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에 떠올라 참던 숨을 휘파람같이 내쉬는 소리를 ‘숨비 소리’라고 한다. 그리고 제주에는 이 단어를 딴 ‘숨비 소리길’이 있다.
숨비 소리 길은 제주도 구좌읍에 있는 해녀박물관에서 하도리 해안가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로, 길 곳곳에서 해녀들의 손길이 묻은 밭담, 해신당, 불턱 등을 보며 해녀들의 거친 삶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7월 20일 하도리 해안가 별방진 일원에서 열린 장소 특정 공연 제주 올레길 <길 위의 춤>은 왜 제주국제무용제가 여타 공연예술 축제와 다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도를 자주 침공하던 왜선을 방어하기 위한 진지로 구축 된 별방진은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어우러진 검은 성곽이 매력적이다. 이 날은 특히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까지 더해지면서 제주 만의 독특한 풍광이 더욱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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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제주국제무용제 ⓒ오중석 |
독일 벨기에 일본 한국에서 초청된 네 개 무용단은 스스로 선택한 공연 장소가 가진 독특한 자연환경과 스토리를 몸으로 체화시켜 색다른 예술 공연을 창출해 냈다.
평지에서 시작된 성곽이 점점 높아지도록 조성된, 족히 50미터는 되어 보이는 성곽을 택한 일본의 카오리 후지이(Kaori Fujii)컴퍼니. 높고 낮은 공간, 푸른 하늘과 맞물린 길게 뻗은 성곽의 라인, 무성한 잡초와 듬성듬성 대지의 흙들 속에서 춤춘 댄서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제주의 새로운 풍광이 되었다.
대한민국 1 Td 컴퍼니의 4명 댄서들은 별방진 앞 용수천을 공연장소로 택했다. 검은 돌에 몸을 기대어 아래로 내려다보며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관객들에게도 특별한 체험이었다. 댄서들은 고인 물에 몸을 담그고 네모진 공간의 구조물을 활용해 춤추었다. 그들이 울퉁불퉁한 공간을 벗어나 큰 성벽으로 아래에서 또 다른 움직임의 병합을 시도하자 관객들은 한 단체가 선택한 두 개의 다른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댄서들의 몸의 질감을 한껏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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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제주국제무용제 ⓒ오중석 |
성곽을 따라 30미터 쯤 이동해서 만난 또 다른 별방진의 모습은 시각적 풍광만으로도 사람들을 압도했다. 오른편으로는 높은 성곽, 왼편으로는 나무가 우거진 숲 그리고 정면으로는 검은 성곽과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벨기에 로라 딜레만스( Laura Daelemans)의 두 명 댄서들은 얼굴, 페이스만으로 춤추었다. 눈과 혀까지 활용한 그들의 다양한 표정 연기는 상체와 하체를 최대한 절제한 몸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독일 오스나뷔리크 씨어터(Osnaburk Theater)는 별방진 건너 바다를 공연 장소로 택했다. 갖가지 형상의 검은 바위들이 촘촘히 자리 잡은 가까운 바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수 십척의 한치 잡이 배들, 그리고 회색 빛깔의 작은 길을 배경으로 두 명의 댄서들은 컨택즉흥이 갖는 재미까지 더해 관객들에게 찐한 여운을 남겼다. 이날 프로그램은 공연에 출연한 12명의 댄서들과 관객들이 작은 등대가 있는 방파제에서 함께 춤추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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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제주국제무용제 ⓒ오중석 |
이보다 앞서 7월 18일 저녁에 열린 <휴양객들과 함께 하는 제주 마을 춤 캠프>도 눈길을 끌었다. 제주도 애월읍 납읍동 백운경씨 댁 앞마당에서 펼쳐진 이 공연은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과 제주 마을주민들이 함께 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이었다. 제주도 마을의 주민들, 제주에서 활동하는 무용가와 연주가들, 그리고 휴양객들이 함께 만나고, 여기에 더해 제주에서 자생하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함께 즐긴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발상이었다.
프로그램은 오후 4시 납읍리 마을에서 피고 있는 꽃으로 팔찌를 만드는 체험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제주 마을 어린이들과 어머니들이 함께 펼친 마을 춤 공연은 참 소박했다. ‘이어도사나’ 등 제주 민요와 BTS의 K 팝 음악이 사용되었고 무엇보다 춤추는 이들이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이어 전문 무용가 이나래의 물허벅춤과 스페인 출신의 아티스트 미겔 카메라로(Miguel Cameraro)의 즉흥춤 공연이 이어졌다. 제주 해녀들이 사용하는 물허벅을 사용한 춤과 숲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새를 형상화한 즉흥 춤은 제주의 토속적인 정서와 즉흥예술이 주는 자유로움이 묘하게 뒤엉켰다.
야외 공연의 무더위를 피해 실내 공간으로 자리를 옮긴 60여명 참가자들은 제주어와 제주 노래를 배우고 제주도 애월읍 일원에서 구한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이날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제주도 민요 ‘어영나영’에 맞춘 춤 배우기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이날 프로그램 역시 한국에서 열리는 다른 국제 무용축제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무용을 전공한 전문 무용가들과 관객들만이 있는 공연 프로그램이 대부분인 국제 무용축제와 달리서 관광객들과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 그리고 온전히 제주에서 태어난 토박이 제주인들, 어린이부터 장애인 성인 노인들까지 함께 참여한 구성은 휴양지 예술축제의 특별한 차별성을 확연하게 부각시켰다.
7월 16일에 공연된 ‘제주 토속음악이 춤과 만나면’은 제주에서 전승되는 민속음악과 이를 편곡한 음악적인 자산을 새로운 창작 춤 작업으로 연계하는 것으로 어느 새 제주국제무용제의 상징적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동안 20개의 작품이 만들어졌고 이들 모두 제주의 전통적인 콘텐츠를 활용한 예술창작 작업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올해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전문 무용가들을 위한 협력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제주극장 예술감독인 무용가 박수현의 <동백꽃 당신>이 그것으로 제주 어머니의 기억을 풀어낸 1인 무용극으로 제주 해녀와 제주 음식을 함께 음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7월 12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제 갈라 공연으로 시작된 올해 제4회 제주국제무용제는 모두 11개의 프로그램으로 짜여 졌고 8개국에서 100여 명의 아티스트들이 출연했다. 국제댄스프린지, 댄스필름페스타, 제주 아시아퍼시픽 무용 콩쿠르와 어린이 청소년들과 시니어들을 위한 무용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되었다.
제주시뿐만 아니라 애월읍, 구좌읍, 서귀포시 등 제주도내 곳곳에서 열리는 점,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즉흥 등 다양한 영역의 춤 장르가 포함된 점, 공연과 교육, 세계 유명 무용축제(올해는 일본의 오도루 아키타(Odoru Akita)와 타이완의 스트레이 버즈 댄스플랫폼(Stray Birds Dance Platform)과의 직접적인 교류 등 프로그램 구성에서도 여타 축제와의 차별성이 눈에 띄었다.
제주국제무용제(조직위원회 이사장 박인자)는 ‘제주의 자연환경과 만나는 휴양지 춤 축제’를 표방하고 4년 전인 2023년에 시작되었다.
제주도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해녀문화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7대 자연경관에 선정된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제주국제무용제는 제주도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무수한 신화를 무용예술과 접목시킨 차별화 된 콘텐츠를 통해 좁게는 제주도민과 휴양객들에게, 넓게는 전 세계 무용인들의 춤을 통한 만남을 희구하고 있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