술(fringes)과 길게 딴 머리카락, 비닐 의상에 긴 칼을 든 퍼포머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미래 세계에서 강림한 샤먼의 외형으로 짐작되는데, 그는 단숨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2층계단에서 느리게 무대 중앙으로 내려오는 아우라와 함께 레이저로 구획된 구도안에서 자리한 샤면의 초월적 존재성이 더욱 배가된다. 은박과 비닐 소재 의상에 빛이 반사되면서 무대의 환각적 분위기도 한층 증폭된다. 무법천지의 클럽 바이브와 신화적 환영이 엉키고, 테크놀러지와 원시적 주술이 교차하는 감각적인 공간의 소용돌이로 이내 빨려 들어간다.









김관지 〈킬링 하이라키〉,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이러한 제의적 성격을 공고히 하는 것은 단연 오브제의 현대적 연출이다. 이를테면 전통 굿에서 대나무와 한지로 엮던 술이 이 곳에서는 반짝이는 은박지 술로 교체되며, 자연 친화적인 소재가 인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차가운 물질로 변모한다. 이는 단숨에 무대를 사이버펑크적인 무드로 물들인다. 나아가 무속에서 대나무 솟대가 신령이 내려오는 수직적 통로였다면, 이 곳에서는 퍼포머와 관객이 이심전심으로 소통하는 수평적 연대의 지지대로 작동한다. 관객에게 대나무와 은박 술을 나눠주어 직접 흔들며 동참하게 하고, 때로는 관객을 무대 중앙으로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는 관객도 퍼포머와 함께 현장의 부당한 기운(현실)을 걷어내자는 손길이다. 또한 무용수 개인이 부각될 때마다 사각형 스탠드 거울과 손전등이 대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데, 이 또한 주술적 '빛'의 치환이다. 전통 굿에서 무당의 거울(명두)이 햇빛을 반사해 부정을 걷어내듯, 무대 위의 빛과 거울은 인물들의 억눌린 상처를 비추며 현대적 씻김의 의미로 기능한다.









김관지 〈킬링 하이라키〉,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이 기묘한 열기와 주술적 공기 속에서, 여러 무용수를 짓누르는 몸짓 서사는 산발적으로 펼쳐진다. 절규하는 움직임으로 수십 가지의 상황을 대변하는 표정을 짓는 무용수, 발작적으로 바닥 속으로 침잠할 듯한 무용수, 욕조에서 성적인 포즈를 지속하는 무용수, “쓰레기 같은 세상, 쓰레기 같은 새끼”라는 대사를 거침없이 내뱉는 무용수들의 행위가 그것이다. 일련의 격한 자기고백이 지나고 고수는 “청신”을 외친다. 각각의 무용수들이 겪어낸 고초를 도려내고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굿판처럼 해원의 신나는 판이 기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욱 격화된 몸짓과 교감으로 파고든다. 채찍질을 가하던 무용수와 상의를 탈의한 채 펼치는 무용수의 듀엣은 상당한 밀도로 묵직한 울림을 안긴다. 여성 무용수는 타인의 시선에 소비되던(앞선 퇴페적인 무드) 옷이라는 외피를 벗어 던진다. 서로를 짓눌러 온 억압이 충돌하고 대립하며, 마침내 수용하여 풀어내려는 내재적 힘을 팽팽하게 생성해 낸다. 어떤 단어로 듀엣의 춤을 설명해야 할까? 그저 놀라운 내적 역동이 꿈틀대는 춤이었다. 두 무용수는 탈진하기 직전까지 온몸으로 뭔가를 풀어보려는 경이로운 의지를 보여주었다.





김관지 〈킬링 하이라키〉,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킬링 하이라키〉는 인간성을 부여잡지 못하게 하는 억압에 토로하며 맞서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개별 무용수들의 몸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현실과 실존적 부조리를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위계를 죽인다(killing Hierarchy)’라고는 했으나, 위계가 모호해 정황상으로 유추할 뿐이었다. 구체적인 위계의 실체를 파헤쳐 죽이기보다 굿판이라는 제의적 성격에만 치중해 이 판을 벌여야 할 당위성과 설득력이 다소 약화되었다. 만신(샤먼)이 시선을 사로잡을 뿐 어떤 매개 없이 존재성 과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여성들의 퇴폐미 역시도 대략 짐작할 뿐이었다. 전반적으로 인물들이 각개 전투하듯 흩어져 있어 짜임새도 다소 산발적이다. 물론 선형적 결속 대신 단절된 개인들의 현실을 드러내려 한 의도였을지라도 말이다. 이미 수많은 작품의 파격적 시도들을 상기할 때, 이 작품이 전위적이라 하기도 애매하다. 판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극단적 해체이거나 혹은 촘촘한 맥락적 설득 중 하나를 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술이 불쑥 떠오르는 영감과 놀이를 가장한 난장으로만 머문다면 충분하지 않다.





김관지 〈킬링 하이라키〉,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그럼에도 온실 속 화초같이 다듬어진 생기 없는 작업과는 달리, 배짱 있게 무대를 내방식대로 끌고 가려는 투지는 신선했다. 나만의 과대해석일지는 모르나, 김관지와 퍼포머들은 서로의 춤을 외면하지 않은 채 지긋이 바라본다. 함께 바라보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며, 그것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상생임을 전하려 한 것은 아닐까. 다소 고답적이었던 기존 전통 마당춤과 굿의 요소를 상상력과 삐딱한 자기만의 춤관으로 오묘하게 되살려낸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단아 기질이 있어 보이는 도발적인 김관지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 춤현장이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장.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2026. 8.
사진제공_세종문화회관, 김신중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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